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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증후군에 대해서 좀 정의를 드리면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하여 정신적 육체적으로 기력이 소진되어 무기력증 우울증 따위에 빠지는 현상에 대해서이 번나웃 증후군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의학적인 용어예요. 의학적인 진단입니다. 실제로 정신과에 가면이 번하웃 증후군입니다라고 이제 처방을 내릴 수 있는 그러한
진단을 내릴 수 있는 그러한 질병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지난번에 여기서 조사했을 때도 그렇고 분부안에서 자세히 이야기를 나눌 때도 그렇고 아무도 번화 증후군을 겪은 적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이제 얘기가 돼서 흥미롭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교회 사역을 통해서 실제로 이렇게 극도의 번하웃 증후군을 겪은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뭐이 가운데가 아니더라도 어떤 좀 강압적인 그런 교회 분위기 속에 있는 사람들 뭐 여러분 심천지 이런데 보세요. 되게 많은 걸 강요하잖아요. 전 성도가 한꺼번에 시험을 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대단하다. 전국에 있는 모든 성도들의 동시간 때에 시험을 봐서 14만 4천 안에 들어가느냐 마느냐 요런 걸 이제 따지는데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겠어요. 그렇죠.
그런데 그런 곳에서는 진짜로 번화 증후군 같은 걸 겪을 수도 있겠다 싶어요. 그런데 우리 중 대부분은 여기까지 이르진 않더라도 번아웃이라는 것은 경험을 했을 겁니다.이 번나웃의 사주전 의미는 어떠한 활동이 끝난 후 심신이 지친 상태. 여러분 뭐 청년에 MT를 마치든 학생의 MT를 마치든 뭐 위드 바이블 캠프 이번에 마치고 나면 너무 지쳤다 이런 느낌을
받을 수가 있잖아요. 그런 건 우리가이 교회 사역을 하면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 거죠. 그런데 그러한 상태를 우리가 잘 해결하지 않고 계속 스트레스를 쌓아 놓으면 결국에는 본화 증후근까지 갈 수 있겠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우리가 이러한 쌓여가는 그러한 압도감, 스트레스, 이런 어려움들을
잘 하나님의 은혜로 해결할 것인지를 좀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직접 우리에게 은사를 주셨고 그것으로 교회를 섬기라고 명령을 하셨는데 우리가 억지로 짐스럽게 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실 거예요. 우리가 기쁨으로 즐겁게 자발적으로 섬기는 것을 기뻐하실 겁니다. 교회 사역이라는 것은 우리가 무기력하고 우울하고 힘든데 억지로 내가이 끌고 가야만 하는 그런 일이 아닌 거예요. 여러분이 즐거이 헌신하는 예배여야만 합니다. 아름다운 성김이 돼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각자가 내가
지금 번나웃을 경험한다면 번나웃이라고 할 때는 약간 지친는 것, 힘들다라는 것을 느낄 때 어떻게 이것을 해결해 가야 할지를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라는 거죠. 먼저 지난주 나눴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여러분의 심신이 지쳤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두 가지 증거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마음이 복잡해지는 거예요. 마음이 번잡해지고 심난해지는 겁니다. 그동안은 계획적으로 삶을 탁탁탁 살아왔는데 이제 막 다 엉켜 버려서 뭘 해야 될지 모르겠고 막 정신이 없는 거죠. 그러니까 마음이 너무 답답하고 근심과 염려가득 차는 상태. 그게 첫 번째 증상이고요. 두 번째 증상은이
압도감 때문에 입을 열어서 불평이 터져 나오는 겁니다. 나만 일이라고 있네. 저 사람은 안 하고 있네. 이런 식으로 이제 불평이 터져 나오는 것. 그것이 두 번째 증상입니다. 여러분이 단지 심신이 지친게 아니라. 그 지쳐서 생기는 압도감과 스트레스를
잘 처리하지 못하고 쌓아가고 있다는 증거예요. 굉장히 심난하고 그리고 복잡하고 답답하고 정신없이 쫓기는 거 같고 그리고 그 불평이 다른 사람들에게 계속 흘러나가고 그러한 상태가 여러분이 지금 번아웃을 잘 해결하고 있지 못하는 상태다라고 말할 수 있다는 거죠.이 이 번하웃을 잘못 해결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첫 번째는 자책. 내가 이걸 하지 말았어야 됐어. 난 이런 일에 안 어울리는 사람이야. 이런 식으로 자책하는 거고요. 두 번째로는 회피입니다. 누가 나한테 이런 걸 시켜 가지고 저 사람 밉다. 교회가 이런 걸 나한테 시켜서 나는 너무 힘들게 살고 있어.
이런 식으로 이제 계속해서 나를 스스로 탓타든지 아니면 다른 사람에 대해서 약간 좀 원망을 갖는 그러한 문제인 겁니다. 그러한 것들이 왜 문제가 되느냐? 하나님이 여전히 여러분들을 교회 안에서 사용하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에이 중요한 지체로서이 교회에서 역할을 두셨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나 스스로 자책하는 것도 옳지 않고요. 또 누군가를 알지 못하는 그 모호한 누군가를 이렇게 탓타는 것도 문제가 된다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면 교회 사역에서 여러분들이 지칠 때에 각각 번하웃에서 해방될 수 있는 건강한 회복 방법은 무엇인가? 오늘 그네 가지를 좀 살펴보려고 하는데 본문 누가복음 10장 38절에서 42절까지이죠.
그중에 41절을 보시면 이제 마리아가 마르다죠. 마르다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분통을 터트렸습니다. 그 쌓여가는 그 심난한 마음들, 분주한 마음들을 참지 못하고 어떻게 내 동생은 나를 이대로 내버려 줄 수가 있죠? 예수님은 그것을 왜 가만히 놔두고 계시죠? 이런 식으로 이제 불평을 터트리는 상황이었어요. 번하웃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그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41절과 4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이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네 가지 우리가 번나웃을 경험할
때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 건강한 회복법을 배울 수가 있어요. 첫 번째 인정입니다. 인정. 41절과 42절을 보시면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을 하세요.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요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중에 먼저 마르다야, 마르다야라고 하면서이 마르다에 대해서 두 번 부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두 번 부르신 장면이 몇 번 있어요. 시모나, 뭐 이런 식으로 이제 두 번 이렇게 언급해서 부르시는 장면은 굉장히 긴급한 상황인 겁니다. 어떤 면에서는 상대방이 지금 감정과 어떤 생각들을 막 쏟아내고 있는 상태니까 멈추게 하고서 이제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자 하시는 거죠. 마르다야 마르다야라고 하면서 동시에이 여인이 굉장히 지치고 상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위로하는 말 말씀을 하세요.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고 있구나라고 지금 말씀을 하신 겁니다. 예수님께서이 여인의 마음을 알아 주셨다는 거죠. 마르다가 불평했을 때 야, 너 그렇게 불평한 건 하지 마. 이렇게 하시지 않고요. 마르다야, 마르다야라고 하시면서 그녀가 굉장히 어렵고 복잡한 마음이라는 것을 알아 주신 겁니다. 사실은이 아내는 예수님을 위해서 수고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 주시는 마음이 들어 있어요. 여러분, 교회 사역으로 굉장히 지쳐 있을 때에 예를 들어서 학생을 했는데
회의까지 하니까 막시야. 오늘 왜 이렇게 늦게 끈한 거야라고 하면서 나오고서 근데 그날 따라서 굉장히 지친 거예요. 내가 일주일 내내 토요일까지 막 회사에서 나오라 그래서 일도 했는데 일요일에 학생회까지 이렇게이 시간에 끝나다니 너무 지친다. 내일 또 출근이네. 막 이러면서 이제 너무너무 압도감이 드는 거죠. 그러한 상황에서 어떤 교회 성도님이 여러분을 잠깐 오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혼내려는게 아니라. 누구 형제 혹은 누구 자매라고 하면서 정말 고생이 많다. 당신이 학생의 교사로서
지금까지 굉장히 오랫동안 수고한 거를 내가 다 보고 있었는데 너무너무 수고가 많고 내 자녀가 학생에 있는데 당신 때문에 정말 자녀가 주님 안에서 잘 자라는 거 같아서 너무너무 뿌듯하고 너무 감사하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라고 하면서 주머니에서
아니 하트를 꺼낸다면 어떠시겠어요, 여러분? 그 지치고 힘든 마음이 어떻게 되겠어요?
높겠죠? 이렇게 알아 주시다니 정말 힘이 난다라고 하면서 그전에 쌓였던 여러 가지 스트레스들이 그냥 한 번에 날아가는 거 같은 그런 기분이 들 겁니다. 사람이 우리를 알아주기만 해도 어떤 한두 사람이 우리를 알아주기만 해도 사실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이 많은 어려움들이 그런 압박감들이 사라진다라는 것을 경험하게
돼요. 우리가 무기력할 때, 우리가 정말 우울할 때에 하고 있는 일이 너무 많아서 지치다. 지친다라고 생각이 들 때에 우리는 주님께서 아신다라는 것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살 때가 많아요. 주님께서이 모든 것을 아신다. 알고 계신다는게 아니라. 그래, 너 일하고 있는 거 안다가 아니라. 알아 주신다는 것은 인정하신다는 거죠. 너의 수고를 내가 다 안다 하면서 칭찬해 주시고 알아
주신다라는 것을 우리가 위로로 삼지 못할 때가 굉장히 많다라는 겁니다. 여러분, 이것이 굉장히 큰 위로입니다. 주님께서 알아주신다라는 거예요. 사람은 그 순간적으로 알아줄 수 있지만 그러지 않을 때도 많거든요. 그런데 주님께서 알아 주시는 것은 잠깐이 순간을 나한테 좋은 말 해 주시려고 알아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곧 최종적인 평가잖아요. 잘했다. 잘했다라는
영원한 평가와 거기 가치가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알아 주시는 것만큼 우리에게 큰 위로와 소망이 없다라는 거예요. 유평교회 성도 한 100명 정도가 여러분을 찾아와서 학생의 교사로서 너무 수고 많습니다. 이렇게 하는데 주님께서는 난네 속에 뭐가 있는지 다 알지. 이렇게 하신다면 뭐가 더 대단한 평가인 거예요? 주님의 평가가 더 중요하잖아요. 그렇죠? 그러니까 주님께서 알아 주신다라는 것만 생각한다면 우리가 정말로 100 사람 혹은 뭐 만 사람이 우리를 인정하지 않더라도 그것으로 위로를 얻을 수 있다라는 겁니다. 계시록 2장 2절에서 3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는이 자기를 위해서 수고하는 에베소 교회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이렇게 칭찬하셨습니다. 내가 너의 행위와 수고와 너의 인내를 알고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다 아신다라고 말씀을 하세요. 그니까 여러분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지치고 힘들 때
누군가는 안다라고 생각하시고 그 누군가가 바로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판단하시고 모든 것을 보상하실 바로 그 주님이시다라는 생각을 하시면 됩니다. 자, 예수님의 공생의 사역. 약 3년 반 정도의 예수님의 공생의 사역이죠. 그 사역이 쉬웠을 것
같다라고 생각하시는 분. 없죠. 예수님의 공생의 사역은 그 어떤 교회 사역보다 힘들고 어려운 사역이었을 겁니다. 누구라도 번나웃 증후군이 올 만한 그러한 사역이었어요. 첫째로 살인적인 스케줄. 예수님은 주무실 시간도 없고
앉을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사역을 감당하셨고요. 그리고 할 때마다 막 칭찬과 인정만 있었나요? 조롱과 비방과 반대와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 음모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굉장히 많았고요. 불신 많은 것들을 보여주지만 믿지 못하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지겹도록 방해꾼들이 쫓아다녔죠. 어떻게든 책아서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람만 따라다닌게 아니에요. 귀신도 따라다닙니다. 귀신들이 나 당신 누군지 알아 그러면서 막이 복음 사역을 방해하는 일들을 정말 집요하게 쫓아다니면서 했던 거예요. 정말로 누구라도 보나웃이 올 것 같은 그러한 사역을 예수님이 감당하신 겁니다.
적지 않은 사람이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서 인정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도 있었고 당신을 낳은 그 여인이 복되다 막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런 사람들이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사람에게 조금도 의탁하지 않았다라는 거예요. 요한복음 2장 24절에 보시면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사람의 인정을 구하지 않으셨다라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은 오늘 나를 인정해도
내일 나를 비방할 수 있거든요. 그리고 사람의 인정은 아주 정확한게 아닙니다. 그냥 그 사람이 느낀 걸 얘기해 주는 거지 그게 사실이 아닐 수도 있는 거예요. 제가이 자리에서 복음을 제대로 전하고 말씀을 제대로 전해서 오늘 말씀을 잘 깨달았어요라고 말했을 때 그것이 칭찬처럼 들릴 수도 있고 격려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이 자리에서 엉뚱한 진리를 제가 막 가르치더라도 어떤 누군가는 너무 많은 걸 깨달았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거예요. 그렇죠? 그러니까 사람이 말하는 평가는 절대적인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 주관적인 개인의 의견을 얘기하는 것뿐이고요. 그 의견조차 오늘은 긍정적이었지만 내일은 부정적일 수 있다라는 거예요. 예수님은 사람의
인정을 조금도 의탁하지 않으셨습니다. 결국 실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래요. 거기에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도 주님처럼 사람의 인정을 바라면서 교회 사역을 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의 인정을 바래야 되는 겁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2장 28절에 보시면 아무 사람에게도 의탁하지 않으셨다면 누구에게 의탁하셨을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그 예수님은 아버지께 인정받기를 원하셨고요. 아버지는 나는 너를 통해서 계속 인정받고 있고 영광을 받고 있고 계속해서 영광받게 할 것이다라고 인정을 해 주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오로시 그 아버지 하나님께만
인정을 원하셨던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교회 사역 중에 지치고 힘들 때에 심신이 너무너무 괴로울 때에 하나님 앞에 조용히 나가서 그분께 영광을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저의이 일을 통해서 부족하지만 연약하지만 저를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이렇게 응답하실 겁니다. 내가 너를 통해서 이미 영광을 얻고 있고 계속해서 영광을 얻을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냐는 거죠. 우리가 사역하데 있어서이 주님의 인정으로 충분하지 않냐라는 겁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주님의 인정은 절대적이고 최종적이고 연구적입니다.
그까 여러분 주님의 인정을 구하시기를 바래요. 물론 누군가 여러분을 찾아와서 형제 자매 교회 사역 하는 거 너무너무 수고 많고 다 알고 있어. 칭찬해라고 했을 때 저는 사람의 칭찬을 구하지 않습니다. 저는 당신의 경려를 별로 신경 쓰지 않 이렇게 하지 말 이렇게 해라는 건 아니에요. 성경에 보면 서로 격려하라는 말도 있고 서로 위로하라는 말도 있으니까. 하지만 거기에 나를 기대느냐라는게 문제입니다. 거기에 내가 의존하느냐의 문제인 거죠. 의존하지 않는 겁니다. 격려를 받고 감사를 받지만 내가 오롯이 의존할 분은 아버지 하나님 한 분이시다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두 번째는 진단이에요. 주님께서이어서 마르다야, 마르다야라고 말씀하신 이후에이 마르다가 지금 왜 심신이 지쳤는지, 왜 스트레스를 잔뜩 받고 있는지 그 이유를 정확하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라고 말씀을 하세요.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예수님은 지금이 마르다가 그 심신이 지쳐버린 이유를 엉뚱한 곳에서 찾기를 원하지 않으셨어요. 네가 지금 번나오 증후군을 겪고 있는데 그거네 동생 때문이야. 동생이 너를 안 도와주고 있잖아.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신 거죠. 그거 내가 무관심해서 그런게 아니야. 내가 무관심해서 그런 거야. 네가 이렇게 힘들 때 내가 도와줬어야 되는데 미안하다. 이런 식으로 말씀하지 않으셨어요.이 모든이
마르다가 겪고 있는 모든 어려움들은이 예수님의 무심함 때문도 아니고 마리아의 무관심 때문이도 때문도 아니고 무엇 때문이었냐? 바로이 여인이 많은 일 때문에 마음이이 내면이 복잡해진 상태, 염려와 근심이 가득찬 상태가 된 것이 문제였다라는 겁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님은 외부 환경에서 원인을 찾지 않으셨고요. 마르다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마음의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이 번아웃 같은 것을 느낄 때에 교회 사역을 하면서 지친다라는 것을 느낄 때에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자책이나 회피로 잘못
해결하려고 할 때 그게 왜 문제냐라고 하면은 결국 원인을 엉뚱한 데서 찾기 때문에 문제거든요.이 내가 이렇게 힘든 것은 이것 때문이야라는 그 원인 진단이 잘못돼서 그런 겁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 진단을 올바르게 내리도록이 마르다를 도와주셨습니다.
건강하지 않는 방법으로 자신을 탓타하지 않게 하셨고요. 또 건강하지 않은 방법으로 다른 사람에게 책임가지 않도록 도와주셨어요. 문제는네 마음속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영적 전쟁 때문이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모든 시험받는 것, 죄로 유혹을 받는 모든 것들이 결국에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문제다라고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4장 1절에 보시면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더 나는 것이 아니냐 내 안에 욕구들의 전쟁이 있다는 거죠. 갈등이 있다는 겁니다. 그것 때문에 죄가 태어난다라고 지금 말씀을
하고 있는 겁니다. 경력이라는 것은 매우 강한 원함 혹은 바람 의지를 말해요. 마르다는 무엇을 가장 원하고 있었느냐? 내가 예수님을 집에 초대했는데 정말로 잘 대접해야겠다라는 그런 강력한 욕망이 있었을 겁니다. 나쁜 욕망이 아니었겠죠. 예수님 대접 잘하고 싶은데 그게 무슨 나쁜 욕망이겠어요? 그런데 그 욕망이 가장 커져 버려서이
마음을 차지한 것이 문제였다라는 겁니다. 이걸 막 준비하면서 시간 안에 못 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거예요. 그러면서 염려와 근심이 생기게 됩니다. 어쩌면 내가 원하는만큼 완벽하게 할 수 없겠다라는 그러한 두려움이 마음을 지배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예수님을 정말 잘 대접하고 싶어라는 그 욕구가 이제 충만하게 되지 않을 위기가 닥친 거죠. 그게 채워지지 않을 위기가 닥친 겁니다. 그러니까이 욕심에 이끌려서 이걸 해내지 못하도록이 방해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거죠. 지금 동생이 이걸 방해하고 있어. 그리고 예수님이 그것을 무심하게 지켜만 보고 계셔. 이런 식으로 반응을 하게 됐던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 발 앞에 말씀을 듣던 동생 마리아도 문제가 아니었고요. 그 앞에서 말씀이 생명의 말씀을 전하고
있던 예수님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마르다 마음속에서 일어난 일이 문제였다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진단도 정확하게 되었어야 되는 겁니다. 여러분 교회 사역으로 지칠 때에 무엇이 문제인지를 가만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여러분이 주로 문제 삼는 것은 첫째 일 자체일 수도 있습니다. 학생에 왜 있는 거야? 뭐 이렇게 할 수 있겠죠. 유초등구 왜 있는 거야? 없으면 안 돼. 뭐 이런 생각을 이제 할 수도 있겠죠. 나한테이 일 맡긴 사람 누구지?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괜히 왜 하겠다고 했지? 나를 자책할 수 있어요. 내가 괜히 한다고 해서. 그런데 사실 그 순간 여러분이 마음이 답답하고 막 힘들고이 스트레스로 막 어려움을 느끼는 그 원인은 여러분 마음속에서 일어난 무언가 때문이다라는 거죠.이 이 마음이이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된다라는 겁니다. 무언가 아주 큰 갈망이 여러분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다라는 겁니다. 내적 전쟁에서 여러분들을
이기고 여러분의 마음을 독차지하고 있는 그 마음이 무엇인지를 여러분 파악할 수 있어야 돼요. 그 욕심이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어야 됩니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그 욕심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어 하는 갈망과는 다를 거예요. 그리고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을 섬기고 싶다라는 사랑하고 싶다라는이 갈망하고도 다른 성격의 어떤 욕심일
겁니다. 그 욕심과 여러분들이 싸워서 그 욕심을 정복해야만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꼭 기억하셔요. 여러분이 번나웃을 경험할 때에 마르다처럼 이렇게 답답하고 다른 사람에 대한 불평이 쏟아져 나올 때에 문제의 원인은 내 안에 있다라는 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문제의 원인은 밖에 있는게 아니라.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그 문제의 원인, 원수를 밖으로 몰아내는 것이이 번웃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비결입니다. 자, 인정. 주님의 인정에 대해서 살펴봤고 두 번째 진단. 여러분의 마음의 문제를 진단해야 된다라고 말씀드렸고 세 번째로 처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의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하셨을뿐만 아니라. 아주 실질적인 처방도 내려 주셨어요. 42절 초반절에 보시면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여러분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어,이 표현
자체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한니라를 잘못 읽으면 요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런 삐딱한 마음으로 대접할 거면 아무것도 하지 마. 이렇게 이제 이해할 수도 있고요.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제대로 해 와. 이런 식으로 이해할 수도 있거든요. 근데 그런 의미가 전혀 아닙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마르다가 감낭할 수 있는 수준만 해도 충분하다라는 말씀을 하고 싶은 거거든요. 충분하다. 그렇게 많이 할 필요도 없다. 한 가지만으로도 충분하다라는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마르다의 본주한 마음을 해결하고 싶어 하시는 예수님의 실질적인 처방이 여기에서 발견이 됩니다. 예수님을 잘 대접하고
싶다라는 것은 참 좋은 마음이죠. 그런데 예수님을 잘 대접한다라는 것의 기준은 지금 누가 정한 겁니까? 대접받는 예수님이 정했나요? 마르다야 날 잘 대접하고 싶으면 적어도 열 가지 반찬은 해 와라. 이렇게 하셨나요? 아니죠. 그러면이 많은 것을 준비하려고 했던 것은 누구의 기준이었던 거예요?
마르다의 기준이었거죠.이 기준이었던 거죠. 이렇게 해야만 예수님을 잘 대접하는 거야라고 자기가 기준을 세운 겁니다. 그리고 자기 기준을 자기가 못 만족시킬 것 같으니까 답답해서 지금 불평을 하고 있는 거였어요. 예수님은 그 기준 내려놓으라는 겁니다. 내가 내 기준을 말해 줄게. 한 가지만 해도 충분하다. 한 가지만 해도 충분하다라고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마르다의 마음에 차지 않았기 때문에 마르다는 그냥 많은 것을 준비하고 싶었을 뿐이라는 거죠. 근데 여러분, 우리가 교회 사역을 할 때에 이러기가 너무너무 쉽습니다. 내 기준을 세우기가 너무 쉬운 거예요. 학생의 교사라면 응당 요렇게는 해야지.
주일학교 교사라면 적어도이 정도는 해야지라는 어떤 기준들을 우리가 세울 수가 있다는 거죠. 그리고 어떤 특별히 주님을 막 섬기고 헌신하고 싶어 하는 형제 자매일수록 그래요. 뭐냐면 나는 지금 주일학교도 섬기고 학생도 섬기고 예배 찬양 팀도 섬기고 있는데 어떤 섬김의 영역을 또 제시를 하는 거죠. 누군가가. 그랬을 때 그것까지 해야지 내가 충성스러운 일꾼이지. 이런 식으로 이제 내가 기준을 세우는 겁니다. 혹시 내가 그것을 거절하거나 새네 개를 하고 있는데 하나를 못 하겠다라고 말하는 것은 마치 불충한 것처럼 하나님 앞에
신실하지 못한 것처럼 내가 내 기준을 세워놓고 그리고서 스스로 이제 실망을 하는 거죠. 나는 충성스럽지 못해. 나는 하나님께 정말로 열심히 하나님 섬기는 사람이 아닌 거 같아. 이런 식으로 이제 생각을 하는 겁니다. 근데 중요한 것은 누구 기준이냐는 거죠. 여기 내가 세운 기준이잖아요. 내가 세운 기준이고 하나님의 기준이 아닙니다. 때로는 각각 사역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 사역자들을 이제 세워야 되니까 예를 들어서 유초등부 담당자 뭐 학생부 담당자 이런 사람들이 이제 교사들을 매년 채용을 하잖아요. 한번 일해 보지 않을래라는 말들을 하는 거죠. 그런데 죄송하지만 또 화폐 형제가 있는데 여기는 학생부 교사죠. 그런데 이제 학생부 남당이 지금 찬의 형제인가요? 찾아가서 형제님 올해는 제가 좀 학생부를 좀 쉬고 싶습니다. 이렇게 얘기할 때 이거 이게 실제로 있었던 일이 아닙니다. 가상이에요. 그런데 이제 찬희 형제가 이러는 거죠. 지금 학생불 내려는게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일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주님께서 기뻐하신다고 생각하십니까? 학생불 내려놓는 게
어렵죠? 그러니까이 누구 기준이냐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학생부, 유초등부 이렇게 여러 개를 내가 다 해내는 것을 기뻐하시고 그 중에 하나를 놓으면 안 기뻐하시냐라는 겁니다. 아니죠. 하나님 그런 기준을 우리한테 제시한 적이 없으세요.
그건 우리 기준입니다. 그런데 그런 기준을 우리가 세워놓고 그것을 만족시키지 못할 때에 내가 하나님 앞에 충성적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마르다처럼 주님께 나와서 왜 나는 이렇게 많은 일을 맡아서 이걸 잘 해내지도 못하게 하는 겁니까라는 식으로 불평할 수 있다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 잘해야 된다는 부담을 여러분 내려놓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많은 일을 하기 때문에 우리를 기뻐하지 않으세요. 반대로 우리를 기뻐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맡기시는 겁니다.
많은 일을 해서 그 일을 했다라는 이유로 우리를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기뻐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셨고 그 아들의 피로 우리를 대속하셨고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게 하신다라는 겁니다. 아무것도 안 해도 하나님께는 우리가 기쁨이 될 수 있다라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한다는게 그 게으르고 나태하게 살라 이런 말이 절대 아닌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기뻐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너무 감격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거잖아요. 그 은혜가 너무 크고 감사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겁니다. 그 순서를 뒤집어 버리면 어느새 교회 사역은 이제 은혜의 반응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얻고자 하는 어떤 율법적인 기준이 될 수 있다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그것을 뒤집어 뒤집으시면 안 된다라는
겁니다. 다 잘해야 된다는 부담 내려 놓으셔도 돼요. 몇 가지만 해도 좋고요. 한 가지만 해도 충분하다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전서 4장 11절에 보시면 성경은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이는 범사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하고 있어요. 여기이 부분을 좀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교회 사역은 일종의 봉사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거고 성도들을 섬기는 봉사인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하라고 했죠?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이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한데 우리는 교회 사역을 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지 않고 우리가 우리 힘으로 우리 지혜로 하는
것 같이 할 때가 굉장히 많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역의 성과를 그래서 내가 이룬 업적으로 생각하기가 쉬워요. 내가 열심히 준비해서이 정도의 결과를 냈지. 그러니까 결과가 잘 안 좋으면 내가 못 한 거고 그 하나님 건 상관없어요. 하나님은 그냥 끝에서 나의 결과물을 받으실뿐 정도로만 생각하는 거예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모든 에너지와 모든 지혜와 모든 은사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거고요. 우리는 다만 우리의 봉사로 섬김으로 그분께 다시 돌려 드리는 것뿐이다라는 것을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누가
나의 성과를 알아주지 않을 때 나의 실패로 보거나 극도의 스트레스로 여기는 것. 내가 이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라는 증거예요. 내 힘으로 하고 있다. 내 지혜로 하고 있다라고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오늘 제가 여기 청년부에서 설교를 하고 있는데 보니까 뒤에 한 열 명이 자고 있어. 만약에 안 자고 있어요. 지금 실제로는. 자고 있다고 한번 생각해 보세요. 집에 가서 망했다. 그런 날 있을 거 아니에요. 그렇죠? 오늘 찬양인도 하니까 오늘 진짜 망했다. 이런 날 있을 거 아니에요. 그렇죠? 그럴 때 그런 유혹에
넘어가기가 쉽다는 거죠. 물론 다음에 더 잘 준비해서이 부분을 보완해야겠다라는 것들은 좋아요. 그런데 오롯이 내 힘으로 이걸 준비했고 결과물이 안 좋았고 그래서 하나님이 이것을 영광받지 못하셨다. 성도들이 이것을 섬 섬김을 받지 못했다라고 생각만 하는 것은 그 가운데 하나님의 공급하심이 그냥 쏙 빠져 있는 거잖아요. 그러면 여러분 번하웃이 오기가 굉장히 쉽습니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이 모든 일 가운데 하나님이 모든 것을 공급하신다라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한다라는 거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업적을 요구하지 않으시고요. 결과를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딱 하나 충성이라는 거예요. 충성.
예. 그러니까 말씀 준비든 찬양 준비든 뭔가 결과물이 좋지 않았을 때에 내가 준비를 더 잘해야겠다. 더 충성스러워야겠다라는 생각은 건강하고 건전한 거지만 결과물이 좋지 않았다. 그러니까 더 좋은 결과물에 기해서 더 많은 지혜와 나의 더 많은 노력을 가하면 더 좋은 결과물이 있겠지라고만 생각하는 것은 사실은 예
충성에 대한 생각만 하는게 아니라이 모든게 나에게 걸려 있다라고 생각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굉장히 큰 위험한 부분이니까 여러분 꼭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모든 교회 사약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주신 은사, 주님께서 주신 재능 안에서 하셔야 되는 거고요. 때로는 주님이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환경이라든지 상황이라든지 결과가 내가 원하는 것과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다만 충성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실 거예요. 말에다 얘기하신 것처럼 그걸로 충분하니라. 그걸로 충분하니라. 우리가 지금 위드 바이블 캠프 준비하고 있고 매년 할 때마다 몇 명 모이나 뭐 이런 거 관심이 많이 가는데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아이들이이 캠프를 통해서 유익을 얻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은 참 좋은 일이에요. 그런 걸 실질적으로 고민하고 생각해 볼 수도 있는 겁니다. 그런데 저도 그렇고요. 계속
그런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을 해요. 하나님 우리가 이걸 하는 것은 충성스럽게 우리에게 맡겨 주신 일에 충성스럽게 하려고 하는 것이고요. 주님께서 보내 주시는 사람들을 그리고 우리가 잘 하나님의 주신이 공급하신 힘으로 잘 준비된 캠프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참석한 이들과 유익을 누리기 위해서 이것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계속 기도하려고 합니다. 주님께서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하셨으면 된 거잖아요. 그렇죠? 그러니까 우리가 그런 마음으로 잘 준비했으면 좋겠습니다. 잠깐 위드바이브 캠프 홍보를 했고요. 아직 신청하지 않으신 분들은 끝나고 남으시면 됩니다.
4번 첫 번째 인정이었고요. 자 위드바이브 그 없는 내용인데 통역이 됐나요?
아닌가요? 오케이. 1번 인정. 두 번째 진단. 그죠? 마음의 문제를 진단하라. 세 번째 처방. 충성스러우면 됐다. 예. 한 가지만이라도 충성스러우면 됐다라고 말씀을 드렸고요. 마지막으로는 짧게 우선에 대해서 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42절 하반절을 보시면 마르다가
비판한 마리아에 대해서도 예수님이 한마디를 하셨어요. 마리아는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자, 마르다는 음식 준비하는 일을 택했고요. 마리아는 예수님 바랄에서 말씀 듣는 것을 택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이 말씀을 굉장히 오해하기가 쉬워요. 교회 사역에서 헌신하면서 상대적으로 덜 헌신하는 성도들을 보면서 우리만 맨날 봉사하고 저 사람들은 맨날 말씀만 듣고 뭐 찬양만 부르고 요렇게 이제 좀 불평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볼 때는 예수님께 굉장히 서운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너는 나쁜 거 택했고 얘네들은 좋은 거 택했어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들리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성도님들 입장에서 어떻게 예수님에게 말하고 싶으냐 그러면 저희도 좋은 거 됐겠죠.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거예요.
그럼 누가 주방에서 봉사하나요? 그럼 누가 오늘 교회에서 밥 아무도 안 먹나요? 뭐 이런 식으로 이제 예수님께 말하고 싶은 그런 딱 그런 대답을 지금 하신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지금 마르다의이 봉사를 평가절라 하지도 않으셨고요. 너는 정말 못하 못한 거를 지금 택했어라고 말씀하신 것도 아니고요. 반대로 마리아에게 도와주지 말라라고 지금 금하신 것도 아닙니다. 다만 예수님은 잘하시는 부분이 있는데 언제든지 어떤 상황에서이 사람에게 평생 교훈이 될 만한 것들을 전해 주실 때에 그 상황을 굉장히 잘 이용하시는게 주님의 가르침의 특징이에요. 그런데이 상황에서 무엇을 가르쳐 주셨느냐? 봉사에 있어서 우선 순위가 있다라는 것을 분명히 가르쳐 주십니다. 주님께 드리는 봉사와 주님께 우리가 받는 말씀의 공급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하냐라고 말씀을 하신 거죠. 무엇이 더 중요합니까? 우리가 드리는 것과 우리가 공급받는 것 무엇이 더 중요하냐는 거죠. 공급받는게 더 중요합니다. 아까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우리가 봉사하려거든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는 것처럼 하라.
공급받지 않는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우선 순위에 있어서는 공급받는게 먼저다라는 겁니다. 하나님께 공급받는게 먼저다라는 거예요. 구체적으로 살펴보시면 첫 번째로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주님께서 우리의 수고를 알아 주신다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아신다라는 것을 말씀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어요. 그리고 두 번째로는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이 번나웃의 문제를 바르게 진단할 수 있습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이 밖에 있는게 아니라.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영적 전쟁 때문이구나라는 것을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올바른 의사를 찾아가야 우리가 병을 제대로 진단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 마음의 병을 제대로 진단해 주는 것은 말씀이다. 그러니까 말씀 공급을 우선
순위에 삼아야 된다라는 겁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성경은 계속해서 우리가 섬기는 대상이 예수님이다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말씀을 더 대하면 대할수록 우리가 공급을 받으면 받을수록 우리는이 주님을 섬기는게 가장 중요하다. 내가 어떻게 많은 일을 하는 것, 많은 일을 동시에 같아 같이 맡아서 하는 것 이런게 중요한게 아니라. 지금이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섬기는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한 인정과 진단과
처방 부분에 대한 모든 지혜가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말씀 공급받는 것을 우선 순위에 삼아야 한다라는 겁니다. 여러분이 교회에서 손으로 많은 일들을 할 수가 있거든요. 발로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는데 예수님이 말씀하신이 좋은 편을 절대로 빼앗기시면 안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이 공급받는이 말씀의 공급을 여러분
빼앗기면이 전력을 잃어버린 채로 그냥 계속 하나님을 섬기는 계속해서 그러면 방전될 수밖에 없는 그러한 사람이 되고 만나는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 우선은 말씀을 가까이 대하시고요. 말씀으로 공급을 받으시고요. 그리고 나서 그 힘으로 그 열정으로 예수님을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자,이 말씀 제목이 지난주에이어서 번나웃 없는 사역의 비결이라는 제목이었는데 다소 과장된 건 사실이에요. 번나웃이 왜 없겠습니까? 지칠 때가 왜 없겠어요? 그런데이 번나웃이라는 지치는 상태라는 것을 우리가 그냥 쌓아두기만 한다면 결국에는이 하나님도 원하지 않고 우리도 원하지 않는 번어 증후군이라는 우울증에 무기력증에 빠지게 되기 때문에 우리가 이것들을 잘 해결해 나가야 됩니다.
한마디로 딱 번나웃 없는이 비 사역의 비결이 무엇이냐라고 말한다면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하나님을 기뻐하는 힘이 결국 번나웃을 사라지게 하는 비결이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힘이 결국 번나웃을 사라지게 하는 비결이다.
베드로전서 4장 11절에 아까 하나님의 힘으로 공급받는 것처럼 봉사하라라고 말씀하신 후에 베드로전서 4장 11절에 렇게 말하고 있습니다.이는 이는 범사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이 열정에 사로잡히는 거죠. 나는 하나님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너무나 영광스럽고 내가 하는 모든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 받으시기를 간절히 원하기 때문에이 일을 하는 것이다라는 것을 늘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은 번하웃에 빠지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그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을 기뻐한다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정말로 갈급한다면 그러면이 번나웃에서 계속해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거죠. 지치고 힘들 때마다 여러분, 내가이 일을 왜 하는지, 내가 섬기는 대상이 누구신지를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영원히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고 나에게 합당한 것이라고는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과 저주뿐이었는데 하나님이 나를 살리셔서 하나님을 영원히 찬양하고 감사할 수 있는 섬길 수 있는 예배자로 삼아 주셨다라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불순종의 아들들이었는데 순종의 아들들로 하나님께서 거듭나게 하셔서
영원히 하나님과 더불어 사김을 누리게 하셨다는 것. 그것 자체가 굉장히 놀라운 일이잖아요. 그런데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나의이 연약하고 부족한 지혜와 은사로 섬길 수 있게 하셨다라는 것 정말로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그 일을 통해서 교회를 세우시고 머리 되신 예수님을 드러나게 하셔서이 땅에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고 계신다는 것. 내가 그 일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이 굉장히 큰 일이다라는 거죠. 그니까 여러분 그렇게 큰 그림을 보실 수 있어야 돼요.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고 나는 그 영광을 위한 일을 정말로 기뻐한다라는 생각을 계속해서 다시 되새기고 하셔야이 번 없는 사역의 비결을 얻으실 수가
있을 겁니다. 저는 지난번에 말씀드렸는지 모르겠지만 중학교 때부터이 유초등부 교사를 했고요. 대학교 올라가서 이제 학생부 교사와 청년부 회장을 하고 또 예배양 예배 찬양 팀도 악기 하나 다루지 못하는데 그냥 성곡하고 막 앞에서 부르기만 하고 이러면서 이제 인도도 하고 이것저것 맡아서 막 하게 됐었어요. 돌아보면 정말로 미약하고 부족하고
옛날에 한번 얘기한 거 같은데 학생의 말씀도 막 농구하다가 청년들하고 같이 농구하다가 너 내일 말씀이야 그러면 나야 그러면서 막 집에 가서 막 이렇게 적어서 갖고 와서 하고 막 너무 부끄럽고 너무 부족하고 지금 생각하면 저 제가 가르쳤던 그 학생부 아이들한테 너무너무 미안하고 막 그래요. 근데 그런 날을
사용하셔하셔 주셨다는 거 자체가 정말로 감사하다. 그렇게 부족하고 연약했지만 그런 나를 계속해서 사용하여 주셔서 지금도 계속해서 교회를 위해서 섬기게 하여 주신 하나님께 정말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라는 생각이 들고요. 여러분들도 그 은혜에 감격하여서이 일을 계속 감당하시기를 그래서 아무도 번나웃을 느끼지 않고 지금 각각 교회 여기저기에서 섬기고 있는 일들을 기쁨으로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 수고를 아실 거고요. 영원한 보상을 더하실 겁니다. 기도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이 귀한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번나웃 없는 사역에 헌신할 수 있는지 말씀을
알려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이 가운데 있는 청년들 대부분이 교회 여러 가지 사역으로 정말 수고스럽게 일하고 있는데 주님 그것이 그들에게 짐과 또 억지스러운 의무가 아니라. 정말 자발적인 기쁨과 하나님께 드려지는 아름다운 예배가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이들의 수고를 아시고 또 영원한 축복으로 또 보상으로 또 응답해 주실
것을 이들로 알게 하여 주시고 주님 주님께서 정말 이들의 이들을 통해서 영광을 받고 계신다는 것을 이들이 알게 하여 주시며 정말로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것 하나도 또 하나님께서 정말로 그 상을 잃지 않는다라고 하셨고 또 그것으로 충분하다라고 하셨던 그 하나님의 기준을 이들도
사역의 기준으로 삼께 주시기를 원합니다. 합니다.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우리의 기쁨이 되게 하여 주시고 또 정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우리의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여기 있는 청년들과 늘 동행하여 주시고 그들의 섬김으로 영광받으시고 앞으로도 그들을 통해서 계속해서 영광받으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