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성경해석 칼럼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네요. 오늘은 지난번에 말씀드린 것과 같이 로마서 7장 5~6절의 관찰, 해석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과정을 통하여 성경을 해석하는 과정을 배워가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본문입니다.

기본적인 관찰을 먼저 해볼까요?
1. “우리”가 주어로 반복하여 등장합니다. 5절에 “우리가” “우리 지체” “우리로” 그리고 6절에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이러므로 우리가.” 주어는 분명히 “우리”입니다. 1인칭 복수로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도바울을 포함하여 1~4절까지 반복하여 언급했던 바울의 “형제들” 즉 로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롬 1:7)를 포함한 대상을 가리킬 것입니다.

2. 과거형이 반복되어 사용됩니다. 5절을 보시면 “육신에 있을 때”(“when we were in the flesh”),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did work in our members to bring forth fruit”). 6절 역시 “죽었으므로”(“we were delivered”), “얽매였던 것”(“we were held”). 과거의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1~4절을 참고하여 생각해보면 5~6절은 율법에 매였을때를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3. 접속사 “그러나”를 주목해야 합니다. 5~6절의 문장 구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BUT입니다. 본문에서는 “이제는~으므로”라고 표현되어 “그러나”가 분명하게 보이진 않지만 이 “그러나”가 5절과 6절을 분명하게 구분해줍니다.

4. 반복되는 단어를 찾아볼까요? “율법”이 세 번 등장하네요. “율법”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제 문맥을 생각해보겠습니다. 5~6절 앞에 등장하는 4절의 내용을 도식화 했던 것 기억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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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은 위에 보이는 도식이 아직 성립 되기 전, 그러니까 “죽음”이 있기 전의 상태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형이 많이 사용되었던 것이죠. 그때는 그리스도에게 가기 전 상태 즉 율법에 매여있고 그로 인해 법의 구속력을 받았을 때입니다. 5절에서는 이 때를 가리켜 “육신에 있을 때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2. “열매”는 4절에 나왔던 단어인데, 예수님과 새로운 관계가 맺어졌을때, 성도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에 “육신에 있을 때에” 그들은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었다는 것입니다.

5절을 더 자세히 관찰해보겠습니다.

1. 특별히 5절에서는 어떻게 이 “사망의 열매”를 맺게 되는지 설명하고 있는데요. 다름아닌 “죄의 정욕”이 “지체 중에 역사하여” 맺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망의 열매를 맺게 하는 동기 혹은 동력은 바로 “죄의 정욕”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망을 위한 열매”를 맺는 결과를 내기까지 지체 중에 역사한 것입니다.

2. 여기 한가지 추가된 것이 있죠. 바로 “율법으로 말미암는”이라는 표현입니다. 영어로는 “by the law”라고 되어있어 죄의 정욕이 지체 중에 역사하여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는 과정 중에 어떤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율법이 과연 어떤 역할을 했을까요?

3. 5절에서 강조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는” 과정을 도식화 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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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사망을 위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율법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아직 잘 모릅니다. 오해할 수는 있습니다. ‘율법이 죄를 짓도록 만드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입니다.

이제 6절입니다.

1. 6절은 “그러나”라는 접속사로 “이제”(now) 어떤 변화가 찾아왔는지 알려줍니다.

2. “얽매였던 것”은 1~4절에 이미 언급되었듯 “율법”과의 관계 속에 주어진 구속력을 말합니다. 율법과의 관계가 끊어짐으로 율법에서 벗어났고 동시에 율법에 얽매였던 그 구속력으로부터 자유를 얻었습니다.

3. “영의 새로운 것”은 조금 어려운 표현입니다. 특히 영어로 “newness of spirit”이라고 하는데, 어떤 성경은 “the Spirit”이라고 번역하여 성령을 가리키고 또 어떤 성경은 KJV처럼 소문자 s를 사용하여 사람의 새로운 심령을 가리킵니다. 새번역성경은 그래서 두 가지 개념을 다 반영하여 “성령이 주시는 새 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깁니다”라고 번역하였습니다. 무엇으로 보든지 둘 다 “새로운 것”으로 섬기게 되었다는 것은 동일합니다. 그것이 성령이 주신 것인지를 알 수 있을까요?(로마서 8:2, 9, 11, 15, 16). 6절을 도식화 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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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번역 성경에 기록된 “새 정신”을 넣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율법”으로 말미암아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성령”에 의하여 주어진 “새 정신”으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4절과 연결해서 생각해보면 그 섬김의 결과가 바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더 이상 율법의 자리는 없습니다. 율법과의 관계가 끊어졌고 그 자리에 새로운 관계의 주인공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교리적인 내용의 추가

여기서 약간의 교리적인 내용을 추가하자면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한 자들이 된 것은 분명하지만 현재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신 분은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이십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하지 않으신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편재하심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모두 계시지 않은 곳이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다만 그 역할상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면서 보혜사로 대신 보내주신 성령께서 신자를 보호하시고 신자를 위해 탄식으로 간구하시며 인도하십니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신다고 말합니다(롬 8:34; 벧전 3:22).

5절과 6절의 차이점을 살펴보십시오.
과거에는 5절의 기록처럼 율법과의 관계 속에 있었고 그 구속력에 매여있었습니다.
죄의 욕정이 지체 중에 역사하여 그 율법의 관계 속에서 어떤 영향 아래 사망의 열매를 맺게 하였습니다.

6절은 새로운 관계를 설명합니다. 이제 율법과의 관계가 깨어졌고 그 구속력에서 놓임을 받았습니다.

대신하여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었습니다(그리스도의 영 성령). 그로 인해 “새로운 것” 혹은 “새 정신”이 생겼습니다.
이제 그것으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열매를 맺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질문이 떠오릅니다.

“죄의 욕정은 사라진 것일까요?”

“우리는 여전히 육신에 거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보다 먼저 이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율법이 죄를 짓게 만든 것이란 말입니까?” “율법이 죄입니까?”

그래서 7절이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