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의 축제라고 불리는 올림픽은 단순히 규모가 범세계적인 체육 대회가 아니다. 여러 가지 종목으로 경쟁하면서 누가 제일 잘 하는지 겨루는 것이 올림픽이 추구하는 정신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교육자로서 국제올림픽위원회의 설립자 및 위원장이었던 피에르 드 쿠베르탱은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로 불리는데, 그의 이름을 딴 메달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그가 주창한 올림픽 정신은 ‘진정한 스포츠맨십’을 구현하는 것(올림피즘) 즉 “스포츠를 통해서 심신을 향상시키고 문화와 국적 등 다양한 차이를 극복하며 우정, 연대감, 페어플레이 정신을 가지고 평화롭고 더 나은 세계의 실현에 공헌하는 것”이다. 숭고하기까지 한 올림픽 정신은 특별히 개막식과 폐막식을 통하여 웅장하고 화려하게 표현되고, 성화 봉송은 그 거룩한 정신을 계속해서 전 세계 모든 사람이 대대로 함께 공유하겠다는 진지한 결의를 보여준다. 올림픽을 통하여 우리는 민족과 나라와 성별과 문화 및 모든 것을 초월하여 단 하나의 인류 공동체로서 하나가 된다.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몸 하나로 극강의 절제와 훈련을 통해 만들어낸 기술과 실력을 비기며 우리가 얼마나 더 빨리, 더 높이, 더 강하게 될 수 있는지를 자랑한다. 그렇게 인류는 더 나은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올림픽의 숭고한 정신은 올림픽이라는 스포츠 축제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가져야 할 본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때로 그 본분을 망각한 선수들이 실격패를 당하기도 한다(같은 나라끼리 붙지 않으려고 일부러 패배하거나 약물을 복용하고 좋은 성과를 내려는 등의 행위). 모두가 그 본분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하고, 그 본분을 잊는 것은 올림픽 전체를 모욕하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성경은 올림픽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뿐만 아니라 그것을 기쁨으로 지켜보는 모든 사람에게 잊지 말아야 할 본분이 있다고 가르친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전 12:13). 이것은 모든 사람의 첫째되는 본분이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라는 말은 이 본분을 잊으면 우리 인생이 모두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된 것이 되고 말것이라는 경고의 내용을 불러낸다. 실제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이 기뻐하시는 뜻을 따르는 것을 망각하면 올림픽의 숭고한 정신도 어그러지고 반항적인 형태로 변질된다. 바벨 탑 사건때처럼.

올림픽 정신이 바벨 정신으로 변질되는 경우

잘 알려진 “바벨 탑 사건”은 인류가 성읍과 탑을 건설하며 그 탑의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려는 ‘보다 높이’ 정신의 결과다(창 11장). 인류는 원래 한 민족, 나라, 언어와 문화를 공유했다. 그런 하나의 인류를 뿔뿔이 흩어버린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때 인류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명령들을 지키려는 본분을 망각했다. 그리고 민족, 나라, 언어, 문화를 초월하여 오롯이 인류의 힘만으로 하늘까지 닿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길 원했다. 하나님 없이도 더 나은 세계를 실현할 수 있다는 교만한 자부심이 하늘에 닿을 것같이 솟아난 탑만큼이나 높아져 있었다. 하나님 그 코에 생령을 불어 넣지 않으셨다면 하나의 진토에 불과한 사람이, 때마다 주시는 비를 거두시면 먹을 양식이 없어 굶어 죽을 사람이, 감히 하나님 없이도 자기들끼리 유토피아 같은 왕국을 만들고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함께 힘을 합쳐 반역하기 위해 뭉친 것이다.

하나님께서 반역자들을 흩으신 것은 단지 괘씸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아무런 소망 없는 비참한 결말을 맞이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은혜로 그들을 흩으셨다. 계속해서 하나님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면서 참으로 모순적이게도) 하나님께 반역하려는 사람의 타고난 본성은 악하다. 그 악한 뿌리에서 맺는 온갖 악한 열매들이 하나님을 떠난 인생에게 고통을 가중하고, 사람은 아무리 힘을 합쳐도, 좋은 목적과 숭고한 정신을 추구하려고 애써도, 하나님 없이는 저주받은 인생과 영원한 심판을 면할 수 없는 불쌍한 존재다. 하지만, 하나님은 긍휼에 풍성한 사랑으로 사람을 구원하기를 기뻐하셨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이 되게 하셔서 모든 죄와 허물의 대가를 십자가에 달린 그분에게 찾으셨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아들이 가진 영생을 선물로 주시고 아들에게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함께 상속받게 하셨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민족, 나라, 언어, 문화를 초월한 하나의 무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되었고, 그들은 그리스도를 경외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더 나은 하늘과 땅, 평화롭고 영원한 즐거움이 가득한 나라를 이루게 된 것이다. 사람이 자기 본분을 잊었을 때 바벨 탑에서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사람을 흩으신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다시금 자기 본분대로 살게 하시고, 성령이 주신 방언으로 복음을 서로 깨닫게 하시고 모든 사람을 다시 그리스도의 제자로 한 자리에 불러 모으신다.

올림픽 정신에 이런 복음적인 관점이 반영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전 세계 모든 사람이 함께 모여 하나님이 주신 육체와 정신을 가지고 절제하고 훈련하여 낸 결과를 뽐내면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축제가 된다면. 하지만, 안타깝게도 갈수록 올림픽은 바벨 탑 정신을 닮아가고 있다. 그리스도의 만찬과 계시록의 심판을 조롱하고, 하나님이 제정하신 성 정체성을 무너뜨린다. 하나님이 없이도 우리는 완벽한 육체와 정신을 가지고 있고, 우리는 이 몸과 마음으로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자랑하는 축제가 되었다.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낸 것처럼 여기는 호흡과 정신과 육체를 가지고 하나님 없이도 얼마나 우리가 보다 빠르게 멀리 또 높이 이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장이 되었다. 자비하신 하나님이 오래 참고 계시지만, 이러한 바벨 탑 정신은 반드시 하나님에 의해 무너지게 될 것이다.

올림픽 정신이 숭고하고 아름다워 지려면

종종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 중에서 크리스천으로서 복음적 관점을 담대하게 선포하는 이들이 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라는 말로 이들은 자기 정체를 밝히는 데 주저함이 없고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주목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으로 그분께 영광을 돌린다. 그런데 단순히 이들이 크리스천임을 밝혔기 때문에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좋아하는 수준에서 머물러서는 안 된다. 유명한 배우나 음악가, 방송인이 ‘하나님’, ‘예수님’, ‘성경’ 등의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메시지가 전달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정말 그들이 사람의 본분인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에 있다. 정말 그들이(그리고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에 부합한 삶을 살고 있냐는 것이다.

여자 400m 허들 경기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고 금메달을 딴 시드니 매클로플린 선수는 월간 가이드포스트와 인터뷰한 내용에서 “경기에서나 삶에서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경주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을 주신다”라고 확신했고, 자신의 진짜 정체성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하나님의 딸”이라고 했다(기사). 올림픽에 출전하여 좋은 결과를 낸 모든 것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 것뿐만 아니라, 그 전에 많은 패배로 실패했을 때, 두려움을 내어 맡길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라고 믿음으로 나아갔다. 그녀에게 있어서 삶의 모든 순간에(승리하거나 패배하거나 상관 없이 모든 순간에) 하나님은 경외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었고, 그러한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의지하고 또 그분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허들 경기를 하거나 그 외 다른 모든 삶에 있어서도 가장 본분이 되는 일이었다.

상상해 보라. 전 세계인이 즐기는 축제인 올림픽이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으로 가득하다면. 우리에게 호흡과 정신과 육체의 건강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절제와 훈련을 통해 서로 경쟁하고 그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장이 된다면. 메달의 색깔과 상관없이 모두가 하늘의 시상대를 바라보며 상 주실 분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자리가 된다면. 스포츠맨십을 갖추고 선의의 경쟁을 하지만, 승자나 패자나 또 이를 지켜보는 모든 사람이 삶의 경주에서 인내로써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는 일에 하나가 된다면. 물론 타락한 세상에서 하나님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그런 복음적인 축제를 만들 것을 기대하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복음의 능력과 지혜를 맛본 하나님의 아들딸로서는, 한 사람이라도 같은 꿈을 꾸기를 바라고, 또 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지고 오실 더 나은 세상에서, 다양한 차이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극복한 무리가 평화와 우정과 사랑을 나누며 기쁨으로 즐기게 될 영원한 축제에 한 사람이라도 더 참여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올림픽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절대 신인 제우스에게 바치는 일종의 종교 행사였다. 그래서 지금도 그리스 국기가 상징처럼 펼쳐지고, 종교적 색깔이 묻어나는 예식이 거행된다. 언젠가 우리는 제우스와 같은 우상이 아니라 유일하신 참 하나님께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통해 예배를 드리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가 입을 유니폼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은 세마포가 될 것이고, 우리가 흔들 깃발은 예수 그리스도의 높고 아름다운 이름이 될 것이다. 하나님을 부정하고 반대하는 사람이 만든 올림픽은 이 숭고한 정신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할 것이 분명하지만, 어그러지고 구부러진 올림픽 정신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언젠가 완전히 회복되고 새롭게 될 그날을 엿본다. 그날에 물이 바다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 사람에게 가득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날에 각 나라 민족 방언이 모인 그 자리에서 우리는 진정한 올림픽 정신을 되찾은 하늘의 축제 속에서 영원히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될 것이다(어쩌면 메달 수여식이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