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내용은 맥아더 목사의 설교 <The Power of Christmas Truth>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아이를 낳은 부모가 고심하는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아이의 이름입니다. 불리기에 좋은 이름, 너무 평범하지 않으면서 너무 튀지도 않는 이름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름의 뜻일 것입니다. 그 이름대로 모든 것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부모는 어떤 희망을 가지고 그런 이름을 짓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 마태복음 1장과 2장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여러 호칭으로 불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분은 ‘예수’라 불리셨고(1:21), ‘임마누엘’이라고도 불리셨으며(1:23), ‘왕’(2:2)이시며, ‘그리스도’(2:4)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이름들, 혹은 호칭들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먼저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입니다. 구약의 ‘여호수아’ 혹은 ‘예수아’도 동일한 뜻을 가진 이름입니다. 요셉에게 나타난 천사는 이 이름의 의미를 분명히 말합니다.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니라.”(마 1:21) ‘죄에서 구원한다’는 말은 많은 의미가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의미는 죄로 인한 궁극적인 심판에서 건져낸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님의 도덕적 기준에 이르지 못한 모든 인간은 죄인입니다(롬 3:23). 그리고 그 죄의 삯(열심히 일한 대가 혹은 결과)는 사망(롬 6:23)으로 사랑의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어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롬 1:18; 2:5, 8; 5:9; 9:22). 따라서 ‘죄에서 구원’은 그 영원한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요 3:36).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나요? 바로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을 대신해서 그들의 죄를 지시고 하나님의 진노를 당해주심으로 가능하게 된 일입니다(사 43:12; 요 1:29; 벧전 2:24; 요일 2:2; 4:10). 이 구원자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죄 사함’의 선물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십니다(렘 31:34). 이것이 새 언약의 백성들에게 주어진 약속입니다.

이스라엘의 큰 명절 중 하나인 ‘속죄일’에 유대인들은 한 해 동안 모든 백성이 범한 모든 죄에 대한 큰 제사를 드렸습니다. 레위기 16장에 따르면 대제사장은 두 마리의 희생 염소를 골라야 했습니다. 제비를 뽑아서 그 중 한 마리는 속죄제로서 죽여서 그 피를 제단에 뿌려야 했습니다. 이는 죄를 위해서는 죽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의식입니다. 다른 한 마리의 염소는 죽이지 않았습니다(레 16:10). 대제사장은 두 손을 그 염소의 머리에 얹어 모든 백성의 죄가 그 염소에게로 옮겨간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레 16:21). 그리고 그 염소는 광야로 보내지게 되는데, 절대 돌아올 수 없도록 멀리 보내지게 됩니다(레 16:22). 이는 죄를 위한 희생제가 있는 곳에는 죄에 대한 완전한 용서가 있음을 보여주는 의식입니다. “용서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실제로 “보내다” 혹은 “버리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이 두 염소가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던 것의 실체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인간들의 죄를 담당하며 죽으셨고 그 죄를 우리에게서 멀리, 무한히 멀리, 옮기셨습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를 옮기셨으며(시 103:12), “빽빽한 구름 같이, 안개 같이” 우리 죄를 없이(사 44:22)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그리스도 예수, 구원자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롬 8:1). 예수라는 이름은 구원의 능력이 있는 이름입니다.

다음으로 ‘임마누엘’이란 이름의 뜻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처럼 혈과 육이 있으셔서 시간이나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 이름이 한 처녀의 아들에게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그 아기에게 하나님이 함께 계셨다는 것이 아니고, 그 아기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인 ‘임마누엘’은 그분이 온전한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온전한 인간이셨다는 참으로 감사한 사실을 말해줍니다. 왜 이것이 ‘감사한’ 사실일까요?

히브리서 2장 14-18절은 ‘임마누엘’의 의미에 대해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육체를 입으신 이유는 죽음을 통하여 마귀를 멸하고 그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를 그 권세에서 놓아 주려 하심입니다. 17절은 한 가지 더 놀라운 사실을 말해줍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같이 혈과 육을 입으신 것은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저 거룩한(?) 대제사장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우리 중의 하나가 되셔서 우리가 겪는 모든 어려움을 겪으셨습니다. 배고프고, 목마르고, 지치고 힘들어 하셨습니다. 기쁜 일, 슬픈 일, 화나는 일 등을 모두 겪으셨습니다.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우리를 잘 아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시는 대제사장이십니다(히 4:15).

우리를 이해만 하실까요? 그리고 안타까워만 하실까요? 아닙니다. 그분은 ‘임마누엘’이십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완전히 이해하시고 또한 능히 도우십니다(히 2:18). 이것이 우리가 그 이름 ‘임마누엘’을 생각할 때 감사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셋째로, ‘왕’이신 그분은 통치하시며 통치하실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지난 시간에 충분히 설명을 했기에 더 길게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한 가지만 덧붙이겠습니다. 2000여 년 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그분은 왕으로 오셨지만 그분의 왕국은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예수님의 왕국이 이 땅에 속한 것이었다면 예수님은 모든 대적을 멸망시키시고 왕국을 세우셨을 것입니다(요 18:36). 다시 오실 예수님은 이 땅에 당신의 왕국을 세우실 것입니다. 만 왕의 왕, 만 주의 주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계 19:11-16). 우리가 크리스마스에 만나는 ‘아기 예수’는 훗날 진정한 왕으로서 위엄과 공의로 세상을 통치하실 것입니다.

끝으로,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란 의미입니다. 그리스도 혹은 메시아의 의미를 모두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여기서는 한 가지 핵심적인 부분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로 오신 예수님의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생명을 만들고 주신 영존하신 하나님으로서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참 생명을 주러 오셨습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 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11:25-26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 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 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크리스마스에 소망을 찾으십니까? 기쁨을 찾으십니까? 사랑과 평화를 찾으십니까? 예수, 임마누엘, 왕, 그리스도이신 분을 기억하십시오. 그분 안에 그 모든 것이 있습니다. 그분을 높이고 경배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그분의 이름은 능력의 이름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예수님에 대해서 묵상하게 해주는 크리스마스 캐럴 두 곡을 소개합니다.

눈물로 지으신 이름 예수 by 김샛별 (염평안 사, 곡)

One Child by Mariah Car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