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 심령”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실족”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보통 자신의 마음이 속상하거나 상처받았을 때,
마음이 답답하거나 낙심될 때 사용하는 편입니다.
어제 형제님이 한 말을 듣고 실족했어요
어제 자매님의 행동 때문에 저는 심령이 상했어요.
“상처받았어요” “실망했어요”와 거의 비슷한 의미로
”상한 심령”과 “실족”이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보통 “상한 심령”과 “실족”이라는 말을 쓰면서
사람들은 그렇게 만든 사람이 회개할 것을 요구합니다.
자신의 심령을 상하게 하거나
자신을 실족하게 한 그 사람이 잘못한 것이며,
그 죄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정반대로 성경에서 이 두 표현은
상한심령을 가진 혹은 실족한
당사자의 죄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먼저, “상한 심령”은 딱 한번 시편 51편에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
시편 51편은 표제에도 나오듯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하고 충신이자 밧세바의 남편인 우리야를 죽인 뒤에
선지자 나단이 그 죄를 지적했을 때 다윗이 쓴 시입니다.
다윗은 시편 51편을 통해 계속해서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며
용서를 구합니다.
그러면서 17절에 와서
하나님께서는 죄를 씻어주는 제사제도 보다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는 “상한 심령”을 원하신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진정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표현에 걸맞게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제사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사람이 자신의 죄에 대하여 애통하는 마음을 갖는 것을 원하십니다.
이것은 단지 구약시대에만 통하는 진리가 아닙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 4:9-10)
“상한 심령”은 다른 사람 때문에 상처받은 마음, 속상하고 낙심한 마음이 아닙니다.
자신의 죄에 대해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뉘우치는 마음,
회개의 마음을 말합니다.
자기 가슴을 치며 주님 앞에 선 세리와 같은 마음입니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18:13)
“실족”이란 단어 또한 그렇습니다.
“실족”이라는 말은 단순히 상심하고 속상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실망했고 낙심했다는 말도 아닙니다.
“실족하다”는 단어의 원래 의미는
stumble “발을 헛디디다, 발이 걸리다”입니다.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하지 아니하였나이다(시 17:5)
내 걸음을 넓게 하셨고
나를 실족하지 않게 하셨나이다(시 18:36)다닐 때에 걸음이 곤고하지 아니하겠고
달려갈 때에 실족하지 아니하리라(잠 4:12)
시편과 잠언에서 “실족”이라는 말은
걸어가는 것과 달려가는 것과 함께 쓰였으며
발을 헛디디고 넘어지는 것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넘어지고 쓰러지는 것을 표현할 때도 있지만
보통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사용되었습니다.
영적으로 죄의 유혹을 받아 넘어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내 친한 벗도 다 내가 실족하기를 기다리며
그가 혹시 유혹을 받게 되면 우리가 그를 이기어
우리 원수를 갚자 하나이다(렘 20:10)
특히 신약에서 이런 영적 의미가 명확해지는데,
마태복음 5장 29-30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실족에 대한 유명한 말씀인 마태복음 18장 6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고린도전서 8장 13절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이 구절들은 영어성경(NASB)에서 “stumble”로 번역되었습니다.
헬라어로는 스칸달리조(σκανδαλίζω)로 “cause to sin”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죄를 짓게 만들다”라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형제를 실족하게 하였다”는 말은
”내가 어떤 형제가 죄를 짓도록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바울의 예시를 들어 설명하면
제사상 고기를 먹지 않는 형제 앞에서
제가 그 고기를 먹었다면 그 자체가 죄는 아닐지 몰라도
고기를 먹지 않는 형제의 마음이 불편해지면서
판단하고 정죄하는 죄를 짓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물론 남을 실족하게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내 형제 자매가 나로 인해 죄를 짓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마 18:7)
그러나 “실족”한 성도가, 즉 죄를 지은 당사자가
실족하게 만든 형제에게 “저 실망했어요, 당신 때문에 상처 입었어요”
라는 의미로 “실족”을 사용하면 안됩니다.
“저 실족했어요”는 다른 말로 “저 죄를 지었어요”이기 때문입니다.
“실족”했다면 당신의 죄를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와 회개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다른 형제 혹은 자매가 그런 환경을 제공했더라도
내가 지은 죄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처럼 책임전가와 변명으로 자신의 죄를
해결하면 안됩니다.
"실족”했을 때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우리가 앞에 얘기한 “상한 심령”입니다.
남을 탓하지 아니하고 자기 자신의 죄에 대해
애통하고 진심으로 회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나 너 때문에 실족했으니 나한테 용서를 빌고 회개해!
이런 마음자세는 “상한심령”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를 유혹하고 넘어지게 만든 형제 자매를
용서하고 그 형제를 판단하고 정죄한 나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이 보여주신 본입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벧전 2:21, 23)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나를 실족하게 한 형제는요?
당신을 실족하게 만든 형제의 죄는 그 형제가 하나님 앞에서 다루도록 하십시오.
재판장은 오직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약 4:11-12)
만약 그 형제가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계속해서 남을 실족시키는 그 일을 행한다면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사랑과 온유로 그 형제를 찾아가십시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마 18:15)
권고하십시오! “show him his fault”
사랑과 온유로 그가 죄를 깨달을 수 있도록 도우십시오.
목적은 그 형제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마 18:15)
“나 너 때문에 실족했어! 그러니 회개해!”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죄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불쌍한 형제 자매로 바라보고
나 또한 그 죄에 빠질 수 있는 자라는 것을 인정하며(갈 6:1)
자비와 긍휼의 마음으로, 사랑과 온유의 마음으로
그 죄를 보여주고 그것에서 돌이킬 수 있도록 도우십시오.
그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보이신 방법입니다.
당신의 죄가 더한 곳에 은혜를 더욱 부어주셨습니다(롬 5:20).
“상한심령”과 “실족” 모두 다 당사자의 죄와 직결된 단어입니다.
그렇게 만든 환경과 사람은 그 다음 문제입니다.
“실족”했다면 먼저 자신의 죄에 대해 “상한 심령”을 가지십시오.
절대로 “나 당신 때문에 실족했어”라고 하지 마십시오.
사실 그것은 변명이고 책임전가입니다.
두 단어 모두 그렇게 만든 환경이나 사람 보다는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깊은 회개와 뉘우침에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으면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