제 목: 구원의 확신
본 문: 요한일서 5장 13절
설교자: 조 성 훈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요일 5:13)
사람은 자신이 구원받은 것을 확신할 수 있을까요? 본문 말씀은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자신의 구원을 잃어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도 그 확신에 대해 흔들릴 때가 있고 자신의 구원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반대로 자신이 구원을 받았다고 확신한다고 해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잘못된 근거에 의해 거짓된 확신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에 대한 표현은 다양합니다. ‘믿는다’ ‘구원받는다’ ‘거듭난다’는 모두 같은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단지 단어에 대한 오해가 있는 것입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16: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행16:31).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10:9).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10:13).
제가 병원에 입원해있을 때 한 전도자가 찾아와서 병실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도를 했습니다. 그는 “예수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저 부르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진실로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인 것을 믿고 주님을 부르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강도 중 하나가 “예수여 당신의 나라가 임할 때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했을 때 주님은 “너도 참 염치가 없구나, 이제 믿으면 소용없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구원의 요청을 받아들이시고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답하셨습니다. 그와 같은 마음으로 주님을 부른다면 구원받지 못할 사람이 없습니다.
주님은 “내게 오는 자는 결코 내어쫓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진실된 예수님께 나와서 거절당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잘못된 동기로 나왔습니다. 자기 영혼의 구원에 대한 간절함으로 나온 사람은 한 사람도 거절당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접하면’, ‘받아들이면’, ‘주로 시인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사람이 구원받을 때 일어나는 변화는 자신에게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이들이 구원의 근거를 자신에게서 찾으려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편에서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된 것입니다. 입양 절차를 밟는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자기를 찾아오는 자를 자신의 생명책에 자신의 아들로 등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과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함을 받은 것은 모두 하나님 편에서 이뤄진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성령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는 것도 하나님 편에서 있는 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것이지 우리의 기분이나 감정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입만 벌리면 거짓말을 하는 친구가 돈을 빌려갔다면 그가 돈을 갚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약속 이행이지 우리의 감정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믿는 자에게 영생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것이지 우리의 감정에 달려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많은 이들이 과거에 구원받았던 경험에 머물러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에 의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자신에 대해 해준 구원에 대한 말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두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우리의 구원을 의심하게 될까요? 율법을 강조하는 교회는 구원을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은 대속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또한 사단의 송사를 받아들일 때 확신을 갖지 못합니다. 성령이 마음 속에서 확신을 주시지만 사단의 계속되는 송사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7)의 말씀을 읽고 확신을 가지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형편없는 너 자신을 보라’고 정죄하는 사단의 말에 흔들렸다고 합니다. 다시 일어나 말씀을 읽고 확신을 얻어 잠들려고 하는데 다시 사단이 송사하는 통에 밤새 그것을 반복했다고 합니다. 사단의 송사가 그와 같이 심한 것입니다.
사단은 여러분에게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도 우리를 송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사단의 모든 송사는 주님이 담당하시지만, 우리 마음 속의 사단의 송사는 우리가 성경과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해서 맞서야 할 것입니다.
구원받는 자에게는 그에 대한 여러 가지 증거가 나타납니다.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요일2:3).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요일3:14). 과거의 어떤 경험도, 어떤 감정도 상관없습니다. 현재 여러분 마음 속에 예수님이 구세주라는 것을 믿고 평생 그분을 충성하고 따라야 할 주님으로 여긴다면 여러분은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것으로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요10:27). 이것은 하늘에서 음성을 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의 양은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구원을 받았다면 말씀을 듣고 순종하고자 할 것입니다. 믿는 자는 신령한 젖을 사모한다고 했는데, 일년 이년이 가도 성경을 펴볼 마음이 없다면, 말씀을 들을 때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면 그는 주님의 양이 아닌 것입니다.
또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그들은 나를 따르고 나도 그들을 안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양은 때때로 넘어지고 힘들어 할 때도 있지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합니다. 때로 말씀에 순종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그의 근본적인 자세는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따르고 싶고 순종하고 싶은 자가 주님께 속한 자입니다. 그것들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 자입니다.
결혼식에서 주례가 물으면 신랑 신부는 확신을 가지고 대답합니다. 그 이후에는 신부가 신랑을 따라갑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와 같습니다. 스스로 점검해보십시오. 성경을 볼 때 말씀이 깨달아지고 그것이 감동이 되고, 내 안에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주님께 엎드려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십자가의 강도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