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함께 모이기 힘쓰는 것은 교회의 첫 시작부터 두드러진 특징이었다. 오순절, 성령이 믿는 자들에게 임하신 영광스러운 장면으로 시작된 교회는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다(행 2:46-47).

첫날 더해진 신도의 수가 삼천이었는데(행 2:42), 주님께서는 그 많은 무리에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행 2:47). 날마다 이 많은 숫자의 신도가 어떻게 모였을까? 떡을 떼며 음식을 먹는 것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아마도 그들은 많은 수가 함께 모일 때는 넓은 장소인 성전에서, 떡을 떼고 음식을 먹는 장소로는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성도들의 여러 집을 활용하여 모였던 것 같다. 신약 성경이 기록되기 전 이제 막 거듭난 아기 같은 신도들은 삼 년간 예수님께 특별 훈련을 받은 사도들로부터 신령한 젖,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매일 무럭무럭 자랄 수 있었다(행 2:42).

하지만 곧 스데반의 순교 이후 교회 불어닥친 큰 박해로 사도 외에 모든 신도가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졌다(행 8:1). 오순절(칠칠절)에 맞춰 각지에서 예루살렘에 찾아왔다가(신 16:16) 구원 받은 신도는 아마도 일정 기간 후에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바대인, 메대인, 엘람인, 메소보다미아, 유대, 갑바도기아, 본도, 아시아, 브루기아, 밤빌리아, 애굽, 구레네, 리비야, 로마, 그레데, 아라비아, 행 2:9-11).

이제 흩어진 성도들(디아스포라)에게 누가 영적 양식을 제공할 것인가?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세계 각지에 흩어진 신자들을 영적으로 인도할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코로나 19로 가정예배를 시작한 지 3주가 되면서, 사도행전 8장에 나오는 사도들의 심정을 헤아려 보게 된다. 교회 그리고 국가에 불어닥친 큰 재해로 모든 신도가 각처에 흩어져 있는 지금,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 영적인 양식을 제공하는 일과 영혼을 돌보는 일을 온전히 수행하기 어려운 이 때, 그 책임과 역할을 함께 담당할 사람이 누구인지 찾게 된다. 이번 칼럼을 통해 위기의 시기 발휘되는 성도 각자의 역할을 되새겨 보기 원한다.

성도의 역할: 복음의 말씀을 전하는 것

코로나 19로 많은 직장, 학교, 기관, 시설 등이 거의 정지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들은 음식 먹는 것을 멈출 수 없다. 대형마트나 식료품점에 소비자가 꾸준하고 음식배달과 배송이 더 늘어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영적 양식 역시 마찬가지다. 신자는 영혼의 양식을 먹지 않을 수 없다. 영적인 금식은 육신의 금식만큼 길어질수록 해롭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훈련하신 교사, 성령께서 능력을 더하신 사도들에게서 흩어진 각지의 성도들은 과연 어떻게 영적인 공급과 돌봄을 받을 수 있었을까?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행 8:4)

우리는 사도행전 8장의 주인공을 빌립(5-40절)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빌립이 비중 있게 다뤄지는 건 사실이지만, 그는 4절에 나오는 “흩어진 사람들” 중 하나로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한 모든 사람 중 하나의 예시다. 흥미롭게도 9장엔 교회를 핍박했던 사울이 나오는데,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구원받고 그가 처음으로 한 일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는 것이었다(행 9:20). 초신자 사울이 한 일이 말씀 사역이었다는 것이다. 사도가 없는 상태에서 성도는 복음의 말씀을 직접 전하고 가르치는 일을 담당했다.

물론 이 사실이 하나님이 특별히 교회를 돌보고 가르치도록 은사를 준 일꾼의 역할을 간과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사도행전의 기록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을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바울을 통해 땅끝까지 보내셔서 성도들을 통해서 뿌려진 복음의 씨를 확증하고 자라나게 하는 일을 하셨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가르치는 일을 담당하도록 교회에 주신 은사에 관하여 분명히 말하면서도(엡 4:11-12; 고전 12:8-11), 성도가 서로 “사랑 가운데 진리를 말하”라고 명령한다(엡 4:15).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라고 했다(살전 5:11). 골로새 성도들에게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 하”라고 명령했다(골 3:16). 특별히 바울이 자신이 세운 교회를 떠나 다른 곳에 있으면서 편지를 통해 위와 같은 권면을 한 것을 보면, 각 교회에 세운 일꾼들뿐만 아니라 성도가 서로 말씀으로 채워져 서로를 영적으로 돌보기를 기대했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현대 교회의 오랜 관습과 관행에서 비롯된 잘못된 선입견이 어쩌면 우리에게 고착되었는지도 모른다. 목사는 가르치는 사람, 교회는 가르침을 받는 장소, 그래서 교회에 가지 않으면 말씀을 공급받는 일도 쉰다는 생각이다. 마치 학교와 학원을 쉬듯 말이다. 그런 면에서 코로나 19는 다시금 성도의 역할을 불러일으키는 기회가 된다. 특별히 가정의 영적 인도자, 아버지는 성령께서 감동으로 그들에게 주신 이 말씀을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다.

또 아비들아…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아버지의 역할은 물질적인 필요를 공급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아버지는 가정에 필요한 영적 필요를 주의 교훈과 훈계로 공급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런 기대는 옛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 민족의 아버지들에게도 동일하게 요구되었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 6:7). 24시간 가족을 위한 말씀 사역자가 될 사람은 다름 아닌 아버지다. 그리고 나아가 어머니가 될 수 있다(아버지가 믿지 않는 경우).

역할 담당: 말씀 사역에 충성하는 것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행 8:4)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행 8:26)

빌립은 자신이 있는 곳에서 맡겨진 사명을 다하여 말씀을 전했다. 그가 흩어진 곳에서 가까웠던 사마리아 성에서 시작하여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약 100km나 떨어진 광야, 과연 그곳에 누가 있을까 싶은 곳까지 내려가 “입을 열어…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했다(행 8:35). 앞서 말한 것처럼 빌립은 흩어진 신자들 중 하나로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한 많은 사람 중 하나였다.

성도에게 맡겨진 역할 중 하나가 서로 권면하고 가르치는 것이라면, 우리는 지금 이 사태에도 그 일에 조금의 주저함이나 망설임 없이 충성을 다해야 한다. 어떤 성도는 빌립처럼 맡겨진 범위가 넓고 다양할 수 있고, 어떤 성도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가정과 가까운 이웃에게 좀 더 집중될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이 두려움으로 가득 차 불안해할 때,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을 가진 성도가 어떤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해줄 수 있을까? 복음으로 확신과 기쁨에 찬 삶을 사는 것만으로도 그리스도인은 말씀 사역자의 역할을 다할 수 있다.

코로나 사태로 가정 예배로 대체한 지 좀 됐을 때, 하루는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문득 밖을 보니 여호와 증인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옆집 초인종을 누르며 사람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잘못된 교리와 잘못된 동기로 하는 것이 분명하나, 코로나 19가 그들의 말씀 사역을 막지 못하는 것 역시 분명했다.

그렇다면 참된 교리와 올바른 동기를 가진 예수 그리스도의 신자는 각자에게 맡겨진 말씀 사역에 얼마나 더 충성해야겠는가? 흩어져 있더라도, 자기에게 맡겨진 영혼을 먹이고 돌보는 일에 충성해야 한다. 교회(건물로서)는 잠시 문을 닫아도, 교회(사람으로서)는 결코 문을 닫지 않는다. 강대상에서 말씀이 전해지지 않아도(물론 영상으로 제공하지만) 식탁에선 말씀이 전해져야 한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악수나 신체 접촉을 피하고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을 되도록 가지 않아야 하지만, 동시에 주님께서 나에게 부담을 주시는 구도자와 연락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말과 삶으로 전달하는 일은 피하거나 멀리할 수 없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녀에게, 가족에게, 이웃에게 죽음을 이기신 분을 소개하라. 영적인 갈급과 굶주림을 호소하는 자녀와 가족, 이웃에게 당신이 할 수 있는 한 영적 양식을 준비하고 나누라.

역할 적용: 구체적인 말씀 사역의 방법

그러면 지금 상황에서 성도가 어떻게 말씀 사역자로서 영적 양식을 나누고 맡겨진 영혼을 돌볼 수 있을까? 구체적인 사항을 몇 가지 소개하며 이 칼럼을 마치겠다.

1. 지역교회가 제공하는 영적 양식을 최대한 활용하라

온라인으로 라이브 영상을 제공하거나 녹화하여 말씀을 제공하는 교회가 있지만, 주일에 교회에 나와 직접 듣는 것과는 차이가 크다. 교회에서는 말씀을 들으며 웬만하면 스마트폰을 하거나 주방에 가서 냉장고에 있는 음식을 꺼내올 수 없다. 옆에 있는 사람과 잡담할 수도 없다. 교회에서도 물론 예배의 모든 활동에 집중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온라인보다는 훨씬 그렇게 하기 쉽다. 바꿔 말하면 온라인 예배는 그만큼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 집중하라. 교회에서 제공하는 말씀을 더 노력하여 듣고 예배 가이드가 있다면 충성스럽게 따르라. 가정의 영적 인도자인 아버지나 어머니는(아버지가 믿지 않는 경우) 자녀를 불러 모아 예배하도록 가르치라.

2. 개인 성경 묵상과 공부에 충성하라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다(시 1:2). 그럴 때 의인의 삶이 형통하다(시 1:3). 성도가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고 권면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며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는 것은 각자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그 속이 풍성히 거할 때 가능한 일이다(골 3:16-17). 그러므로 성도는 각자의 삶을 말씀으로 풍성히 채우는 일 곧 말씀을 묵상하고 아는 일에 힘써야 한다.

어떤 사람은 일주일에 두세 번 설교를 들으면 영의 양식을 충분히 공급받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보통 우리는 하루 세 끼니를 먹어 일주일이면 21번 식사를 하고 거기에 간식도 먹지 않는가? 하루 24시간 일주일 내내 영적 전쟁을 치르는 우리가 죄로 물든 세상 속에서 사탄과 어둠의 세력과 맞서 치열하게 싸울 때 한두 번의 말씀으로 맞서보려 하는 건 가당치 않은 일이다.

할 수 있는 한 말씀을 묵상하는 일에 힘써라. 매일 시간을 내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벧후 3:18). 풍랑이 심한 바다에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호소한 것처럼, 위기 때일수록 우리는 주님께 부르짖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하시는 일을 기대하며 간구해야 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채워질 때, 우리는 비로소 말씀 사역자로 가정과 이웃에게 우리가 질병과 재해가 앗아갈 수 없는 소망을 가진 자라는 사실을 확신 있게 말하고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바쁠수록 더 기도와 말씀에 충성하라. 여유가 있다면 헛된 곳에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말씀 사역자로서 말씀으로 풍성히 당신을 채우는 일에 그 시간을 사용하라.

결론

존 맥아더 목사님은 최근에 온라인 예배로 대체하는 결정을 내리면서 51년 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에서 사역하면서 처음 겪는 일이라고 말했다. 정말 그렇다. 우리 모두 처음 이런 일을 겪는다. 하지만 우리 모두 이 일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일어난 일임을 안다. 또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을 우리는 모두 신뢰한다. 그래서 나는 존 맥아더 목사님이 “We are so excited!”(우리는 매우 흥분된다!)라고 말한 부분에 동의한다. 사람들이 고통받고 어려운 환경이 된 것에 기쁘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주어진 것이고 하나님께서 이번 일을 통해 선을 이루실 것을 믿는다면, 그분이 이루실 일에 대해서 우리는 기대하며 기뻐하고 나아가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필자가 기대하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 중 하나는 성도들이 각자의 역할을 다시 한번 깨닫고 흩어진 그곳에서 각자 그 역할에 충성을 다하는 것이다. 그동안 교회에 자기 자녀의 영적 양육을 거의 대부분 양도한 성도가 있다면, 부모로서 자신이 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그 일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영적 끼니를 강단에서 듣는 것으로만 때운(?) 사람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스스로 날마다 풍성히 하나님 말씀을 먹고 나아가 내게 맡겨주신 영혼들(가족, 이웃)을 먹이는 일에 충성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함께 빨리 다시 모여 예배하는 그 날을 필자는 꿈꾸며 기다린다. 하지만 다시 모일 때 영적인 기아 상태로, 허기지고 굶주린 상태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영적 양식을 잘 섭취하고 먹여 튼튼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길 소망한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을 수 없는 멀리 떨어진 성도들에게 왜 반복해서 이렇게 편지를 마무리했는지 이해가 되는 요즘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 13:13)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각 성도가 흩어져 있는 그곳에 말씀을 통해 은혜로 교통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