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가능성을 날려버린 삼손
본문 : 사사기 13-16장외
설교자 : 이 병 권
1.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 주시니라
2.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에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더니
3.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였으나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4. 그러므로 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지니라
5.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시니
6. 이에 그 여인이 가서 그의 남편에게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 내게 오셨는데 그의 모습이 하나님의 사자의 용모 같아서 심히 두려우므로 어디서부터 왔는지를 내가 묻지 못하였고 그도 자기 이름을 내게 이르지 아니하였으며
7. 그가 내게 이르기를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부터 그가 죽는 날까지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하더이다 하니라
8. 마노아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주여 구하옵나니 주께서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오게 하사 우리가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지를 우리에게 가르치게 하소서 하니
9. 하나님이 마노아의 목소리를 들으시니라 여인이 밭에 앉았을 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다시 그에게 임하였으나 그의 남편 마노아는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10. 여인이 급히 달려가서 그의 남편에게 알리어 이르되 보소서 전일에 내게 오셨던 그 사람이 내게 나타났나이다 하매
11. 마노아가 일어나 아내를 따라가서 그 사람에게 이르러 그에게 묻되 당신이 이 여인에게 말씀하신 그 사람이니이까 하니 이르되 내가 그로다 하니라
12. 마노아가 이르되 이제 당신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리이까
13.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이르되 내가 여인에게 말한 것들을 그가 다 삼가서
14. 포도나무의 소산을 먹지 말며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고 내가 그에게 명령한 것은 다 지킬 것이니라 하니라
15. 마노아가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하되 구하옵나니 당신은 우리에게 머물러서 우리가 당신을 위하여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게 하소서 하니
16.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나를 머물게 하나 내가 네 음식을 먹지 아니하리라 번제를 준비하려거든 마땅히 여호와께 드릴지니라 하니 이는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마노아가 알지 못함이었더라
17. 마노아가 또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하되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니이까 당신의 말씀이 이루어질 때에 우리가 당신을 존귀히 여기리이다 하니
18.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자라 하니라
19. 이에 마노아가 염소 새끼와 소제물을 가져다가 바위 위에서 여호와께 드리매 이적이 일어난지라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본즉
20. 불꽃이 제단에서부터 하늘로 올라가는 동시에 여호와의 사자가 제단 불꽃에 휩싸여 올라간지라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그것을 보고 그들의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니라
21.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와 그의 아내에게 다시 나타나지 아니하니 마노아가 그제야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 알고
22. 그의 아내에게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 하니
23.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우리를 죽이려 하셨더라면 우리 손에서 번제와 소제를 받지 아니하셨을 것이요 이 모든 일을 보이지 아니하셨을 것이며 이제 이런 말씀도 우리에게 이르지 아니하셨으리이다 하였더라
24. 그 여인이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삼손이라 하니라 그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
25.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
해가 되고 벌써 한 달의 반 이상이 지나갔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새해를 시작하고 계십니까? 2015년 새해는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소중한 기회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정말 의미 있는 한 해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한 해를 선물로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 안에서의 커다란 가능성을 가지고 새해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마치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도화지를 받은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마음껏 그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2015년이라는 도화지에 어떤 그림으로 여백을 채워 가시겠습니까?
올 한해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재능과 은사와 능력을 하나님을 위해 마음껏 사용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가능성을 주님 안에서 꽃피우고 영광돌리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는 오늘 삼손을 통해서 그 비결을 배우려고 합니다. 삼손이 잘해서가 아니라 그의 실패를 통한 교훈을 배우려고 합니다. 삼손은 이스라엘의 사사로서 시작부터 남달랐던 사람입니다. 삼손은 화려한 출발을 했고, 많은 좋은 조건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정말 뛰어난 재능과 기회를 가졌지만, 그 모든 가능성을 날려버리고 비참하게 최후를 맞았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비극적인 인물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오늘은 그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하는데, 그전에 삼손이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는지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사사기 13장 2절과 3절을 보면 “2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에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더니 3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였으나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천사가 나타나 아들이 태어날 것을 삼손의 어머니에게 알려줍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삼손은 출생부터 달랐습니다. 성경에서 천사가 나타나 아기의 출생을 미리 알려준 경우는 이삭, 세례요한, 예수님 정도입니다. 삼손은 출생에 관해서는 예수님에 버금가는 특별한 출발을 한 것입니다. 이 아기가 어떤 인물이 될까 정말 큰 기대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삼손의 부모들은 굉장히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8절부터 보면 “8 마노아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주여 구하옵나니 주께서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오게 하사 우리가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지를 우리에게 가르치게 하소서 하니”
삼손의 아버지는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아주 경건하고 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당시에 이스라엘은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극도로 타락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왕 되심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행했던, 그런 암흑과도 같은 시기였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의 상황 가운데 이 부모가 가졌던 하나님의 대한 믿음과 경건한 모습은 정말 놀라운 것입니다. 삼손은 이처럼 경건한 부모를 둔 사람이었습니다. 굉장히 좋은 배경과 영적인 자산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거기다가 삼손은 날 때부터 나실인으로 하나님께 드려진 사람이었습니다. 나실인은 하나님께 그 생애를 드려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특별히 구별된 사람입니다. 삼손은 날 때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삼손의 성장 과정에도 함께 하셔서 그에게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와 함께 하십니다.
24절과 25절을 보면 “24 그 여인이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삼손이라 하니라 그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 25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
이처럼 삼손은 누구보다도 좋은 조건과 재능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던 자였습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을 살리지 못하고 비참하게 실패합니다. 잘 알다시피 삼손은 들릴라라는 여자에게 속아서 블레셋의 포로가 됩니다. 16장 21절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그의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 줄로 매고 그에게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삼손은 왜 이런 비참한 결말을 맞게 되었을까요?
지금부터 삼손의 삶을 살펴보면서 그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겠습니다. 그가 가능성을 날려버렸던 첫 번째 이유는 조언을 무시했다는 겁니다. 삼손은 다른 사람의 조언을 듣지 않았습니다. 삼손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삼손은 늘 혼자 다녔습니다. 삼손에게 조언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친구도 없고, 동역자도 없고, 아무도 없습니다. 그저 그가 쫓아다닌 여자들만 나옵니다. 삼손에게 있어서 유일한 조언자는 그의 부모였는데, 삼손은 그들의 말도 듣지 않습니다.
삼손이 딤나라는 곳에서 한 블레셋 여자를 보고 반합니다. 그래서 자기 부모에게 그 여자와 결혼시켜 달라고 조릅니다. 부모가 그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타이르지만, 삼손은 부모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14장 3절을 보면 “3 그의 부모가 그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의 딸들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맞으려 하느냐 하니 삼손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 여자를 데려오소서 하니라”
삼손은 자기 부모의 합당한 충고를 듣지 않습니다. 완전히 무시합니다. 그리고는 떼를 씁니다. 내가 좋으니까, 나를 위해서, 내가 원하는 대로 해달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은 자기 생각대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합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4절을 보면 좀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이 나옵니다. 혹시 사사기를 읽으시다가 여기서 의문을 가졌던 분이 계십니까? 사실 이 부분은 제가 설교를 준비하면서 다루려고 했던 부분은 아닙니다. 그런데 제 아내가 이 구절을 설명해주면 좋겠다고 제게 조언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처음에는 거절하고, 몇 번을 고민하다가 오늘 설교의 내용이 조언에 대한 거라 어쩔 수 없이 아내의 합당한 조언을 듣기로 했습니다.
4절을 보면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까닭에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의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이 말씀에서 삼손이 블레셋 여자와 결혼하려는 것은 블레셋을 치기 위함이고, 하나님을 위한 일인데, 오히려 그것을 반대하는 그의 부모가 잘못하고 있는 것처럼 볼 수 있습니다. 정말 그런 말씀일까요?
먼저 우리가 보는 개역성경은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성경들은 “삼손”이 하니라 “하나님”으로 기록합니다. 여기 주어를 삼손에서 하나님으로 바꾸면 의미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원문을 보면 여기의 주어는 “삼손”도 아니고 “하나님”도 아닙니다. ‘인칭 대명사, 그는’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앞에서 언급한 사람을 받아서 번역을 하는데, 제가 확인한 여러 성경들 가운데 유일하게 개역성경만 이것을 “삼손”으로 번역했습니다. 다른 모든 성경은 하나님으로 번역합니다. 문맥적으로 봤을 때 하나님으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서 개역성경은 오역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사기를 기록한 저자는 모든 사건을 다 알고 있는 가운데 삼손이 자신의 정욕에 따라 자기 뜻대로 행동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신다는 것을 말하고자 합니다. 이스라엘의 계속되는 불순종과 거듭되는 실패 속에서도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그 분의 섭리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4절의 말씀은 삼손의 부모가 당시에 하나님의 계획은 알지 못했지만, 부모로서 지극히 합당한 충고를 했고, 그러나 삼손은 그것을 무시했으며,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분의 놀라운 섭리 안에서 선을 이루신다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어쨌든 여러분, 가능성을 날려버리려면 삼손처럼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조언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자기 생각과 자기 고집대로만 하면 됩니다. 성경은 이것을 어리석은 사람의 특징이라고 말합니다. (새번역)잠언 12장 15절을 보면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행실만이 옳다고 여기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충고에 귀를 기울인다.”
다시 말해서, 바보는 자기만 옳다고 한다는 겁니다. 그게 바보입니다. 딴 게 바보가 아니라 자기만 맞다고 하는 게 바보입니다. 자기 생각, 자기 방식, 자기 행실만 맞다고 하는 게 바보라는 겁니다.
특별히 십대들은 부모의 지혜로운 충고를 안 듣기로 유명합니다. 저도 내년이면 십대를 가진 부모가 됩니다. 그런데 왜 그럴까요? 십대들은 왜 그렇게 부모의 충고를 듣지 않는 걸까요? 그것은 그들이 바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십대들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저도 똑같습니다. 제 아내가 합당한 충고를 할 때, 저는 고집을 피우며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제 안에도 나만이 옳다고 여기는 바보가 있는 겁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여러분 안에도 그런 바보가 있지 않습니까? 바보는 다른 사람의 충고나 조언을 귀담아 듣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반대입니다. (새번역)잠언 12장 15절을 다시 보면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행실만이 옳다고 여기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충고에 귀를 기울인다.”
지혜로운 사람은 충고에 귀를 기울입니다. 조언을 듣는다는 겁니다. 조언을 듣는 사람은 자신만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 배울 수 있고 그래서 더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능성을 살리고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가능성을 실현하길 원하십니까? 그러면 조언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말을 하는 것보다 듣는데 더 신경을 쓰십시오. 신뢰할 수 있는 권위자의 충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최고의 권력을 가진 대통령에게도 어드바이저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모들이 있습니다. 정책적으로 자문하고, 조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각 분야에서 더 뛰어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에 그 사람들의 조언을 듣는 것은 지혜로운 자가 하는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최고의 실력을 가진 선수들에게도 코치가 있습니다. 코치의 조언을 무시하는 선수는 탁월한 선수가 될 수 없습니다. 절대로 그 가능성을 살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그러합니다. 자기 생각만 고집하지 말고, 우리는 적극적으로 지혜로운 충고를 들으려고 해야 합니다. 권위자의 말을 존중하고, 그들의 조언을 물리치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성경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그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 가능성을 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삼손은 조언을 듣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했기에 가능성을 날려버렸습니다. 이어서 삼손이 가능성을 날려버렸던 두 번째 이유를 보겠습니다. 그것은 그가 사명을 잊었다는 겁니다. 삼손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전히 잊고 살았습니다.
13장 5절을 보면 천사가 삼손의 어머니에게 말합니다. “5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시니”
삼손은 사명을 부여받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사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성경을 보면 그는 사명을 완전히 잊고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예로 14장 8절과 9절을 보면 삼손은 자신이 죽인 사자의 시체를 보고 그 시체에 있는 꿀을 먹기 위해, 손을 대는 그런 모습이 나옵니다. 삼손은 나실인이기 때문에 부정한 시체에 손을 대면 안 됩니다. 삼손 자신이 나실인임을 인식했다면 결코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었습니다.
뿐만이 아니라 그는 블레셋과 싸워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계속해서 블레셋 여자들과 어울립니다. 14장에서는 딤나에 있는 블레셋 여자를 좋아해서 아내로 삼고, 16장 전반부에서는 가사라는 블레셋 지역에 가서 거기서 몸을 파는 여자와 함께 합니다. 그리고 16장 후반부에서는 들릴라에게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들릴라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블레셋과 내통하며 그들을 도운 것을 보면 블레셋 사람일 가능성이 큽니다. 삼손은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원수인 블레셋 여자들의 꽁무니만 쫓는 겁니다.
그가 자신의 사명을 인식했다면,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면,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명을 가볍게 여기는 그의 태도는 결국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가능성을 날려버리고 싶다면 사명에 대해서 삼손과 같은 태도를 취하면 됩니다. 사명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든지, 하찮게 여기든지, 망각해버리면 됩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적 없는 삶을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모르고 그냥 삽니다. 뭔가를 하기는 하는데, 왜 하는지도 잘 모르는 겁니다. 그냥 남들이 하니까 나도 따라합니다. 남들이 자녀를 이렇게 키운다고 하니까, 나도 그렇게 따라합니다. 남들이 이렇게 산다고 하니까, 나도 그들의 삶의 모습을 받아들입니다.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 나도 그게 좋은 것으로 알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뭔지도 모르는 겁니다. 그냥 사는 겁니다.
우리는 달라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 겁니까? 무엇 때문에 먹고, 무엇 때문에 마시고, 무엇 때문에 시간을 쓰고, 무엇 때문에 돈을 쓰고, 무엇을 위해 수고하고 고생하며 사는 겁니까?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이 있기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가 이루어야 할 일, 그것을 위해 사는 겁니다.
우리는 단지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큰 집에 살고, 더 편한 차를 타고, 더 맛있는 음식, 더 재밌는 취미를 즐기라고 여기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내 좋을 대로, 잘 먹고 잘 살자고 여기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단지 그런 것을 위해서 우리를 이 땅에 두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은 그런 것보다 훨씬 더 큽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9절과 20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지상사명입니다. 그분은 또한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는 위대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이 사명과 연관이 되어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전도, 양육, 교제, 섬김 등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의 삶이 이 같은 일과 연관되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내가 무엇을 하든지,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지, 나에게 주어진 삶의 영역에서 그것과 관련해서 우리의 사명을 구체적으로 발견해야 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이런 명언을 남겼습니다. “우리의 인생의 가장 중요한 날이 두 날이 있는데, 하나는 내가 태어난 날이고, 다른 하나는 그 이유를 알게 된 날이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왜 여기에 있는지, 왜 생명을 갖고 존재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고 계십니까? 사명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만약에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것에 헌신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두 날 가운데서 아직 한 날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 여러분의 사명을 구체적으로 발견하십시오. 그리고 그 사명을 언제나 인식하며, 그것을 이루는데 헌신하십시오. 그래야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래야 인생의 그 모든 작은 일들, 잠자고, 먹고, 쉬고, TV보는 일들, 그 모든 작은 목표들, 체중을 감량하고, 공부하고, 대학을 가고, 직장을 가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자녀를 양육하고, 운동을 하고, 축구를 하고, 우리가 하는 그 모든 일들이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 사명에 헌신 할 때 우리는 우리의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삼손은 사명을 잊고 살았기 때문에 자신의 가능성을 날려버렸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이유입니다. 그것은 그가 훈련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삼손은 능력도 있었고, 좋은 배경도 있었고, 재능도 있었지만, 훈련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삼손은 자신의 감정과 본능에 의해서 움직였습니다. 길들여지지 않은 짐승과 같은, 말 그대로 수컷이었습니다. 그는 어떠한 경건한 습관도 개발하지 않았습니다. 인내하며 절제하는 모습이나,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모습이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을 삼손에게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삼손은 목이 말라 죽게 되었을 때 한 번 기도했고, 그리고 죽기 직전에 또 한 번 기도했습니다. 그것이 다입니다. 자기가 죽게 되었을 때만 하나님을 찾는 겁니다. 다니엘처럼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를 했다거나, 바울처럼 자기 몸을 쳐서 복종시키는 그런 훈련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삼손은 자기 몸이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자기 본능과 감정이 지시하는 대로 그것을 따라 살았습니다.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화가 나면 폭발해버리고, 하고 싶은 말은 그냥 해버리고, 여자가 자기 눈에 들면 쫓아다니고,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보는 것을 좇아서 살았던 겁니다. 자신을 절제하지 못하고, 자신의 정욕대로 눈에 보이는 것을 쫓아 살았던 삼손은, 결국 자신의 두 눈이 뽑히게 됩니다. 삼손이 자신의 정욕, 자신의 약점을 다스리지 못하고 훈련하지 않은 것은 가능성을 날려버린 가장 큰 원인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훈련하지 않는다면, 어떤 재능을 가졌다 하더라도 우리는 결코 우리의 가능성을 온전히 살릴 수 없습니다.
휘트니 휴스턴이란 가수가 있었습니다. 신이 내린 목소리를 가졌다고 평가받았던 미국의 정말 유명한 가수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뛰어난 재능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 성공을 관리할 만한 훈련된 사람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녀는 불량한 남자와 함부로 어울렸고, 그리고 이혼했고, 마약에 손을 댔고, 자기 관리에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마약 중독 등의 폐인 생활로 자신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다 날려버렸습니다. 그리고 결국 2012년 2월에 자신의 호텔 방에서 48세의 나이로 쓸쓸히 죽음을 맞았습니다. 사인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마약 중독의 후유증일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렇게 큰 재능을 가졌던 사람인데, 그녀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고백했었고, 교회도 다녔던 사람입니다. 그녀가 스스로를 훈련하고, 자신을 관리했다면, 하나님의 나라와 그 영광을 위해서 얼마나 큰일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그 모든 가능성을 날려버린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경건을 훈련하라고 명령합니다. (새번역)디모데전서 4장 7절과 8절입니다. “7 저속하고 헛된 꾸며낸 이야기들을 물리치십시오. 경건함에 이르도록 몸을 훈련하십시오. 8 몸의 훈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 훈련은 모든 면에 유익하니, 이 세상과 장차 올 세상의 생명을 약속해 줍니다.“
바울은 자신의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받기 위해서는 영적인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 가운데, 쓰임받기를 원한다면 훈련해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살리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훈련되어야 합니다. 훈련해야 더 좋아집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자고 싶은 대로 자고, 그냥 편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는 노력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며, 본이 되는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훈련을 게을리 한 선수는 아무리 그가 재능이 많다 하더라도 운동장에서 제대로 뛸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훈련하지 않은 사람은 지속적인 진보와 변화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훈련하지 않은 사람은 자기 기분과 자기감정에 쉽게 휘둘리게 됩니다. 훈련하지 않은 사람은 사탄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위기의 때에 실족하거나 죄에 빠지기가 너무 쉬운 것입니다.
여러분은 스스로를 훈련하고 계십니까?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는 것처럼, 경건을 위해 훈련을 하고 계십니까? 말씀 묵상과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훈련을 하십니까?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섬기고 봉사하는 훈련을 하십니까? 다른 사람을 존중함으로 배려하고 겸손을 실천하는 훈련을 하십니까? 경건 서적을 읽고 성경을 공부하는 영적 학습의 훈련을 하십니까? 금식이나 절식이나 침묵 등을 통해서 절제하는 훈련을 하십니까? 불평이나 비방하고픈 유혹을 뿌리치고 입술을 다스리는 훈련을 하십니까? 계획적인 헌금생활을 통해 욕심을 버리고 나눔을 실천하는 훈련을 하십니까?
물론, 훈련을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며 계속 해야 합니다. 그러면 변화가 있습니다. 그러면 달라집니다.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가능성은 열려있습니다. 그러니 그 필요성을 인식하고 훈련을 시작하십시오. 내일부터라는 속삭임을 뿌리쳐야 합니다. 그것은 사탄의 속삭임입니다. 내일부터, 내일부터, 내일부터, 그 속삭임을 뿌리치고 할 수 있는 것부터 오늘 시작하십시오.
이를 테면 잠자기 전에 성경 한 장을 읽고 잠깐 기도하는 것과 같은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시기 바랍니다. 미루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계속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예배와 교제와 기도와 섬김과 절제와 드림과 학습과 같은 경건의 훈련을 하십시오. 그럴 때 우리의 재능과 가능성이 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 받고 그 가능성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저는 삼손을 통해서 올 한 해 우리에게 주어진 가능성을 온전히 실현하려면, 그 가능성을 꽃피우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 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그것은 경건한 사람의 조언을 듣는 것이며, 사명을 인식하며 사는 것이며, 스스로를 훈련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꿈을 가지고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가족과 친구와 주변 사람들이 지금 여러분을 보며 상상할 수 없었던,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더 나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실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니 조언을 경청하고 사명을 인식하며 자기를 훈련함으로 내 모든 가능성과 잠재력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온전히 꽃피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