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내용은 맥아더 목사의 설교 <The Amazing Child of Christmas>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부모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자신의 아이는 ‘뭔가 특별하다’는 생각과 그에 따른 많은 기대가 그것입니다. 아이에 대한 기대와 희망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지만, 때로는 부모의 지나친 기대가 아이들에게 짐이 되기도 합니다. 어떤 아이들이 그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좌절하기도 합니다. 기대라는 것은 사실 지나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이에 대해 모든 것을 알지 못하는 부모들에게 있어 이런 기대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모든 것을 정확히 알고 있다면 지나친 기대라는 것은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기에 모든 부모들은 자신들의 자녀에 대해 많은 기대를 하고 때로는 그 기대가 어긋나 좌절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합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부모들은 어땠을까요? 그들도 예수님에 대해서 그런 기대를 가지고 있었을까요? 아마도 그랬을 것입니다. 여느 부모들처럼, 혹은 여느 부모들 이상으로 많은 기대를 가졌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아기가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되었다는 사실을(마 1:20; 눅 1:35)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아기는 정말로 ‘특별한 아기’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는 그저 막연한 기대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특별한 아기가 어떻게 될 지는 아기가 나기도 전에 천사를 통해 전해들었기 때문입니다.
눅 1:30-35 [30]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35]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먼저 이 특별한 아기는 평범한, 인간의 아들이었습니다. 천사는 마리아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잉태 자체는 성령의 능력으로 된 초자연적인 것이었지만, 그 이후의 과정은 일반적인 자연의 법칙을 따랐습니다. 여느 아이처럼 예수님은 해산할 날이 되어서 태어났고(눅 2:6-7), 강보에 싸였으며(2:7, 12), 난 지 팔일 만에 유대인의 아이로서 할례도 받으셨습니다(2:21). 육체적으로 자랐고 지혜도 자라갔습니다(2:40). 피곤하기도 하셨고 배고프기도 하셨습니다. 헤롯으로부터 목숨을 건지기 위해 도망하기도 하셨습니다. 모든 면에서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이셨습니다.
하나님은 구약 시대에서도 여러 번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는 인간처럼 ‘태어나지’ 않으셨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은 하나님은 단 한번도 ‘인간으로서’ 인간들에게 나타나신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시기 위해 여자의 몸을 빌리셨습니다. 단지 ‘인간처럼’ 보였던 하나님이 아니라, 진짜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요 1:14).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습니다(빌 2:7-8).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서의 속성과 능력을 드러내시기 전에는 누구도 예수님을 ‘특별한 사람’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에 대해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었다”라고 했고 따라서 예수님을 귀하게 여기지도 않았습니다(사 53:2-3). 예수님의 ‘특별한 잉태’에 대해서 알지(혹은 믿지) 못했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저 ‘평범한 인간의 아들’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마 13:55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하지만, 천사는 이 아기가 그저 평범한 아기는 아님을 분명하게 말해주었습니다. 이 아기는 ‘큰 자’가 될 것이라 하였습니다(눅 1:32). 흥미롭게도 천사는 침례 요한에 대해서도 비슷한 예언을 하였습니다(눅 1:15). 한가지 차이는 예수님은 그냥 ‘큰 자’이지만 침례 요한은 ‘주 앞에서 큰 자’라는 것입니다. 인간인 요한은 ‘주 앞’에서 큰 자가 되어야 했지만 본질적으로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다른 존재 앞에서 큰 자가 아닌 본질적으로 크신 분이십니다.
천사는 예수님이 어떤 면에서 큰 자인지를 4가지로 말합니다.
첫째,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눅 1:32, 35). 천사는 예수님이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32절)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는 하나님의 위엄과 주권을 강조하는 말로서 하나님을 지칭합니다. 그래서 35절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할 때 ‘아들’이 의미하는 것은 출생으로 맺어진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혹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창조물이라는 말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나님보다 하등한 신이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곧 하나님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믿는 자들은 입양된 자들로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은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히 1:1-3 [1]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유대인들은 이 표현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요 5:18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인 ‘임마누엘’은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이란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으셨지만, 그렇다고 더 이상 하나님이시기를 포기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예수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이셨고, 공적으로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이를 분명하게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인 우리와 함께 계시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에게 나타내주셨던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왕이십니다(눅 1:32-33). 하나님은 다윗에게 영원 무궁한 나라의 영원한 왕을 약속하셨습니다.
삼하 7:13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삼하 7: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이 영원한 나라의 영원한 왕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법적으로나(마 1) 혈통적으로나(눅 3) 예수님은 다윗 왕의 자손으로 오셨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찾아와 경배하였고, 헤롯은 이 왕을 죽이려고 베들레헴 지경의 두 살 이하되는 사내 아이들을 모두 죽였습니다(마 2).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는 그 분을 왕으로 영접했던 사람들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모든 사람이 그 이름 앞에 무릎 꿇고 예수를 주라 시인할 날이 올 것입니다(빌 2:9-11).
셋째, 예수님은 거룩하십니다(눅 1:35). 인류 역사 상 정말 수 많은 아기들이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정말로 귀엽고 깨끗하고 악한 것하고는 전혀 관련없어 보이는 이런 아기들에 대해 우리는 ‘순진무구하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순진무구란 ‘마음과 몸이 아주 깨끗하여 조금도 더러운 때가 없다’는 사전적 의미를 갖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그렇습니까? 이미 많은 ‘때’가 묻은 어른들의 눈에는 아이들이 그렇게 보일지 모르지만, 아이들은 어른들과 마친가지로 죄인들입니다.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살지 남을 위해서 살지 않습니다. 나의 욕구를 채우는 것이 중요하지, 남의 욕구를 채워주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말 못하는 아이들조차 그렇습니다. 인류 역사에 존재했던 모든 아기들, 모든 사람들은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천사는 마리아의 몸을 통해 태어날 아기에 대해 ‘거룩한 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눅 1:35). ‘거룩한 이’ 즉 죄가 없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죄인이 아닌 의인이라는 말입니다. 인류 역사 상 오직 한 사람, 예수님만이 죄인이 아닌 의인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의인으로 세상을 살았습니다(히 4:15). 잘못을 지적받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용서를 받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구원 받아야 할 필요도 없으셨던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넷째, 예수님은 구원자이십니다(눅 1:31). ‘예수’라는 이름은 ‘여호와는 나의 구원이시다’ 혹은 ‘여호와가 구원하신다’를 의미합니다.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날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라고 하며 천사는 그 이유도 알려주었습니다: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1).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있어 ‘예수’라는 이름은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 이 ‘예수’라는 아기는 그저 그런 희망을 담은 수많은 아기 중 하나가 아닌, 실제로 그들을 죄에서 구원할 메시아였습니다.
천사는 목자들에게도 동일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눅 2: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예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에 스스로를 구원하실 필요가 없으셨던 분이십니다. 하지만 그런 분이시기에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리스도를 기대하던 시므온은 이 놀라운 아기를 보고 이렇게 찬송했습니다.
눅 2:29-32 [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이 되십니다. 단지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아닌 이방인의 구원자도 되십니다. 모든 사람을 위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구원의 길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예수님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인간의 운명이 결정됩니다(눅 2:34-35).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요 1:12).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을 것입니다(요 3:16). 이 특별하고 놀라운 예수님께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마지막으로 크리스마스에 가끔 들을 수 있는 캐롤을 소개합니다.
그 어린 주 예수 눌 자리 없어 / 그 귀하신 몸이 구유에 있네
저 하늘의 별들 반짝이는데 /그 어린 주 예수 꼴 위에 자네
저 육축 소리에 아기 잠깨나 / 그 순하신 예수 우시지 않네
귀하신 예수를 나 사랑하니 / 새날이 밝도록 함께 하소서
주 예수 내 곁에 가까이 계셔 / 그 한없는 사랑 늘 베푸시고
온 세상 아기들 다 품어주사 / 주 품안에 안겨 살게 하소서
특히 3절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주 품에 안겨 하늘나라로 가는 아기(자녀)들’이 바로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