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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2주에 걸쳐서 좀 나누고 싶은 내용은 제목이래요. 마르다와 마리아를 통해 배우는 번나웃 없는 사역의 비결. 예. 마르다와 마리아를 통해 배우는 번나웃 없는 사역의 비결.이 이 제목입니다. 누가복음 10장 38절에서 42절 본문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교회에서 오랫동안 아마 살아오셨을 거예요. 자라오셨을 거고 교회에서 다양한 사역을 맡아서 아마 지금까지 헤어 오셨을 텐데 지금까지 하면서 너무 힘들다. 이제는 좀 지친다라는 느낌을 한 번이라도 받은 적 있는 사람. 내가 주일학교를 몇 년 섬겨왔는데 학생애를 몇 년 섬겨왔는데 이제는 조금 지치는 거
같다. 무기력해지는 거 같다. 좀 쉬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해 본 적 있는 사람 없나요?
아무도 없어요. 모두 예 여기 학생의 교사 어이자 청년의 회장님이신 김하형제가 있다라고. 예 우리 모두는 없어요. 사실 그렇죠. 내 [웃음] 예 손을 못 들겠지만 있습니다. 다들 있어요. 그래서 이거를 말 못 하고 내가 주님을 위해서 섬기는데 이런 건 견뎌내야지 하면서 계속 그것을 쌓아가다가 번나웃이라는 것을 경험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음 이런 번나웃 없이 우리가 주님을 기쁨으로 항상 섬기려면 사실은
내적인 투쟁을 굉장히 많이 해야 됩니다. 계속해서 그것을 싸워야 되고 마음을 준비해야 되는데 어떤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는 것이 합당할까를 좀 생각해 보는 그런 귀한 시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특별히 청년들이 굉장히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예배 찬양부터 시작해서 뭐 만찬 준비하는 거부터 시작해서 웬만한 일이 있으면 청년들이 있나? 뭐 청년들 혹시 몇 명 이렇게 와 줄 수 있냐 이러면서 하여튼 청년들이 대부분 많이 동원이 돼요. 왜냐하면이 가정이 있는 사람 뭐 자녀가 있는 사람들은 다 이렇게 뭐 일하기 어려운 그 거기 봉사에 참여하기 어려운 이유들이 더 많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조금 아직은 싱글인 청년들에게 이것저것 많은 일들을 교회에서 맡기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그냥 지금까지 헤오면서 이런 무기력함을 경험하고 난 좀 지치는 거 같다라는 걸 경험했지만 그럴 때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면 이번 시간을 통해서 주님을 섬기는데 합당한 마음을 어떻게 날마다
이렇게 준비해 가느냐 마련해 가느냐를 좀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번 아웃이라는이 단어의 사전적인 의미를 말씀드릴게요. 번나웃은 어떤 활동이 끝난 후 심신이 지친 상태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들이 MT를 갔는데 다 마치고 집에 가면 이제 아무것도 못 하겠다라고 하면서 굉장히 지쳐 있는 상태가 돼요. 육신적으로도 지치지만 정신적으로 지쳐서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라는 그런 마음이 들 수가 있어요. 우리 곧 위드 바이블 캠프를 할 건데 캠프 마치고 집에 가면 많이 그런 생각 들 겁니다. 이제 진짜 아무것도 못 하겠다. 이런 생각이 들 거예요.
그래서 어떠한 활동이 끝난 후에 심신이 지쳐 있는 상태를 그냥 번나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보통 우리가 나 번나웃이 온 것 같아라는 이야기들을 할 때는 단지 지쳤다라는 의미를 넘어서는 거 같아요. 그냥 나 너무 지쳤어. 너무 힘들어라는 것을 넘어서는 거 같습니다. 그냥 지쳤다라는 의미는 여러분 매주 주일 마치면 지쳤다는 의미가 되잖아요. 그렇죠? 힘들다. 너무 지친다라는 그런 마음이 들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이 번나웃을 우리나라 말로는 소진 혹은 탈진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평소에 우리가 번나웃이라고 말할 때는 의학적인 용어로서 번웃 증후군을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의학적인 용어로이 번오 증후군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잘 들어보세요.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하여 정신적 육체적으로 기력이 소진되어 무기력증 우울증따위에 빠지는 현상 이게 이제 번나웃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단지 조금 지쳤다 힘들다라는 것을 훨씬 넘어서는 거죠.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은 거예요. 그리고 그전에 어떤 일을 굉장히 열심히 해 왔는데 이제는 그
일 하느라고 받은 과중한 스트레스 때문에 더 이상은 못 하겠다라고 이제 선언을 하는 겁니다. 무기력증.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하고 싶지 않은 그러한 기분에 빠지게 되고요. 또 우울증 같은 것도 이제 경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조금 의학적인 소견이 보이는 그런 번아웃 현상들을
정말로 안타깝게도 우리는 교회 안에서도 많이 발견할 수 있어요. 누구에게서 발견할 수 있느냐? 사역을 많이 감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교회 다양한 부서에서 봉사 활동을 해 왔던 그런 사람들. 나중에는 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고 그다음에 직장인이 됐는데도 이제
주중에는 계속 학교에서 혹은 직장에서 일을 다 하고 체력을 다 소진하다가 주말이 되면은 또 교회에서 자기 맡은 일을 계속해서 해야 되는 그런 삶을 계속 살다 보니까 이런이 번하우 증후군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라는 거예요. 여러분 혹시 신조원은 아닌데 조금 시간이 되긴 했는데 월라수모 금금금이라는 거 아세요?
예. 원래 금다에 토 1이라는 주말이 주어져야 되는데 토 1까지도 회사에서 일을 시키고 혹은 학교 과제가 많아서 거의 금요일을 또 보내고 보내는 것처럼 그렇게 일주일을 보낸다고 할 때 월라수목 금금이라고 얘기한다고 해요. 뭐 꼰대들은 그런 말 우리
때는 막 토요일도 다 해서 나갔고 막 이렇게 하면서 이제 그런 말들을 별로 안 받아들일 텐데 여러분들 아마 경험하셨을 겁니다. 그런데이 교회 생활을 하는 사람, 특별히 잘하는 사람들, 여러 교회 사역에서 봉사를 더 헌신적으로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월화수 뭐 금토일일일의 삶을 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토요일, 일요일이 회사 업무는 없지만 그리고
학교 업무도 과제도 없지만 교회 업무가 너무 많아서 진짜로 쉬는 일이 하나도 없이 우리가 사는 거 같다라고 느낄 수가 있다는 거죠. 주말이 안식과 회복의 시간이 되어야 될 거 같은데 그나마 일주일 동안 다 소진하고 남은 그 체력과 정식력을 지어 짜서이 주말에 나에게 맡겨진 교회일에 다 쏟아보는 시간이 되고 만다라고 느끼게 된다는 거예요. 혹시 그렇게 기분을 느끼시는 분? 아까 처음에 질문했을 때 아무도 없었는데 허평왕제밖에 없었죠. 근데
[웃음] 나도 좀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있지 않나라고 느끼시는 분 계신가요? 예. 거의 없으실 겁니다. 그런데 아마 대답을 못 해도 살면서 지금까지 주님을 섬기고 교회에서 여러 가지 봉사하면서 이런 기분이 뭔지 알 것 같아라고 느끼는 분들이 아마 많이 계실 겁니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손을 들진 않더라도 있을 거예요. 그러면 우리에게는이 마르다와 마리아의 사례가 좀 필요하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그런 거를 크게 경험하지 않으신 분들일지라도 앞으로 경험하실 수도 있거든요. 앞으로도 내가 계속해서 교회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맡아서 일할 때 언젠가 이런 마음이 들 때가 있거든요. 계속 이렇게 해야 되나?
너무 힘드는데 너무 지치는데 이렇게 이제 마음이 들 때가 있을 텐데 그때를 예방하기 위해서 오늘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필요합니다. 엄밀히 따지면 사실 오늘 본문은 일차적으로는 번나웃에 대한 본문은 아니에요. 번나웃에 대한 가르침이 아닙니다. 여기 본문에 나오는 마르다가 일하다가 번나웃 증후군에 겪은 것도 아니었고요. 예수님이이 두 여자 여자들에게 어떻게 하면 번화없이
사역할 수 있는지 내가 알려 줄게라고 가르쳐 주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왜이 본문을 택했느냐?이 이 본문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몇 가지 중요한 원칙들이 있어요. 첫 번째로 어떻게 주님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섬기다가 그것이 의무적인 짐으로 바뀌었는지 그 과정을 우리가 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어쩌다가 감사로 시작한이 주님을 위한 사역이이 원망으로 둔갑하게 되는지 좀
원인을 파악할 수가 있어요. 그리고 예수님께서이 마르다에게 특별히 말씀해 주신 원칙 우선 순위가 있습니다. 이것이 더 좋은 선택이다라고 말씀하신 그 원칙이 있는데이 원칙이 바로 우리가 번하웃에 빠지지 않게 하는 우리이 사역과 우리 삶의 중심을 잡아주는 중요한 원칙이 되기 때문에 제가이 본문을 오늘의 본문으로 삼았습니다. 여러분 다음 주에 꼭 오셔야 되는데 왜냐하면 오늘은 번하우 증후군을 겪는 우리가 어떤 증상을 보이는지 증상에 대해서 두 가지 말씀드릴 거고요. 그것을 어떻게 우리가 잘못 해결하고 있는지 두 가지를 말씀드릴 거고요. 다음 주에는 올바르게 해결하는 방법을 얘기할 거거든요. 그래서 오늘만 들으시면
잘못된 증상과 잘못된 해결책만 듣고 그냥 가시는 거라서 예. 다음 주에 꼭 같이 또 들으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본문 누가복음 10장 38절을 한번 펴 주시고요. 그리고 이제 계속해서 말씀을 이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누가복음 10장 38절에 보면 예수님을이 마르다가 자기 집으로
초대하는 장면이 나와요. 38절에 제가 본문을 읽어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들이 길을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마르다가 지금 보시면 예수님이 나 좀 초대에다오 혹은 나와 일행이 너희 집에서 먹을 수 있겠느냐 이렇게 요청하신게 아니었어요? 마르다가 자발적으로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초대한 거였습니다.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해서이 일을 했다라는 거예요. 그리고 가만히 보시면 38절에 예수님 한 분을 초대한게 아니었습니다. 여기 38절에 뭐라고 시작이 되죠?
그들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한 분이 아니라. 예수님과 동행했던 일생들이 있었다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한 사람을 집에 초대할 때와 청년의 전체를 여기 남영님처럼 청년의 전체를 집에 초대하는 거는 굉장히 다릅니다. 그렇죠? 준비하는 것보다 다르고 뭐 계획하는 것도 다르고 이런이 준비하는데 필요한 비용이나 자원도 아예 달라집니다. 그런데이 마르다는 그것을 각오하고 예수님과 그 일행 모두를 다 자기 집으로 기쁨으로 초대를 했다는 거예요. 그만큼 그만큼의 많은 섬김과 봉사를 각오했다라는 거죠. 그런데 그거를 누가 시켜서 한게 아니라.
자기가 기쁨으로 결단을 했던 겁니다. 그래서 여기서 우리가 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교회의 사역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느냐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주일학교 교사를 하든지 학생의 교사를 하든지 뭐 청년의 회장을 했든지 여러 가지
역 여기저기에서 여러분들이 봉사하고 계시는데 어떻게 교회 일을 시작하게 됐냐 한번 생각해 보시라는 거죠. 여러분들도이 마르다처럼 자발적으로 그 일을 시작했을 거예요. 물론 이거 해 보지 않을래라는 누군가의 권유가 있을 수 있 있었고요. 아니면 여러분이 나 저런 거 해보고 싶다라고 하면서 먼저 이렇게 자원하는 경우도 있었을 겁니다. 회장님 어떻게 시작을 하셨나요? 일을 정년 회장 자원인가요?
둘 다.
둘 다. 예 그러나 어쨌든 내가 너무너무 하기 힘들었고 부담스럽다면 안 한다고 했겠죠?
네.
예. [웃음] 그래서 자이든 타이든 다른 사람의 권유가 있었든 아니면 내가 스스로 하고 싶다라고 했든지간에 교회의 일은 사실 자발적인 동기로 시작이 되었다라는 겁니다. 첫째로는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하게 됐다는 거예요. 그리고 더 깊이 들어가시면 그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을 내가 사랑하기 때문에 일을 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그냥 나에게 그 일을 하라고 권한 사람의 뭐 압박에 이끌려서 어쩔 수 없이 이걸 한게 아니고 또 나 아니면 이걸 누가 하겠어라고 하면서 의무감이 한게 아니라. 정말 예수님의 교회를 위해서
그리고 예수님을 위해서 우리가이 일을 마르다처럼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 기뻐서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라는 거예요. 교회 사역은 강제 노역이 아닙니다. 억지로 시킬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그리고 절대로 억지로 시켜서도 안 돼요.
예. 교회는 그렇게 억지로이 성도들에게 일을 하도록 강요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자발적인 성김입니다. 그런데도 내가 자발적으로 주님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주님을 사랑해서이 일을 시작했지만 올해 그 일을 하다 보면이 마르다처럼 두 가지 이런 번웃 증후군 현상을 보일 수가
있어요. 두 가지 마르다의 마음의 변화가 생겼는데 첫 번째로는 번잡이라고 제가 표현했습니다. 번잡 마음이 복잡해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 여기 40절에 보시면 마르다가 많은 사람을 초대한만큼 할 일이 정말 많아진 겁니다. 할 일이 너무너무 많다 보니까 여기 40절에 준비하는 일이
많았다라고 기록이 되어 있어요. 뭐 많은 반찬을 준비했을 수도 있고 많은 뭐 음료나 여러 가지이 손님들을 대접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했을 겁니다. 유대인들은 처음에 식사를 초대하거나이 외부의 손님들을 초대할 때 발길 물도 이렇게 준비해 줘어야 됐고 하니까 아마 여러 가지 준비할 것들이 많았을 겁니다. 그리고 마르다에게 있어서 주님이 굉장히 중요한 분이잖아요. 뭐 대충 밥이나 하나 먹고가 뭐 내가 숟가락 하나 더 넣으면 되지 이런 관계가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더 특별하게 주님께 잘 해 드리고 싶었을 겁니다. 얼마나 준비하는 것들이 많았던지 42절에 보면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그 가지수를 줄이더라도 그냥 너무
복잡하게 이렇게 분주하게 하지 말라라고 그렇게 권면을 하신 거였습니다. 하여튼 너무 많은 일들을 하다 보니까 마르다는 갈수록 심적으로 압박을 받기 시작했어요. 아까 번나오 증후군에 대해서 제가 말할 때 극도의 스트레스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기력이 소진된 것이라고 말씀드렸는데
마르다가 그랬습니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은 거예요. 너무 할 일이 많으니까 지금 갑자기이 스트레스의 압박을 받기 시작한 겁니다. 여기 마음이 분주한지라고 40절에 기록이 되어 있는데이 마음이 분주한다라는 단어가 한 단어입니다.
헬라어로 페리스파오라는 단어인데 성경 전체에 여기밖에 안 나오는 단어예요. 근데이 단어의 뜻은 무엇이냐? 여러 가지 삼만함으로 인해 너무 과중한 부담을 받아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것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다시 한번 읽어 드릴게요. 여러 가지 산만함으로 인해 너무 과중한 부담을 받아 걱정하고 불안해 하는 것. 예수님도 41절에 보시면 정확하게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한다.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정말로 일이 많아서 이런 과중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어요. 하는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정말로 일이 너무 많아서 그래서 이러한 스트레스를 받고 걱정이 되고 염려가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손님이 식사하기까지 이만큼 시간밖에 없는데 나는 일이 이렇게 많은 거죠. 그러면 이걸 언제까지 다하지? 저분들이 너무 오래 기다리지 않나? 뭐 이런 두려움과 걱정들이 막 이제 밀려 들어오니까 그러니까 이제
힘들어 했던 겁니다. 혹은 두 가지 경우가 있는 아까 두 번째 경우는 뭐냐면은 일이 많지는 않은데이 질서가 깨진 거예요. 내가 이거 하고 나서 이거 하면은 딱딱 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 질서가 깨져서 아까 삼만하다는 표현을 썼는데 무질서해진 겁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되게 복잡해진 거예요. 뭘 먼저 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막 되게 힘들어진 거죠. 그러니까이 일이 진짜로 많다기보다는 그 일들이 질서 정연하게
계획되지 않고 처리되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굉장히 힘들어진 상태 이렇게 두 가지 경우로 이러한 어려움들을 겪을 수 있다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저는 두 가지 경우를 다 경험했는데 첫 번째로는 어느 날 스케줄을 보니까 수요일 말씀이고 그다음 토요일 청년의 말씀이에요. 그다음에 주일 말씀이고 주일 오후에 특강도 있네.이 이 그 벌써 한 일주일에네 개인가 다섯 개를 준비해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전혀 스트레스가 안 돼. 왜냐면은 제가 생각한 계획대로 딱딱 되거든요. 월화 준비하면 이렇게 하면 되겠지. 수요고 되겠지. 근데 그 계획대로 탁딱 다
준비가 되니까 이건 저한테 전혀 과중한 업무가 안 되고 막 염려가 되거나 그러지도 않는 거예요. 일은 많지만 제가 계획한 대로 그리고 그 질서 정연하게 준비가 착착되니까 전혀 그 마음에 어려움이 없었던 겁니다. 그런데 예전에 위드 바이블 캠프를 준비하는데 말씀 준비해야 될게 한 개 세 개 정도가 있었어요. 근데 충 시간도 충분히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그때 여러분 아시겠지만 아내가 교통서 가고 나서 경찰서에서 전화오고 막 그 보험 회사에서 전화오고 그러니까 준비해야 될 거는 몇 개 없는데 계속 제 마음을 산만하게 만드는 거죠. 그러니까 이거 어떻게 하지? 이거 신경 쓰고 저거 신경 쓰다가 이건 언제 준비하지? 하면서 마음이 굉장히 복잡해졌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로 그럴 겁니다. 내가 실제로 학생의 교사로서, 주일학교 교사로서 내가 할
일이라고는 정말 요거 요거밖에 없는데 이게 갑자기 너무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는 거예요. 왜냐하면 삶이 너무 질이 삼만해졌기 때문에 혹은 진짜로 너무 많은 일들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여러분들이 그렇게 많은 염려와 걱정에 빠질 수가 있고요. 여기 번나웃 중후군이라고 말하는 그러한 현상을 여러분들도 느낄 수가 있는 겁니다. 어쨌든 마음에 과중한 부담이 생기니까 마르다는 걱정과 불안이 침투하게 된 겁니다. 그러면서 처음에는 예수님을 너무 사랑하고 우리 집에 초청하는 것이 기뻐서 그렇게 일을 시작했는데 이게 즐거운 일이 되지 않았던 거예요.
나중에는 이것이 과중한 의무가 되었던 겁니다. 분명히 특권이라고 여겼는데 우리 집에 주님을 모실 수 있었다라는 그런 특권이 되었었는데 나중에는 이것이 조금씩 의무처럼 그렇게 느껴지게 된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만약에 교회에서 여러 가지 사역에 봉사하고 섬기고 있는데
이것이 정말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이렇게 일할 수 있다니 내가 이렇게 일함으로써 내가 섬기는 대상들 뭐 학생들 주일학교 아이들이 이렇게 유익을 누릴 수 있고 복음을들을 수 있어서 내가 너무 보람된다. 뭐 그런 것들이 조금씩 사라지면서 나밖에 이거 할 사람이 없나? 나밖에 주일학교 할 사람이 없나? 내가 몇 년까지 이걸 계속해야 되는 거지? 이러한 마음이 여러분에게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한다면 내가 지금 마음이 복잡해지고 있구나. 정말 일이
많든지 아니면 내 마음이 삼만해져서 내가 지금 여기에서 점점 지쳐가고 있구나라는 것을 여러분 깨달으실 수 있어야 되는 거예요. 아직까지 아무도 없다고 손을 안 들으셨기 때문에 다 없는 거라고 저희가 생각을 할 텐데 아니면 손 들기도 힘들 정도로 지쳐 있나요? [웃음] 어쨌든 여러분 스스로를 한번 경험해 보시라는 거죠. 내가 이것을 주님을 집에 초청한 마르다처럼 기쁨으로 시작했었는데 주님을 정말 사랑해서 이것을 시작했었는데 혹은 교회를 사랑하고 성도를 사랑해서 이것을 시작했었는데 지금도 그 마음으로 하고 있느냐 아니면 의무적으로 하고 있느냐라는 걸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거죠.
내 마음이 계속해서 그렇게이 일이 짐처럼 여겨진다라고 한다면 여러분들도 번하우 증후군의 현상을 보이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두 번째 두 번째 현상은 불평입니다. 교회 사역으로 이제 번하나웃 증후군을 보일 때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 중에 하나가 바로 불평이에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마르다가이 마음이 분주해지기 시작하면서 마음의 염려와 근심이 가득차게 됩니다. 그랬을 때 이것을 감당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된 거예요. 자기의 그 염려와 불안을 통제할 수가 없고 터트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거죠. 그러니까 준비하고 있었던 곳에서 밖으로 나와서이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원망과 불평을 쏟아냈습니다. 그래서 여기 몇 절이죠? 40절에 보시면
예수님께 나와서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굉장히 짧은 마르다의 한 마디가 여기 딱 기록이 되어 있는데 여기서 우리가 많은 걸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진짜 일손이 필요하고 여전히 마르다가이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정말 마음이 그런 무력함이라든지 지친 마음 없이 기쁨으로 그 일을 하고 있었다면 어떻게 할 수 있었느냐? 마르다가 잠깐 나와서 마리아 이렇게 동생을
부르는 거죠. 나 잠깐 도와줄 수 있어? 그럼 마리아가 어떻게 하겠어요? 아니 난 말씀 듣고 싶어. [웃음] 그럼 어떻게 해야지? 마르다가 끝나고 남아 약간 이렇게 [웃음] 그렇게 하지 않겠죠. 어쨌든 제가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는 그렇게 충분히 할 수 있었다는 거죠. 나 좀 도와줄 수 있어라고 하면 마리아가 그래라고 하면서 도와줄 수 있었겠죠. 그런데이 마르다의이 표현을 보시면 마리아는 이미 판단을 받고 있어요. 마르다가 볼 때는 내가 이렇게 바쁘게
일하도록 내버려 두는 동생으로 여겨지고 있는 겁니다. 40절에 보시면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둔다라고 얘기를 하고 있어요. 마리아가 지금 그 예수님 발밑에 앉아서 말씀을 들으면서 언니 혼자 일하는게 보이는데 무시해야지 계속 혼자 일해라 라라고 하진 않겠죠. 그런 의미가 전혀 없을 겁니다. 그런데 마르다는 이미 마리아를 그렇게 판단하고 있었다는 거죠. 우리가 무기력함에 빠지고 번나웃 증후군이라고 말하는 이러한 상태에 빠졌을 때 여러분 일하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되냐면 나만 일하네. 저 청년은
주일학교도 안 하고 학생이도 안 왔는데 나만 일하고 있잖아라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이 마르다처럼 저 청년 저 형제 자매님은 나 혼자 교회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는 사람이라고 보게 되는 거죠. 종종 우리가 뭐 컨테이너 박스 구제부에서 쉬운 자 있을 때 막 사람들 자원 봉사로 돌돌돌보게 하고 뭐 설거지도 당번 있지만 어떨 때는 이제 자발적으로 우리가 설거지 하자. 그래서 와서 막 설거지도 하게 되는데 그럴 때 꼭 나오는 불평 중에 하나가 이겁니다. 뭐 꼭 오는 사람만 오더라. 뭐 저 사람은 꼭 설거지 않더라. 뭐 이런 식으로 이제 불평이 나오는 거예요.
근데 그것이 뭐 항상 그 원인은 아니겠지만 저는 이것과도 연관이 있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정말로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는 데서는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라는 거죠. 그래서 지치고 무기력함에 빠지고 그러면서 결국에는 그 불평이 다른 사람에게 쏟아져 나오는 겁니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우리가 나타나는 현상이에요. 다른 성도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겁니다. 나만 봉사하고 저 친구는 아무것도 안 해. 너무 이기적이고 불성실하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는 거죠. 예전에 한번 어떤 분이 이런 식으로 불평한 적이 있어서 제가 그런 말씀을 드린 적이 있어요. 뭐 어떤 청년들은 그런 거 안 한다 뭐 이런 얘기를 하셔 가지고. 근데 생각해 보시면 저 청년들은 매주 나와서 다른 성도들보다 훨씬 더 일찍 나와서 주일학교 봉사하고 있는데 그건 왜 생각 못 하시나요? 제가 이렇게 얘기한 적도 있었거든요. 근데 단지 지금 보이는이 봉사를 하지 않는다는 걸로 그냥 판단을 해 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왜 그럴까? 그 마음을 깊이 들여다 보면 그 마음이 지쳐 있어서 그렇다는 거죠. 정말 주님을 위해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섬기는 데서는 멀어져 있기 때문에 그런 모습이 나타나는 거다라는 겁니다. 나만 왜 하냐? 왜 저 사람은 안 하냐? 이런 생각들이 계속 드는 거예요. 그리고 흥미롭게도이 마르다의 불평은이
동생인 마리아에게만 향한게 아니었어요. 사실은 예수님에게까지 나갑니다. 예수님에 대한 태도가 굉장히 삐딱해 있다는 것을이 40절을 통해서도 발견할 수 있어요. 잘 보시면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누가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죠?
예. 예수님에게 지금 불평을 늘어놓는 겁니다. 왜? 이것도 생각 못 하시냐라고 얘기를 하는 거죠. 내 동생이 나만 혼자 일하도록 내버려 두고 있어요라고 한다면 예수님에게까지 가지 않은 거잖아요. 근데 그걸 왜 그냥 내버려 두고 있느냐라고 하면서 예수님에게까지도 불평을 늘어놓는 겁니다. 그러니까 마르다가 볼
때는 예수님은 이렇게 했어야 됐어요. 마리아를 보면서 너는 왜 여기서 말씀 듣고 있니? 언니는 저기서 일하고 있잖아. 너도 들어가서 도와줘.라고 했어야 된다는 거죠.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라고 하면서 그게 잘못됐다라고 말하다가 지금 평가를 내리는 겁니다. 그러면서 정말
흥미로운 장면인데 마르다가 예수님에게 명령을 내려요.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사실 마르다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초청하는이 제자의 자세를 가지고 기쁨으로 예수님을 대했었습니다. 예수님 발 아래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으로서 제자로서 예수님께 사랑으로 봉사해야겠다라는 마음을 가졌었던 거예요. 그런데 어느새 지금이 예수님
발 아래 있지 않고 머리 위에서 예수님께 명령하는 그 위치에서 있다라는 거죠. 주객이 전도되 있는 겁니다. 예수님은 내 말을 듣고 이렇게 하셔야만 하는 분이라고 이제 생각을 했던 거예요. 번나웃이 끼치는 가장 끔찍한 피해라고 저는 생각을 하는데 주님이 우리 예배와 섬김의 대상에서 멀어져 있다라는 겁니다. 나는 분명히 주일학교 학생애로 섬기고는 있는데 내 섬김의 대상이 더 이상 주님이 아니시게 된다라는 거예요. 난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섬기고 있느냐라는 생각이 들겠죠.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물을 바칠 때에 병든 것, 저는 것들을 갖다가 바쳤었습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 성문을 차라리 닫고 아무 예배도 드리지 마라라고 하셨어요. 나는 이런 병든 것들을 받지 않겠다라고 하셨거든요. 내 마음이 다른 이웃에 대해서 판단하고 정죄하는 마음으로 섬기고 있고 그리고 예수님에 대해서 이렇게 대항하는 자리에 서서 섬기고 있다면 사실은 그러한 섬김을 하나님이 기뻐받으시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본 중후군은 그냥 우리가 지치고 힘들었다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가 올바른 예배와 섬김을 하고 있지 않다라는 것을 의미해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그러한 예배를 우리의 섬김으로서 드리고 있는 거다라는 겁니다. 어이 두 가지 현상을 여러분 발견하셔야 돼요. 내 마음이 번잡한가? 혹은 내가 누군가를
비판하고 있지는 않은가? 불평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따가 분반 시간에 여러분 스스로 좀 나눠 보시겠지만 지금 교회에서 하고 있는 성김이 뭔지 한번 서로 나눠 보시고 이러한 마음이 들어본 적이 있는지 여기서 물어보면 아마 아무도 없다고 할 텐데 화평황제만 이제 담대하게
이따가 화평황제에서는 형제한테 많이 물어보세요. 왜 그런지 왜 자꾸 불평이 나는지 한번 물어봐 [웃음] 주시
어쨌든 그래서 그렇게 이런 현상들이 여러분에게서도 발견됐는지를 여러분이 이제 생각해 보시고 진단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자 그러면 이런 일이 있을 때에 우리가 주로 선택하는 두 가지 잘못된 점들을 좀 찾아보려고 해요.음 교회 사역에 오래 몸담은 사람 중에서 무기력함을 느끼거나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은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모든 일이 사실은 그래요. 여러분, 직장에서도 스트레스를 받고 가정에서도 스트레스를 받을 겁니다. 무슨 일을 한다라는 것은 어느 정도의 노력과 수고를 요구하고요. 희생을 요구하기 때문에 그거를 내가 꾸준히 오랫동안 계속 해 온다라고 한다면 그만큼 내가 나를 절제해야 되고요.
또 나의 시간, 재능, 물질 등 자원을 규모 있게 사용할 수 있어야 되는데 그걸 계속해서 해낸다는 것이 그만큼 힘들다라는 거예요. 모든 일이 마찬가지입니다. 그 과정 중에 크고 작은 압박을 우리가 견뎌야 되고 부담을 느낄 수가 있다는 거죠. 그런데 그러한 부담감을 느낄 때마다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해소하는지가 굉장히 중요한데 두 가지 잘못된 해결책이 있다라는 겁니다. 여러분이 교회 사역에서 번하웃 증후군을 겪을 때에이 두 가지 잘못된 해결책을 선택할 수 있다는 거예요. 첫 번째로는 자책입니다. 자책.이
이 번나웃에 빠진 성도들은이 맡겨진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자책을 합니다. 죄책감을 갖기가 쉽다는 거예요. 애초에 나 같은 사람이 일을 하는게 아니지. 이런 생각을 하는 거죠. 나처럼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이 주님을 위해서 이런 일을 맡은 것이 아니었어라는 생각을 하는 겁니다. 내가 괜히 주일학교 학생의 선생님 해서 내 아이들 너무 불쌍하다 막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는 거죠. 내가 아니었다면 훨씬 더 그들은 유익했을 텐데 나 같은 사람에서 괜히 뭐 이런 식으로 하면서 그렇게 자책을 하게 되는 겁니다. 괜히 피해만 끼쳤다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여기 본문에 마르다는 그런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었습니다. 그러나이 분주한 마음으로 마음에 많은 압박감을 느끼고 있는 마르다가 자책을 만약에 했다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거죠. 내가 괜히 예수님과 많은 일행들을 같이 초대해 가지고 괜히 이렇게 그 시간 안에 다이 많은 것들을 해내지도 못하고 괜히 했다. 그래서 피해만 끼쳤구나. 다음엔 절대로 초대하지 말아야지. 이런 식으로 이제 생각을 하는 겁니다. 마르다 말고 실제로 성경에서 이런 식으로이 버나오
증후군을 보였던 사람이 있어요. 선지자 엘리야입니다. 자기가 굉장히 큰 사역을 해냈는데도 아무런 결과물이 없으니까 엘리야가 무기력과 우울증에 빠졌어요. 그러면서이 열왕기상 19장 4절에 보면 하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그니까 그냥 여기서 나를 데려가 달라라고 한 거예요. 더 이상 주님을 섬길 이유도 없고 싫어서가 아니라. 화가 나서가 아니라. 그만큼 자기에게 실망한 겁니다. 나는 별볼 일 없는 사람이었구나라는 생각에 더 이상 주님을 섬겨도 별로 유익이 되지 않아라고 스스로 자책을 했던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이 건강한 자기 평가는 아니에요. 여러분이 교회에서 여러 사역으로 섬길 때에 건강하게 나 스스로를 평가할 수 있거든요. 아무래도 나는 여기에 은사가 맞지 않는 것 같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내가 받은 은사의 분량보다는 훨씬 더 많은 것을 과중하게 맡은 것이 아닐까라고 정직하게 여러분을 평가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교회를 더 잘 섬기려면 나는 이런 일로 섬기는게 맞겠다. 혹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좀 줄여서 이만큼만 하는게 맞겠다라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는 거죠. 그런데 지금 말하는이 죄책감에 대한 선택은 죄책감에 따른 선택은 그런 건강한 선택이 아니라는 거죠. 이렇게 할 거면 차라리 안 해. 이런 식으로 이제 생각을 하는 겁니다. 왜 이것이 잘못된 생각이고 잘못된 판단이냐?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
성령의 은사를 분명히 주셨기 때문이고요. 그 사실은 우리가이 교회에서 맡은 역할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충분히 우리는 교회를 섬기고 세울 수 있는 영적인 재능을 받았고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에 불필요한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꼭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꼭 필요한 사람들. 제가 예전에이 프라모델 마치는 걸 좋아했는데 어렸을 때 초등학교 때 그래서 뭐 학교 앞에 프라모델 같은 거 혹시 프라모델 모르시는 분 예 선
건담 이런 거 같은 거예요. 그래 가지고 이제 아시겠죠?네
그래서 막 맞추고 나면은 꼭 부품 하나가 남아요. 이거 뭐야? 그래서 별로 필요 없을 것 같은데 그리고 버리 버리거든요. 항상. 근데 그러고 보면은 꼭 그 여기 상반실과 하반실을 붙이는 무슨 도구 막 이런 거야. 그러면 나중에 이게 없으니까 막 테이프로 붙이고 막 이랬었어요. 그만큼 정말로 불필요해 보이는
부품이지만 가장 중요한 부품일 수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도 거듭난 성도고 유평교회 지체라면 정말로 하나님이 여러분에게이 교회를 섬길 수 있는 은사를 다 주셨습니다. 그리고 불필요한 지체는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 모두가 다 그만큼 소중한 지체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어느 지체로서이 교회에서 어느 위치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게 좋겠다라고 건강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평가하는 것은 너무너무 좋은 일이지만 그게 아니라. 내가 과중한 스트레스를 받아서 이렇게 할 거면 다 안 하는게 맞지. 내가 무슨 교회에게 도움이 되겠어? 이렇게 하는 것은 옳은 해결책이 아니다라는 겁니다. 사실 굉장히 겸손해 볼 수도 있거든요. 나 같은 사람은 도움이 안 돼. 그냥 하지 않는게 교회에 도움이 돼. 막 이런게 굉장히 막 자기를 낮추는 거 같고 겸손해 보이지만 사실은 큰 교만입니다. 왜 그러냐? 하나님은
나를 사용하시겠다고 하는데 내가 싫다고 하는 거거든요. 하나님은 내가 필요하고 나에게 맞는 역할을 주셨다고 하고 은사도 주셨다고 하는데 내가 나는 그고 싶지 않다고 하는 거거든요. 나는 그런 능력이 없다라고 말하는 거라서 사실은 한 달란트를 받아서 땅에 묻은 사람처럼 그렇게 불성실하게 주님을 섬기는 거기 때문에 교만이고 직무육기다라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돼요. 어물론 지쳤을 때 쉼도 필요하고요. 내가 섬기는 사역지를 바꿀 수도 있고요. 내가 섬기는 그 은사의 분량을 조절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쉬든지 다른 일을 하든지 일을 줄이든지 그 모든 것의 목적은 더 주님을 잘 섬기기 위해서 더 성도들을
사랑하기 위해서인 거지 그냥이 모든 것에서 손을 놓고 도망가기 위해서는 아니다라는 겁니다. 엘리야처럼 그냥 나를 취데 주십시오. 난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안 하는게 좋겠습니다. 이렇게 하는게 절대로 아니다라는 거예요. 예수님은 41절에 마르다에게
네가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라고 말씀하셨는데 어이 말을 잘 생각해 보세요. 하라는 얘기잖아요. 그렇죠? 준비하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너 그럴 거면 그만둬라고 하지 않으셨죠? 예. 너 그런 마음 갖고 할 거면은 당장 나와 그만둬도 뭐 이렇게 하지 않으셨죠? 예. 몇 가지를 줄여서라도 기쁨으로 해라라고 지금 말씀을 하신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이 번하웃을 해결하려고 할 때 하나님을 섬기는 일 자체에서
쉬려고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엘리야처럼 그냥 모든 것을 끝내고 싶은 마음으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것은 자책에 따른 해결책이고요.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계속해서 여러분을 교회 안에서 사용하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서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두
번째로 우리가 이제 잘못 선택하는 해결책이 있어요. 이것은 분리라고 제가 이름을 붙였는데 굉장히 교묘한 오류를 담고 있는 내용입니다. 바로 주님과 교회를 분리하는 거예요. 주님과 교회를 분리하는 것. 그 나는 주님을 섬기고 싶은데 교회 때문에 주님을 섬길 수가 없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나는 교회가
나에게 요구하는 것들을 계속해서 하느라고 정작 주님을 섬길 수가 없네라고 이제 생각을 하는 겁니다. 그니까 주님과 교회가 분리되어 있는 것으로 그렇게 오해를 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이러한 분리하는 마음을 누구에게서 발견할 수 있느냐? 주로 여러분 들어왔을지 모르겠어요. 가나안 성도라고 예전에 교회에서 어떤 상처를 받거나 실족한 일 때문에 더 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는 가나안 거꾸라면 안 나가잖아요. 그래서 가나안 성도에게서 이러한 오류를 많이
발견할 수 있어요. 나는 주님을 선택하기 위해서 교회를 떠났다라는 식으로 이제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물론 그럴 만한 교회도 있습니다. 그럴 만한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 성도 있기는 합니다. 저도 예전에 어떤 성도님들과 교재하면서 그분이 겪었던 그 전에 있었던 교회에서 겪었던 일들을들은 적이 있었는데 교회 리더십이 굉장히 강압적인 거예요. 그리고 교회 문화가 그렇답니다. 리더십만 그런게 아니라. 성도들도 서로서로에게 그렇게 강압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어서 섬김과 봉사가 있을 때 막 빼는 성도가 있어요. 만약에 안 하려고 한 성도가 있으면 신실하지 않은 사람. 저 사람은 그리스도인인데 뭐 게으른 사람 이런 식으로 이제 낙인이 찍힌다는 거죠. 그리고 심지어 더 나아가서는 구원받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라는 식으로 이제 서로 그렇게
지적하고 정죄하는 그러한 문화 속에서 자한 성도들도 있다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은 내가 주님을 위해서 뭔가 섬기고는 있는데 너무너무 지치는 거죠.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뭐 구원받지 않았다. 뭐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다. 이런 강압적인 문화 속에 있으니까 얼마나 힘들까? 얼마나 비참한 사역 현장에서이 고통스러운 경험을 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런 사람들이 왜 더 힘드냐 하면은 사역이 자기가 매주 감당하고 있는 사역이 너무너무 힘들고 벅찬데도 불구하고 지쳤다라고 말도 못 하고 왜냐면 그러면은 이제 사람들에게 판단을 받으니까. 그리고 지쳤다라고 표현하는 자식, 자기 자신에 대해서 죄책감도 같아요.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이거 가지고 힘들어 하면 안 되지라고 하면서 스스로를 또 그렇게 정죄하는 어려움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러한 현장에서 있는 사람들, 그런 경험이 있었던 사람들을 굉장히 불쌍히 여기고요. 정말로 복음이 살아 있고 또 자발적으로 섬기는 기쁨이 살아 있는 그러한 교회로 가기를 거기에서 회복하기를 간절히 바란다라고 그때 말씀을 드렸었어요. 건강한
복음 문화가 있는 곳 그리고 복음의 가르침이 있는 교회로 옮겨야 된다라고 말씀을 드렸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경험이 있었다라고 한 하더라도 저는 주님과 교회를 분리하는 것은 오류다라고 생각을 해요. 주님과 교회를 분리하는 것은 치명적인 오류다라고 말씀을 드리기를 원해요. 왜냐하면 주님과 교회는 분리되지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교회의 머리가 누구세요? 주님이시잖아요. 그래서 나는 주님을 섬기려고 교회를 떠났다라는 거는 말이 안 되는 겁니다. 머리 대신 주님을 섬기려면 나는 몸인 그 주님의 몸인 교회를 섬길 수밖에 없는 거예요. 아까 말씀드린 그런 강압적인 문화에 강압적인 리더십에 있는 교회는 사실 머리 대신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성도들에게 봉사를 요구하지 않는게 문제였지.
이것을 분리시켜서 우리가 그러니까 주님을 위해서 교회를 떠난게 맞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라는 겁니다. 사실은 이렇게 교회와 주님을 분리하려고 하는이 그러한 어떤 오류들 속에서 좀 모호함이 좀 발견이 되는데 그들이 말하는 교회는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어요. 주님을 섬기기 위해서 나는 교회를 떠난다고 했을 때 교회가 가르치는 것은 무엇인가?이 교회 리더십을 말하는 건가? 아니면 자기에게 교회 사역을 요구했던 몇몇 사람들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섬기고 있었던 어떤 교회 지체들을 말하는 것인가? 굉장히 모호하다는 거죠. 교회라는 굉장히 모호한 대상에 대해서 나에게 이렇게 어렵게 힘들게 일을 맡겨 놓고 그러니까 난 주님을 섬기겠다. 이렇게 이제 만들어 버리는 것은 사실은 정확한 실상을 말하는 건 아닙니다. 제가 볼 때 정확한
실상은 무엇이냐? 나는 주님을 사랑해서 몸된 교회를 주님 주신 은사로 섬기는 것을 기뻐하고 있었는데 어떤 계기로 내가 굉장히 무력감에 빠진 거예요. 내가 너무 힘들어진 겁니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은 거고요. 무력감과 우울감에 빠진 겁니다. 그럴 때 쉬이 필요하고 그리고 회복이 필요한게 맞아요. 그런데 그럴 때에이 원인을 그 모한 교회에게 두고 교회를 떠나겠다라고 한다면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거죠.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습니다. 주님을 제대로 섬기기 위해서 교회를 내려놓는 것은 해결책으로서는 올바른게 아니라는 거예요. 올바른 해결책은 그 주님을 제대로 섬기기 위해서 어떻게 내가 어떤 교회가 될 것이냐, 어떻게 주님을 기쁘게 섬길 것이냐라는 것을 좀 생각해 보가 있다는 거죠. 그게 쉼이 될 수도 있고 잠시 일을 바꾸는
것이 될 수도 있고 하겠지만 어쨌든 나는 주님을 더 잘 섬기기 위해서 그런 결정들을 하게 되는 거다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결국에는 머리 되신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여전히이 몸된 교회를 섬기라고 명령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래요. 베드로전서 4장 10절에 보시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어,이 말씀에 따르면 우리가 각각 은사를 받았대요.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직이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서로 봉사하라라고 명령이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각각 은사를 주셨고요. 그것은 은혜로운 선물이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그리고 여기 보시면 선한 청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청직기는 무엇이냐? 그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해야 되는 일꾼이다라는 거예요. 하나님 여러분에게 주신 그 은사를 여러분은 충성스럽게 교회를 위해서 사용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특별히이 말씀은 교회에게 주신 말씀이고 서로 교회 안에서 봉사할 것을 명령하신 거니까 우리는 그렇게 서로 봉사하도록 권면할 필요가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교회 있다 보면은 뭐 너 주일학교 선생님 할래? 뭐 학생 교사할래라고 서로 권하게 되는데 이거 자체를 너무 이상한 걸로 보시면 안 돼요. 여기 말씀에 있는 것처럼 우리가 권하는 겁니다. 그렇게 선행을 하도록 서로 권하는 겁니다. 예전에 읽었던 주일학교 교사 책이 하나 있었는데 제목이 저보고 주일학교 교사하라고요 이거였거든요. [웃음] 근데 대부분이 그렇게 교사를 시작하니까 그런 거 그런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누가 권할 수도 있고 그리고 내가 스스로 그렇게 해야 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교회가 이게 필요하다고 계속 얘기하는 거 같은데 자꾸 나의 마음에 부담이 생기기도 하고 하면서 어쨌든 내가 그런 일들을 선택하게 되는 겁니다.음
그런데 여러분이 그것을 선택할 때에 자발적으로 선택하시기를 바랍니다. 기쁨으로 어쩔 수 없이 하지 마시고요. 내가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섬기기 위해서 기쁨으로 이것을 선택하겠다라고 선택을 하시기를 바래요. 그냥 어쩔 수 없이 누가 시키니까 아니면 교회가 이게 필요한데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으니까라는 동기로 시작하지 마시고요. 내가 진짜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교회의 기쁨을 위해서 이것을 하고 싶다라는 그런 그러한 마음으로이 일을 시작하셔야 한다라는 겁니다. 안 그러면 어느새이 번하우 증후군이 여러분에게 찾아오게 될 거고요. 그러면 여러분 마음이 복잡해지고 불평이 생기고 자책감에 빠지고 그리고 교회가 나를 나한테 이런 일을 시켜서 내가 어쩔 수 없이 이걸 하고 있는데 너무 힘드네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라는 거예요. 자꾸
여러분 마음을 바로 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 그럼 어떻게 우리가 이러한이 번하우에서 좀 바르게 우리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을지 생각해 보려고 해요.음 결론적으로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은 저도 중학교부터 주일학교 선임을 했고요. 그리고 청년 때부터 학생의 교사와 청년의 회장과 여러 가지 일들을 맡아서 했었습니다. 뭐 심지어 예배 찬양 인도도 제가 했었고요. 지금 협병지하고 있는 것도 아기다를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는데 제가 했었고 어쨌든 이것저것 다 맡아서 했었는데 그래서이 번나오충군이 뭔지 준비하면서 저도 느낄 수 있었어요. 그렇지. 나도이 되게 힘들었지. 나도 다 놓고 싶었지. 왜 나만 하고 있지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러분들도 아마 그런 생각들이 드실 겁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여러분들이 많은 일들을 맡을수록 또 아이러니하게도 여러분이 신실한 형제 자매가 되려고 노력할수록 더 이런 유혹들이 있을 수 있다라는 겁니다. 한 가지만 꼭 기억해 주세요. 다음 시간에 더이어서 말씀드리겠지만 교회 사역은이 일 자체의 목적이 있는게 아니라. 그 일로 성도를 온전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라는 겁니다. 애찬 없어도 돼요. 주차봉사 없어도 됩니다. 설거지 교회의 필수적인 일이 아니잖아요. 없어도 됩니다. 중요한 거는 교회예요. 중요한 건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더 닮아가느냐, 여러분이 주님을 더 사랑하게 되느냐. 그 일을 위해서 사역이라는게 존재하는 거지 사역을 위해서 여러분들이 이용되는게 아니다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항상
일이 아니라. 사람 예 그리고 교회 사역이 아니라. 여러분들의 거룩하게 되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하시고요. 오늘들은 말씀을 잘 생각해 보시면서 나는이 교회에서 맡은 여러 가지 일들을 어떤 마음으로 하고 있는지를 좀 돌아보시면 좋을 것 같고요. 아무도 본나웃 없는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는 그러한 신앙생활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기도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하여 여기 교회에서 여기저기 봉사하고 있는 주님의 귀하고 충성된 그러한 청년들에게 주님께서 주신 말씀을 또 나누게 하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여기 있는 청년들이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너무너무 사랑하고 또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에 여기저기에서 많은 일들을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그 마음이 마르다처럼 변하지 않을 수 있도록 분주할 수분주하지 않을 수 있도록 지켜 주시기를 원합니다. 주를 향한 기쁨으로 계속해서 채워질 수 있도록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다른 사람을 향한 불평이나 자신을 향한 죄책감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원합니다. 혹은 교회와 주님을 분리시키면서 주님을
섬긴다라는 말로 또 교회를 떠나지 않을 수 있도록 주님 붙들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정말 올바른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고 또 일보다는 정말 나 자신이 주님과 가까이 가는 것을 우선 순위로 삼아서 맡겨진 모든 일들을 기쁨으로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주님 여기 있는 청년들과 함께 하시면서 모든 은사와 또 능력을 부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모든 것을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