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내용은 맥아더 목사의 설교 <The Child who was God>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생일은 누군가가 태어난 날이기도 하고 또 태어난 것을 기념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를 한번 생각해봅시다. 친구들이 생일이라고 축하 파티를 준비했다고 오라고 해서 갔습니다. 밖에서 보니 안이 떠들썩한 것이 벌써 분위기가 무르익은 것 같습니다. 딱 주인공이 등장해주어야 할 타이밍입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갑니다. 기대감은 최고조에 이릅니다. 그런데, 들어가 보니 뭔가 이상합니다. 나를 본 친구들은 잠깐 눈인사만 하고 곧 다시 자기들끼리의 이야기에 빠져듭니다. 한쪽에서는 한 친구의 마술쇼를 다들 넋을 놓고 보고 있습니다. 저쪽에는 영화를 보고 있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구석에서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커플도 보입니다. 아는 친구들이 있는 것을 보니 집을 잘못 찾아온 것은 아님이 분명합니다. 한 친구에게 묻습니다. “너 여기 왜 온 거야?” “네 생일이잖아. 생일파티 왔지.” 짧은 대답을 남긴 친구가 돌아섭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 보이기에 붙잡고 묻습니다. “여기 어떻게 오셨어요?” “누구 생일이라고 하던데요? 근데, 저 친구 마술 정말 잘하지 않아요?”

가상의 상황이지만, 사실 오늘날의 ‘크리스마스’가 이와 같습니다. 정작 주인공인 예수님은 빠진 채, 사람들은 저마다의 축제를 즐기고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도 예수님의 진짜 모습이 아닌 그들이 원하는 모습만을 말하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있어 예수님은 그저 오래 전에 살았던 사람이거나, 선하게 살았던 사람, 혹은 위대했던 성인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이 누구이건 그들에게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뭔가 즐길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요.

하지만 정작 중한 것은 예수님이 누구인가입니다. 골로새서 1장 15절-18절은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본질적으로 어떤 분이신지를 밝히 보여줍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의 관계

먼저 15절은 예수님이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오,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형상’이란 고전 헬라어로서 ‘형판(찍어내는 틀)’이나 ‘도장’을 의미합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셨다는 말입니다.

히브리서의 기자도 같은 의미에서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그 본체의 형상이시니라”(히 1:3)라고 말했습니다. 골로새서 2:9과 고린도후서 4:4에도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우리가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볼 수 있게 모습을 드러내신 적은 있지만, 하나님의 본체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육신을 입으신 예수님께서 그 하나님을 ‘나타내셨습니다’(요 1:18).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한 복음서(특히, 요한복음)를 읽어보면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우리는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하셨고 그 가운데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셨습니다. 거룩한 삶을 사셨으며, 누구보다 권위 있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기적을 행하셨고 미래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분과 함께 있었던 자들은 그분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분은 온유하셨고 겸손하셨으며 자비와 긍휼이 넘치셨습니다. 또한 공의로우셨고 지혜로우셨습니다. 그 어떤 사람도 보여주지 못한 ‘하나님의 형상’을 예수님은 정확히 보여주셨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15절 말씀은 예수님을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라고도 표현하고 있습니다. “먼저 나신 이”는 시간상으로 먼저 태어난 것이 아닌 ‘장자(상속자)’, ‘으뜸인 이’, ‘뛰어난 이’를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1:2-3은 예수님을 만유의 상속자이며 하나님 우편에 앉은 자로 말하고 있는데, 같은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피조물보다 뛰어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과 피조물의 관계

16절과 17절은 예수님과 피조물의 관계를 밝힙니다. 그분은 피조물 중의 하나가 아닙니다. 모든 것, 보이는 것(물질세계)과 보이지 않는 것(영의 세계)이 모두 예수님을 통해, 예수님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우리의 이해를 뛰어넘는 광대한 별과 우주를 그분이 만드셨습니다. 우리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놀랍도록 정교한 생명체를 그분이 만드셨습니다. 과학의 발달에 따라 우리는 조금씩 더 이 피조물에 대해 알아가고 있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더 창조의 신비와 그 창조주에 대해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모든 천사들도 창조하셨습니다. 그들은 놀랍고 아름다운 존재지만, 그들도 예수님의 피조물입니다.

예수님은 피조물이 아닌 창조주이기에 피조물보다 먼저 존재하셨음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태어나셨지만, 우리처럼 그때부터 존재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이전부터 존재하시며 피조물을 붙드신 분이십니다. 모든 것이 정확히 그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도록 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바로 그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

끝으로 18절은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교회는 그분의 몸 입니다. 이 비유의 핵심은 분명합니다. 머리가 몸의 모든 것을 주관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교회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권위가 되신다는 말입니다. 그분이 바로 교회를 시작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또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입니다. 15절에서 본 것처럼 시간 순서상 먼저라기보다는 그들보다 뛰어나다는 의미입니다. 구약에도 부활한 사람들이 있었고, 예수님도 사역 중에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부활과 예수님의 부활은 다릅니다. 예수님은 죽으셨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죽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를 믿는 모든 자들의 진정한 부활의 보증이 됩니다. 예수님은 그저 과거의 인물이 아닙니다.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18절 말씀은 지금까지 말씀에 대한 결론입니다. 인간의 몸을 오신 하나님, 모든 것을 창조하고 다스리시며 붙들고 계신 하나님, 교회를 세우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바로 모든 만물의 으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런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바로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시기 위함 이었습니다(20절). 죄로 멀어진 인간을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하나님 앞에 세우시려 죽음을 당하셨습니다(21-22절).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모르거나 혹은 무시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상황입니까!

물론 12월 25일이 진짜 예수님의 ‘생일’인지는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을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최소한 그날이 무엇을 기념하는지는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이런 좋은 기회를 우리가 마다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위대했던 한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음을 이 ‘생일잔치’를 즐기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알릴 책임은 바로 먼저 알고 있는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Mary Did You Know> word by Mark Lowry and music by Buddy Gree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