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참여에 있어서 우리가 반드시 피해야 하는 두 가지 자세는,
첫 째, 모든 형태의 정치 참여를 무조건 비성경적,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자세이고,
둘 째, 어떤 정치 참여이든지 남에게 그것을 강요하고 주장하는 자세입니다.
오늘 청년회에서 우리가 먼저 확실히 말하고 넘어간 장면은
불러낸 무리, 회중으로서
교회는 정치와 완벽하게 분리 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각각의 그리스도인들이 시민으로서 참여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으나
교회라는 모임은 그런 목적을 위해 세워진 것이 아니며,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님께서 그것을 위해
자신의 피를 주고 사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칼럼을 참고하세요.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시민의 한 사람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청년회 시간에 우리가 함께 나눈 책에서는
국가와 정치를 바라보는 다섯 가지 원리를 제안합니다.
첫 째, 우리의 사명은 복음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은 그리스도를 세상에 전파하는 것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주의 영광을 위해 하는 것이며(고전 10:31),
사나 죽으나 주의 것으로 주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롬 14:8).
주님은 우리에게 주님의 증인이 되어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마 28:19-20).
정치 참여에 있어서 이러한 우선 순위를 벗어난다면
정치적 행동주의(Political activism)가 될 수 있습니다.
복음이라는 사명이 제 위치에서 밀려나게 되는 것입니다.
정치적 행동주의에 빠지면,
우리는 어떤 대상을 비판하는데 혈안이 된 나머지
그 사람도 주의 복음이 필요하며
구원 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게 됩니다.
또한, 어떤 정치적 성향을 지지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면,
믿지 않는 자들과 뜻을 같이하면서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 것들을 함께 동의하게 되는
타협의 순간들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어떤 정당의 지도자를 칭찬하고 높게 평가하고 추천할 때,
그가 가지고 있던 동성연애에 대한 견해, 무신론적인 사상들에
함께 동의하는 것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떤 종교적인 활동에 함께 동참한다면,
내가 생각하는 원래의 동기를 벗어나
그 활동이 대외적으로 보여지는 모습이
곧 내가 세상에 보여주는 모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촛불집회에 참석할 때,
건전하고 합법적인 모임에서 함께 무언가를 고민하고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가능한 정치참여의 모습이 될 수도 있으나
반정부, 반정당, 비판과 비난이 가득한 집회에 참석한다면
믿지 않는 사람들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들의 감정과 의사를 대변한다고 주장하면 그만이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모습이 그리스도의 영광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정치 참여에 있어서
주의 복음에 미치는 영향을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
둘 째, 우리의 확신은 하나님께 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버지 하나님을 만 왕의 왕, 만주의 주로 섬기는 자들입니다(딤전 6:15).
모든 만물이 그의 것이며, 모든 나라와 주권자들이 다 주님의 도구들이고,
세상 모든 나라들이 그분의 주권 아래 붙들려 있다는 것을 믿는 자들입니다(롬 13:1).
이것을 분명히 믿는 자들은,
여러 정치 참여를 하는 가운데 반드시
모든 것을 주께서 붙들고 계시며
그분의 뜻대로 운행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투표의 결과도 주께서 이미 정하셨고,
정책이나 나라의 미래도 주께서 정하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 세상에 완벽한 정부, 정당, 나라, 정책은 없으며
결국 그리스도가 다스리실 영원한 그 나라가 도래 할 때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그 나라를 세우실 것이라는 것을
믿는 자들로서, 정치에 참여해야 합니다.
내가 지금 바꾸지 않으면,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면
하나님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세로 참여해서는 안됩니다.
셋 째, 우리의 의무는 순종이다!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인권이 보장되지 못했던 로마시대,
예수님은 시민의 권리를 내세우거나,
국가의 부조리와 부패를 바꿔야 한다고 사람들을 선동하지 않으셨습니다.
국가에 대해서 예수님의 사도들이었던 바울과 베드로는 동일하게,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고 명령합니다(롬 13:7; 벧전 2:13-15).
이러한 명령이 정치 참여 자체를 금하는 것과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명령은 우리가 가져야 할 첫 번째 자세가
복종과 순종이라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인권이 보장되고 표현의 자유가 늘어가면서
줄어드는 것은 권위입니다.
학부모들이 교사를 찾아와 따귀를 때리고
학생들이 선생님을 폭행하며
시민들은 대통령을 쉽게 비방하고 욕하는 시대입니다.
그 반대로 권위주의 아래서 일어난 폭력과 억압도 분명 잘못된 일이나,
이렇게 권위가 무너진 모습도 올바른 모습은 아닙니다.
권위를 인정하고 순종하며 존경하는 자세는 찾아보기 힘든 세상입니다.
그들이 잘 하면 당연히 존경한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잘 하는 것이 있어도, 잘못하는 것이 하나, 둘 발견되면
존경심은 쉽게 사그라지고, 순종하는 태도도 멸시의 태도로 돌변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편승해서는 안됩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지도자들은 주님께서 세우신 주님의 도구들입니다.
물론 죄인이며, 부족하고 잘못된 점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잘해서, 존경할 만해서가 아니라,
주님이 그들을 세우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존경의 태도와 순종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무조건 그들의 말에 동의하고 인정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분별하고 우리의 의견을 말할 줄 알되
존경의 태도와 순종의 자세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서 그리스도인에게 절실히 필요한 자세는
세상에서 희귀해지는 존경과 순종의 태도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복음을 특별하게 만듭니다.
넷 째, 우리의 헌신은 기도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기도에 힘쓰라고 하면서,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딤전 2:1-2)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선한 정치, 정직한 재판, 공의로운 국가운영을 하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게 해달라고 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 아무런 기도도 하지 않으면서
그들이 잘못하면 무조건 비방하고,
잘 할 때는 아무런 감사도 하지 않는 태도는
그리스도인에게 옳은 자세가 아닙니다.
다섯 째,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쉽게 이렇게 말합니다.
기독교 이전에 국가고, 국가가 없으면 종교도 없다.
그러나 성경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이 말에 쉽게 동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것입니다.
국가의 개념이 형성되기도 전에
하나님은 사람들을 택하셨고, 그들이 국가의 형태를 지니기 전에도
그들을 통해 역사하셨습니다(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이스라엘이 강력한 왕권을 가졌던 사울과 다윗, 솔로몬 시대에도,
이스라엘이 완전히 파산하여 포로로 끌려가 나라를 잃었을 때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해 일하셨습니다.
창세로부터 오늘까지
정부가 세워지지 않아서,
국가가 없어서,
하나님의 나라가 정지되거나 소멸된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바로 이 하나님의 나라에 시민권을 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만약 우리의 시민권이 정말 하늘에 있다면,
우리의 가치관, 생각, 지향점도 하늘에 있어야 합니다.
이 우선순위를 잃어버린 정치참여는
하늘 나라 시민으로서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책에서 말한 다섯 가지 원리를 보면서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정치 참여를 할 수 있는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투표는 아주 합법적이고 적극적인 정치 참여의 방법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각 정당의 방향과 정책을 잘 알고,
복음과 하나님의 진리에 비추어
어떤 것이 더 하나님 앞에 선한 정치로 이끄는 방향인지 잘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투표에 참여 할 수 있습니다.
정치, 사회 참여 단체에 들어가 일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복음과 진리의 말씀에 합당한 방향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스도인으로서 함께 할 수 없는 비성경적 원리나 주장은 없는지,
잘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칼럼이나 기사를 쓰는 것으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존경과 순종의 태도는 반드시 필요할 것입니다.
음모론이나
사실이 아닌 것을(혹은 사실인지 아직 잘 모르는 것) 사실인 것처럼 말하거나(거짓증언),
비방, 모욕, 거친 말 등을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야고보는 그리스도인의 한 입에서 찬송과 비방이 함께 나와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정치적인 의사표현을 글이나 말로 한다면
반드시 그리스도인다운 표현으로 해야 합니다.
일인시위나 집단 시위에 참여할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것에 대항하는 일이 없게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입니다.
정치 참여의 형태와 모습이 어떻든, 그것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에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방법과 태도와 자세가 섞여 있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하셨습니다.
정치 참여의 최종 목적은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정의와 공의, 사랑과 은혜를 드러내는 일입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일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정치 참여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만약 그것이 복음에 해가 되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리게 된다면,
그리스도인은 그것을 감수하면서까지
계속해서 고집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성경은 경주라고 말합니다.
푯대와 목표가 있는 경주입니다.
달려야 할 방향이 분명하게 정해져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제사장 나라로 삼으셨습니다.
이방 모든 국가들이 이스라엘을 보며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주력해야 할 것은 바벨론이나 앗수르
블레셋, 모압 등 다른 나라에 가서
그들의 정치와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주력해야 할 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한 백성이 되어 하나님을 드러내는 일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주력해야 할 일,
그리스도인이 달려갈 길, 바라보고 있는 푯대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빛과 소금입니다.
제사장 나라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정치와 사회를 바꾸는데 주력하는 자들이 아니라
우리를 부르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자들이며
거룩한 하늘 아버지의 거룩하심을
내 삶으로 드러내야 하는 자들입니다.
복음을 내 입술과 삶으로 전파하는 자들입니다.
만약 그리스도인이
말씀을 보는 일에 게으르며,
기도도 거의 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구원을 이루는 일,
거룩하게 사는 일, 죄와 싸우는 일에 소홀하면서,
정치 사회적 변화를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한다면
그는 본연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사신 바 된 자들로서
우리의 주인이 기뻐하시는 일에 주력하는 것은
내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내 십자가를 지고
내 주인을 따르겠다고 선포한 모든 “믿는 자”들이
해야 할 마땅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