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은 지난 두 주동안 수요강단에서 전해진 시편 17편 설교를 모티브로 작성되었습니다. 설교를 듣기 원하시는 분들은 아래의 링크를 이용하십시오.
링크: “의로운 자의 기도” (시편 17편) by 최종혁
시편 17편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립니다. 다윗은 원수로부터 자기 목숨을 위협받는 위기에 처해있었습니다.
내 앞에서 나를 압제하는 악인들과 나의 목숨을 노리는 원수들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9절)
이러한 긴박하고 위험천만한 상황 속에서 다윗의 기도는 곧바로 간구로 들어가지 않고 1절에서 7절에 이르기까지 간구의 내용을 미루는데, 바로 이 1~7절에 나오는 기도의 내용이 오늘 우리가 교훈을 얻을 “기도의 필수조건”의 내용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기도를 시작합니다.
여호와여 의의 호소를 들으소서 나의 울부짖음에 주의하소서 거짓 되지 아니한 입술에서 나오는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1절)
다윗은 자신의 호소가 의롭다는 것을 근거로 이 기도를 시작합니다.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간구가 조금도 거짓에 기초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실에 기초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또한 2절부터는 보다 직접적으로 자신의 의로움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는데,
주께서 나를 판단하시며 주의 눈으로 공평함을 살피소서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내게 오시어서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사오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하지 아니하리이다 사람의 행사로 논하면 나는 주의 입술의 말씀을 따라 스스로 삼가서 포악한 자의 길을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하지 아니하였나이다(2~5절)
자세히 보시면 다윗은 자신의 마음, 입술, 행사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 범죄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판단하시고 살피시며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다고 말합니다.
세상에 그 어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다윗과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을까요?
빛이시며 어둠이 조금도 없으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처럼 흠 없고 의로운 존재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다윗은 시편 51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시 51:1~3)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죄악 중에 출생하였으며 어머니가 죄 중에서 자신을 잉태했다고 고백했습니다(시 51:5). 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나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시편 14편에서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시편 17편에서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절대적으로 의롭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께 구원해달라고 간구하기에 앞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으로 죄를 지은 것이 있는지, 혹은 입술로 하나님 앞에 범죄한 것이 있는지, 행실에 있어 하나님께서 그를 듣지 못하시도록 막는 죄들은 없는지 말입니다.
죄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막는 방해물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죄는 하나님이 우리를 듣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이사야 59:1~2)
죄는 구원받은 성도와 하나님의 관계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에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들이 주어졌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직접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3~24)
사도 바울은 만찬을 대하는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을 합니다.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examine himself)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고전 11:28)
또한 사도 베드로는 부부의 관계 속에서 죄가 있을 때 어떤 위험이 생길 수 있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고합니다.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7)
사도 요한 역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께 소망을 둔자는 마땅히 다음과 같다고 말합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3)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많이 강조하는 가르침에 익숙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으시며 연약하고 부족해도 나의 기도를 다 들으신다’는 것에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습니다.
한 편에서는 맞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연약함을 이해하시고 온전히 아십니다. 그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가진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하는 확실한 근거와 이유가 되십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5~16)
하지만, 시편 17편에서 다윗이 보여준, 그리고 신약성경에서 성도에게 계속해서 요구되고 있는 죄를 회개하는 마음은 기도의 필수조건에서 간과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죄에 대한 상한 심령입니다. 그냥 입술로 말하는 “상한 심령” 혹은 오늘날 예배콘서트장에서 감정에 호소하여 눈물과 부르짖음으로 해소하고 나면 생기는 그런 후련함의 회개가 아니라 시편 17편에 기록된 다윗의 “의의 호소”와 “울부짖음”이 필요합니다. “거짓 되지 아니한 입술”에서 나오는 회개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회개”는 기도하는 자가 누구 앞에서 그 기도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자각에서 비롯됩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성도들을 권면합니다.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벧전 1:17)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강조되고 있지만, “두려움으로 지내라”는 명령은 간과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를 품으시는 분이 맞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사도 요한의 말씀처럼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요일 1:5).
사도 요한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합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6~8)
거룩하신 아버지께 나아가는 자들, 그러나 연약함을 가지고 있는 우리가 그분께 나아갈 때 반드시 가져야 하는 자세는 다음과 같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이것은 약속입니다. 미쁘신(faithful)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맺어진 새 언약에 신실하시어 죄과와 관계없이 드려진 진실한 회개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확증한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보여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과 거룩하신 하나님 앞을 가로막는 모든 허물들을 무너뜨리실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반드시 “회개”라는 필수조건을 가집니다.
베드로가 말한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가져야하는 경외심, 두려움은 그분의 거룩함 앞에 우리가 반드시 가져야 할 마땅한 자세입니다. 그분의 거룩하심은 우리의 연약함과 허물을 드러내기에 충분하며(마치 빛이 모든 어두움을 비춰내듯), 우리는 회개를 통해 우리 자신을 살피고 겸손히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내어 놓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죄인이 교만하게 죄를 자랑할 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죄에 대한 진실한 회개 가운데 주어집니다. 죄를 자백하는 자들을 하나님은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용서하십니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하심으로 말입니다.
사랑은 여기에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10)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는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또한 아버지는 우리를 용서하실 것이며 우리의 죄로 막혔던 관계를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부부관계에 있어 남편이 아내가 혐오하는 일을 실컷 하고 나서 바로 아내에게 다가와 친밀한 대화를 나누기 원한다면 어떨까요? 아내가 아량이 깊고 사랑이 많으며 인내심이 강하더라도, 아내에게 나아가는 남편의 자세는 반드시 자신이 저지른 혐오스런 일들에 대한 진실한 회개를 포함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혐오하십니다. 그분이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 앞에 회개의 마음 없이 나아가는 것은 그분의 사랑을 신뢰해서가 아니라 그분의 거룩하심을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는 우리의 회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계속된 친밀한 관계 역시 우리의 회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지속됩니다. 이 회개는 관계가 완전히 끊어질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의 회개가 아니라 친밀한 관계를 계속해서 누리기 위한 회개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은 이 관계를 절대로 끊어지지 않게 만들지만, 우리의 죄로 인해 그리스도와 연합한 우리가 하나님 안에,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는 놀랍고 위대한 이 관계의 참 축복을 온전히 누리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과 대화하며 우리 아버지에게 나아가 그분 앞에서 기도하기 원하는 자는 누구나
회개의 자세가 반드시 요구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회개합시다.
하나님을 마땅히 감사하고 영화롭게 해야 할 만큼 하지 못한 것에 대해 회개합시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주께 하듯 하지 못한 일을 회개하고, 항상 기뻐하지 못하고 기도하지 못한 것들을 회개합시다.
육체의 소욕을 따라 죄를 지은 것들을 회개합시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성품과 속성을 찬양하지 못한 것을 회개합시다.
하나님의 소명과 사명을 잊어버린 것을 회개합시다.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한 것,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지 못한 것을 회개합시다.
주의 몸된 교회의 지체들을 향해 품지 말아야 할 마음을 품은 것,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한 것, 행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한 것을 회개합시다.
첫 사랑을 잊어버린 것을 회개합시다.
죽어가는 영혼을 불쌍히 여기지 못한 것을 회개합시다.
주님보다 세상을, 주님보다 나 자신을 사랑한 것을 회개합시다.
내가 행한 그 죄 때문에 주가 죽으셨는데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범하는 그 죄를 회개합시다.
하늘의 시민권을 하찮게 여긴 것을 회개합시다.
그나라와 그 의를 구하지 아니하고, 세상의 정욕, 이생의 자랑, 안목의 정욕을 구한 것을 회개합시다.
주님의 오심을 사모하지 않은 것을 회개합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한 쪽 귀로 듣고 한 쪽 귀로 흘려보낸 것을 회개합시다.
받은 구원에 마땅한 감사를 드리지 않은 것을 우리 모두 회개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