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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새 첫 청년 예배거든요. 그래서 저한테 특강을 부탁을 했는데 특강 주제가 뭐였냐면 거룩한 청년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새해 목표라는이 주제로 특강을 해 달라라고 부탁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다 거룩한 청년들이시고 그러면 새해 시작할 때 마땅히 가져야 할 목표가 무엇이냐를 오늘 좀 다루려고 하는데 고민 끝에 이제 생각난 본문이 하나 있어요. 그게 바로이 산상수훈 중에 하나인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이었습니다. 보니까 다음 주에 이창현 선생님이이 본문을 또 다루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두 번 연속 여러분이이 말씀을 꼭 이번만 다루는게 아니라. 더 넓게 다루긴 하는데 어쨌든 제가 저는요 13절에서 16절까지만 좀 집중적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마태복음 5장 13절에서 16절까지고요. 제목은 아무 쓸데 없는 빛과 소금입니다. 아무 쓸데 없는 빛과 소금. 마태복음 5장을 지금 피시면이 신약 성경 5페이지 정도에 있거든요. 마태복음 5장을 보시면 여러분 잘 아시는 산상수훈, 그러니까 산 위에 올라가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 뭐 가르침, 설교라고 말할 수 있는데 예수님께서 1절을 보시면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을 대상으로이 말씀을 전하기 시작하셨고요. 여러분 잘 아시는 팔복을 시작으로이 산상순이 쭉 7장까지 이어집니다. 그런데이
대상,이 말씀의 대상이 누구냐라고 했을 때 3절부터 보시면 그들은 심령이 가난한 자였고요. 4절에는 애통하는 자였고 5절은 온유한 자였고 6절에 의해의 줄이고 목마른 자 7절에 긍휼히 여기는 자 8절에 마음이 청결한 자 9절에 화평하게 하는 자 10절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 이러한 자들이 지금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대상들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어요. 예수님의 제자들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겠죠. 예수님의 제자들은 마땅히 의를 사랑하고 화평하게 하고 은혜를 끼치고 이런 선한 일을 하고 주님을 위해서라면 박해도 받고 이런 각오가 되어 있어야 된다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고 이런 자들에게 복이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자들이 받을 복을 보시면 3절부터 천국이 그들 것이라고 하셨고요. 4절에 위로를 받을 거라고 하셨고 5절에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다. 6절에 그들이 배부를 것이다.이 이 육신의 배가 부를 것이다가 아니라. 의에 줄이고 목말랐는데 그 의로 배불리 채움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7절에는 긍휼히 여김을 받을 거고 8절에 하나님을 볼 거고 9절에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고 10절에는 천국이 그들의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니까이 말씀의 대상, 오늘 우리가 다룰 13절에서 16절의 대상은 교회를 그냥 들락날락거리는 사람 혹은 교회 밖에 있는 뭐 예수님에 대해서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고요. 지금 팔복에 해당되는 제자들이라는 거예요. 팔복에 해당되는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복이 있고 그리고 그 복을 위해서 의를 위해서 힘껏 싸우고 있는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13절에서 16절까지 그들이 마땅히 이런 삶을 살아야 된다라고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앞에 있는 팔복에서는 나의 제자들은 이런 특징이 있어 그리고 이런 복이 있을 거야라고 하셨다면이 13절과 16절 이어지는 말씀을 통해서는 그러니까 너희는 이렇게 살아야 돼. 이게 합당한 삶이야라고 분명하게 말씀해 주신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오늘이 본문인 13절에서 16절까지가 여러분의 새해 목표가 반드시 돼야 해요. 왜냐하면 여러분이 주 예수라고 모시는 그분께서 제자들에게 요구하신 삶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반드시이 삶을 올해의 목표 혹은 여러분 전생의 목표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제가 말씀 제목을 잠깐만요. 통역 잘 들리세요?
오케이. 네. 잠깐만요. 하니까 갑자기 다 집중해요. 너무 좋은 거 같습니다. 가끔 한 번씩 써야겠어요. 자, 말씀 제목을 제가 아까 말씀드렸는데 아무 쓸데 없는 빛과 소금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조금 부정적이죠. 약간 다소 부정적입니다. 그냥 너희는 빛과 소금이 되라 이러면 얼마나 긍정적이겠어요. 그런데 아무 쓸데 없는 빛, 아무 쓸데 없는 소금이라는 제목을 제가 일부러 붙인 건데 왜냐면
그냥 여러분 충격받으라고 이렇게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니라. 본문에서 예수님이 정확하게 그 부분을 강조하고 계셔서 그렇습니다. 13절부터 제가 좀 읽어 드리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그리스도의 제자가 소금이다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신 후에는 굉장히 길게이 말씀을 하십니다.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이르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 밟힐
뿐이니라. 그니까 아무 쓸데 없다라는 부분을 굉장히 길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너희는 소금인데 소금 역할 못 하면 이렇게 쓸데 없는 사람이 되는 거야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신 겁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보시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신 후에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빛이느니라. 긍정적으로 묘사했지만 만약에 말에 등불을 둔다면
말이라는 것은 달리는 말이 아니고요. 오래를 상징하는 말이 아니고요. 가정에서 곡식의 양을 재는 그릇입니다. 옛날에는 시장에 가면은 뭐 대로 주고 말로 주고 뭐 이런 얘기를 하면서 이제 곡식을 재는 어떤이 네모난 박스 같은 나무로 된 그릇이 있었어요. 근데 9L 정도 가량이 들어가는 큰 그릇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런 큰 그릇으로 등불을 덮어 놓으면 빛이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없죠. 그니까 그렇다라는 것을 예수님이 또 말씀하신 거예요. 우리는 세상의 빛인데 누가 그 빛을이 말 두겠느냐라고 하신 겁니다. 말 아래 두지 않고 등경 위에 등경은이 초대 혹은 등잔 때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 위에 세워서 빛이 비추게 할 것이다라고 말씀을 하신 겁니다. 이렇게 소금과 빛의 역할을 이야기하시면서 쓸데 없는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세요. 이러면 소금이 쓸데 없다. 이러면 빛이 쓸데 없다. 이렇게 분명하게 강조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바꿔 말하면 각각 재역할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거예요. 소금은 짠맛을 반드시 내야 하고 등불은 반드시 얻은 곳을 비춰야 한다라는 겁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삶이 이렇게 분명하게 드러나기를 원하셨어요. 쓸 때 있거나 쓸데 없거나라는이 두 가지 중에 하나를 반드시 선택해야 되는 삶이다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이 두 가지 예시, 소금과 빛을 통해서 예수님은 우리가 쓸모 있는 삶을 살아야 된다라고 분명하게 요구를 하신 거예요. 그런데 이런 급진적인 요구 둘 중에 하나 아니면 말고가 아니라. 무조건 하나 이런 식의 요구가 주님께서 종종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바인데 이럴
때 우리가 자주 꺼내는 어떤 핑계나 변명이 있습니다. 뭐냐면 적당히 그렇게 따르겠습니다라는 거예요. 적당히. 주님께서 나에게 빛이 되라고 하셨고 소금이 되라고 하셨는데 안 하겠다는 거 아닙니다. 그런데 적당히 할게요. 요령껏 할게요라고 이렇게 우리가 핑계되기가 굉장히 쉽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부담스럽지 않게만 그렇게 소금 역할을 할게요. 어,이 세상 사람들이 나를 이질감을 가지고 느끼지 않을 정도만 내가 그렇게 요령껏 빛이 되어 볼게요라는 식으로 이제 생각을 하는 거죠. 그런데 예수님의 가르침 안에서는 그러한 핑계, 요령 적당이라는 것을 전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만약에 짠맛을
소금이 잃어버린 경우에는 그래도 계속 쓴다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런 경우에는 아무 쓸 데가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소금이 짠맛을 잃어버려도 이럴 때 쓰면 되지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냥 아무 쓸 데가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힐 뿐이다라고 말을 하셨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그릇에 감춰둔 등불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돼요. 아무도 집안에 있는 그 누구에게도 빛을 비춰 줄 수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유익하거나 모든 사람에게 무익하거나
둘 중에 하나라는 거예요. 나는 쓸 때가 많은 사람은 아니지만 적은 사람은 될 수 있지요라고 말할 수 있는 여지를 전혀 주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빛이 되거나 소금이 되거나 아니면 빛을 잃거나 소금이 그 맛을 잃거나 둘 중에 하나다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의 제자라면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다라고 말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여러분은 그 둘 중에 하나의 삶을 날마다 선택해야 되는 거예요. 유익한 삶이 되거나 무익한
삶이 되거나 적당히 중간이라는 것은 없다라는 것을 여러분이 아셔야 됩니다. 자, 그러면 중요한 질문이 하나 생겨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그 맛이란 무엇인가 혹은 빛이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소금의 짠맛에는 어떤
효능이 있습니까? 여러분 전 가면은 뭐 개구리의 개구리 안 먹죠. [웃음] 토끼의 효능은 오리의 효능은 이런 거 써 있잖아요. 소금은 무슨 효능이 있습니까? 음식이 부패하는 것을 예, 막아 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완벽하게 막지는 못하지만 늦추는 효과가 있죠. 예. 음식의 부패를 늦추는 효과가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정말 맛
없는 곰탕을 먹는데 소금을 넣으면 어떻죠? 맛있어요. 예. 맛을 냅니다. 그래서 먹을 수 있고 먹을 때 기분 좋게 만나게 해 주는 역할을 하는게이 소금의 역할이에요. 등불은 어떤 역할을 해 주느냐? 지금 여기가 여기서 제가 불을 다 꺼버리면 아마 깜깜해서 아무것도 못 볼 거예요. 내 짐을 찾을 수도 없고 옆에 누구 있는지도 모르겠고 막 이렇게 좀 혼비 백산이 될 겁니다. 그런데 빛이 있으니까 지금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어요. 어느 길로 나가야 되는지도 볼 수가 있고 그러니까 어두워서 하나도 볼 수 없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춰서 모든 것들을 밝히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라는 겁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속음으로써 부패하고 있는이 죄
때문에 부패하고 있는 세상을이 막는 완전히 부패하지 않도록 할 수 없지만 그 속도를 늦추는 역할을 할 수 있다라는 거고요. 그다음에 그들에게 하나님의 의로우심이라든지 은혜라든지 사랑이라든지 정의라든지 공의라든지 이러한 것들의 맛을 우리가 보여 줄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온갖
거짓으로 온통 어두운이 세상 가운데 진리의 빛을 비춰 주어서 그들이 무엇을 선택해야 되는지 어떤 길이 옳고 어떤 길이 그런지를 말해 주고 또 보여 줄 수 있는 역할 바로 우리가 하고 있다라는 거예요. 그게 우리가 빛으로 역할을 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 모든 우리의 역할들을 예수님은 딱 한마디로 요렇게 요약하셨어요. 16절을 보시면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착한 행실이라고 요약하셨습니다. 착한 행실이라는 것은 막 갑자기 여러분 막 밖에 있는 쓰레기 줍고 뭐 이런 얘기 하는 거 아니에요.
하나님의이 제자답게, 예수님의 제자답게, 하나님의 자녀답게 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 그 모든 것이 다 착한 행실입니다. 그러한 착한 행실로서 우리가 세상 가운데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역할이다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올해 여러분의 목표는 무엇이냐? 나는 내가 속한 믿지 않는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겠다라는 거예요. 다른 삶을 살겠다. 그들과 명확히 구별된 삶을 살겠다. 저 친구 우리 회사 다니는 그냥 어떤 사원 중에 하나. 저 친구 우리 대학과 동기로서 그냥 같이 공부하는 친구 중에 하나가 되는게 아닌 거예요. 그 조금은 우리보다는 조금 착한 친구 요렇게 끝나는게 아니고요. 나랑 확실히 구별된 친구라고 느껴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겁니다. 여러분은 믿지 않는 부모와 지금까지 함께 살아갈 수가 있고요. 믿지 않는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거나 아니면 지속적인 만남을 지금 갖고 있을 겁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친구들과 지금 많은 시간을 보내실 수도 있고요. 또 이제 대학에 지학하거나 직장에 취업하는 경우는 이제 어둠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직장 동료들 그리고 대학 동기들을 많이 만나게 될 겁니다. 이제 그러면 그들 가운데 하나님이 소금으로 두신 분이 누구 거예요? 여러분인 겁니다. 그들 가운데 그들의 어두운 눈을 비추라고 하나님이이 빛을 두신 분 그 사람들이 바로 여러분 여러분이다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그 가운데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를 좀 생각해 보셔야 됩니다. 여러분이 있어서 그 세상 사람들이 세상의 한 영역이죠. 그 영역이 덜 부패하고 있는지를 한번 생각해 보라는 거죠. 모두가 다 범죄하려고 할 때 여러분이 손을 들고 전 이걸 반대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느냐라는 거예요. 예. 모두가 다 악한 일을 행하려고 할 때 여러분은 나는이 일에 가담하지 않겠다라고 그 가운데 소리 낼 수 있냐라는 거죠.
최근에 뭐 학폭 뭐 이런 얘기들 막 나왔을 때 초등학교 시절을 좀 떠올려 봤어요. 우리 초등학교 때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다 같은 반이었거든요. 그래서 1학년 때 같은 반, 2학년 1반밖에 없었고 16명 있었으니까 계속 6년 동안을 같이 지낸 거예요. 근데 그중에 한 여학생이 있었는데이 제가 제 기억상
막 엄청 이렇게 좀 못생기고 그런게 아닌데도 아이들 유독 이렇게 따돌리는 애가 하나 있었어요. 그래서 막 손만 닿 오염됐다. 막 손이 오염됐다 막 이렇게 애들이 유치하잖아요, 초등학생들이. 그렇게 놀았었는데 지금 와서 각 가끔 생각해 보면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구원받았는데 내가 좀 강하게 목소리를 내내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때 애들한테 그렇게 하지 마. 뭐 그렇게 하면 안 돼라고 내가 왜 목소리를 높이지 못했을까? 그들처럼 막 같이 놀 그렇게 놀리진 않았더라도 굉장히 소극적으로 있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막 불연듯 나더라고요. 머릿속에. 그러면서 그때는 어렵고 잘 몰랐다 할지라도 지금 그럼 내가 있는 세상 속에서 나는 그렇게 담대하게 이것이 잘못됐다라고 말할 수 있느냐? 남들이 잘못된 선택을 할 때 같이 휩쓸려 가지 않고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게라고 그렇게 담대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느냐?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하라고 그 가운데 부르신 건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가 그 대학
지금 공부하고 있는 학교 혹은 믿지 않는 가족들이 함께 있는 그 가정들 그리고 여러분의 직장들 그 가운데 내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정말로 하고 있느냐라는 것을 한번 잘 생각해 보셔야 한다라는 거예요.음 여러분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을 둘러싼 그들은 덜 부패해야 됩니다. 더 죄에 빠져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하고 의로운 삶이 무엇인지를 그들은 맛볼 수 있어야 되는 겁니다. 내 옆에 소금이 있는데 맛이 하나도 안 나면 안 된다는 거죠. 그들은 여러분 때문에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자비가 무엇인지를 여러분 때문에 맛볼 수 있어야 되는 겁니다. 저렇게 사는 것이 정말 거룩하고 의로운 삶이구나라는 것을 여러분 당장은 앞에서 놀릴 수 있어요. 야, 너 뭐 옛날 사람처럼 왜 이렇게 사냐 막
이렇게 할 수 있는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는 참 저 친구처럼 정직하게 의롭게 살아야 됐었는데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되는 겁니다. 여러분이 그 역할을 하라고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빛과 소금으로 불러내신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골로새서 4장 6절에 보면 믿는 우리에게이 성경은 이렇게 명령해요.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니까 여러분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거든 듣는 모든 사람들이 특별히이
세상 사람들이 정말 어떻게 이렇게 맛있게 말할 수 있지? 여러분 찰지다라는 말 하죠. 근데 보통이 말은 찰지다라는 말은 그 앞에 뭐가 붙어요? 욕이 찰지다. 막 이런 식으로 하죠. 그렇죠? 근데 여러분은 욕이 찰지면 안 돼요. 여기 찰지면 안 되고 어떻게 저렇게 은혜롭게 말할까? 어떻게 저렇게 듣는 사람들을 높여 주는 말을 할까? 그렇게 사람들이 느낄 수 있도록 말하는게 다르다. 참 사는게 다르다. 삶의 목표로 둔게 다르다. 이렇게 느낄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그렇게 살아야 됩니다. 모두가 거짓을 말할 때 진실을 말할 수 있어야 되고요.
모두 다 불리한 삶을 선택할 때 의로운 삶을 살 수 있어야 됩니다. 당장은 여러분들을 조롱하고 비방할지라도 나중에는 정말 너희들만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들이 없구나. 믿는다면 너희들처럼 믿어야 된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러한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게 그냥 여러분 중에 몇 사람이 이루어야 될 목표가 아닌 거예요.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우리 모두가 그러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중에서는 이러한 말씀을 들으면 그거 적극적인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저는 좀 소극적이에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 있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세상에서 나는 그렇게 두드러지게 못 살아요. 그냥 조용히 섞여서 살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라고 말을 하는 거죠. 뭔가 대가 세고 말도 그냥 막 이렇게 담대하게 할 수 있고 뭐 그런 사람이나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 거지. 나 같이 소극적인 사람은 아무것도 못 한다. 뭐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어요. 핑계되고 싶은 거죠. 근데 14절에 보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살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후에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유평에도이 옆에이 동산이 하나 있는데 그 산 위에 동네가 좀 있습니다. 집들이 있어요.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저 집은 감출 수가 없습니다. 높이 있어서 모두의 눈에 그냥 보여요.
근데 우리가 그렇다는 겁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세상 가운데 불러내셔서 높이 올려 두셨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여기 표현해 보시면 숨겨지지 못한다. 불가능하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 그 빛이신 분과 사김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이 빛을 숨길 수가 없는 겁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 생각하는 것, 계획하는 모든 것들을 통해서 결국에 우리가 언덕 위에 있는 동네처럼 모든 믿지 않은 사람들에게 보여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는 극히 어둠과 다른 빛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어두운 세상 가운데 여러분들이 전혀 빛나지 않고 전혀 맛이나지 않는다면 사실은 소극적이 소극적이라서 그런게 아니고요. 내가 세상에 속한 사람이라서 그런 거예요. 전혀 모른다. 뭐 여러분과 한 10년 20년 알았던 친구들이 너 교회 다녀 이러면서 깜짝 놀라고 막 네가 그리스도인이야라면서 깜짝 놀란다라고 한다면 내가 소극적이라서 그동안 말할 게가 없어서 그런게 아니라. 전혀 그렇게 빛이 나는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인 거예요. 전혀 그렇게 맛을 맛을내는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래서 요한일서 1장 6절에 이렇게 말을 했어요.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김이 있다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무슨 말이냐? 하나님과 사김이 있다는
말이 거짓말이라는 거예요. 어둠움에 행하고 있다면 사실은 비치신 하나님과 사김이 없는 거다라고 분명하게 말을 하는 겁니다. 진리를 행하지 않는다라고 요한이 분명하게 말을 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반드시 여러분은 여러분이 속한 그 어두운 세상 가운데 분명히 다른 삶을 살아야 됩니다. 분명히 변화된 삶, 구별된 삶을 살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세상과 반드시 달라야 됩니다. 구별돼야 돼요. 여러분이 있어서 여러분이 속한 그 세상의 작은 영역이 분명히 달라야 됩니다. 거기에 빛이 비춰져야 되고요. 맛이 나야 한다라는 거예요.
어둠밖에 없었던 그곳에 여러분이 있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을 수는 없다라는 거예요. 그곳에 반드시 의와 진리의 빛이 비춰져야 합니다.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저는 한 예시가 떠올랐어요. 소돔과 고모라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죄가 너무너무 커서 하나님이 직접 천사들을 보내서 한번 살펴봐라, 조사해 봐라라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두 천사가 직접 그 도시를 갔더니 이렇게 성경에 써 있어요. 죄가 심히 무거웠다라고 되어 있고요. 그리고 백성들이 소돔의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늙은 남자든
젊은 남자든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서 멀리 있는 사람이든 가까이 있는 사람이든 상관없이 다 모였다는 거죠. 늙고 어리고 상관없고 멀고 가깝고 상관없이 다 모인 거예요. 그러면서 그 두 천사를 에워싸고이 두 사람을 욕 보이려고 했었습니다.
그니까 이만큼 악한 도시였던 거예요. 그니까 요즘에 범죄도시라는 말 있잖아요.이 당시의 범죄 도시는 소돔과 고모라였습니다. 하나님은이 도시를 불과 유황으로 심판하기로 작정을 하셨어요. 그런데 여러분이 성을이 멸하시기 전에 아브라함이 중보
기도를 드립니다. 그래서이 성이 멸망될 건데 내 조카 롯과 그 가족들이 있지 않는가라는 생각을 한 거죠.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하나님 50명의 의인만 있으면 그러면 그 의인과 함께 악인을 함께 멸하시는 것은 좀 그렇지 않습니까? 그것을 좀 이제 보류해 주십시오라고 요청을 하는 거죠. 그 하나님이 또 은혜로 그 기도를 들으셨어요. 그래 50명 있으면 내가 멸하지 않을게. 그래서 아브라함이 50명을 했다가 좀 불안한 거죠. 그러니까 조금씩 숫자를 줄여 갑니다. 그래서 몇 명까지 내려갑니까?
예. 열명만 있으면이 성을 멸하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부탁을 한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겠다라고 또 응답을 하셨습니다. 창세기의 어떤 기록구를 보면은이 추정할 수 있는데 롯이 그 가족과 함께 소돔에 내려간지 한 15년에서 20년 정도 있었다고 우리가 추정할 수 있어요. 그러면이 하나님의 언약의이 족장 그 가문에서 함께 아브라함께 살았던 사람이잖아요. 롯과
그 가족들이이 아브라함과 함께 그 모든 복을 누렸던 사람이고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인데 그 손과 고모라라는 세상 속에 들어가서 몇 명의 사람만이 빛을 비춰서이 하나님의 사람들로 변화시켰다면 의인으로 바꿨다면이 성이 명하지 멸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거죠.
롯과 아내가 있었고 두 딸이 있었습니다. 그럼 여섯 명만 그렇죠. 여섯 명만 이들을 통해서 의로운 사람이 되었더라면 소돔과 고모라는 망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겁니다. 근데 뚜껑을 열어보니까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롯의 아내는이 소돔과 고모라의 화려함이 그리워서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세상의 미련을 둔 거죠. 그리고 롯의 두 딸도 사귀던
남자들이 있었어요. 결혼을 약속한 남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남자들에게 하나님이이 도시를 명 멸하실 거니까이 우리가 피난해야 된다라고 하니까이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기고 비웃었어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결국에는이 롯과 가족들과 함께 피하지 않는 그러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어요. 딸들이 선택한 남자들이 굉장히 세상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이 두 딸도 아버지와 함께 피신한 후에이 아버지에게 술을 먹이고
각각 동침해서 우리가 자손을 만들자라는 생각을 합니다. 정말 안 되는 생각이잖아요. 어떻게 이런 세상적인 생각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소돔과 고모라식 생각일 거예요. 그렇죠? 그러니까 굉장히 의로운 생각으로 이들이 살았던 것이 아니라. 소돔과 공호라 방식으로 이들이 동화되고 변질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결국이 딸들을 통해서 나온 자식들이 대대로 이스라엘의 원수였던 모압과 에돔 자손이 됩니다.
우리가 이것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은이 소돔과 고모라에이 롯과 그 가족들이 빛과 소금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이 세상 속에서 동화된 사람들이 되었다라는 겁니다. 전혀 세상 사람들을 변화시키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이 소돔과 고모라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사람으로 변질되었다라는 거죠. 여러분이 속해 있는이 소돔과
고모라라는 지역이 있을 거예요. 가족이 됐든 직장이 됐든 학교가 됐든 여러분들은 그들을 빛과 소금으로 변화시키고 있는가요? 아니면은 여러분이 그렇게 동화되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모두가 성적과 취업에 그렇게 매진하고 있을 때에 나는 하나님이 더 소중하다라는 것을 여러분 어떻게 보여 주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다 시험 공부한다고 밤에 남아 있을 때 도서관에 남아 있을 때 나는 그래도 하나님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여러분은 어떻게 보여 주고 있냐라는 거죠. 그들과 똑같이 시간을 거기에 다 투자한다면 뭐가 다르냐라는 겁니다. 무엇이 우리가 빛과 소금으로 다르냐라는 거죠.
부리한 방법을 통해서라도 나는 업무를 성취하고 승지를 하겠다라고 지금 싸우고 있는 것이 직장 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거기에서 나는 참상을 주시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열심히 일하겠다. 정직하게 일하겠다라는 결심들을 여러분들이 하고 계시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분명히이 소돔과 고모라 백성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 돼요. 그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빛과 소금으로 불러내신 이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이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서 계속 강조되는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너희라는 거예요. 13절, 14절, 16절에 계속해서 너희, 너희라고 복수형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두 가지 면에서 의미가 있는데 첫째로는 세상과 구별하는 겁니다. 세상은 이렇지만 너희는 이렇게 살아야 된다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거고 두 번째로는 제가 요걸 좀 주목하고 싶은데 너희라는 복수라는 것은 우리가 홀로이
부르심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빛과 소금이 되라라는이 부르심은 나 혼자이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기 모여 있는 모든 형제 자매들이 같은 부르심을 받았다라는 거예요. 롯과 그 가족들은 아브라함과 함께 있었을 때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어요. 실제로 어땠는지 알 수 없지만 그들과 함께 있었을 때는 믿음이나 뭐 신앙이나 비슷해 보였을 겁니다. 근데 소돔과 고모라에 혼자 떨어져서 몇 년을 보내다 보니까 혼자서는 안 되는 거죠. 혼자 그들 전체를이 썩어빠진 소돔과 고모라를 다 비추고 거기서 맛을 내기가는 내기는 어려웠던 거예요. 그러니까 세상의 동화가 된 겁니다. 세상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세속적으로 변질된 거예요. 여러분, 빛과 소금으로 세상을 밝히고 맛을내는 일은 우리 혼자의 힘으로는 절대로 하기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를 홀로 부르지 않으시고 우리를 함께 부르셨어요. 히브리서 기자는 그래서 히브리서 10장 24절을 보면 모이기를 패하지 말고 힘쓰라라고 하면서 그 이유를 가르쳐서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기 위해서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모이면 우리는 우리 가운데
함께 교재하시는 빛의 아버지이 하나님과 친밀한 교재를 누립니다. 그니까 세상 가운데 우리가 빛을 바라다가 빛을 잃어버릴 수 있잖아요. 그럼 다시 이렇게 모일 때 하나님으로 인해서 우리가 빛을 충전받게 된다는 거죠. 그래서 사실은 모이기를 힘써야 됩니다. 우리가 모여서 세상 가운데 빛과 소금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더욱더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북돋아주고 돌아보는 일들을이 모이는
순간에 모이는 일을 통해서 우리가 할 수 있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모이기를 힘써야 됩니다. 청년부든 주일 예배든 수요 예배든 여러분 모임이 있다면 언제든지 모이기를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단지 모여서 얻는 어떤 유익들뿐만 아니라. 우리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모이기를 힘써야 됩니다. 우리는 여러분 스스로 빛을내는 발광체가 아니고요. 받은 빛을 반사하는 반사체입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빛을 내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임재하시는이 우리들의 모임에 우리가 계속해서 함께 해야 된다는 거죠. 그러면 빛이신 하나님께 우리가 함께 모여서 빛을 많이 받게 됩니다. 그럼 그 받은 빛으로 우리는 세상 가운데 더 많은 진리와 은혜를 비출 수 있을 겁니다.
청년에 새 시작할 때마다 모이기를 힘쓰자는 말을 많이 하는데 단지 많이 모이면 뭐 선물 주고 이런 거 아니고요. 그 그리고 모이면 우리가 힘이 나니까 뭐 이런 것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이 의미 때문에 저 더 이것을 강조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세상 가운데 동화되어서 세상 사람과 똑같이 살다가
정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아무 쓸데 없는 빛과 소금으로 살지 않기 위해서라도 여러분들 모이기를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 여러분 부르신 빛과 소금의 역할을 여러분이 속한 모든 곳에서 해낼 수 있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잠깐만요. 그 같이 한번 읽고 싶은 것이 있는데 요거를 좀 공유하겠습니다. 청년부 카톡을 한번 보시겠어요? MT 강릉으로 가고 싶다. 밑에 나올 겁니다. [웃음] 제가 먼저 한 줄 읽으면 따라서 읽어 주시면 좋겠어요. 마지막 새해 결단입니다. 올해 새해 목표라고 생각하시고 따라서 읽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제자다.
나는 그리스도의 자과 달라야 한다.
자, 저 두 번째 줄 읽지 마시고요. 똑같이 읽으시면 됩니다. 네. [웃음]
네. 저 말씀도 잘 들었죠? 네. 좋습니다. [웃음] 자, 나는 그리스도의 제자다.
나는 그리스도의 제자다.
나는 반드시 세상과 달라야 한다.
나는 반드시 세상과 달라야 한다.
나는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빛이다.
나는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빛이다.
나는 부패한 세상을 막는 소금이다.
나는 부패한 세상을 막는 소금이다.
쓸데없는 빛과 소금이 아니라. 쓸 때 있는 빛과 소금이 되겠다. 쓸데없는 빛과 소금이 아니라. 쓸데 있는 빛과 소금이 되겠다.
모이기를 힘써 쓸데 있는 빛과 소금이 되도록 서로 격려하겠다.
모이기를 힘써 쓸 때 있는 빛과 소금이 되도록 서로 강려하겠다.
네. 그렇게 하실 하시겠습니까?
네.
네. 그러면 기도하고 말씀 마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는 한 때 어둠이었고 우리는 한 때이 죄와 허물로 죽어서 썩고 부패나는 그러 냄새나는 삶을 살았던 죄인들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고 이제는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어 살아가는 자들이 되게 하셨습니다.뿐만 뿐만 아니라이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게 하셨고 또 부패하는 세상을 막는 소금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소돔과 곤모라에서 살아갔던이 롯의 가족들처럼
얼마나이 세상 가운데 휩쓸리기가 쉽고 또 동화되기가 쉬운지 모릅니다. 세상 사람과 똑같은 삶의 목표를 세우고 그렇게 살아가면서 주일에만 그렇게 종교 활동을 하는음 그러한 아무 쓸데 없는 자들이 되게 되기가 참 쉽습니다. 하나님 새에 우리가 청년들이 함께 모여서 계획을 세울 때에 목표를 세울 때에 우리로 하여금
우리를 구원하신 그 목적을 기억하게 하여 주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우리가 아무도 아무 쓸데없는 자가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정말 빛과 소금으로서 세상 가운데 하나님을 드러내고 또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그러한 귀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 청년들에게 힘과 지혜를 더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또 입시와 진로와 또 취업과 여러 가지 일들로 각자
주중에는 떨어져 지낼 텐데음 정말 그곳에서 빛과 소금 역할 할 수 있도록 주님 힘을 주시고 동행하여 주시고 또 함께 모이기를 힘써서 서로 힘을 주고 또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격려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올 한해 주님께 우리의 모든 청년들을 의탁드리며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모든 것을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A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