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교회안에서의 질서
본 문: 고린도전서 14장 26-35절
설교자: 조 성 훈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만일 곁에 앉아 있는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
고린도 교회는 여러 은사에 부족함이 없었으나 그 은사를 활용함에 있어서 무질서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 말씀에서 ‘질서의 하나님’에 대해 말하면서 몇 가지 중요한 교훈들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초대교회에서는 어떤 형태와 내용으로 주일 모임을 가졌는가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은사를 활용할 때 어떤 방법, 순서, 질서를 가지고 활용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모임은 당시 초대교회의 모습대로 모이고 싶다고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문화적 배경도 다르고 시대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모이든지 중요한 것은, 교회가 그리스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과 세상에서 진리의 기둥과 터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만찬예배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하는 만찬 예배와는 조금 다릅니다. 그들은 매일 날마다 모여서 식사를 하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일주일에 몇 번 모이는 것이 성경적인가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모임의 성격과 내용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일주일에 한 번 오늘과 같이 모여서 만찬상을 앞에 두고 주님을 기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이 친히 제정하신대로 떡과 잔을 나누면서 한 주간의 삶을 돌아보고 하나님이 내게 베푸신 은혜와 주님이 받으신 고난, 부활을 기억하면서 찬양하고 예배드리는 것이 만찬예배로서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만찬상을 앞에 두고 다른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당시 교회는 모였을 때에 찬송시도 있고 가르치는 말씀, 계시, 예언도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예언자들, 방언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방언은 배운 적이 없는 다른 나라의 언어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오순절날,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사도들이 말을 할 때 각자가 자신들의 언어로 알아들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배운 적이 없는데 성령의 은사를 통해 말하는 것이 방언입니다. 저는 방언을 한다는 사람들과 대화를 해봤는데 저마다 자신들도 방언의 내용을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말하는 사람도 무슨 말인지 모르고 알아듣는 사람도 없는, 그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는 오늘날의 방언은 성경적이라고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방언은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표적이라고 했습니다. 방언은 자신의 덕을 세우나 예언은 다른 사람의 덕을 세운다고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방언의 은사가 풍부해서 사도 바울도 그것을 활용하도록 허락했으나 여기저기서 방언을 하는 자들이 많아 질서를 세우고자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순서를 따라서 하고 통역이 없으면 잠잠하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제가 여러분 앞에서 설교할 때 한국말이 아닌 방언으로 말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익숙한 언어를 두고 굳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할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방언은 그저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해 전도차원에서 표적으로서 있었던 것입니다.
예언의 은사는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아서 사람들에게 말하는 은사로, 당시 그와 같은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온 예언을 받아서 말하는 도중에 다른 사람에게 다시 계시가 임했을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 때 이미 말하고 있던 자와 새롭게 말하는 자들로 인해 이곳저곳에서 말하게 되는 무질서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새로운 계시가 임했을 때 이전에 말하던 사람은 잠잠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런 계시가 존재한다고 믿기 어렵습니다. 근래에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계속해서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신이 받는 것이 성경말씀과 같다는 말인데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방언은 통역이 없을 때 잠잠할 것, 계시에 있어서 새로운 계시가 임하면 먼저 말하던 사람은 잠잠할 것, 그리고 모든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잠할 것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단순히 건물이 아니고 거듭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래서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말은 교회가 공적으로 모일 때 여자들이 방언을 하거나 예언을 하거나 어떤 것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린도 전서 11장 말씀은, 여자들이 교회적인 모임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구역집회나 파트별 모임, 소그룹 활동 등) 너울을 쓰고 기도를 하거나 가르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런 말씀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한 채 교회 안에서 자매들의 사역을 지나치게 제한하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개방하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가르침과 같이 우리도 교회 안의 이와 같은 질서를 잘 세워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 땅에 죄악이 임한 것은 질서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천사들이 질서에 순복하지 않고 하나님께 대적하여 죄가 들어온 것이고, 세상에 죄가 들어온 것도 하와가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않은 무질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순종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아담이 먼저 범죄한 것이 아니라 하와가 먼저 범죄했기 때문이고,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자가 남자의 권위 아래 있는 질서가 정해진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질서와 교회의 원리를 깊이 묵상하시고 성경적인 교회를 세워가는데 힘쓰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