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교회에서 동등한 남녀의 구별된 역할

본문: 고린도전서 11장 2-16절

설교자: 조정의

기독교 형제단이 중요한 신약 교회 원리의 핵심 구절로 삼는 본문은, 단지 무엇을 머리에 쓰고 쓰지 않는지보다 훨씬 더 중요한 본질을 다룬다. 교회 안에서 남녀가 동등하면서도 구별된 역할로 섬겨야 한다는 진리를 담고 있다. 여전히 극단적인 근본주의(유교) 교회에서는 여성에게 복종만을 요구하고 지나친 통제와 억압을 휘두른다. 한편, 자유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교회에서는 여성 인권신장(페니미즘)의 일환으로 여성 목사와 장로를 세우는 것을 복음이 이루어낸 참 자유와 평등으로 믿고 자랑한다. 

실제로 복음은 성차별이 극심하던 그리스-로마 사회에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복음이 일으킨 선한 영향력은 고린도 교회 안에서 남녀 간 갈등을 조장하는 일로 변질됐는데,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남녀가 동등하다는 것과 함께 구별된 역할로 각각 그리스도를 섬긴다는 사실을 균형 있게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그들은 동등만을 요구했다. 바울은 그들이 모든 일에 그를 기억하고 그가 18개월간 머물면서(또 서신을 통하여) 전하여 준 대로 그들이 전통을 지키고 있음을 칭찬하면서(2절), 그들이 잃어버린 균형을 되찾아주기 위해 이 본문을 기록했다.  

교회에서 남녀의 신분과 역할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복음과 직결된 문제다. 교회마다 자유롭게 선택하거나, 목사 또는 회중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게 아니라 오직 복음의 진리를 따라야 한다.

1. 원리(1): 남녀의 신분은 동등하다(11-12절)

11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12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11-12절). 앞에서 남녀가 구별되는 이유를 설명했기 때문에, “그러나”로 시작한다. 역할은 구별하는 것이 맞지만 신분은 동등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동등한 근거는 “주 안에” 있기 때문이다: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 남자와 여자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복음으로 낳으셨다는 면에서 조금도 다르지 않다. 남녀 모두 신분과 특권과 믿음과 구원과 기업과 소망이 같다(엡 4:4-5). 복음은 남녀를 절대로 차별하지 않는다(골 3:11).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않다는 말은 서로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는 말이다. 주 안에서 이성은 착취와 이용의 대상이 아니라 연합과 보완의 대상이다.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다는 것은 앞에서 최초 여성이 남성에게서 났다는 창조 질서(8절)를 뒤집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창조 질서는 남자와 여자의 역할을 이해하는 근거로 사용됐고, 하와가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되어 이후로 태어난 모든 남자가 여자로 말미암아 출생한다는 걸 말하는 이유는 남녀가 동등하다는 것을 뒷받침하기 위함이다. 남자는 여자 없이, 여자는 남자 없이 존재할 수 없다. 또한 서로가 돕는 배필로 보완하지 않으면 안 된다(창 2:18,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가정 안에서 남편과 아내가 동등한 신분과 가치를 가지고 연합하는 것처럼, 교회 안에서 남녀도 그래야 한다.

2. 원리(2): 남녀의 역할은 구별된다(3절)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3절).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전한 전통을 대략적으로 잘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새롭게 고 실천해야 할 본질적 진리가 있었다(현재 겪는 문제). 그것은 여자의 머리가 남자라는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그리스도남자여자의 관계를 설정하고 머리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밝힌다. 가장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는 다수의 신학자들은 머리(케팔레)라는 단어가 내포하는 의미에서 권위를 제거하려고 무척 애쓴다(대체 의미: 근원, 대표). 하지만, 하나님과 그리스도, 그리스도와 남자의 관계 안에서 머리는 분명 권위를 갖는다.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과 동등하시지만 스스로 아버지의 권위 아래 복종하시고(빌 2:6), 남자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아 그 권위에 굴복한다(빌 2:10). 마찬가지로 남녀 관계에서 여자는 남자의 권위 아래 있다.

특별히 결혼 관계 안에서 남편은 아내의 머리가 되고(엡 5:23), 아내는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명령을 받았다(엡 4:24). 교회에서도 남녀의 역할이 분명히 구별된다. 바울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어떻게 행하는 것이 복음의 진리를 따르는 것인지 디모데에게 설명하면서,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라고 명령했다(딤전 2:11-12). 이는 교회에서 여성을 수동적으로 묶어두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여자는 자기 은사를 충분히 활용하고 섬길 수 있다. 다만, 남자 위에 권위를 두는 방식으로는 하지 않는 것이다. 성부와 성자가 동등하지만 역할이 다른 것과 유사하다.

여자도 젊은 여자나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딛 2:4). 복음을 불신 남성에게 전할 수 있다(행 18:26). 여자도 여러 부분에서 지도하고 다스리는 일을 할 수 있다(롬 16:1). 하지만, 남자 위에 권위를 두고 하는 일은 성경이 분명히 금하고 있다. 이것은 여자가 남자보다 은사가 뛰어나지 않거나 지혜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서 남자와 여자에게 맡기신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다. 남편과 아내가 하나님 앞에 동등하지만, 가정에서 각각 역할이 다른 것처럼, 교회에서도 남자와 여자는 동등하지만 동시에 각각 맡은 역할이 다르다. 그 근거는 무엇인가?

3. 근거(1): 창조(8-9절)

첫 번째 근거는 창조 질서다: 8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9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8-9절). 태초에 하나님이 남자를 창조하셨고, 남자에게서 여자를 창조하셨다(창 2:21-25). 창조의 순서에 따라 권위가 주어지는데, 남자는 자기에게서 취하여 지음받은 여자의 이름을 직접 붙여주어 권위를 행사했다. 하나님은 남자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라고 말씀하시고 여자를 지으셨다(창 2:18, 23). 둘이 한 몸을 이루는 부부 관계 안에서 여자는 남자를 돕는 배필 역할을 하도록 창조됐다. 남편은 인도자, 보호자, 공급자 역할을, 아내는 동반자, 지지자, 돕는 배필 역할을 하는 것으로 하나가 되게 하셨다. 교회에서도 이와 같은 남녀의 역할이 분명히 드러나야 한다.

4. 근거(2): 천사(10절)

두 번째 근거는 “천사들”이다: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10절). 여자의 머리 위에 두어야 할 가 무엇인지 실천 부분에서 설명하겠지만, 분명한 건 “권세 아래에 있는 표”라는 것이다. 여자가 은사를 활용할 때, ‘나는 지금 하나님 말씀에 따라 남자의 권세 아래에서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보여주는 표다. 그런데 그 근거로 “천사들로 말미암아”라는 이유를 들었다. 엄청나게 많은 추측과 견해가 난무하지만, 우리는 천사라는 독특한 천상의 존재가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굴복하거나 절대적으로 반역하는 일을 한다는 걸 생각해야 한다. 여자가 머리에 표를 두고 하나님의 권세 아래 굴복하는 것은 순종하는 천사들을 지지하고, 거역하는 귀신들을 정죄하는 역할을 한다. 교회에서 여자의 역할이 이렇게 중요하다.  

5. 근거(3): 본성(13-15절)

고린도 교회 남녀 갈등은 여자가 기도나 예언을 할 때 머리에 쓰지 않고 하려는 반항으로 드러났다. 그래서 바울은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머리 위에 두라고 명령한 것인데(10절), 그 세 번째 근거로 본성을 말한다: 13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14만일 남자에게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부끄러움이 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15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가리는 것을 대신하여 주셨기 때문이니라(13-15절).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은 일로 판단된다. 왜? 본성에 따라 남자는 짧은 머리를, 여자는 긴 머리를 선호하기 때문이다(생물학적 이유도 뒷받침). 유대인은 간통한 여자의 머리를 밀었다. 수치심을 주기 위해서다. 그리스-로마 문화에서도 짧은 머리는 여성들이 부끄러워하는 것이었다(신전 창기들). 반대로 남자는 긴 머리를 선호하지 않았다(긴머리 동성연애자). 물론, 성경이 금지하고 있는 헤어스타일이 있는 건 아니다. 다만, 남자는 가리지 않고 여자는 가리는 것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본성이 가르쳐준다는 것이다. 

발견된 조각상이나 문헌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꼭 교회 안에서가 아니라 문화적으로 그리스 여성이 머리에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성이 머리에 쓰지 않는 것은 수치였고 이혼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정숙함의 표로 여성은 머리에 쓰는 것이 보통이었다(히잡). 그러니 교회 안에서도 은사를 활용할 때, 당시 문화가 요구하는 그리고 나아가 본성이 가르치는 정숙함을 의상에 투영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이다(갈런드, 베이커, 683p).

6. 근거(4): 관례(16절)

마지막 근거는 경고와 함께 제시된다: 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관례가 없느니라(16절). 논쟁하려는 시도 자체를 원천 봉쇄한 뒤, 이 복음의 원리가 모든 하나님의 교회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여자가 남자의 권위를 무시하거나 전복하려는 시도는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서도 하나님 교회에서 절대 용납될 수 없다.

7. 실천: 여자가 기도나 예언을 할 때(4-7절)

남자와 여자는 주 안에서 완전히 동등하지만, 교회에서 맡은 역할은 다르다. 남자는 머리 역할(권위, 지도, 보호, 책임), 여자는 순종, 지지 및 돕는 역할을 한다. 성별에 따른 역할의 차이는 창조 질서와 천사, 본성과 모든 교회가 따라야 할 관례에 근거한다. 

그러면 이것이 어떻게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에 적용되어야 할까? 고린도 교회에 일어난 문제는 여자가 목사가 되거나 장로가 되어 남자를 가르치거나 다스리려고 하는 현상으로 나타나진 않았다. 여자가 기도나 예언을 할 때 머리에 쓴 것을 벗고 하려는 문제로 나타났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권면을 한 것이다: 4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5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 6만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가릴지니라 7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4-7절). 

기도(공중)나 예언(설교)이라는 은사 활용이 분명히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허용되었다. 그러나 남자는 머리에 쓰는 것이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었고, 여자는 반대로 머리에 쓰지 않는 것이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었다. 바울은 머리를 가리지 않겠다고 반항하는 여자가 있다면 깎거나 밀어버리라고 엄히 꾸짖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처럼 여자가 자기 머리를 가리지 않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남자와 여자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구원받은 동등한 존재이지만, 교회에서 은사 활용을 할 때는 각각 자기 역할에 따라 남자는 머리를 가리지 않음으로 자기 머리하나님 영광을 가리지 않고 직접 드러내고, 여자는 반대로 머리를 가림으로 자기 머리인 남자를 통해서(그 권위 아래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라고 했다. 

그러니까 언제든지 공적으로 기도하거나 가르칠 때, 여자는 남자의 권세 아래 있는 표를 머리에 두어야 한다(너울). 본문의 상황이나 배경을 특정하는 것은 순전히 주관적인 생각을 따르는 것이다(만찬 예배, 주일예배). 또한 교회(건물)에 있을 때 혹은 교회 가(성도) 많이 모인 곳이라면 어디서나 항상 머리에 쓰고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본문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남자가 기도하고 예언하는 것에 동참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없다). 유평교회는 여자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기도와 가르침의 은사를 부정하거나 제한하지 않는다. 남자를 다스리거나 가르치지 말라는 성경의 명백한 질서를 위반하지 않는 한 그 은사 활용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지지한다. 그리고 기도와 가르침의 은사를 활용하는 그때, 권세 아래 있는 표를 둘 것을 요구한다(주일학교, 학생회). 

고린도 문화에서 여성은 대부분 쓰는 것으로 정숙함을 드러냈다. 기도나 예언할 때 벗으려 했던 것은 교회에서 남자의 머리됨을 부정하는 본질적 문제의 현상이었다. 오늘날 우린 완전히 다른 문화에서 살아간다. 쓰고 쓰지 않는 것이 정숙이나 수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러나 본질은 지켜야 한다. 남녀가 교회 안에서 동등하지만, 구별된 역할을 맡고 있으며, 각자 자기 역할에 충성함으로 받은 은사를 통하여 서로를 보완하고 세워야 한다. 교회에서 남녀의 역할에 관하여 성경의 가르침에 논쟁하려는 생각이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정도 교회도 하나님의 생각대로 될 때, 가장 아름답고 유익하다. 우리 생각과 지혜를 버리고 그것과 다른, 그것보다 훨씬 높은 하나님 생각과 지혜를 따르는 것이 복음이 우리 안에 일으킨 놀라운 변화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