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가정에서 신앙을 길러내라(3): 마음에 새기고 부지런히 가르치라
본문: 신명기 6장6-9절
설교자: 조정의
전 시간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1) 가정에서 자녀의 신앙을 길러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부모의 올바른 양육을 통하여 자녀에게 복 주시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이다(신 6장, 엡 6장). (2) 자녀를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기 위하여 부모는 반드시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만 사랑해야 한다. 부모가 사랑하지 않는 하나님을 자녀가 사랑하도록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특별히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모습은 가족과 교회를 사랑하는 모습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보이는 사람을 미워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요일 4:20).
부부가 함께 자녀의 신앙을 길러낸다면 가장 좋겠지만, 둘 중 하나만 믿음 안에서 말씀으로 자녀를 신실하게 양육한다면 하나님의 은혜로 복을 누릴 수 있다. 부부 모두가 하나님을 몰라도 할아버지, 할머니 또는 가까운 친척, 교회학교 교사 등을 통하여 복을 누리게 하시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나님은 천대까지 인자를 베푸시는 분이다(출 34:7). 누구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신실하게 전해준 말씀을 듣고 따르면 은혜의 복을 얻게 하실 것이다.
자, 그러면 자녀에게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칠 것인지 성경적인 지침을 배워보자. 7절을 보면 누구에게 무엇을 가르치라고 하시는지 명확한 답을 찾을 수 있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가르칠 대상은 “네 자녀” 곧 하나님이 나에게 양육하라고 맡기신 아들딸이다. 분명히 하자. 내 자녀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칠 책임은 확실히 나에게 있다. 광야 이스라엘 백성이나 초대 교회에 교회학교는 없었다(불필요하다는 말은 아니다). 모세를 비롯한 초대 교회 장로는 부모에게 말씀을 가르치면 됐다. 자녀를 가르칠 책임은 오롯이 부모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녀를 부지런히 가르칠 책임이 있다.
자녀에게 가르칠 내용은 무엇인가? “이 말씀” 곧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치라고 명령하신 모든 규례와 법도와 명령이다(신 6:1). 평생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을 따르게 하는 하나님 말씀을 부모는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쳐야 한다. ‘가르치라고? 강론하라고?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잘 모르는데?’라고 염려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지런히 가르치며”로 번역된 단어는 단순히 ‘되풀이하다’라는 뜻을 갖는다. “강론할 것이며”로 번역된 단어는 ‘말하다’라는 일반적인 뜻을 갖는다. 그러니까 부모는 반드시 가정예배를 드리거나 가정 성경 공부를 통하여 체계적인 교육을 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다만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적절한 때에 말씀을 말하려는 노력, 즉 성경의 원칙과 교훈과 지혜를 자녀와 나누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 언제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까? 성경의 답은 언제나이다: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말)할 것이며(7절). 집과 길은 모든 생활 반경을 포함한다. 집에 앉는 것은 집에서 안식을 누리는 활동, 길을 가는 것은 집 밖에서 활동 하는 삶을 말한다. 누워 있을 때와 일어날 때는 모든 시간대를 포함한다. 자는 시간과 깨어 있는 시간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부모는 언제 어디서나 자녀에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시기와 장소와 상황에 맞게 말씀을 말해주려는 노력을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일이 있다. 자녀에게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 말씀을 말해줄 수 있는 부모가 되기 위하여 먼저 6절의 말씀을 실천해야 한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여기서 ‘나’는 모세를 말하고, ‘너’는 이스라엘 부모 세대를 말한다. ‘너’라고 불린 그들이 모세가 가르치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라고 불린 그들의 자녀에게 가르쳐야 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자녀에게 강론하기 전에, 가르치기 전에 먼저 부모의 마음에 새겨야 했다는 것이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새기다’라는 동사가 없다. 다만 ‘마음에, 중심에, 심중에’라는 표현만 있는데, ‘마음 중심에 (두다)’로 해석할 수 있다.
말씀을 마음에 두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이유는 자꾸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8-9절은 부모가 하나님 말씀을 기억하기 위하여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상세히 묘사한다: 8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9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하나님 말씀을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는 이유는 무엇인가?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서다. 미간에(눈과 눈 사이에, 머리띠) 붙여 표로 삼는 이유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진리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하는 이유는? 집에 들어오면서 잊어버리지 않도록, 집을 나갈 때 다시 한번 기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할 때, 자녀도 분명히 유익을 누릴 수 있지만, 먼저는 부모가 말씀을 마음에 두기 위하여 이와 같은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암구호).
마음에 새긴다는 것은 단순 암기, 숙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속적이고 의식적인 성찰”을 말한다(유진 메릴, NAC, 167p). 어떤 의미인지 언제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본다는 뜻이다. 또한 마음에 새긴다는 것은 “내면의 순종”(맥콘빌, AOTC, 142p) 다시 말해 자신이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주권자의 말씀을 마음으로부터 사모하고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본문이 요구하는 자세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말씀이 시편 119편 97절에 기록되어 있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 부모는 하나님 말씀을 이렇게 부지런히 마음에 새겨야 한다. 그래야 자녀에게 필요한 때 진심으로 말해줄 수 있다. 자녀를 말씀으로 빚고 길러낼 수 있다.
성경학자인 맥콘빌은 “계명은 단순히 법규로서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삶과 대화의 구조로 만들어 다음 세대에게 전수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142p). 무슨 뜻인가? 하나님 말씀이 단순히 전달되는 정보로서 혹은 규칙으로서 자녀에게 요구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은 첫째, 삶의 구조, 즉 먼저는 부모의 삶에 내면화된 말씀으로 자녀가 보고 배울 수 있는 본이 되어 전달되어야 한다. 부모 자신의 삶을 조금도 다듬지 못하는 말씀이 자녀의 삶은 어떻게든 아름답게 조각하기를 기대하며 전달할 수는 없다. 손목에 매는 기호와 미간에 붙인 표는 언약 백성을 식별하는 표식이기도 하다. 진짜 중요한 표식은 손목이나 미간에 붙어 있는 게 아니라 삶으로 나타나는 것이다(눅 3:8). 언약의 백성에게 요구되는 합당한 삶,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자녀에게 분명히 전달되어야 한다. 이는 믿는 부모를 둔 자녀가 평생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특권이자 축복이다(사후에도).
둘째, 하나님 말씀은 대화의 구조, 즉 자녀와 나누는 대화를 통하여 늘 자연스럽게 하나님 말씀이 담고 있는 지혜를 전달해야 한다. 부모는 상대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한다. 문제는 자녀가 그 말씀이 자기와 어떤 상관이 있는지 스스로 잘 연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그래서요?). 그래서 부모는 정확하게 전달할 뿐만 아니라 적실하게, 이론적일 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와닿도록 전달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기분이 들 때, 하나님 말씀은 우리에게 이것을 명령한다’라고 정확하게 가르치는 것도 유익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이런 기분이 들 때, 하나님 말씀은 이렇게 나에게 소망을 주고, 확신을 주며, 위로가 되고, 기쁨과 만족을 누리게 하고, 책망하여 옳은 길로 돌이키게 한다’라고 말씀이 실제로 부모의 마음속에서 역사하는 능력을 말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 말씀이 일으키는 효과를 그들도 기대하고 사모할 수 있도록. 자녀의 반응이 시원치 않아도, 언젠가 그들이 우울할 때, 절망에 빠질 때, 고통받을 때, 공허할 때, 어려움을 만날 때, 유사한 상황에서 부모의 삶에서 실제로 능력을 나타낸 하나님 말씀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말씀의 지혜를 전달하는 이유는 자녀를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이고, 또 말씀이 진실로 그들에게 유익을 줄 것을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억지로, 의무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기쁨으로, 열정적으로 가르치라.
미국 복음 연합에서 2024년 최고의 신앙생활 도서로 선정된 “To the Tenth Generation”(“열 번째 세대까지”) 저자 레이 오틀런드는 부모가 자녀의 신앙을 길러내는 일이 얼마나 위대한 사역인지 더 큰 관점으로 보라고 권했다. 레이와 제니 부부 사이에는 4명의 자녀가 있는데(데인, 개빈 포함), 그들에게 15명의 자녀(손자손녀)가 있어 총 25명의 식구가 생겼다(세 번째 세대 만에). 공동 저자인 제니는 큐티를 하는 중에 신명기 23장 1-2절을 읽었고 부정한 자가 여호와의 총회에 십 대에 이르기까지 들어오지 못한다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천대까지 인자를 베푸시는 하나님이 그러면 신실한 백성에게 십 대에 이르기까지 복을 주시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계산을 해보니, 삼 대까지 25명인 가족이 열 번째 세대까지 이르면 무려 55,000명의 무리를 이룬다고 했다. 그러니까 나에게 주어진 자녀를 신앙으로 잘 길러내면 그들이 그 자녀를, 그 자녀가 또 그들의 자녀를 신실하게 가르치면, 조그만 마을 하나를 이룰 정도로 많은 후손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누리며 하나님을 평생 경외하고 섬기며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유평교회 150가정이 가정에서 신앙을 길러내는 일에 충성한다면 열 번째 세대가 될 때 무려 825만 명이 그 수혜자가 된다는 대략적인 계산이 떨어진다(서울시 인구와 큰 차이 없음).
대한민국의 복음화, 모든 민족과 나라에 복음을 전하는 선교 사역, 그 실질적인 첫걸음은 바로 내게 맡겨진 가정, 나의 양육을 받고 자라는 자녀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은 부모인 당신을 통하여 자녀뿐만 아니라 수많은 후손의 신앙이 자라나고 평생 하나님과 동행하며 복을 누리게 하시기를 기뻐하신다. 이 놀라운 축복과 특권의 자리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말고, 충성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