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 4:11–16 11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3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종교’의 관점에서 보면 기독교는 여러 면에서 독특합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교회’라는 공동체입니다. 세상의 종교들은 대개 개인에게 초점을 둡니다. 개인이 그 종교가 말하는 구원에 이르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신자들은 같은 신앙을 공유하지만, 그렇다고 어떤 특별한 공동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유대교나 이슬람처럼 종교가 곧 삶이고 법이며 나라인 경우도 있습니다.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예배하는 모습만 보면 교회와 비슷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 본질부터 다릅니다. 교회는 ‘불러냄을 받은 무리’로서,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계획하신 구원받은 자들의 모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 하셨습니다. 에베소서 2장도 앞부분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원을 말하지만, 11절부터는 교회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각각 구원하시면서, 동시에 ‘교회’로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밖에 있는 성도는 없습니다. 성도의 무리가 곧 교회입니다. 교회는 그저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뜻을 가지고 모으신 공동체입니다.
이 교회는 각 지역에서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들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세상에 보여 줍니다. 그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이 ‘나눔’입니다. 사도행전 2장 이후 초대교회의 모습을 보면, 나눔이 교회 안에서 어떻게 드러났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돈과 집, 시간과 재능 등 자신이 가진 것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눔은 곧 ‘하나됨’의 표현이었습니다.
나눔은 영적인 영역에까지 미칩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이 사실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받았고, 영적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해 성도들에게 은사를 주시고, 그것을 나눔으로써 교회를 섬기게 하셨습니다. 그러려면 교회는 먼저 하나가 되어야 했고(엡 4:1–6), 그다음 각자의 은사로 서로를 섬겨야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교회를 섬겼습니다(11절). 특히 목사와 교사(한 직분의 두 가지 역할)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12절). 성도들이 각자 받은 은사를 따라 교회를 섬길 수 있도록 세워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각 성도가 성령께서 주신 은사로 자신을 나눌 때,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워지고 자라 갑니다.
이런 점에서 교회는 세상의 어떤 공동체와도 다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다름을 통해, 우리의 신앙과 그 신앙의 대상이신 하나님이 참으로 다르신 분임을 세상에 드러냅니다. 우리가 나눌 때에 세상이 그 나눔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모일 때에 내가 무엇을 나눌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정말로 다르게 보이게 만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