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많은 성도가 좋아하여 교회에서 자주 불리는 찬양입니다. 숫자에 약한 제가 몇 장인지도 자연스럽게 외웠던(지금은 새 찬송가로 바뀌어서 달라졌지만..) 찬양이기도 합니다. 영어 제목은 <Amazing Grace>로 “놀라운 은혜”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놀랍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위와 같은 찬양에서뿐 아니라, 기도나 간증에서도 자주 들을 수 있는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들을 생각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런 고백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고백을 하면서 때로는 그 ‘놀랍다’라는 말의 의미를 절반만 (혹은, 그 이하만)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비유하자면, 빙산의 높이를 해수면에서부터 재고서 “빙산 정말 크네, 놀랍다!”라고 말하는 것이죠. 물론 빙산은 해수면 위로 보이는 것만 봐도 정말 크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큽니다. 하지만 그것이 빙산의 전부는 아닙니다. 잘 알려져있듯, 오히려 빙산은 해수면 아래에 잠겨 있는 부분이 훨씬 더 큽니다. 보이는 빙산의 크기에 놀란 사람은 사실 아직 전부를 보지 못하고 놀라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빙산의 전부를 볼 수 있다면 훨씬 더 놀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놀라는 것도 이와 비슷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만을 생각하면서도 우리는 놀랄 수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 은혜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가 고려될 때 비로소 그 실체가 드러납니다. 빙산의 높이뿐 아니라 깊이까지 계산해야 빙산이 정말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날, 한 바리새인의 집에 예수님께서 초대받으셔서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그때 모두에게 ‘죄인’으로 여겨지는 한 여자가 예수님께 나와서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입 맞추고 향유를 붓습니다.
이것을 바라보던 바리새인은 당장에 그 여자를 ‘죄인’으로 정죄하면서, 예수님이 진짜 선지자라면 그 여자가 죄인인 것을 알고 그에 합당한 반응을 보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에게 예수님께서 물으십니다.
눅 7:41-42 “[41]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42]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바리새인(이름은 시몬이었습니다)의 대답은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였습니다. 예수님도 그가 옳다고 하십니다. 많이 받은 사람이 더 많이 사랑합니다. 받은 것이 크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예수님은 큰 죄인과 작은 죄인이 있고 그중 큰 죄인은 더 많은 은혜를 깨닫고 더 많이 사랑하게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은 이 의문의 답에 대한 힌트를 제공합니다.
눅 7:44-46 “[44]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45]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예수님은 바리새인 시몬이 하지 않은 것과 여자가 한 것을 대조해서 말씀하십니다. 의도는 분명합니다. “너도 이렇게 해야 했는데, 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 바리새인도 여인과 같은 행동을 해야 했을까요? 아니, 애초에 왜 이 여인은 예수님 앞에 나와서 그런 행동을 했을까요? 이어지는 말씀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여인은 자신의 죄 문제를 인정하고 예수님 앞에 나왔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어떤 죄인인지 알았기에 그녀는 예수님 앞에 나와 눈물로 회개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반대로 바리새인이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그가 자신을 그런 죄인으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완벽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철저히 회개해야 할 죄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이미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 앞에서 그는 여인과 다름없는 죄인이었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일반적으로 ‘많이 탕감받은 사람이 더 사랑’하는 이유는 많이 탕감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질문에 대한 바리새인의 대답은 맞는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500 데나리온을 탕감받은 사람이 ‘뭐, 그러지 않아도 좀만 있으면 내가 다 갚을 수 있었던 돈인데…’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크게 감사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실제로 탕감받은 돈이 얼마나 되느냐보다는, 탕감받은 사람이 그것을 얼마나 크게 여기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따라서 우리의 반응이 달라집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말할 때 꼭 생각해봐야 할 부분입니다. 은혜를 주신 하나님에 비해 내가 어떤 존재인지 알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크기를 조금이나마 제대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받은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다음 성경 구절들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엡 2:2-3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엡 2:11-12 “[11]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롬 3:9-12 “[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죄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갈 곳을 몰라 헤매던 자입니다. 자기가 옳다고 여기며 자신의 길로 행하던 자입니다. 하나님을 떠났을 뿐 아니라 대적하는 자이고 하나님과 상관없는 듯이 사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면서 감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욕하고 하나님 대신 다른 것에 감사하고 다른 것을 찬양하는 자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엡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잘해줄 때도 우리는 남이 알아주길 바랄 때가 있습니다. 뭔가 ‘큰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원수 같은 사람에게 그와 같이 행동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더 할 수 없는 호의’를 베푼 것으로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일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우리가 어떤 자들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은혜입니다. 구원받을 때만 이런 은혜를 받은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모습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하고 헤매고 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동일한 은혜를 베푸시며 우리를 조금씩 더 그 아들의 모습을 닮도록 빚어가고 계십니다. 어떻게 감사하지 않으며 찬양하지 않으며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라고 찬양할 때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혹시 다른 사람을 생각하여 “너 같은 죄인 살리신”이라고 말씀하고 계시진 않으신가요? 여전히 다른 사람은 죽을 죄인이고 나는 그래도 구원받을 만한 죄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은혜받지 못할 죄인이라고 고백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받은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신가요? 우리가 어떤 자로서 어떤 은혜를 받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어떤 자인지 바로 알고 그것을 인정할 때,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깊이와 높이를 조금이나마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한 해를 시작하시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시며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더 나아가 그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사랑을 나타내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