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출 20:11)
사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는데 걸린 시간이 문자적으로 24시간X6일이건 혹은 그보다 더 긴 시간이건간에 하나님이 만물의 창조주라는 창세기 1장의 핵심 메시지는 전혀 훼손되지 않는다 – 우종학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고 선포한다(창 1:1). 창세기 1장엔 “이르시되”(אמר)가 11번 나오는데 하나님이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강조한다. 시편 기자는 그래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라고 노래했다(시 33:6).
젊은 지구 창조론자 켄 햄에 따르면 “19세기 초까지 첫 1,800년 동안 교회가 거의 보편적으로 믿었던 것”은 창세기 1장의“날”(י֥וֹם)이 오늘날의 하루(24시간)였다.[1] 계속 반복되는 표현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째날이니라”의 자연스러운해석이다. 하지만 유신 진화론자는 이 해석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들에겐 진화 창조론자로 전향한 데니스 래머로 교수가 말한것처럼 “진화의 과학적 증거”가 “압도적”이기 때문이다.[2]
수십억 년의 진화와 창세기 1장의 말씀이 상충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첫째, 수십억 년의 생물 진화 설명을 보류하고 다른 패러다임으로 관찰된 과학적 증거를 해석한다. 둘째, 수십억 년의 생물 진화를 수용하는 대신 성경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다. 유신 진화론자는 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결론적으로 모두 후자를 선택한다. 간격 이론[3],날-시대 이론[4], 상징-비유 해석[5] 등이 과거에 시도했던 다른 성경 해석법이었다면, 최근엔 고대근동 우주관을 가져와 고대이스라엘 백성의 상식 수준에 맞게 하나님께서 창조주시라는 것을 설명한 것뿐이라고 말하는 해석이 인기가 있다.
유신 진화론자들이 하나님의 능력에 의문을 품는 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엿새 만에 천지를 창조하실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과학적 증거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과학적 증거가 반드시 수십억 년의 진화 패러다임으로 해석되어야만 하는지는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논쟁할 부분이고, 여기서 성경적으로 우리가 제기해야 할 질문은 진리의 하나님께서모순된 말씀을 하실 수 있냐는 것이다.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모든 것을 만들고”라고 말씀하신 분께서 사실은 수십억 년동안 만드셨다고 해도 그분의 진실성에 문제가 없는가?
앞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물을 그 입 기운으로 만드셨다고 말했다. 그 입 기운(호흡)으로 하나님은 성경을 오류 없이 기록하셨다(딤후 3:16)[6]. 만물과 성경이라는 하나님의 총체적 진리는 분리되거나 모순될 수 없다. “엿새”가 육 일이 아니고, ‘저녁이되고 아침이 된 것’이 하루가 아니라면, 하나님의 입 기운으로 기록하신 성경의 다른 말씀은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을까? 앞으로살펴보겠지만 유신 진화론자는 진화를 수용하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상충하는 것처럼 보이는 말씀의 해석을 본문이 정말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와 상관없이 바꿔버린다. 그들은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고 그래서 오류가 없다는 말(성경의 무오성)을 어떻게이해하고 있는걸까? 유신 진화론자 우종학 교수는 성경의 무오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하나님의 계시는 무오하지만 인간의 언어는 완벽하지 않다. 인간의 경험과 문화, 상식, 어휘 등을 토대로 한인간의 언어가 초월적인 하나님을 다 담을 수는 없다.[7]
이 말은 모순이다.
1. 하나님의 특별 계시는 무오하다(성경).
2.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인간의 언어는 완벽하지 않다(오류가 있을 수 있다).
특별계시에 대한 인간의 해석과 이해가 완벽하지 않다는 말은 옳다. 하지만 성경을 기록한 인간의 언어가 완벽하지 않다고 말할때, 결국 그 말은 기록된 성경이 완벽하지 않다는 말이 된다. 만일 그렇다면 무엇이 ‘무오’하다는 말인가? 유신 진화론자가 동의할 수 있는 ‘핵심 메시지’만 무오한 것인가?
성경이 무오하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경험과 문화와 상식, 어휘 등을 토대로 인간의 언어를 통해 하나님의 진리를 오류없이 완벽하게 전달하셨다는 말이다. 물론 성경이 모든 종류의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쓰여진 책이 아닌 것은 사실이지만, 본문이 분명히 말하고 있는 부분까지 인간의 경험, 문화, 상식, 어휘 등을 토대로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본다면 혹은 그러니까 하나님도 그 한계를 넘지 못한 채 계시하신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거야말로 초월적인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위가 아닌가!
물론 우리는 성경이 문화적, 역사적, 언어적 배경 아래 기록되었음을 인정한다. 그래서 존 스토트는 <성경: 비교할 수 없는 책>에서 “본문을 주의 깊게 주석하려면 반드시 본문 자체의 문화적, 언어적 견지에서 그것을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IVP, 2021, 69p). 보통 두 가지 실수를 범하는데, 하나는 본문을 전적으로 거부하는 것, 또 다른 하나는 문화를 고려하지 않고 문자주의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전자는 ‘거룩한 입맞춤’을 요구한 본문 자체를 유통기한 지난 말씀 취급하는 것이고 후자는 ‘거룩한 입맞춤’을 문자 그대로 실천하는 경우다. 스토트는 바른 성경 해석(역사적-문자적 성경 해석)은 “문화적 조옮김”을 하는 것이라 말했다. 본문이 당시 문화와 언어의 배경을 가지고 기록된 것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영원하고 보편적인 타당성을 갖는” 본질적 메시지를 찾는 것이다(80p).[8]
유신 진화론자 입장에선 창세기 1장의 재해석이 올바른 ‘문화적 조옮김’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래서 본질적 메시지는 ‘하나님이 창조주시다’로 요약된다고 볼지도 모르지만, 같은 방식으로 조옮김을 한 사례들을 보면—가령 구약과 신약에 금지된 동성애를 당시 문화적으로 금지된 극단적인 동성애라고 규정하여 오늘날 상호 합의로 맺는 동성애는 성경이 금하지 않고 있다는해석, 남성과 여성에게 각각 가정과 교회에서 맡겨진 역할을 말할 때, 성경이 남성우월주의와 가부장적 문화에서 쓰여진 것이기때문에 오늘날 그대로 적용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해석—스토트가 우려한 첫 번째 실수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성경은 확실히 창세기 1장 1절부터 31절까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창 1:1)는 것 외에 더 많은 주장을 하고 있다.
웨인 그루뎀은 성경 자체만 놓고 볼 때 창세기 1장의 역사성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한다. 창세기 1징 이후의 기록뿐만 아니라출애굽기, 역대상, 시편, 호세아, 마태복음, 누가복음, 사도행전,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골로새서, 디모데전서, 히브리서, 요한계시록 등이 그 역사성을 인정하기 때문이다(“유신 진화론 비판 하권, 부흥과개혁사, 2019, 345p). 그루뎀은 유신 진화론자의 성경 해석법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문제는 성경이 “과학을 가르치는” 지의(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든지 간에) 여부가 아니다. 문제는 성경이 확언하는 모든 것에 있어,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그 어떤 것이든지, 진실한 지의 여부다.
예수님은 “기록된 바”라는 말씀을 자주 사용하셨다(눅 18:31; 19:46).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성경이 확언하는 모든 것을 아버지 하나님의 진리로 받아들이셨다. 당신은 하나님의 입 기운으로 “기록된 바”를,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무엇이든, 확언하는 모든 것에 있어 진실하다고 믿는가? 그 믿음을 느슨하게 가질 때 혹은 포기할 때 우리는 창세기 2장에서도 어렵지 않게 진화와 상충하는 하나님 말씀을 만난다.
[1] 켄 햄, 휴 로스, 데보라 하스마, 스티븐 마이어 <창조, 진화, 지적 설계에 대한 네 가지 견해> (부흥과개혁사, 2020), 24p.
[2] 리처드 마우 외 <진화는 어떻게 내 생각을 바꾸었나?> (IVP, 2019), 209p. 우종학은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에서 “지구나 우주의 나이가 1만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매우 오래되었다는 과학적 증거는 천문학, 지질학, 대기과학, 생물학 등의 다양한 학문 영역에 걸쳐 압도적으로 쌓여 있다”고 말한다(220p).
[3] 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 엄청난 시간의 간격이 있다고 주장하여 오래된 지구 연대에 맞춰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
[4] 창세기 1장의 날을 하루로 보지 않고 수십 억년으로 계산하여 오래된 지구 연대에 맞춰 성경을 재해석하는 방법
[5] 창세기 1-2장을(어떤 경우 11장까지) 모두 상징과 비유가 가득한 기록으로 보고 역사성을 거의 인정하지 않는 성경의 재해석 방법
[6] 여기서 ‘영감’을 가리키는 헬라어가 ‘하나님’과 ‘호흡’의 합성어인 떼오프뉴토스(떼오스 + 프뉴토스)다.
[7] 우종학,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 (새물결플러스, 2017), 300p
[8] 이것을 가리켜 문자적인 해석(문자주의와 다른 것에 주의하라!)라고 부른다. 성경이 기록된 역사적,문법적,문화적, 언어적 배경 안에서 바르게해석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