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다시 시작하기!

아내와 데이트했던 때를 기억하나요?

언제 어디에서 만날지, 만나서 무엇을 할지, 어떻게 하면 내가 사랑하는 그녀를 기쁘게 해줄 수 있을지, 어떻게 깜짝 놀래켜 줄지, 무슨 옷을 입고 어떤 신발을 신을지,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지…

한때 그럴 때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모든 것을 계획하고, 준비하고, 그 사람을 만나서도 철저히 그 사람 중심으로 대화를 하고, 먼저 물어보고, 잘 듣고, 격려와 위로를 하고, 응원하며, 준비부터 후기까지 세심한 배려와 친절이 가득했던 만남들이 있었습니다. 간절히 하나 되기 원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는 데이트가 있었습니다.

때로는 아주 특별한 데이트를, 또 때로는 평범하지만 아주 친밀한 일상 데이트를, 사랑하는 사람과 나눴습니다. 그 사람과 평생 함께하기로 약속한 결혼을 하기까지 말입니다.

저스틴 부자드(Justin Buzzard)는 “당신의 아내와 데이트하라”(“Date Your Wife”)는 책을 통해 모든 남편에게 다시 아내와 데이트를 시작하라고 강력하게 권면합니다. 데이트는 결혼했다고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계속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룸메이트인 혹은 부부?

그의 권면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데이트가 사라졌습니다. 그토록 하나가 되길 바랐지만, 정작 하나가 되니 이제 따로따로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변해버렸습니다. 많은 부부가 어느새 부부가 아니라 룸메이트가 되었습니다.

룸메이트는 한 집을 공유하는 관계로 서로 합의 하에 집에서 해야 할 일을 분담합니다. 서로 상호 간에 대화를 하거나 어느정도 배려를 하고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기도 하지만, 의도적으로 더욱 친밀한 관계가 되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 몸처럼 상대방을 배려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한 몸처럼 시간과 물질을 나눌 필요가 없습니다. 한마디로 하나가 될 필요가 없는 관계입니다.

많은 부부가 룸메이트처럼 삽니다. 남편은 회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자기 취미생활에 빠져있고, 아내와 간단한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자기에게 맡겨진 가사를 돕긴 하지만, 아내의 영적인 상태나 요즘 고민하고 있는 문제를 묻거나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습니다. 단지 시간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닙니다. 룸메이트처럼 각자 자기가 맡은 일을 차질 없이 잘하고 있으면 공생관계를 지속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연애와 결혼의 로망에 빠져있는 청년들에게 기혼 부부가 자주 하는 말은 “결혼은 현실이다”입니다. 그 말이 결혼에 관한 헛된 망상에 빠져있지 말고 현실적으로 무엇을 준비할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는 말이라면 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친밀함과 사랑이 거의 다 빠져나간 것이 진짜 “현실”적인 결혼의 모습이라는 뜻이라면 엄청난 문제가 있습니다. 마치 김이 다 빠져나간 콜라처럼 하나님이 계획하신 결혼이 실제로는 큰 기쁨이나 즐거움이 없는 의무로 가득 찬 관계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결혼을 최대한 늦추는 게 좋다고 권면합니다. 아내가 우울증에 빠집니다. 가족끼리는 서로 애정표현을 하지 않는 거라고 말합니다. 부부라기보다는 그냥 가족 구성원이라고 농담처럼 말합니다. ‘정말 그런가?’ ‘결혼의 “현실”은 정말 이런 것인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걸까?’ 이런 질문이 생긴다면, 이 책의 저자처럼 저는 당신에게 “절대 그렇지 않다”고 담대하게 말하고 싶습니다. “절대 그렇게 놔둬서는 안 된다”고 권면하기 원합니다.

물론 연애와 결혼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결혼 생활은 남편과 아내의 성화 되지 않은 모습 때문에(다시 말해, 죄 때문에) 다툼과 갈등, 상처와 눈물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부부가 겪는 ‘현실’의 전부는 아닙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결혼은 허다한 죄를 덮는 사랑이 가득합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결혼은 갈등을 해결하는 화평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결혼은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서로의 눈물을 닦아줍니다. 하나님은 두 사람을 한 몸으로 부르셔서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결혼은 축복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이 계획하신 결혼을 풍성히 누리며 살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결혼은 ‘현실’이라고 말하기보다는 결혼은 ‘축복’이라고 말하며 살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김빠진 콜라같이 밋밋한 의무로 가득 찬 결혼 생활이 아니라 친밀함과 사랑이 가득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당신의 결혼을 계획하신 하나님, 오리지널 웨딩 플래너의 말씀을 따르면 됩니다. 당신의 결혼 생활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면 됩니다. 사랑과 화평과 위로와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 그분을 믿고 의지하며 남편과 아내에게 각각 맡겨주신 역할을 다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언제나 남편입니다. 하나님께서 남편을 가정의 머리, 책임자로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남편에게 명령하신 것을 먼저 살펴봅시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심이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엡 5:25-30)

하나님의 명령은 단순명료합니다. “남편들아 자기 아내를 사랑하라!”

 

남편에게 주신 명령: 아내를 사랑하라

“사랑하라”는 명령은 그 의미가 분명하지만, 조금은 일반적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남편은 ‘당연히 내 아내를 사랑하지요’라고 말할 것입니다. 적어도 감정적으로 그런 느낌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중요한 건 사랑의 정도 혹은 사랑의 참모습을 아는 것입니다. 사실 결혼식에서 남편은 어떤 사랑으로 얼마나 아내를 사랑할지 하나님과 증인들 앞에서 공적으로 서약했습니다. “가난할 때나 부할 때나 병들었을 때나 건강할 때나 남편으로서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아내를 사랑하겠습니다!”

남편이 하나님 앞에 맹세한 아내 사랑은 이처럼 희생적이고 이타적이며 무조건적인 신실한 사랑입니다. 감정이 따라와서가 아니고, 아내의 상황에 따른 것이 아니며, 일시적으로 보여주다 그치는 사랑이 아닙니다. 결혼 생활의 ‘현실’에서 남편은 자주 이 맹세를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다시금 이기적인 사랑을 시작합니다. 내 안락, 평안, 쾌락, 만족, 기쁨을 먼저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분리수거, 설거지 등)을 다 했으면 이제는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도 된다고 착각합니다(아내를 위한 사랑을 충분히 보였다는 것이죠).

하나님이 한 몸으로 부르신 가정에서 남편은 다시금 독립된 삶을 꿈꿉니다. 이기적인 욕구를 채우려 합니다. 남편의 역할을 어느 정도 해줬으면 ‘나’만을 위한 시간을 써도 된다고 생각하고 ‘나’만을 위한 영역을 만들기 위해 애씁니다. 한 몸을 이룬 부부 관계에 있어 남편은 아내와 사별하는 날까지 하루 24시간 일주일에 7일 일 년에 365일, 한마디로 평생 벗어버릴 수 없는 정체성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직장은 그만둘 수도 있고 이직할 수도 있으며, 사역 역시 내려놓을 수도 있고 변경될 수도 있지만, 남편이라는 정체성은 죽음이 둘을 갈라놓을 때까지 결코 그만두거나 변경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 이점을 분명하게 밝히셨습니다.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하라.” 마치 남편이 자기를 아끼고 사랑하듯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을 주목하십시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거꾸로 말해볼까요? “자기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

 

하나님은 남편과 아내를 한 몸으로 부르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한 몸의 원리입니다. 결혼은 두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한 몸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남편의 시간, 남편의 돈, 남편의 취미, 남편의 인간관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제 무엇을 하든 아내와 관련된 것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표현을 주의하여 살펴보십시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셈’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내 사랑이 곧 자기 사랑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부부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부부는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한 몸입니다. 그래서 결혼 생활에서 남편이 독립적으로 가지려는 시간이나 물질, 의사 결정이나 행동은 하나님이 세우신 결혼 관계를 무너뜨리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오는 말씀은 한 몸의 원리를 더욱 강조합니다.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엡 5:29-30)

for no one ever hated his own flesh, but nourishes and cherishes it, just as Christ also does the church, because we are members of His body(NASB).

누구도 자기 자신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미워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자세히 살펴보면 자기가 받는 대우나 자신이 처한 상황이 맘에 들지 않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뿐이지 실제로는 자신을 너무 사랑합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자기 자신을 끔찍이 아끼고 돌봅니다. 다칠까 주의하고 여러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합니다. 제때제때 음식을 먹고 도움이 되거나 유익한 것이 있으면 어떻게든 몸에 채워 넣으려 애씁니다. 모든 사람은 이기적일 정도로 자기 몸을 사랑합니다.

남편이 평생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아내는 이제 남편과 한 몸이라는 것입니다. 단지 성적인 연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 물질적, 시간적, 정신적, 인간 관계적, 영적으로 모든 부분에 있어 이제 아내는 남편과 하나입니다. 이것은 태초에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제정하신 결혼의 원리입니다(엡 5:31).

그래서 남편은 아내를 자기 몸으로 여기고 양육하고 보호해야 합니다. 부부가 언제나 하나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도 이제 내 시간 좀 갖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그러고 싶을 때가 있지만). ‘나도 취미생활 좀 즐기자’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아내의 실질적인 필요에 둔감하면 안 됩니다. 현재 아내가 어떤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지, 어떤 물질적, 정신적, 영적 필요가 있는지 무관심해서는 안 됩니다. 남편이 자기 몸의 건강에 큰 관심을 갖는 것처럼, 자기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민감한 것처럼, 친구들과 만나서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 영적인 필요를 채우는 것처럼 아내에게 필요한 것이 제대로 공급되고 있는지, 아내의 상태는 어떤지, 마음은 어떤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아내가 남편과 떨어질 수 없는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내에게 이렇게 한 번 질문해보십시오.
“당신, 우리 결혼 생활이 행복한가요?”
“지금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인가요?”
“내가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요?”
“내가 당신을 양육하고 보호하고 돌보는 일에 부족함을 느끼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어쩌면 당신은 그동안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듣게 될지도 모릅니다. 아내의 필요를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동안 묵묵히 따라준 아내가 사실은 많은 불안과 걱정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될지도 모릅니다. 미처 알지 못한 일로 아내가 속앓이하거나 고통받고 있었다는 걸 알고 충격에 빠질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너무 오랜 시간 아내를 방치하고 독립적으로 살아왔기에 이런 질문에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바로 거기서부터 우리 남편들은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아내와 데이트를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랑과 기쁨이 넘치는 부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명령하시고 함께하시는 축복된 가정을 경작하는 우리의 본업을 되찾아야 합니다. 이번 칼럼 시리즈를 통해 우리 남편들이 진실로 아내를 사랑하게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