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묘사된다(롬 12:5; 고전 10:17; 12:27; 엡 4:12; 골 1:24; 히 13:3). 그런데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하면서 사도 바울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충만함”이라고 표현했다(엡 1:23). 이게 무슨 의미일까?

그리스도가 교회를 충만하게 하시는 분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는 것처럼,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인 교회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고 계신다. 충만하게 하신다(골 2:19). 그런데 바울은 그 반대의 표현을 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충만함이라고 말했다. 바울의 말을 잘 살펴보자.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엡 1:23)
the church, which is his body, the fullness of him who fills all in all(ESV)

이 짧은 구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플레로메누) 이”라고 말한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먼저 아들을 충만하게 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고(20절),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셨으며(20절), 하나님께서 그분을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21절),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다(22절). 한 마디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그분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아버지께 받으셨다(마 28:18). 아버지 하나님의 충만함을 입으셨다.

그런데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와 특별한 관계를 맺으셨다. 그리스도는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가 되셨고(22절), “교회는 그의 몸”이 되었다(23절). 머리와 몸의 비유가 강조하는 개념은 ‘연결’과 ‘연합’이다. 머리와 몸이 분리되면 죽는다. 머리와 몸은 한 사람을 구성한다. 그만큼 그리스도와 교회는 하나로 연합되어 있고, 연결되어 머리로 말미암아 공급함을 받아 자라난다. 이 정도로 친밀하고 연합된 관계를 보여주는 그림은 부부밖에 없다. 그래서 바울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통해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로운 관계를 설명한 것이다(엡 5:22-33).

‘태어나보니 아무개의 자녀’라는 말이 있다. 거듭나보니 교회는 온 우주 만물 곧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이 모두 무릎을 꿇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었다. 영적으로 태어나보니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몸이 되었다. 이해할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는 영광이다. 그런데 왜 바울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충만함”이라고 말했을까? 교회도 만물도 그리스도께서 충만하게 하시지 않는가?

교회는 그리스도의 충만함이라는 것의 의미

대럴 벅은 에베소서 주석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틴데일신약주석).

그리스도의 몸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나타내시고 그분의 충만함을 쏟아붓는 곳이다…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께 충만함을 얻으시고 교회를 충만하게 하신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적 임재를 표현하는 곳이며 그리스도는 교회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임재를 나타내신다(58-9페이지).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요 14:23)

“우리” 곧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리라” 약속하셨다. 임재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사랑하여 그의 계명을 지키는 교회를 교회의 신랑이자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 받은 충만함(플레로마)으로 채우시겠다는 것이다.

교회가 그리스도를 보완하거나 그분의 필요를 채우거나 뭔가 그리스도께 더하는 것이 있는 게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인 교회에 하나님께 받은 충만함으로 충만하게 임재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와 영광과 평강과 은혜와 사랑을 교회에 채우신다. 그것이 “교회는 그의…충만함”이라는 말의 의미이다.

그리스도의 충만함을 교회는 볼 수 있어야 한다

아버지 하나님과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는 것, 그것이 교회가 이 악한 세대 가운데 살면서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소망이자 능력이다. 하지만 그러기 쉽지 않다.

거슬러 올라가면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이 누구와 연결-연합되어 있는지 보기를 간절히 구했다. 이 기도문 마지막에 하나님 아버지께 충만함을 얻은 그리스도와 그분이 충만하게 하시는 몸인 교회의 아름다운 관계를 바울이 노래한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1:15-19)

교회는 오늘날 마음의 눈을 뜨고 밝히 볼 수 있어야 한다. 사도 바울이 자신이 받은 직분을 가지고 모든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충성을 다한 것은 마음의 눈을 뜨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가 가진 것을 바라봤기 때문이다.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는…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햐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라고 고백했다(고후 6:8-10). 바울이 처한 현실 그리고 믿음의 눈으로 본 진실의 차이가 느껴지는가?

만일 교회가 현실을 바라본다면 세상과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어쩌면 더 수고롭고 제약이 많은 삶을 사는 것 같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의 눈을 떠 진리를 밝히 본다면 교회가 그리스도의 충만함이라는 진실을 볼 수 있고 바울이 간절히 기도한 대로 교회가 그것을 볼 수 있다면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지 알고 감격하며 찬양할 것이다.

매주 금요일이면 큰 도로에 정체를 일으킬 만큼 차가 많이 몰리는 곳이 있는데 바로 로또를 사는 곳이다. 1등이 많이 나온 집이라 수많은 사람이 일확천금, 인생 역전을 기대하며 매주 금요일 그 앞에 길게 늘어서 있다. 만일 당신이 우연히 로또를 샀는데 1등에 당첨됐다고 생각해 보라. 그것이 당신에게 주는 흥분과 기쁨이 얼마나 크겠는가? 가족과 친척 간 불화 등 생각지 못한 불행이 주어질 수도 있지만 일단 그 많은 돈이 내 것이란 생각에 환호할 것이다.

하지만 만일 당신이 교회라면, 그리스도께서 부르셔서 교회의 지체를 이룬 신자라면 당신은 로또와 비교할 수 없는 복에 당첨되었다. 만물의 창조자, 만물의 소유자, 만물의 통치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신랑이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버지이시다. 당신을 교회로 부르신 그 부르심의 소망이 얼마나 큰지 헤아릴 수 있겠는가?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가늠할 수 있겠는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그리스도를 온 만물보다 뛰어난 분으로 충만하게 하신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교회인 당신에게 채워질 것이다. 그 복이 얼마나 큰지 한 번 세어보라.

오직 성령께서 교회의 충만함을 보여주실 수 있다

앞서 우리가 살펴본 내용을 그리스도인이 모르는 게 아니다. 부정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현실감이 떨어진다. 간극이 너무 크다. 현실과 성경이 말하는 진실의 차이가 너무너무 크다.

바울의 기도를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은 교회가 스스로 눈을 떠 이 모든 것을 보라고 강요하지 않으셨다. 하나님 아버지는 교회가 볼 수 있도록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셨다. 성령 하나님은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교회의 눈을 밝혀 교회의 충만함이 어떠한 것인지 알게 하신다.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 소개된 적이 있지만(요 14:17), “지혜…의 영”이란 표현은 조금 생소하다. 하지만 바울은 고린도전서 2장에서 이를 밝히 설명했다.

교회는 세상의 지혜나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의 지혜가 아니라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지혜의 영”이신 성령을 통해 얻는다(고전 2:6-9).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2:10-12)

하나님 아버지께서 교회에게 지혜의 영을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다. 세상의 지혜, 세상에서 없어질 유명하고 권력 있는 사람의 지혜가 아닌 무궁한 지혜의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교회에게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알려주신다. 바울은 다른 말로 이것을 “그리스도의 마음”이라고 했다(고전 2:16).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지혜”이기에 충분히 이렇게 말할 수 있다(고전 1:24).

바울은 또한 “계시의 영”이라 했다. 방금 우리가 살펴본 고린도전서 2장 10절에서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다고 할 때 사용한 표현, 아포칼룹토가 “계시”(아포칼룹피스)에 대응하는 단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은 교회에게 하나님의 것을 성령을 통해 계시하셨다.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보혜사 성령을 소개하며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라고 말씀하셨다(요 16:14). 계시의 영 성령은 교회에게 그리스도의 영광을 계시하신다.

결론

그러므로 교회의 생명은 성령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여주시는 그리스도의 임재,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충만함으로 교회를 채우시는 충만함을 얼마나 마음의 눈으로 보는가에 달려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성도의 신앙에 기쁨과 감격이 사라지고 감사보다 불평이 많아지며 하나님보다 이 땅에 소망을 두게 되는 건 생명력을 잃어간다는 증거다.

성령 하나님께 구하라. 하나님의 지혜 곧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해달라고. 그리스도의 영광, 그리스도의 지혜, 그리스도의 충만함을 알게 해달라고. 당신이 얼마나 위대한 분과 연결-연합되어 있는지, 신랑과 신부로 영원히 맺어졌는지, 그 연합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어떠한 기업을 영원히 이어받게 되었는지 알게 해달라고 구하라.

빈 종이를 하나 꺼내서 가운데 세로로 선을 긋고 왼쪽에 당신이 처한 현실을 적어보라. 당신을 실망하게 하는 일, 오랜 상처로 남은 일, 걱정하고 근심하게 만드는 일, 힘들게 하는 일을 적어라. 그리고 오른쪽에 그리스도와 연결-연합하여 당신이 누리게 된 그리스도의 충만함이 무엇인지 적어보라. 하나님께 감사하는 일,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는 일, 그리스도 안에서 누릴 수 있는 평안과 기쁨과 만족을 적어보라. 왼쪽에 있는 문제에 대하여 혹시 하나님이 주실 수 있는 위로와 구원의 약속은 없는가?

다 적었다면 성령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자. 왼쪽에 아무리 많고 심각한 목록이 있을지라도 오른쪽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님을 진실로 보게 해달라고.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