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빅토리안 시대에는 부부간 육체적 관계조차 부정한 것으로 여겨 성은 공적으로 다룰 수 없는 주제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는 성 혁명의 파격적인 영향으로 인하여 너무 자유로운 관점에서 성을 이야기하고 즐깁니다. 성관계는 인간이 맺는 최상의 관계로 추앙되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한 필수적인 사항으로 평가됩니다. 물론 부부에게 성적인 친밀감이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엔 도를 지나쳐 성적으로 잘 맞기만 하면 결혼이 행복하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것은 다 좋아도 절대 부부가 행복할 수 없다고까지 말합니다. 심지어 그래서 결혼 전에 소위 ‘속궁합’을 맞춰보는 것이 지혜롭다는 어리석은 말까지도 젊은 세대 가운데 유행하고 있습니다(대중매체도 그런 사고방식을 갖도록 한껏 부추깁니다). 한 마디로 성에 관한 세속적인 관점, 비성경적이고 반성경적인 가르침에 결혼을 앞둔 부부가 완전히 노출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교회는 성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금기로 여긴 것처럼 보이고, 성경은 부정적으로만 묘사하고 있다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 성경은 성에 관하여 생각보다 많이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엔 성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전문가가 있지만, 곧 결혼하게 될 부부가 가르침을 받고 잘 경청해야 할 전문가는 따로 있습니다. 태초에 남성과 여성, 부부의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통하여 생육하고 번성할 것을 요구하신 분, 성을 분명한 목적을 두고 창조하시고 선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성에 관하여 무엇을 말하는가?

먼저, 하나님은 부부의 성관계를 순수하고 거룩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을 창조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만드신 모든 것을 보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평가하셨습니다. 그냥 좋은 것이 아니라(“good”), 심히 좋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very good”).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27, 31)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평가가 첫 부부의 타락 전에 내려진 것이기 때문에, 타락 이후에는 성에 관한 하나님의 판단이 달라지셨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하지만, 타락 후에도 하나님은 부부의 침소를 거룩하게 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여전히 부부 관계 안에서 성은 거룩하고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히 13:4)

둘째, 하나님은 부부의 성관계가 결혼 관계의 기초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성생활이 가능해야만 정상적인 부부관계로 인정하시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물론, 부부의 성생활은 결혼의 매우 중요한 부분 중 하나입니다. 진심으로, 적극적으로, 자발적으로 성적인 관계를 맺지 않는 남편 혹은 아내는 하나님과 배우자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부부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단지 성생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의 성관계가 곧 결혼이다’라고 절대 말할 수 없습니다(하지만 세상은 다 안 맞아도 성적으로만 잘 맞으면 행복하고, 다 좋아도 성적으로 잘 안 맞으면 불행할 수밖에 없다고 거짓을 말하며 겁을 줍니다). 결혼으로 맺는 남편과 아내의 하나 됨 그리고 그것을 경험하는 친밀감은 단지 육체적 관계가 아닙니다. 전인격적 관계입니다. 성공적인 결혼은 성공적인 성생활 그 이상입니다. 성관계를 정기적으로 가지면서도 여러 가지 면에서 불안정하고 불행한 부부관계를 발견하기 어렵지 않고, 또 끔찍한 사고나 질병으로 인해 정상적인 성생활이 불가능한 부부가 그 문제를 극복하고 아름답고 건강한 부부관계를 누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부부의 성생활의 분명하고도 최상의 목적이 무엇인지 말씀해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배우자를 만족시키는 것입니다.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고전 7:3)

옛 자아가 살아있는 두 죄인이 부부가 되면 이기적인 욕망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부부가 누려야 할 친밀감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데, 그 문제는 부부의 가장 친밀한 사랑의 방식인 성관계에서도 분명히 나타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때와 장소를 고집하고 상대방의 상태나 의견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나누려고 하고 상대방이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지 않습니다. 자기가 즐거움을 얻는 것, 절정을 맛보는 것이 성생활의 최대 목적이 되고 맙니다. 하지만, 성경은 정반대를 요구합니다. 자기가 아니라 배우자가 만족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하고 서로에게 선을 행할 것을 요구하시는데, 성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배우자에게 선을 행하는 것, 즐거움을 주고, 절정을 맛보게 하고, 기쁨을 주는 것이 남편/아내가 성생활을 할 때 목표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얻으려 하지 말고 주려고 하십시오. 서로 얻으려고 하면 아무도 얻을 수 없고, 서로 주려고 하면 두 사람 모두가 흡족히 얻을 수 있습니다.

넷째, 하나님은 남편과 아내에게 서로를 만족시킬 수 있는 동등한 능력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를 창조하지 않으시고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두 사람은 성별이 다르고 생물학적인 몸의 구조가 다릅니다. 동성간 성행위가 역리로 몸을 사용하는 죄인 것과 달리 부부간 성행위는 순리로 몸을 사용하는 선입니다. 하나님이 남성에게는 여성을, 여성에게는 남성을 만족시킬 수 있는 몸과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부부는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일방적으로 만족시켜야 하는 의무를 갖는 것이 아니라, 서로 상호간에 배우자를 만족시킬 수 있으므로 기꺼이 적극적으로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아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고전 7:4)

이 말씀은 부부가 각각 자기를 스스로 만족시키려는 행위(masturbation)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성적 만족을 얻는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누구도 배우자로부터 독립적으로 성적 만족을 얻을 수 없습니다(가능성이 아니라 당위성). 누구도 상대방을 통제하거나 조종하거나 다스릴 수 없습니다. 두 사람 모두 능동적이고 적극적이어야 하고, 동등한 관계에서 성생활을 해야 합니다. 성경은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몫이며 복이라고 말합니다.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전 9:9)

다섯째, 하나님은 부부관계에서 만족을 얻는 것을 죄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금하지 않고 오히려 당연한 것으로 장려하십니다.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의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잠 5:18-19)

여기서 “샘”은 배우자와 누리는 성적 만족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그 물이 네게만 있게 하고 타인과 더불어 그것을 나누지 말라”라고 경고하셨습니다(잠 5:17). 마시는 물을 나눠마시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비유적인 표현으로 오직 배우자에게서만 성적 만족을 얻고 다른 곳에서는 얻으려 하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서로가 성적으로 오직 서로에게만 헌신하라는 말씀입니다. 배우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대상은 오직 나뿐이며, 나를 만족시킬 대상도 오직 배우자뿐입니다. 그 언약의 관계 안에서 하나님은 ‘즐거워하’고 만’족’하라고 하셨습니다. “항상 연모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성적으로도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여섯째, 하나님은 부부의 성생활이 규칙적이고 지속적이기를 원하십니다.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전 7:5)

“분방”은 부부가 서로 떨어져 지내는 것을 말합니다(‘방을 나누는 것’). 갓난아기를 재우고 먹여야 해서 임시로 따로 자거나, 건강상 특별한 이유로 격리해야 하는 상황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특별한 이유 없이(대부분 이기적인 이유로) 상대방에 대한 성적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는 이유가 이를 말해줍니다. 이 말씀에서 분방의 네 가지 합당한 조건을 발견합니다. 1) 상호 간 합의가 있어야 합니다(“합의상 하되”), 2) 얼마 동안의 시간이 정해져야 합니다(“얼마 동안은 하되”), 3) 금식과 기도의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4) 다시 합할 것이 약속되어야 합니다(“다시 합하라”). 여기서 우리는 부부의 성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원칙 하나를 발견합니다. “언제 성관계를 할 것인가?”가 올바른 질문이 아니라 “언제 하지 않을 것인가?”가 올바른 질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만큼 기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시급한 때를 제외하고 부부가 항상 규칙적이고 적극적으로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어쩌면 이런 질문이 생길지 모릅니다. 그러면 남편이나 아내가 원하는 만큼 다 맞춰줘야 합니까? 체력이나 욕구의 차이가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요? 기본적으로 성경은 1) 상대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할 만큼 의무를 다하라고 명령합니다(고전 7:4; 잠 5:19). 2) 그렇게 해서 상대방이 다른 성적 유혹을 받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고전 7:5), 3) 하지만 배우자가 지치고 힘들고 의욕이 저하되었을 때, 특별히 심각한 갈등을 겪으면서 서로에 대한 신뢰가 깨지고 친밀한 관계 회복이 먼저 되어야 할 때, 충분히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해야 합니다(빌 2:3-4).

일곱째, 하나님은 부부가 이타적인 사랑의 방식으로 성을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부부가 나누는 모든 사랑의 방식이 그래야 하는 것처럼, 부부의 성생활에 있어서도 항상 이타적인 사랑이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고전 13:4-7). 사랑은 언제나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고전 13:4-7), 타인의 유익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부부의 성생활은 항상 상호 동의하에 이루어져야 합니다(빌 2:1-4). 한쪽이 원하지 않는 관계는 아무리 부부 사이에서라도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성관계를 하나의 무기로 삼지 마십시오. 상대방을 조종하는 도구로 활용하지 마십시오. 부부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 복종하겠다는 언약을 맺은 관계입니다(엡 5:21). 그러므로 서로 복종하는 마음으로 성적인 친밀감을 누리는 일에도 헌신하십시오. 남편이나 아내가 원하는 것을 기쁨으로 주되, 양심에 거리끼는 것을 강요하지 마십시오(고전 8:12). 부부 사이에서는 뭐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랑을 나누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죄와 연관된 행위를 침소에 가지고 들어오지 마십시오. 그중 하나가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무언가를 강요하여 그 사람이 양심에 가책을 가지고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성경은 약한 양심을 상하게 만드는 것은 그 사람에게 죄를 짓는 것이고 그리스도께도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고전 8:12).

결론

부부는 성생활을 통해서도 성화를 이루어갑니다. 이기심을 버리고 이타심을 갖고, 소극적으로 사랑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하며, 남을 희생시키려 하지 않고 자신을 희생하는 기쁨을 누립니다. 부부는 처음부터 잘 맞는 상대를 기가 막히게 골라내는 과업을 이루어낸 사람들이 아니라 그렇게 서로 맞추어가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사람으로 거룩해지는 과정을 함께 신실하게 통과하기로 약속한 사람들입니다. 성적인 부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부부 사이에서만 누리게 하신 성이라는 선물을 풍성히 누리십시오. 하나님이 충분히 만족하고 즐거워하고 사모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그 울타리 밖으로 넘어가지 마십시오. 음행은 스스로 부부의 언약을 깨는 것이라고 성경은 무섭게 경고합니다(마 19:9). 이 성경의 가르침을 통하여 곧 결혼하게 될 남편과 아내 모두가 전인격적인 사랑의 관계를 성생활을 통하여 더 친밀하게 누리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