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1일 청년회 말씀을 정리했습니다.

당신은, 왜 기도하십니까? 기도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왜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수많은 사람들이 가르치고, 기도하라고 부르짖을까요?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 성경도 명령합니다. 이것이 실제로 가능한 명령인지 생각하기 전에 왜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하는지 생각해봅시다. 기도의 목적이 과연 무엇인지, 무엇이길래 쉬지 말고 하라고 명령하셨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봅시다.

짧은 구절인 요한복음 14장 13~14절 말씀으로 “기도의 목적”이 무엇인지 살펴보기 원합니다. 먼저, 본문이 나온 배경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자기 제자들(11명)에게 마지막 유월절 식사를 하신 그 장소에서 가르치신 내용입니다(유다 아웃-13:30). 조금 있으면 예수님은 배신자 유다의 입맞춤으로 성전 경비병들에게 붙잡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손에 잡혀갈 것이었고, 밤샘 심문에 이어 빌라도 법정, 그리고 십자가 순으로 죽음에 이르는 고난의 여정을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남겨질 제자들을 깊이 생각하셨습니다.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요 13:1).

예수님이 잡히실 때 모든 제자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갈 것이고, 그중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할 것임을 아셨습니다. 그런 제자들을 안타깝게 여기시고 예수님은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권면하셨습니다(요 14:1).

그들을 떠나지만, 아버지께로 가서 그들을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고, 그 일을 마치면 다시 와서 주님이 계신 곳에 그들도 있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요 14:3). 그때 도마가 이런 질문을 합니다.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요 14:5)

도마는 예수님이 어디로 가는지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집에 거처를 준비하러 가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도마의 질문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주님이 안 계시면 이제 누가 우리를 아버지께 이르는 길로 인도하겠습니까?” 이에 대한 예수님의 유명한 대답은 이렇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요 14:6~7)

예수님의 대답을 잘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마는 예수님이 아버지께 갈 수 있는 길을 안내해주는 분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나는 안내자가 아니라 아버지의 진리와 생명을 너희에게 직접 보여주는 길 그 자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리고 예수님만이 직접 아버지 하나님을 그들에게 보여주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라고 말씀하시고 또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라고 분명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때까지는 확실한 믿음이 없고 다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진정 누구신지를 다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후에 성령의 능력으로 그들이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았을 때 그들 중 하나인 요한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예수님이 아버지의 진리와 생명을 보여주신 바로 그 길임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빌립은 예수님으로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요 14:8)

그러자 예수님은 빌립에게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9)

여기서 예수님은 “내가 곧 아버지 하나님이다”라고 주장하신 것이 아닙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과 다름이 없다”라고 주장하신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요 14:10~11)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님의 관계는 아주 친밀합니다. “하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 안에 거하시고, 아버지 하나님은 예수님 안에 계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말을 하지 않으시고 오직 아버지께서 예수님 안에서 뜻하신 대로 말하고 행하십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행하는 그 일을 보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자기 뜻대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의 뜻대로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사시는 그 모습을 보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서 했기 때문에, 그분의 삶에서 드러나는 것은 아버지의 영광 그 자체였습니다. 예수님의 삶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완벽한 기도 생활은 바로 이런 면에서 필수적인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알기 위해, 아버지의 뜻대로 살기 위해 아버지의 지혜와 힘을 얻으려면 예수님은 부지런히 아버지와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시 한번 정리해서 말하면, 이 땅에서 예수님의 삶의 목적은 아버지의 영광이었습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말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필요했습니다. 예수님의 분명한 기도 목적은 아버지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진실로 중요한 이유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자기와 같은 삶을 요구하셨기 때문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요 14:12)

예수님이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무슨 일을 하셨는데요? 아버지께서 예수님 안에 계셔서 그분이 원하시는 말과 행동을 낳는 것, 즉 말하는 것과 행하는 모든 것을 통해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 아버지의 영광을 나타내는 그 일을 “너희” 곧 예수님을 믿는 자가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보다 큰일도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영역에서 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가령 예수님은 이스라엘 지역에서 활동하셨지만, 바울은 그보다 넓은 지역에서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오늘날에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빠르게 발전하는 이동수단이나 통신수단을 통해 예수님보다 더 넓은 지역에서 하나님 영광을 위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가면서 그 일을 제자들이 하게 될 것이라고 진실로 진실로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잠시, 우리 각자의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돌아봅시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이 말에 동의하십니까? 

문제는 우리가 끊임없이 하나님과 분리된 자기중심적인 삶을 추구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 옛날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에게서 분리되어 자신이 ‘하나님처럼’ 되기 원했던 것처럼, 우리도 조금만 정신 차리지 않으면 금세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우리의 영광, 하나님의 유익이 아닌 우리의 유익을 추구하며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담의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 우리가 옛 자아의 습성대로 살아갈 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예를 들어 생각해봅시다. 월요일에 출근하면서 “오늘 하루도 직장에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을 하자!”라고 다짐하기가 쉽습니까? 아니면 “아이고 피곤해라. 월요일이네, 빨리 금요일이 되었으면…”하는 게 쉽습니까?

학점을 이수하고 시험을 잘 보고, 자격증을 따고, 알바를 하면서 그 모든 것의 목적을 분명히 “하나님의 영광”에 두고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까? 아니면 좋은 성적으로 좋은 직장에 취업하여 더 좋은 환경에서 좋은 월급 받고 편하게 살고 싶다…한 마디로 나의 유익을 추구하는 것이 더 일반적입니까?

삶에서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더디게 느껴질 때, 아니 오히려 바라지 않는 일이 인생에 끼어들 때, 그때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입니까? 아니면 요나처럼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입니까?(욘 4:9).

우리 모두가 진심으로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을 밥 먹듯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에서 내 중심의 삶,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삶에서 분리된 나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는 삶을 수시로 하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쉼 없는 기도”입니다. 쉬지 말고 하는 기도. 왜냐하면 기도의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의 목적을 바로 잡아주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이 이런 맥락에서 주어진 것입니다.

13절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절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먼저 앞뒤로 똑같은 약속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무엇이든지) 내가 행하리라.

그동안 살펴본 맥락을 떠나서 이 약속을 보면, 뭔가 예수님 이름으로 열심히 예수님께 구하면 예수님이 무엇이든지 행할 것이라는 약속처럼 보입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이 말씀을 약속으로 받아 예수님께 열심히 구합니다.

받고 싶은 물질, 집, 차, 건강, 승진, 합격, 결혼, 취업 등 다양한 기도 제목을 하나님께 가지고 와서 열심히 구하면 예수님이 그것을 들어주실 거라 기대합니다. 그리고 결국 이루어지지 않으면 실망하며 무엇이 문제인지 심각하게 고민합니다. 열심이 부족했던 것일까? 순수한 동기를 갖지 못해서였을까?

하지만 예수님의 이 약속이 감싸고 있는 중간의 본문이 핵심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목적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이것이 우리의 기도목적입니다. 우리가 아들의 이름으로 구하는 모든 것을 통해 아들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제자의 삶의 목적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사신 그 목적에 따라 삽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신 그 일을 제자도 합니다. 말과 행동을 통해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의 기도 목적 역시 이와 별개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그 이름을 통해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해달라고 구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몇 가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교훈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 만일 당신이 기도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하나님을 위해 살 수 없습니다. 당신이 기도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며 살 수 있는 믿음과 힘을 얻을 수 없습니다. 결국 당신은 자기 자신의 힘을 의지하게 될 것이고 나아가 자연스럽게 자기의 영광을 추구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경건의 모양만 있고 능력은 없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삶을 오래 지속하면 할수록 당신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기를 위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심지어 교회 나오고 여러 가지 많은 일을 한다고 해도 그것은 그저 자기만족을 위한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금세 지치고 모든 것이 짐이 될 것입니다.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예수님께 기도가 수시로 필요했다면, 그 예수님이 아버지와의 친밀한 교제를 간절히 찾으셨다면, 우리에게는 얼마나 아버지의 은혜가 필요하겠습니까? 얼마나 우리가 간절히 하나님을 구해야겠습니까?

둘째, 당신의 기도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당신이 드리는 찬양은 삶의 목적을 바로 잡아줍니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는 것입니다. 

당신이 드리는 자백은 하나님 앞에서 당신이 누구인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방해가 되는 내 삶의 더러운 죄를 몰아내고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를 받아 거룩한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게 합니다. 제맛을 가진 소금으로서 살아가게 합니다.

기도 중에 드리는 성경 기도와 말씀 묵상은 당신이 품고 순종하며 살아야 할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가르쳐줍니다. 아버지의 뜻이 내 안에 있어 그 뜻대로 살 때 세상이 아버지의 영광을 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중보와 간구는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쏟아내는 것이지만 동시에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께서 이루신 그 뜻이 더 크고 나에게 더 유익하다는 것을 온전히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기도는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증거이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예배입니다. 당신의 기도는 반드시 이러한 목적을 가져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분명한 목적을 가져야 하고, 기도 없이 절대로 능력있게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면, 셋째로 당신은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식사때나 자기 전, 중요한 일을 앞두고 의지할 곳이 없어서 갑자기 드리는 기도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기도의 능력”이란 책을 쓴 유명한 E. M. 바운즈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골방에서 하나님과 함께 지내는 능력에 따라 골방 밖에서 하나님과 함께 지내는 능력이 좌우된다. 서둘러 골방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은 사람을 속이고 의무를 게을리하는 행위이다. 사람들은 그런 잠깐 동안의 기도에 스스로 속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면에서 실패자가 되고 풍부한 유산을 받지도 못한다. 골방에서 오래 지체하는 사람은 길을 인도 받고 승리한다(105p)

꼭 골방에 들어갈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에겐 기도가 필요합니다. 이른 새벽 일어나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아침이나 밤에 시간을 두고 하나님과 충분히 교제를 나눠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5:5). “나의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5:4).

우리는 수시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 위해 애쓰고 노력해야 합니다. 다른 말로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자기중심적으로 빠르게 돌아가는 사고를 기도로 막아야 합니다. 내 영광을 추구하는 마음을 기도로 하나님께 향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대한 믿음을 강하게 하는 것은 오직 기도입니다. 세상의 염려나 방탕함을 피하는 길은 오직 기도로 깨어있는 것뿐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쉬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수시로 기도하시고 시간을 두고 하나님과 충분히 교제하시기 바랍니다. 기도 없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J. C. 라일은 “호흡으로 몸이 사는 것처럼 믿음은 기도로 삽니다. 숨을 쉬지 않고도 살 수 있는 몸이 있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믿음이 있다는 사람이 기도하지 않을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숨을 쉬듯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기도의 목적을 절대로 잊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