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드디어 본문 해석에 들어왔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본문 해석에 앞서 틀을 설정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본문의 원래 의미를 벗어나지 않게 울타리를 치고
본문이 목적하는 지점을 벗어나지 않도록 과녁의 범위를 설정하는 일이었습니다.
문법적으로 말하면 문맥을 파악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외부 문맥과 내부 문맥을 아주 꼼꼼하게는 아니었지만 간단하게 진단하고 알아내는 것으로
적어도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내용을 벗어나지 않게 한 것이죠.
외부 문맥을 알기 위해 우리는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살펴보았고,
내부 문맥을 알기 위해 저자의 기록목적과 중심내용을 개관과 소제목을 통해 알아보았습니다.
이러한 것을 파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참고 자료들이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이 시리즈의 원래 목적에 맞게 저는 성경 하나만 가지고
기본적인 문맥 파악을 하는 방법에 대해 말씀 드리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번 글에서는 본문의 핵심내용을 파악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다이아몬드 찾기”라는 제목으로 설명하였습니다.
본문의 핵심은 저자의 기록 목적, 본문 자체의 설명, 반복되는 단어와 본문을 차지하는 비중 등을 살펴보면
파악할 수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쉽게 말 해 우리는 전 단계에서 목적지를 설정한 셈입니다.
자, 아제는 우리가 본문 자체를 해석하는 길에 들어섰습니다.
이 길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정표”입니다.
성경 본문을 해석하는데 “이정표” 역할을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접속사입니다.
저는 접속사가 마치 운전할 때 우리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본문을 기록한 저자는 “그래서” “그러나” “그러므로” “하지만” “이는” 등의 접속사를 통해 문장과 문장의 관계를 분명하게 보여주는데요,
본문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볼 수 있는 중요한 힌트입니다!
예를 들어 베드로전서 2장 9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이 본문에서 “그러나(BUT)“와 “이는(that or so that)”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는 앞의 문장과 대조를 보여줍니다. 지금까지 흐르던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흐르겠다는 말입니다.
운전을 하다가 네비게이션에서 방향을 바꾸라는 명령이 나오면 핸들을 잡고 방향을 변경하려고 준비하듯 접속사를 만나면 우리는 뭔가 내용의 흐름이 바뀐다는 것을 눈치채고 어떻게 달라지는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8절을 보시면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산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한 자들, 그들은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거절한 자들이며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심판자)가 되신다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그것이 예수를 거절한 자들에게 정해진 운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 이 신호를 보셨습니까? 성경해석의 핸들을 쥐고 방향을 꺾을 준비가 되셨나요? 이제 뭔가 다른 이야기가 흘러 나올 것입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한 사람이 아닌 예수님을 믿는 자들(“너희”)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앞에 나온 대상과 완전한 대조를 이루는 무리에 대한 말씀이며 각각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도 극과 극입니다.
생각의 흐름이 다른 곳으로 흘러가버리기 전에 성경해석의 핸들을 꼭 쥐고 다음 이정표를 주목하십시오.
이는!
“이는”이라는 접속사는 영어로 “so that”(NASB)”입니다. 어떤 목적에 대해서 말해줍니다.
하나님은 그냥 아무 목적 없이 신자를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소유 된 백성으로 삼으신 것이 아닙니다. 사랑해서 동정해서 불쌍히 여겨서 그냥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분명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이는”이라는 접속사로 그 목적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백성으로 삼아주셔서, 어둠 가운데 죽어가던 우리가 그분의 영광스러운 빛에 거하게 되면서 맛보게 되는 그분의 아름다운 덕, 은혜, 사랑, 영광을 세상에 선포하시려는 분명한 목적을 세우셨습니다.
사실 베드로가 2장 10절 이후로 기록하는 명령들은 이 목적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베드로는 뜬금 없이 정부에 순종하고, 주인에게 복종하며, 믿지 않는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명령을 주지 않았습니다. 이 명령들은 그리스도인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덕을 선포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들입니다.
이처럼 “그러나” “이는”과 같은 접속사는 본문을 해석하는 큰 방향을 잡아주는 이정표 역할을 합니다. 그러니 쉽게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네비게이션에서 “딩동!” 소리가 나면 귀를 바짝 기울이듯, 접속사가 보이면 조금 더 집중해서 본문의 흐름이 어떻게 변하는지 관심을 가지십시오.
두 번째 예시를 볼까요?
에베소서 2장은 정말 놀라운 구원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1~3절은 신자가 구원 받기 전에 어떤 상태였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데요,
1절부터 허물과 죄로 죽었었다고 규정된 사실처럼 말씀하고 있고, 2절에서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고 이 세상 풍조를 따랐던 불순종의 아들들 중 한 사람이었고, 3절에서 육체의 욕심에 따라 살던 진노의 자녀였다고 말합니다.
4절에서 우리는 위대한 “그러나”를 만나야 하는데, 아쉽게도 한글 개역개정 성경에서는 이 “위대한 그러나”가 빠져있습니다. 옆에 NIV성경을 보면 BUT이 엄연히 있는데 말이죠.
“그러나”가 1~3절에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 그래서 진노를 맛볼 수 밖에 없던 자들에게 어떤 위대한 일이 임했는지 선포합니다.
(그러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풍성하신 긍휼과 크신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려내셨습니다.
이 “그러나” 전후 문맥은 엄청난 반전이 있습니다. “그러나” 전에는 죽음이요, “그러나” 후에는 생명입니다. “그러나” 전에는 진노의 영벌이요, “그러나” 후에는 긍휼과 사랑으로 얻은 영생입니다. 이 위대한 반전을 가리키는 이정표 “그러나”를 성경해석에 있어서 간과하는 것은 정말 큰 실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한글성경의 경우 번역을 매끄럽게 하기 위해 접속사를 생략한 경우가 종종있습니다. 그래서 “~지만,” “~거니와” 같은 표현으로 접속사를 앞문장 끝에 살짝 보여주는 방식으로 번역을 한 경우가 있는데요, 그래서 영어를 읽을 수 있는 분들은 영어 성경을 다시 한 번 확인하여 접속사가 있는지 확인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여러 종류의 한글성경을 읽어서 비교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자 뒤이어 나오는 이정표를 주목하여 주세요.
이는!
7절에 나오는 “이는”은 하나님이 그렇게 신자를 살리신 목적에 대해 이야기 하겠다는 흐름을 예고합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서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구원 목적 그 첫 번째는 바로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풍성한지 여러 세대에 나타내시기 위함입니다. 간단히 줄여서 말씀 드리면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시기 위해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구원 받은 우리도 그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 베드로전서 말씀처럼 그분의 덕을 드러내는 일에 힘쓰는 것이죠.
이처럼 접속사는 본문의 방향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우리에게 알려주는 이정표 역할을 합니다.
이 이정표들을 무시하거나 가볍게 여기면, 본문의 말하고자 하는 바를 놓치기 쉽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여러 가지 접속사(그러나, 하지만, 그래서, 그리고, 또한, 혹은, 그러므로, 때문에)에 더 관심을 갖고 성경을 읽어보세요.
성경해석의 길에 이정표가 되어 주는 접속사의 방향대로 성경 본문이 말하려는 것들에 집중하시면
성경의 의미를 찾는데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