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교회를 지키는 3중 안전장치
본문: 디모데전서 5장 17-25절
설교자: 이병권
바울은 5장에서 여러 대상을 두고 권면을 시작하는데 바울의 권면은 일반적인 대상에서 좀 더 특별한 대상으로 나아갑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봤던 특별한 대상이 “과부”였습니다. 바울은 디모데가 그리고 교회가 과부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권면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또 다른 특별한 대상, “장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가 오늘 본문을 두고 교회를 지키는 안전장치로 말하는 것은 교회의 리더인 장로가 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사회에서 이슈가 되는 교회의 문제들을 보면 많은 경우에 문제의 원인이 리더입니다. 그리고 리더로 인해 생기는 문제는 일반 성도로 인해 생기는 문제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큰 어려움을 가져다줍니다.
교회를 인도하는 자가 자기 뜻대로 교회를 이용하거나 잘못된 방식으로 교회를 다스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권위를 자신을 위해 함부로 사용하는 경우 그 교회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교회가 안전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건강하게 바로 서기 위해서는 교회를 인도하는 리더, 다시 말해 장로의 역할이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장로는 장로로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여 성도를 인도하고, 성도는 성도로서 자신의 의무를 다하여 장로를 따를 때 교회가 주님 안에서 안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인도하는 자와 인도함을 받는 자가 서로에게 주어진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바울이 디모데에게 그리고 에베소 교회에게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어떤 권면을 하고 있는지 세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존중”입니다.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17)
잘 다스리는 장로들,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장로들에 대해서 교회는 존중해야 합니다. 말씀에서 배나 존경할 자로 알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수치적으로 정확히 두 배를 따지기보다는 특별히 더 그 가치를 알고 인정하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장로는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며 교회를 돌보고 인도하는 일을 합니다. 교회는 장로들의 수고에 대해서 그 가치를 인정하고 장로들이 그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여기 존경할 자로 알라는 명령은 3절에서 과부를 존대하라는 명령이 그러했던 것처럼, 단순히 예의를 갖추고 공경하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재정적인 지원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존경한다는 이 단어가 값을 지불한다는 말에서 나온 것인데, 존경한다는 것은 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그 가치를 인정하고 값을 지불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경의 두 말씀을 인용하여 그 근거를 말씀합니다.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느니라”(18)
바울은 구약의 말씀(신25:4)과 주님께서 하신 말씀(눅10:7)을 인용하여 장로의 물질적인 필요를 공급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소가 일하는 모습을 한 번 상상해보십시오. 농부가 추수한 곡식을 펼쳐놓았고 그 위로 소가 타작용 판자를 끌고 가면서 곡식의 껍질을 벗기는 일을 합니다. 그 때에 소는 일하는 동안 어느 정도 곡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일하면서 필요를 채울 수 있도록 하나님이 명령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일하는 동물이 먹는 일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시고 명령하셨다면, 교회의 일꾼들에 대해서는 얼마나 더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시겠습니까? 이 명령이 가르치는 바가 분명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장로들이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물질적인 필요를 채우는 일을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장로와 교회는 각자에게 맡겨진 책임을 다함으로 서로의 필요를 채워줍니다. 물질적인 필요와 영적인 필요를 채우는 서로의 역할을 다할 때 교회가 안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모두에게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장의 필요를 채워주는 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때 제사장은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없었고, 그 결과 이스라엘은 빠르게 타락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이러한 일을 막고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존중”이 필요한 것입니다. 수고에 대한 가치를 알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그 수고가 어떠한지 모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익한 일이 있는데, 그것은 어떤 일에 대해서 보이지 않는 수고를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음식을 준비하는 일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이 누군가의 수고로 음식을 먹을 때 그 수고를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차려진 음식을 먹는 것은 쉽고 간단한 일이지만 그것을 준비하기까지 걸리는 시간과 노력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장을 보러 가서 필요한 음식 재료들을 사야 합니다. 갖가지 재료들을 손질하고 순서에 따라 지지고 볶고 맛을 내야 합니다. 종류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보이지 않는 많은 수고를 통해서 음식이 만들어집니다. 먹는 것은 간단하지만 준비하고 또 정리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가정에서든 교회에서든, 우리는 누군가의 수고를 헤아리고 그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존중하는 것이 계속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평화를 지키고 모두가 안전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두 번째는 “엄중”입니다.
이어지는 본문은 장로의 죄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장로를 존중해야 합니다. 하지만 죄에 대해서는 엄중해야 합니다. 장로를 존중하는 것과 죄를 다루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장로의 죄에 대해서 다른 원칙을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더 엄중하게 말씀의 원칙에 따라 죄를 다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죄를 지은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사회적 지위나 재산에 따라 다른 사람과의 친분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처벌을 달리하기도 합니다. 눈감아주기도 하고 가볍게 넘어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다릅니다. 교회를 인도하는 장로라 할지라도 죄가 있다면 말씀의 원칙에 따라 죄를 다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에서 세 가지 원칙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원칙은 확인해야 합니다.
“장로에 대한 고발은 두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19)
장로에 대한 고발이 있을 때는 그것이 사실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두세 증인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죄를 확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두 사람 이상의 증인일 수 있고 확실한 증거일 수 있습니다. 확증이 필요한 것은 장로에 대한 악한 공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 인도자들이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양심적으로 산다고 해도 여전히 여러 가지 비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인도자의 자리가 그러합니다. 대적 마귀는 이 점을 노리고 계속해서 복음을 막기 위해 여러 가지 악한 일을 꾸미고 있습니다. 평판을 깎아내리고 주님을 위한 사역을 방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째 원칙은 모함에 빠질 수 있는 장로들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둘째 원칙은 투명해야 합니다.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어 나머지 사람들로 두려워하게 하라”
여기 말씀에서 “범죄한 자들”이라고 되어 있는데, ‘죄를 짓다’는 동사가 현재 시제로 사용되어 범죄한 사실이 증명되었을 뿐만 아니라 계속 그 죄 가운데 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에 교회는 이 죄를 반드시 공개적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 앞에서 죄를 다루어서 투명하게 처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 앞에서 공적으로 죄를 꾸짖을 때 다른 사람들도 죄에 대해서 두려워하고 조심하게 될 것입니다. 죄를 투명하게 다루는 것은 범죄한 자에게 수치심을 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죄에서 지키기 위해서 하는 일입니다. 교회가 거룩함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죄에 대해서 깨끗하고 분명하게 다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 앞에서 말씀의 원칙을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교회는 단지 몇몇 사람의 기분을 맞추는 일이 아니라 거룩을 지키는 중요한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원칙을 따를 때 여러 가지 복잡한 일로 힘들 수 있지만, 이 원칙을 따를 때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지혜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교회는 아픔을 이겨내고 보다 성숙할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원칙은 공정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 너는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불공평하게 하지 말며”(21)
바울은 가장 엄중한 말을 하면서 중요한 원칙을 말합니다. 바울은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천사들을 증인으로 요청합니다.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과 장래의 모든 자들을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와 타락한 천사들과는 대조되는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명령합니다. ‘편견을 가지지 말고 불공평하게 하지 말라’ 쉽게 말해, 공정하라는 명령입니다.
죄에 대한 고발을 듣고 그 내용을 파악하고 사실을 밝히는 모든 과정에서 편견이 없어야 합니다. 불공평하게 그 대상에 따라 다르게 대하고 다른 조건들이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공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도 많이 불공평한 일들을 보고 경험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이런 저런 이유로 자신의 지위나 인맥으로 혹은 자신의 욕심에 따라 뇌물이나 다른 부적절한 방법으로 공정함을 포기해 버립니다. 하지만 교회는 불공평을 버리고 친분에 따라 다르게 하지 않고 개인적인 욕심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다른 말을 하지 않고 경우에 따라 죄를 다르게 생각하지 않고 원칙대로 처리해야 할 것입니다.
나라마다 그 모습에서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법원 앞에는 정의의 여신으로 알려진 유스티티아 동상이 있습니다. 사람이 만든 신화에 근거한 동상이지만 그 모습에서 죄를 다루는 말씀의 원칙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동상은 편견을 피하려고 눈을 가리고 있고 증거를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는 뜻으로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고 다른 손에는 정의를 행할 준비가 되었음을 알리며 검을 들고 있습니다. 정작, 법원이 그렇게 하지 못하더라도 교회는 그러해야 할 것입니다. 말씀의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죄를 다루어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엄중하게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신중”입니다.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하지 말며 네 자신을 지켜 정결하게 하라”(22)
바울은 디모데에게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안수하는 것은 손을 얹는다는 말인데 하나님의 사역을 위임해서 사역을 감당하도록 공적으로 임명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안수하는 일은 절대로 경솔히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교회에서 죄를 다루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장로의 죄를 다루는 일은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죄를 다루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죄를 예방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장로를 세우는 일에 신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누구나 연약함으로 넘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되도록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자격 있는 사람을 신중하게 살피고 시간을 두고 점검한 후에 임명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3장에서 언급했던 자격을 갖춘 자를 검증한 후에 세워야 합니다. 장로를 임명하는 일은 성급해서는 안 되며 충분한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급하게 서두르면 더 큰 문제를 만들게 될 것입니다.
누군가에 대해서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시간을 두고 봐야하는 것입니다. 잠깐 보고 짧은 시간 경험한 것으로 그 사람의 어떠함을 파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실수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이 일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인도자를 임명하는 일은 중요한 일이기에 정말 신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디모데가 자격 없는 사람을 안수했고 그가 계속된 범죄 가운데 있다면 디모데는 장로를 잘못 임명함으로써 그 죄에 간섭한 것, 그 죄에 참여한 것이 됩니다. 교회를 어렵게 만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디모데는 경솔히 말고 서두르지 말고 신중하게 안수해야 했습니다.
또한 디모데는 자신을 정결하게 지킬 때 먼저 된 장로로서 교회를 섬길 자들을 더 신중하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정결하게 지킬 때 걸림 없이 죄를 다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디모데가 자신을 지키지 못했다면, 정결하지 못했다면 다른 사람에 죄에 대해서 말할 수 없고 신중함을 지킬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의 가정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다윗이 죄에 빠졌고 가장으로서 아버지로서 본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자녀들이 죄에 빠졌을 때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합니다. 죄에 대한 걸림이 있으면 다른 사람의 죄를 다룰 수 없는 것입니다.
죄 없는 자가 없으며 떳떳하게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죄를 치리하는 입장이 되어서 말씀에 따라 죄를 다루려면 그 죄에 대한 걸림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의 죄가 밝히 드러나게 될 것이고 죄든 선행이든 숨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의 죄는 밝히 드러나 먼저 심판에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의 죄는 그 뒤를 따르나니 이와 같이 선행도 밝히 드러나고 그렇지 아니한 것도 숨길 수 없느니라“(24-25)
결국 시간이 지나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 드러나지 않더라도 영원히 숨길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디모데는 합당한 자를 장로로 세우기 위해 시간을 들여야 했고 교회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 신중해야 했습니다.
저는 오늘 교회를 지키는 3중 안전장치에 대해서 세 가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존중”과 “엄중”과 “신중”입니다. 이 세 가지에 대해서 세 가지 적용을 살펴보는 것으로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첫째는 존중하여 일꾼을 지키십시오.
교회를 위해 보이게 혹은 보이지 않게 수고하는 일꾼을 지키십시오. 지키는 방법은 수고의 가치를 알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존중하는 것입니다. 일꾼들이 계속 그 일을 기쁨으로 할 수 있도록 도우며 함께 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위해 수고하는 일꾼을 지키는 것이 교회를 지키는 일입니다.
특별히 우리교회는 일꾼들이 상대적으로 어립니다. 앞에서 일하는 일꾼들에게 연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때때로 실수도 하고 어른들이 보시기에 부족한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일꾼들도 이 일을 하면서 배워가는 중이고 성장하는 중입니다. 그 과정 중에 있다고 생각해주시고 사랑으로 용납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맡겨진 일을 계속 잘 감당하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여러분 모두에게 우리 교회에게 유익이 되는 일입니다.
둘째는 엄중하여 원칙을 지키십시오.
교회는 말씀의 원칙에 따라 결정하고 다스리고 죄를 치리합니다. 때로 여러 복잡한 상황 때문에 그 복잡한 상황을 모르고 보면 뭔가 원칙에 벗어난 것처럼 보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 불공평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 말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교회의 일꾼들은 고민하고 말씀의 원리에 따라 교회를 인도하기 위해 수고하고 있습니다. 그 점을 기억하고 여러분도 말씀의 원칙을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나에게 불편을 가져오고 나에게 어려움이 된다 하더라도 말씀에 원칙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씀의 원칙을 포기하는 것은 안전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포기하면 그 순간은 편할 수 있지만, 결국 내 삶을 무너뜨리게 됩니다.
셋째는 신중하여 자신을 지키십시오.
여러분 한 명 한 명이 교회를 이루는 지체입니다. 여러분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죄를 멀리하며 자신을 정결하게 지킬 때 개인의 영적인 안전은 물론 가정과 교회의 안전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수고하시기 바랍니다.
바이러스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서 손을 씻고 마스크를 하고 여러 수고를 하는 것처럼 나의 영적인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일에 게을러지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그렇게 우리가 각자 자신을 지키는 것이 교회의 안전을 지키는 일입니다. 우리가 죄로부터 자신을 지키지 못했을 때 지금은 감출 수 있을지 모르지만, 훗날에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주의하고 죄에 동참하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일꾼을 지키고 원칙을 지키고 자신을 지킬 때, 그렇게 우리 모두가 안전을 위해 수고할 때 우리 각자의 안전은 물론, 가정의 안전과 교회의 안전을 지킬 수 있습니다. 교회를 지키는 3중 안전장치를 잊지 마시고 순종함으로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고 안전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