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내년에 만으로 65세가 되십니다. 아들은 37살이 되는데도 아버지는 “초콜릿을 먹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건강을 잘 챙겨야 한다”고 하시고 “계속 앉아있지 말고 일어나서 운동을 하라”고 하십니다. 잔소리처럼 들리기도 하고 이제 독립해서 한 가정을 이루었는데 아버지의 집 식구로서 아버지의 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분나쁘거나 강압적이라고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할 때 가장 큰 유익을 얻는 것이 아들이라는 것을 아셔서 그렇게 강하게 권면하신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잠언을 보면 아들에게 주는 아버지의 훈계가 나옵니다. 구절 구절마다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사랑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years of life)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언 3:1-6)

어떤 사람은 율법을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은혜”와 “사랑”을 강조해야지 자꾸 ‘무언가를 하라’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자식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를 훈계하고 징계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자식이 잘못된 길을 가거나 지혜롭지 못한 결정을 하려할 때 아무런 훈계도 하지 않는 부모는 사랑이 많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이 부족한 것입니다.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같이 하시느니라(잠언 3:11-12)

종교개혁를 시작으로 근대 복음주의의 “자유 은혜(free grace)”가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그리스도인 가운데 “행위”나 “율법”에 무조건적인 혐오를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일지라도 “행위”나 “율법”은 “사랑”과 “은혜”와 비교하여 덜 중요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선행하는 것은 사실입니다만(이 순서는 아주 중요합니다!) 그것이 곧 “행위”와 “율법”을 무의미하거나 불필요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행위”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우리의 마땅한 “사랑”의 반응이며, “율법”은 그 “사랑”의 바른 표현 방법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아들을 아낌 없이 내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를 풍성하게 맛본 자들이며 그래서 우리의 사랑을 하나님께 표현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우리로 어떻게 하나님께 우리의 사랑을 표현할 수 있을지 구체적인 방법을 설명해줍니다.

우리는 절대로 “행위”로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행위”로 우리의 “구원”의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요구되는 “행위”는 없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은 반드시 “행위”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합니다.

또 놀라운 것은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표현할 뿐 아니라 우리는 그로 인해 더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계명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훈계이며 그것을 순종하면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더 풍성히 경험합니다.

잠언 3장 말씀을 자세히 보시면 아버지의 “계명”을 마음의 동기와 관계없이 행동으로 지켜내라고 요구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동기 없이 행위로만 지켜내라고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let your heart keep my commandments)
“네 마음판에 새기라”(write them on the tablet of your heart)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trust in the Lord with all your heart)

아들은 아버지의 명령을 마음으로 지킵니다. 마음판에 새깁니다. 마음을 다해 그렇게 합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여러 가지 훈계를 합니다. 아들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아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육신의 아버지는 사람이기에 그 지혜와 지식의 한계가 있고 온전히 선하고 의로운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때론 이기적이거나 불의한 것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아버지는 그렇지 않습니다. 지혜와 지식이 무궁하시며 선하고 인자하시며 온전히 의로우십니다.

여호와께서는 지혜로 땅에 터를 놓으셨으며 명철로 하늘을 견고히 세우셨고
그의 지식으로 깊은 바다를 갈라지게 하셨으며 공중에서 이슬이 내리게 하셨느니라(잠 3:19-20)

그래서 이 완전한 지혜대로 살 때 우리에게는 하나님은 온전한 축복과 사랑이 주어집니다.

내 아들아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고 이것들이 네 눈앞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
그리하면 그것이 네 영혼의 생명이 되며 네 목에 장식이 되리니

네가 네 길을 평안히 행하겠고 네 발이 거치지 아니하겠으며
네가 누울 때에 두려워하지 아니하겠고 네가 누운즉 네 잠이 달리로다(잠 3:21-24)

악한 자녀라도 부모는 사랑합니다. 악한 부모라도 자녀는 아끼고 사랑합니다. 하지만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부모의 사랑이 부모를 진심으로 사랑하여 부모가 기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자녀와 부모가 원하는 것을 거절하며 자기가 원하는대로 살아가는 자녀에게 동일하게 표현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신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서 내가 원하는 대로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의 사랑은 진실로 부모를 사랑하고 그 훈계를 따르는 자들에게 더 많이 표현되고 자녀의 사랑도 부모의 훈계를 따르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잠언 3장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대저 패역한 자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이 있으며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거니와 미련한 자의 영달함은 수치가 되느니라(잠 3:32-35)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의인이 되었다는 것은 영원히 감사와 찬양을 드릴 제목이 됩니다. 나의 노력과 행위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기에 절대로 정죄함을 받을 일이 없습니다. 구약시대 양의 제사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회복되었음을 보여준 것처럼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속으로(대신 우리를 위해 죽으심) 단번에 영원토록 하나님과 끊어지지 않는 관계가 맺어졌습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이 주어진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백성인 그들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지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동시에 그것은 그들의 가장 최고의 행복을 보장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자들에게 율법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훈계입니다. 하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기 원한다면 그분이 주시는 훈계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곧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최고의 행복을 보장하는 삶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신명기 10:13)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있어 하나님의 계명은 부당하고 불편한 강요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도 굴복할 수도 없습니다(롬 8:7).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계명은 아버지의 사랑의 훈계입니다. 만일 그것이 부당하게 느껴지거나 답답한 강요라고 생각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부족하거나 그분의 훈계가 부당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에 대해 의심하거나 아버지를 그만큼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를 온전히 믿으십시오. 그분이 요구하시는 것이 곧 그분의 영광이요 나에게는 축복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계명을 마음에 새기고 마음으로 지키십시오. 그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의 훈계에 대한 아들의 사랑의 반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