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20):
심리학을 어떻게 볼 것인가?

*2013년 7월 31일부터 8월 3일까지 유평교회에서 있었던 제1회 <말씀과 진리 콘퍼런스>에서 나왔던 질문입니다.
중복되는 질문을 제하고 25개의 질문으로 정리하였습니다.

이제 여섯 가지 질문이 남았습니다. 나머지 질문은 모두 심리학과 관련이 있습니다. <말씀과 진리 콘퍼런스> 주제가 “성경 상담”이었고 심리학에 대한 견해를 나누는 강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심리학과 관련된 질문이 많았는데, 그중 여섯 개를 추려서 다루기 원합니다.

“먼저, 심리학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우리는 먼저 심리학이 어떤 학문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심리학은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학문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심리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생물체의 의식 현상과 행동을 연구하는 학문.
예전에는 형이상학 안에 포함하여 생각하였으나
오늘날에는 실험 과학의 경향을 띠고 있다.

예전에는 심리학을 형이상학 안에 포함하여 생각했다고 말하는데, “형이상학”은 다른 말로 “철학”입니다. 다음 정의를 비교해보십시오.

형이상학: 사물의 본질, 존재의 근본 원리를 사유나 직관에 의하여 탐구하는 학문
철학: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

심리학이 예전에 했던 일은 사람의 의식현상(생각)과 행동의 본질, 근본 원리를 사유나 직관에 의해 탐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을 연구하는 철학”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인간의 행동은 ‘무의식’에 지배를 받는다고 하는데, 그 본질이 리비도(성욕)에 있다고 말합니다. 인간 행동의 모든 동기는 파괴적인 ‘무의식’에서 흘러나온 욕구에 있기 때문에 프로이트를 성악설을 지지한 사람으로 봅니다. 이처럼 심리학은 인간의 근본 원리와 본질을 직관적으로 탐구한 철학입니다.

오늘날엔 “실험 과학의 경향”을 띠고 있는데, 실험 과학은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일정한 조건 아래서 변화를 일으키게 하고
그 현상을 관찰ㆍ측정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하여 법칙을 찾아내는 과학

예를 들어 발달 심리학 이론 가운데 피아제의 “인지발달 이론”은 아동을 연령대별로 관찰하고 거기서 발견되는 현상을 측정하여 찾아낸 법칙에 따라 감각운동기(0-2세), 전조작기(2-7세), 구체적 조작기(7-11세), 형식적 조작기(11세 이후)로 구분한 이론입니다.

그래서 심리학을 “과학”이라고 부릅니다. 관찰, 실험, 분석을 통해 정립한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심리학은 그 출발에 있어서, 그 전제에 있어서 철학적이고, 연구 방법에서는 오늘날 과학적인 경향을 보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심리학을 철학과 과학에서 태어났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에서는 심리학을 어떻게 바라볼까요?

기독교에서 심리학을 바라보는 견해는 5가지 정도가 됩니다(심리학과 기독교 어떤 관계인가?, 부흥과 개혁사, 2012):
1) 설명 수준 관점, 2) 통합적 관점, 3) 기독교 심리학 관점, 4) 변형 심리학 관점, 5) 성경적 상담 관점

기본적으로 다섯 가지 관점 모두 심리학을 아무 쓸데 없는 학문으로 취급하거나 이단 취급하지는 않습니다.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이 있다고 보고, 도움이 되는 부분을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1)번과 2)번의 관점이 심리학을 적극적으로 포용하려는 태도를 보인다면, 3)번과 4)번은 기존 심리학을 개조하거나 변형하려는 태도를, 마지막 5)번은 거의 배제하려는 태도를 보입니다.

저는 5번 “성경적 상담 관점”을 지지하는데,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심리학의 철학을 주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은 기본 전제에 있어 철학입니다. 인간의 마음과 그 행동 방식의 원리와 본질을 설명하기 위한 학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심리학은 세계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제시하는 학문입니다. 기독교는 고유의 세계관을 제시하는 종교입니다.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중심으로 그가 창조하신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어떻게 사유하고, 어떻게 행동하는지, 그 행동에 대한 평가는 어떤지 기록된 성경을 통해 유일무이한 세계관을 제시합니다. 그래서 심리학이 담고 있는 철학과 충돌합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세계관이 아닌 세상이 말하는 세계관을 주의하라고 경고합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골 2:8)

심리학은 사람이 만든 학문이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 반대편으로 나아가는 철학적 전제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철학자 존 로크는 아이는 ‘백지’상태로 태어나 감각 경험을 통해 백지에 뭔가 그림을 그리게 된다고 말했는데, 행동주의 학습 심리학의 대가 존 왓슨은 이 백지설에 근거하여 어떤 아이든 교육을 통해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다고 장담을 합니다.

성경은 이와 같은 철학적 사상을 포용할 수 없는데, 하나님께서 각 사람을 신비롭게 창조하셨고, 그 인생을 자기 책에 기록하셨으며, 출생할 때부터 죄인이라 죄를 짓고 살며 그에 대한 책임을 지지만,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로운 인격체로 살아갈 수 있도록 구원하셨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은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인간의 삶에 관한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과 섭리를 부정합니다. 또한 심리학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죄성을 고려하지 않고, 삶의 원동력으로 그리스도를 말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심리학과 성경은 서로 다른 세계관, 철학에 기초하고 있는 가르침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포용할 대상이기보다는 주의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둘째, 심리학의 과학을 주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1879년 독일의 의사이자 심리학자였던 분트가 심리학을 철학에서 독립시켰습니다. 이때부터 심리학은 위에 정의한 것처럼 방법에 있어서 과학적인 실험, 관찰, 분석에 따른 객관적 사실을 말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제 과학으로서 심리학을 포용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몇 가지 고려할 사항이 있습니다. 첫째로 가설이 반성경적일 수 있습니다. 모든 과학적 실험에는 가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최근에 읽은 페미니스트의 설문조사를 보면 ‘여성 목사 안수’에 관한 남녀의 찬성 비율을 조사한 자료가 있었습니다. 이 자료를 분석한 저자는 여성 목사 안수를 아주 적은 사람이 지지하는 것을 보면서 ‘아직까지 교회 안에 성 불평등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엔 하나의 가설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목사 안수를 지지하지 않는 것은 성 불평등이다’ 혹은 ‘남녀 모두 동등한 비율로 목사가 되는 것이 진정한 성 평등이다’라는 전제입니다.

이런 전제는 독자가 쉽게 판단하기 힘듭니다. 이러한 문제를 우리는 유신론적 진화론자의 과학적 연구 결과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연구 방식이 객관적이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들의 가설에 있습니다. 관찰하고 분석한 결과가 나오면 그들이 기존에 지지했던 생각, 즉 빅뱅에 의하여 만물이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는 가설이 입증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과학적인 방법으로 객관적으로 연구했다고 해도 처음 전제로 세운 가설이 반성경적이면 결코 성경의 지지를 받을 수 없습니다. 심리학이 아무리 과학적인 방식으로 결론을 얻으려 한다 해도 처음 세운 가설이 성경의 가르침을 위배한다면 포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두 번째 고려 사항은 반성경적인 해석입니다. 아무리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방식으로 실험을 했다 해도 그 실험에 대한 해석이 반성경적일 수 있습니다. 전제부터 잘못되었기 때문에 해석이 잘못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예를 들어 한 교육학자는 피아제의 인지발달 이론을 통해 전조작기(2-7세)에 해당하는 아이가 신체적이고 물리적인 표현을 하기 때문에 사람을 때리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자기가 원하는 물건을 낚아채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말합니다. 이때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체벌을 가하는 것은 행동개선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하니, 그런 행동을 하는 아이의 심리상태를 충분히 공감해주고 아이 앞에서 세련된 사회기술(아이가 보여준 원초적 표현에 반하는)을 직접 보여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말합니다.

2-7세의 아이가 보통 신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은 충분히 관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내용이고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해석을 보면 성경의 동의를 얻기 어렵습니다. 성경은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한다”고 말합니다(잠 13:24).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잠 29:17)라고 권합니다.

물론 분노를 표출하여 아이를 노엽게 하거나 자기 분을 풀기 위해 아이에게 매를 대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엡 6:4; 골 3:21). 그러나 죄인의 본성을 자연스럽게 표출하는 아이를 사랑으로 징계하여 바른길로 인도하려는 부모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러한 해석은 아이가 죄를 가지고 태어나고, 그 죄인을 하나님께 인도해야 하는 책임이 부모에게 있고, 하나님이 은혜로 그 아이를 변화시켜 주실 것이라는 소망이 심리 과학적 실험의 결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결과입니다.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시 10:4)

모든 심리학 분석과 조사 자료를 거부하거나 쓸모없는 것으로 여길 필요는 없습니다. 활용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가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연구 방법을 따랐다고 해도 심리학이 전제하는 것과 연구 결과에 관한 해석을 어떻게 하는지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을 철저히 배제하고 혹은 반대하고 내린 이론인지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합니다.

셋째, 성경으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말씀과 진리 콘퍼런스>에서 한 사람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심리학 때문에 이렇게 문제아가 바뀌는데,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만일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심리학이 필수적이라면,
현대 심리학이 시작된 18세기 이전의 사람들은
어떻게 자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까요?”

과학, 의학, 철학 등 새로운 학문이 생기고 발전하면서 우리의 삶에 많은 유익을 가져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면에서 심리학도 어떤 면에서 우리에게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과 그것 없이는 안 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말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충분하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호흡으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성경이 우리의 생각을 교훈하고 잘못된 마음을 책망합니다. 성경이 우리 행동 양식을 바르게 교정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것으로 훈련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게 되는 일에 성경은 충분합니다(딤후 3:16-17). 우리 마음, 뜻(생각), 힘, 전인격적인 삶을 다루고 판단하고 분석하고 변화시키는 일에 성경으로 충분합니다.

심리학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잘못된 전제에 기반하지 않은, 잘못된 해석으로 결론내리지 않는 객관적이고 과학적 분석 결과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성경으로 충분하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심리학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심리학에 담긴 철학에 주의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에 반대되는 사람이 만든 철학을 경계하십시오.

심리학이 과학적 방식을 취한다 해도 그 가설과 해석이 반성경적일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면, 하나님을 거부한다면, 하나님의 뜻에 반대한다면, 멀리하십시오.

마지막으로 성경으로 충분하다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마음을 창조하신 하나님, 우리 안에 정직하고 새로운 마음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이
그 누구보다 우리의 심리를 잘 아시고,
우리 심리에 관해 정확하게 말씀해주실 것이며,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다는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