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데버는 그의 책 <건강한 교회의 9가지 특징>에서 건강한 교회는 반드시 1) 강해 설교, 2) 성경 신학, 3) 복음에 대한 성경적 이해, 4) 회심에 대한 성경적 이해, 5) 전도에 대한 성경적 이해, 6) 교회의 교인 자격에 대한 성경적 이해, 7) 교회 징계에 대한 성경적 이해, 8) 제자 훈련과 영적 성장에 대한 관심, 9) 성경적 교회 리더십을 구축해야 한다고 바르게 주장했다(부흥과개혁사, 2007).
교회를 선택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사항은 마크 데버가 선정한 건강한 교회의 특징과 많이 닮았다. 첫째, 교회가 무엇인지 바르게 정의하는 것((4) 회심에 대한 성경적 이해), 둘째, 복음이 무엇인지 정확히 가르치는 것((3) 복음에 대한 성경적 이해), 셋째,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히 전달하는 것((1) 강해 설교, (2)성경 신학), 넷째, 범사에 교회의 머리를 그리스도로 인정하는 것((9) 성경적 교회 리더십).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았지만 5) 전도, 8) 제자 훈련, 영적 성장은 회심과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고 건강한 가르침이 지속적으로 주어질 때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고, 7) 교회 징계, 6) 교회의 교인 자격은 범사에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심을 인정하고 성경대로 교회를 치리할 때, 점차 자리잡힐 교회의 질서라고 생각한다.
<교회를 선택할 때 가장 먼저 이것을 생각하라> 칼럼 시리즈의 마무리는 성도를 선택의 주체, 교회를 선택의 대상으로 삼는 기존의 패러다임을 뒤집어, 어떤 성도가 되는 것이 선택하고 싶은 교회를 만드는 길인지 살펴보는 것으로 하겠다. 타비티 얀야빌리는 <건강한 교회 교인의 10가지 특징>을 통하여 동일한 방식의 패러다임 전환을 보여주었다(부흥과개혁사, 2009). 그는 1) 강해식으로 듣는 자, 2) 성경 신학자, 3) 복음에 흠뻑 젖어 있는 성도, 4) 참된 회심자, 5) 복음 전도자, 6) 헌신된 성도, 7) 훈련을 추구하는 제자, 8) 성장하는 제자, 9) 겸손히 따르는 제자, 10) 기도하는 용사가 건강한 교회의 교인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것을 한 마디로, “성경적인 교회를 추구하는 성도”라고 부르고 싶다.
다섯 번째 우선순위: 성경적인 교회를 추구하는 성도들의 모임인가?
어떤 사람은 오늘날 교회가 처한 상황을 철저히 인도자의 책임으로 돌린다. 교회가 성경적이어야 성경적인 성도가 길러지는 것이 아닌가? 어떤 면에서는 맞는 말이다. 구약시대 하나님은 왕과 제사장, 선지자를 자기 백성의 지도자로 삼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백성으로 다스리고 인도하고 가르칠 것을 요구하셨다. 그래서 왕은 마땅히 하나님의 율례대로 백성을 다스려야 했다. 제사장은 백성을 거룩한 예배자로 빚어야 했다. 선지자는 백성에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분명히 가르쳐야 할 책임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선한 왕 아래 선한 백성이, 거룩한 제사장 아래 거룩한 제사장 나라 백성이, 하나님의 선지자 아래 그 말씀을 따르는 성도가 뒤따랐다. 하지만 항상 그랬던 것만은 아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셨다. 그리고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라고 말씀하셨다(마 23:37). 그렇다. 최고로 선하시고 인자하시고 거룩하신 분, 진리와 공의로 다스리시는 하나님 아래 그 백성은 반항적인 태도로 회개로 이끄시는 인도자의 손길을 계속해서 뿌리쳤다. 그러므로 우리는 리더의 역할을 절대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하지만, 동시에 팔로워의 역할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 몸이 건강한 사람은 지체 중 하나만 건강한 사람이 아니라 골고루 건강한 사람이다. 리더는 하나님이 교회에 주신 여러 은사 가운데 하나다. 결국 건강한 교회는 한 몸을 이루는 모든 지체가 각자 자기 역할에 충성하는 교회다.
그러면, 어떤 성도가 성경적인 교회를 이루는 데 필요한 자기 역할에 충성하는 성도인가? 첫째, 성경적인 교회를 추구하는 성도는 자신의 회심을 말씀과 삶으로 확증한다. 과거의 특별한 경험이나 신비로운 체험을 기반으로 자기 신앙의 진위를 가리지 않는다. 모태신앙이나 몇 대째 목사 집안이라는 혈통을 자랑하거나, 수없이 적립한 교회 봉사 점수와 헌신의 정도로 중생을 입증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의 공로로, 믿음을 통하여 주신 선물이라는 사실에 항상 감사한다. 은혜로 얻은 구원에 대한 감사와 찬양과 기쁨과 만족의 결과로 자연스럽게 삶의 열매를 맺는다. 성경적인 교회를 추구하는 성도는 얕은 구원 교리와 삶으로 전혀 실현되지 않는 지식에 안주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분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간다.
둘째, 회심의 근거를 말씀에서 찾고, 회심의 증거를 삶으로 드러내는 성도는 또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사랑한다. 도덕적, 감화적 설교가 아니라 성경적 설교에 더욱 매력을 느끼고, 설교자의 언변과 지혜가 아니라 성경의 의미가 분명하게 전달되는 설교를 선호한다. 독서를 좋아할 수도 있고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성경책 읽기는 사랑한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이 가장 뚜렷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복잡한 신학 용어에 관심이 적을 수는 있다. 하지만 성경적인 교회를 추구하는 성도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신학) 자체엔 관심이 없을 수 없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라고 고백한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의 진리를 발견할 때 놀라워하고 즐거워한다(시 119:18).
셋째, 참 성도는 말씀의 권위 앞에 굴복한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 ‘살아도 주를 위해, 죽어도 주를 위해’를 삶의 모토로 삼은 제자들은 그분의 말씀을 가볍게 여길 수 없다. 만물이 말씀의 권위 아래 순종하여 무에서 창조된 것처럼, 또한 말씀의 권위 아래 철저히 굴복하여 운영되는 것처럼, 말씀은 참으로 거듭난 신자의 삶을 철저하게 다스린다. 말씀이 책망하는 잘못된 생각, 말씀이 바르게 교정하는 어그러진 삶을 바로 잡고, 말씀이 교훈하는 올바른 생각을 품고, 의로운 말씀으로 삶의 교육을 기꺼이 받는다. 목사님 말씀을 하나님 말씀처럼 맹신하지는 않지만, 성도 중 지극히 작은 자라도 성경의 의미와 권위를 담아 이야기한다면 절대로 무시하지 않는다. 말씀에 겸손히 굴복하는 성도의 삶은 점점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하게 되고, 이를 통하여 강력하게 그리스도를 말과 삶으로 나타내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된다.
넷째, 성경적인 교회를 추구하는 성도는 절대로 교회에서 손님 대접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교회는 서비스를 받으러 오는 곳이 아니라 섬기러 오는 곳이다. 몸의 지체가 다른 지체를 위해 존재하듯, 성도는 하나님이 주신 은사(영적 재능과 여러 가지 은혜로 주신 자원들)로 성도를 섬기는 것을 기쁨으로 여긴다. 그들은 기쁨으로 성도를 문안하고, 우는 자와 함께 울고, 즐거워하는 자와 함께 기뻐한다. 성도의 필요에 무심하지 않고, 성도의 기도 제목을 무시하지 않는다. 성도의 연약함을 용납하고, 죄를 사랑과 온유로 바로 잡아주고, 자기의 짐을 지고 살면서 남의 짐을 같이 지려고 한다. 교회에 어떤 문제가 생길 때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며 탓하기보다 자기를 돌아보고 겸손히 회개하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먼저 찾아 솔선수범한다.
그리스도는 지금도 그분의 교회를 세우고 계신다
한 인터뷰에서 ‘오늘날 한국 기독교가 쇠퇴하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우리가 보는 현상은 특별할 게 없다. 그리스도는 지금도 껍데기만 존재하는 교회에게서 촛대를 옮기시고, 그분의 말씀 위에 세워진 참 교회를 통하여 일하고 계신다’가 대답이었다.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말씀하신 주님은 지금도 그분의 교회를 세우고 계신다. 우리는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말씀으로 교회를 이끌고 계신 주님이 참으로 살아계신 성경적인 교회를 바르게 분별할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는 함께 그리스도께 충성하며, 함께 그분과 동행하며, 점점 그분을 닮아가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주님은 그런 교회를 지금도 세우고 계시고, 그런 교회를 통하여 지금도 일하고 계신다. 당신은 성경적인 교회를 바르게 분별하여 찾아냈는가? 그런 교회에 속했는가? 당신은 성경적인 교회의 성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