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 5:1–10 1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2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3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4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5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6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7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8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9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10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본문의 7절 말씀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는 정말로 담대한 선언이자, 믿는 자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삶의 자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자주 말하는 ‘믿음으로 산다’는 말이 정확히 7절 말씀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있어 ‘보는 것’은 정말로 중요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보는 것’이라는 것은 꼭 시각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실제적’이라고 말하는 모든 경험을 말합니다. 우리는 어떤 것은 실체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마치 없는 것처럼 느끼고 그렇게 행동할 때가 있습니다. 다가오는 시험이나 끝내야 할 과제 같은 것이 그렇습니다. 정해진 날이 있고, 그때까지 반드시 해야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위해 지금 해야할 일을 하지 않습니다. 지금 보이지 않으니까 실제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실제로는 없는데 눈 앞에 보이니까 그것을 실제처럼 느끼는 것입니다. 공포 영화나 놀이공원에 있는 귀신의 집 같은 것은 우리가 실체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눈 앞에 보이니 무서워합니다.
실제 삶에서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 삽니다. 아무리 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경험한 것이 최우선의 판단 기준이 됩니다. 더 보편적인 원리가 있고, 나도 그것을 인정한다고 해도, 그것이 내가 경험한 것을 부정하지는 못합니다. 그만큼 우리에게 ‘보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믿는 자들은 ‘보는 것’이 아닌 ‘믿는 것’으로 행합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성경은 믿는 것이 또 다른 의미에서 보는 것이라고도 말합니다(히 11:1). 보이지는 않지만 실재하는 것을 믿음이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는 모두 ‘보는 것’으로 산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을 현실로 보는지, 아니면 믿음의 눈으로 보는 것을 현실로 보는지의 차이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눈이 아닌 믿음으로 보는 것을 현실로 보고, 그에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 믿음의 삶이 쉽지 않은 이유는 우리 눈 앞의 현실이 너무나 선명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것이 진짜 현실이라고 믿고 그렇게 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믿고, 그렇게 삽니다. 그런 확신의 사람들이 주변에 가득하니, 그것을 부정하며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진짜 현실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라고 하십니다. 영원한 하늘나라(고후 5:1), 그곳에 계신 주님(고후 5:6, 8), 그리고 주님께서 약속하신 상급을(고후 5:10)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이 모든 것들은 보이지 않지만 진짜 현실입니다. 이 현실을 선명하게 보는만큼, 우리의 삶이 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눈을 밝히시어 더욱 선명히 보게 하여주시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