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11일 이재명 경기지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확산을 막기 위해 ‘종교집회 전면금지’ 방침을 시행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대신 예방 활동을 하지 않는 종교시설은 22일부터 집회 금지 행정처분 명령을 내린다고 한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말한 “예방 활동”이란 1) 발열 체크, 2) 손 소독, 3) 마스크 착용, 4) 집회 시 2m 이상 거리 유지, 5) 집회 뒤 소독 등을 말한다. 경기도에 있는 교회 중 56%가 주일 예배를 강행할 의사가 있어 큰 결단을 내린 것이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3월 12일 00시 기준, 경기도 코로나 19 확진자는 178명에 이른다. 경기도와 가까운 서울까지 합치면 390명이고, 대구 그리고 경북과 많은 차이가 나지만 서울, 경기는 세 번째와 네 번째로 확진자가 많은 지역이다. 특히 서울 콜센터에서 무더기로 확진자가 생기면서 질병을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빠른 확산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상황이다.

경기도에 속한 한 교회로서, 유평교회는 3월 1일부터 집회 대신 가정 예배로 주일과 수요일 공적 예배를 드리고 있다. 목사로서 성도들이 모이지 않고 가정에서 예배를 드릴 때 입게 될 손해에 대하여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44% 온라인 혹은 가정 예배를 선택한 교회 그리고 56%의 주일 집회를 강행하기 원하는 교회 모두 모이기에 힘써야 한다는 것과 그 중요성을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결정을 내렸다.

여론은 압도적으로 집회를 강행하는 교회를 미워하고 비판하지만, 필자는 그 선택을 한 교회와 그 인도자들의 선택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인지 알기 때문에 충분히 공감하고 존중한다. 다만 오늘 칼럼에서 왜 가정 예배를 선택했는지, 그리고 그 선택을 할 때 어떤 말씀을 가지고 씨름했는지 나누고 싶다.

1. 우리는 모이기를 폐하려는 것인가?(히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5)

가정 예배를 선택할 때 외부의 시선보다 성도들의 마음을 가장 먼저 그리고 많이 고려했다. 집회에 와서 누군가에게 옮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또 누군가에게 나도 모르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염려. 중국에 출장을 다녀온 사람은 자가격리를 하고, 대구-경북에 방문했던 성도 역시 스스로 조심하지만, 촘촘히 앉아 떡을 함께 떼고 찬양하고 식사하면서 그런 불안감은 자칫하면 성도 간에 판단, 정죄,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다. 목사의 입장에서는 성도가 평안함과 안전함을 느끼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불안과 염려를 조장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보다 더 낫다.

하지만 목사는 외부의 시선, 심지어 성도들의 안위보다 더 고려해야 할 것이 있는데, ‘과연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모세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할 때, 백성의 안위와 요구를 신실하게 듣고 살피면서도,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의 말씀이었던 것처럼, 결국 목사는 목자장 되신 성자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에 따라 인도해야 할 책임이 있는 종, 그것으로 결산 받을 일꾼이 아닌가?

그런 면에서 히브리서 10장 25절 말씀은 가정 예배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많은 고민이 되었던 목자장의 뜻이었다. 본문은 분명히 “그 날” 곧 목자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권면한다. “그리하자”가 가리키는 행위는 앞에 부정적으로 언급된 사람이 거부했던 행위, 즉 ‘모이는 것’을 말한다(더 나아가 24절의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도 포함).

가정 예배를 선택하는 것이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대부분 집단 감염으로 빠르게 확산되는 코로나 19를 막기 위해 임시로 가정 예배를 하는 것은 본문이 말하는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이 아니다. 본문은 구체적인 상황을 말해주지 않기 때문에, 왜 어떤 사람들이 모이기를 습관적으로 폐하게 됐는지 알 수 없다. 저명한 신학자 F. F. 브루스가 히브리서 주석에 말한 것처럼(NICNT, 1990), 주로 유대인을 대상으로 쓰인 이 서신서가 염두에 둔 것은 믿음을 버리게 하는 유대인 공동체의 사회적 압박이나 핍박, 개인적인 게으름, 세속화된 신앙 등의 문제로 교회를 등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국가적 재난에 대처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가정 예배로 대체하는 것이 장기화될수록 어떤 성도의 신앙이 약해지고 모이기를 폐하는 습관을 만들어낼 소지는 있다. 목사로서 그 부분을 위해 기도하고, 개인적으로 돌아보고 격려할 필요가 있다. 목사뿐만 아니라 성도가 성도를 격려하고 돌아보라고 10장 24절에 기록되어 있다. 가졍 예배를 선택한 우리가 더욱 힘써야 할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다.

집회를 선택하는 것은 어떨까? 예수님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라고 말씀하셨다(막 2:27). 집회가 중요하지만 단지 모이는 것만 중요하게 여겨 그 속에서 불안하고 염려할 성도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다면, 그것도 문제다. 실제로 집회를 통해 확진자가 발생할 경우 그에 대한 책임도 감수해야 한다.

그러므로 둘 중 무엇을 선택해도 그것으로 인해 노력하고 수고해야 할 영역이 생기는 것이지, 어느 하나가 하나님의 말씀, 특히 히브리서 10장 25절의 모이기에 힘쓰라는 말씀을 위배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결론에 도달하여 가정 예배를 선택하게 되었다.

2. 지금 상황에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마 22: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

구약 39권을 두 개의 장르로 구분하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이 “율법(토라)”과 “선지자”로 나눌 수 있다. “온(whole)”이란 표현으로 예수님은 구약 성경 전체를 통해 하나님이 그 백성에게 주신 뜻을 두 가지로 요약하셨다. 1) 하나님을 사랑하라, 2) 이웃을 사랑하라.

어떤 면에서 집회를 고려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 첫째 되는 계명이기 때문에 그 선택을 하는 것처럼 보이고, 가정 예배를 선택하는 사람은 첫째 계명보다는 둘째 계명을 생각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실제로 공생애를 통해 직접 그리고 완벽하게 보여주셨다. 그분이 하시는 모든 일은 아버지를 향한 신실한 사랑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사람들 특별히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에게(심지어 예수님을 거절하고 핍박하는 이들에게까지) 아낌없이 베풀어졌다.

우리는 두 계명에 모두 순종할 수 있다. 집회를 가지면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일도 가능하지만, 가정 예배를 선택하면서 하나님을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사랑할 수도 있다. 특별히 교회의 이웃이 집단 감염의 위험을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이때, 그들을 위해 임시로 조심스럽게 처신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내 몸처럼 사랑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단지 집회 활동을 하지 않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시간을 이웃을 실제로 돌보고 사랑하는 데 사용한다면(마스크나 세정제를 나눠주기, 음식을 나누기, 안부 묻기, 기도해주기 등) 오히려 지금의 상황은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 이웃을 우리 자신 같이 사랑할 수 있는 큰 기회가 될 것이다.

하나님을 온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사랑하는 마음으로 집회를 갖는다면, 그만큼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더더욱 예방 활동을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주님께서 그 모든 과정 가운데 은혜를 베푸시길 진심으로 기도한다. 순전한 마음으로 모이기 힘쓰는 교회를 통해 혹시라도 확진자가 생기거나 주변 이웃에게 감염을 일으켜 그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이 왜곡되고 비방 거리로 전락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3.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어떻게 내고 있는가?(고후 2:14-16)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고후 2:14-16)

코로나 19가 이토록 빠르게 확산된 데는 이단 신천지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MBC PD수첩에서는(3.10일 방영) 확진자 중 4,000명 이상이 신천지교도라고 보도했다. 그들이 믿는 교리는 터무니없다. 스펙트럼이 매우 넓은 기독교이지만 그 안에 절대 포함할 수 없는 이단이다.

이번 사태로 신천지는 국민적인 주목을 받고 있으며 나아가 미움을 받고 있다. 많은 가정을 파탄 내고 개인의 재산을 갈취하는 등 거짓 교사(자칭 메시아) 이만희 교주가 저지른 악한 행위들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다. 이렇게까지 문제가 커진 이유는 신천지가 믿을 수 없는 집단으로 계속해서 속이고 빼앗고 접근하고 퍼뜨리는 일에 매진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확진자가 발생하고 나서도 그들은 계속해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 신천지는 지금 믿는 사람(“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믿지 않는 사람(“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사망의 냄새를 내고 있다.

교회는 어떤가? 우리는 지금 어떤 냄새를 내고 있을까? 각처에서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우리를 통해 나타내신다.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다. 구원 받는 자들에게는 생명에 이르는 냄새를 내고, 망하는 자들에게는 오히려 사망에 이르는 냄새를 낼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이것은 집회를 담대히 갖게 하는 동기를 부여할 것이다. 모이는 것을 비판하는 자들은 생명의 냄새를 맡지 못하는 이들이고, 모이는 것을 보고 생명에 이르는 이들은 구원 받는 자들이라고 본다. 그러니 교회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꼭 그렇게 볼 건 아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살아내는 사람을 통해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향기를 나타내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지금의 사태를 앞두고 임시로 집회 혹은 가정 예배를 선택한다고 해서 우리가 믿는 복음을 버리거나 변질된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어쩌면 우리는 계속해서 정부과 국민을 속이고 어떻게든 비밀리에 모이는 신천지가 내는 냄새와 어우러진 냄새를 내지 않을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특별히 코로나 19 공포로 놀란 가슴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명의 복음이 전달되려면, ‘너희가 아무리 염려하고 두려워해도 우리는 상관 없이 모일 거고,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식으로 보이거나 의사 전달을 해서는 안 된다.

혹시 모이더라도 그리스도의 은혜와 진리가 충분히 전달되도록,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생명에 이르는 그리스도를 아는 향기를 세상의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에게 분명히 나타내시도록 해야 한다. 가정 예배를 선택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모이지 않더라도 우리가 각자 처한 그곳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더욱 분명하게 나타내도록 하나님께 간구하며 복음을 실천해야 한다.

결론
지난 40년 동안 교회 전체 성도가 함께 모이지 않고 가정 예배로 대체한 것이 처음이다. 아마 대부분의 교회들이 처음 이런 일을 경험할 것이다. 각자 오랜 고민과 논의 끝에 선택했을 것이고, 그만큼 확신을 가지고 강력하게 성도들을 격려하고 권면할 부분이 생겼을 것이다.

자칫 한 지역교회의 결정이 다른 결정을 한 교회에게 압박이나 요구처럼 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믿음이 좋은 교회는 집회를, 믿음이 떨어지는 교회는 온라인이나 가정 예배를 선택하는 것처럼 말하지 않기를 바란다. 반대로 집회를 강행는 교회를 고집스럽고 사태 파악을 못하는, 그래서 복음을 오히려 흐리는 교회로 낙인찍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는 말씀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갈 5:15).

오히려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가정 예배나 온라인 예배를 선택한 교회의 성도들이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모이기를 폐하는 습관이 생기지 않기를, 오히려 함께 모여 주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기를 사모하는 마음이 깊어지도록 기도하자. 반대로 집회를 하는 교회의 성도들이 코로나 19 위험에서 안전하기를, 그들 가운데 아무도 확진자가 생기지 않아서 교회가 임시 폐쇄되고 지역 사회에 손가락질을 받으며 나아가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는 일에 장애가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자.

무엇보다 교회가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향기를 아름답게 나타내기를, 그들의 선행과 사랑이 고통받는 이웃에게 전해지기를, 그래서 어두운 이 사회에 그리스도의 교회가 더욱 빛과 소금으로 복음을 밝히 나타내기를 간절히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