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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사.랑.하.라
본문 : 마가복음 12장 28~34절
설교자 : 최종혁
거울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일반적인 평면거울이 있고 볼록 거울이나 오목 거울도 있다. 오목 거울은 가까이 가면 실제보다 더 크게 보여주는 효과가 있다. 볼록 거울은 실물보다 작게 보여주는 대신 더 많은 부분을 보여준다. 관광지 같은 곳에 가면 재미 삼아 날씬해 보이는 거울과 뚱뚱해 보이는 거울을 설치해 둔 곳도 있다. 특히 옷 가게 등에 설치된 전신 거울은 더 날씬하게 보여주는 효과를 노리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내 모습을 그대로 보고 싶으면 깨끗한 평면거울이 필요하다. 다른 거울을 써서 얼굴이 더 작아 보이게 할 수는 있지만 그래봐야 그렇게 보일 뿐 실제로 그런 것은 아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찍는 셀카도 그렇다. 필터를 쓰고 보정을 해서 더 예쁘고 귀엽고 멋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 수는 있지만, 그것이 실제의 나는 아니다. 나를 제대로 보고 싶으면 필터 없이 찍어 봐야 한다. 나를 제대로 보려면 제대로 된 거울이 필요하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성경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궁극적인 거울이다. 이 거울은 우리를 가감 없이 비춰준다. 그래서 이 거울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좀 예쁘게 보여주는 거울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정직한 거울이 필요하다. 그래야 잘못된 것을 바로 잡을 수 있다. 예쁘게 보여주는 거울은 기분은 좋게 해줄지 모르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거울을 보자.
본문 (막 12:28-34)
28.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29.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32.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33.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34.예수께서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이 본문은 한 서기관과 예수님 사이에 있었던 대화가 주를 이룬다. 서기관이 묻고 예수님이 답하고, 그 예수님의 답에 서기관이 응답하고 마지막으로 그 서기관의 말에 예수님께서 응답하시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서기관의 질문은 적절한 질문이었고 예수님의 답은 유일한 정답이었다. 그에 대한 서기관의 응답은 정직했으며 그 서기관에 대한 예수님의 응답도 정직했다. 말씀을 살펴보자.
1. 적절한 질문(28절)
예수님은 성전에 계셨고 십자가를 눈앞에 두고 계셨다. 그런 예수님을 책잡기 위해 종교 지도자들은 차례로 예수님을 찾아와 논쟁했다.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뽑힌 사람이 와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는 질문을 했고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막 12:17)는 지혜로운 답을 하셨다.
이어서 사두개인들이 찾아와서 부활에 대해서 물었다. 그들은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이었기 때문에 예수님께 어려운 질문을 던졌다. 부활이 있다면, 대를 잇기 위해서 여러 사람과 결혼한 적이 있는 여자는 부활 때에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부활 때에는 아무도 부부 관계에 있지 않으니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하시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시기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음을 그들에게 가르치신다.
이들이 던진 질문이 전혀 의미 없는 질문은 아니었지만 좀 아쉬운 면은 있다. 만약 우리나라의 대통령을 만나서 단 하나의 질문을 할 수 있다면 어떤 질문을 하겠는가? 아침에 식사는 하셨는지, 과일은 뭐를 좋아하시는지를 묻겠는가? 그것보다는 내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질문을 할 것이다. 이 사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얻으려고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다음에 등장하는 서기관은 훨씬 더 중요하고 적절한 질문을 한다.
“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28절)
서기관은 율법을 연구하는 자들로서 오늘날의 신학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마태의 기록에 따르면 이 서기관은 바리새인이고 그들 중의 대표로서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예수님 앞에 나왔다(마 22:34-35). 하지만 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 서기관은 단지 예수님을 책잡으려고 예수님께 나온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는 스스로 예수님 앞에 나가서 질문하기를 자원했을 수도 있다. 여하튼, 그는 율법의 전문가로서 그는 율법에 대한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한다.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어떤 계명을 하나님께서 제일 처음에 주셨냐고 물은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계명이 무엇이냐는 의미다.
그들의 셈을 따르면 율법에는 613개(십계명의 글자수)의 계명이 있고 그 중 365개(1년)가 부정형이고 248개(인간 몸을 구성하는 각 부분 개수)가 긍정형의 명령이다. 특히 그들은 무거운 계명과 가벼운 계명을 구분했다. 그리고 그 중 어느 계명이 가장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토론하곤 했다.
예수님도 율법의 계명 중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암시하는 말씀들을 하셨다. – “누구든지 이 계명 중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막 5:19),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마 23:23).
계명을 주신 하나님이 동일하시기에 율법의 하나를 어기는 것도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 되기에 충분하다. 어쩌면 서기관들이 이 질문을 선택한 이유도 거기에 있었을지 모른다. 예수님께서 어느 한 계명을 고르면 그럼 이거는 어겨도 괜찮다는 거냐는 식으로 반문을 하려고 생각했을 수 있는 것이다. 혹 그들은 예수님께서 당연히 자신들이 그동안 전해 온 율법과는 다른 말씀을 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것으로 흠을 잡으려고 했을 수 있다.
바리새인들은 이 서기관을 통해 가장 적절하고 날카로운 질문을 예수님께 던졌을 것이다. 이 질문은 또한 다른 측면에서도 매우 적절한 질문이었다. 이 질문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무엇을 가장 원하시는지를 묻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하신 많은 말씀 중에 무엇이 가장 중요하고 근본이 되는지를 묻는 질문이기 때문에 그렇다. 천지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모든 사람이 반드시 따라야할 하나님의 명령은 무엇인가? 누구에게 그것을 묻겠는가!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다. 누구의 답이 맞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가장 정확한 답은 하나님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 서기관은 지금 바로 그 계명을 주신 하나님 앞에 서서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필요하고 가장 적절한 질문이다. 답을 말해줄 수 있는 유일한 분에게 이 질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유일한 정답(29~31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29~30절)
예수님은 주저함 없이 말씀하신다. 예수님을 시험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신중하게 고른 함정 질문이었겠지만, 모든 지혜의 예수님 입장에서는 어려울 것 없는 질문이다. 예수님은 ‘쉐마’라고 불리는 신명기 6장 4~5절의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셨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더 이상 친숙한 말씀이 없을 정도로 친숙한 말씀이다. 이 말씀은 아침, 저녁의 예배 때마다 암송하여 반복해서 드리는 신앙 고백의 일부였고, 그들의 팔과 이마에 차는 경문이라 불리는 상자에 넣는 말씀 중 하나로서 그들의 신앙을 대변했다. 이 친숙한 말씀이 가장 중요한 계명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이 계명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 계명의 핵심은 ‘사랑하라’다. 사랑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기본적으로 사랑의 대상을 아끼고 귀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사랑이고 그에 합당한 태도와 행동을 하는 것을 ‘사랑한다’라고 말할 수 있다. 예) 애장품, 애견(반려견), 애인 등
이런 사랑에는 어떤 식으로든 어느 정도의 헌신과 희생이 동반된다. 나의 시간, 물질, 에너지, 감정을 소비한다. 어떤 경우는 그 자체가 ‘사랑스러워서’ 그렇게 한다. 특히 물건 같은 경우 내가 좋아할 만한 부분이 있어야 우리는 그 물건을 애장한다. 어떤 경우는 그런 것과 관계없이 호의를 베풀고 귀하게 대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런 사랑에서 진실성을 느낀다. 특히 부모의 자녀에 대한 사랑이 그렇다. 그래서 사랑은 대상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그 구체적인 의미와 표현 방식이 달라진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가장 큰, 가장 중요한 계명, ‘사랑하라’의 대상은 하나님이다. 이 사랑의 대상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 사랑은 크게 두 개의 특징을 가진다. 이 사랑은 배타적인 사랑이고 또한 이 사랑은 전적인 사랑이다.
먼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배타적인 사랑이다. 즉, 다른 무엇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이 사랑에는 포함되어 있다. 우리가 다른 형제자매를 사랑하지만, 내 아내나 남편을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하지는 않는다. 부부 간의 사랑은 배타적인 사랑인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 첫 번째 계명이다.
이는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기인한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이시고 “너의” 하나님이시다. 여기 “주”라고 번역된 부분은 본래 “여호와”로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셔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 하나님의 이름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들과 언약의 관계에 들어가셨다. 구약 성경에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와 유사한 표현이 20번 이상 기록되어 있다. 배타적인 관계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에 대해서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하신 주시라”라고 고백한다. 이 말씀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는 의미도 될 수 있지만, 이 문맥에서는 ‘우리 하나님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모세가 이 말을 할 때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많은 신이 있다고 믿는 문화 속에서 오랫동안 많은 영향을 받아 온 상태였다.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라는 것은 크게 의미 있게 다가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많은 신을 알고 있고 또한 섬기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또 다른 신 하나를 더 섬기는 정도의 일이다. 모세를 이은 다음 지도자 여호수아도 고별 설교에서 다른 신을 버리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길 것을 신신당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때까지도 사람들은 하나님을 다른 신들과 함께 섬겼던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른 신과 함께 섬길 수 있는 분이 아니시다. 왜냐하면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한 참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만이 우리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 외에 어떤 존재도 이 사랑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하나님을 거절하진 않지만, 다른 많은 신중에 하나로서 받아들이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욕하는 일이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이시다. 온 피조물의 유일한 창조주시고 유일한 왕이시고 유일한 구원자시고 유일한 아버지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가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길 명하신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배타적이다.
두번째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특징은 전적인 사랑이라는 점이다. 사실 앞의 특징과도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만을 사랑하는데 부분적으로만 사랑할 수는 없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30절)
마음, 목숨, 뜻, 힘이 사랑의 근원이다. 이 단어들은 각각 더 강조하는 부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의미상 겹치는 부분들도 많다.
- 마음 – 우리 생각, 판단, 결정의 중심
- 목숨 – 혼, 사람의 내면 자체, 감정의 중심
- 뜻 – 의지의 중심
- 힘 – 능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