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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본문 4장 12절에서 25절인데 앞뒤를 좀 다시 되짚어 봐야 될 거 같아요. 앞서서 저희는 4장 1절에서 11절로 예수님이 사탄에게 시험 당하시는 장면 다뤄봤고 그 장면에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는 사탄의 세 번의
그 공격을 모두 이기셨는데 하나님의 말씀으로 능히 이기셨죠. 그리고 천사가 예수님을 수종 드시는 그 장면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어요. 기억나시죠?
네.
네. 유명한 말씀이라 기억나실 것 같아요. 예수님께서는 다른 걸로이기 이기시지 않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이 성경으로 마귀를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뒤에는 5장인 그 유명한 예수님의 가르침인 산상수훈의 가르침이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은 시간적으로는 마귀의 공격 받으신 그 이후고
그리고 많은 일들이 있긴 했지만 그다음에 오늘 본문 그리고 그다음이 산상수훈의 가르침 요렇게 진행이 됩니다. 산상수원의 가르침의 대상은 5장 1절을 보면은 저도 책을 안 폈는데 마태복음 4장 네, 12절에서 25절이니까 펴 주시면은 같이 보겠습니다.
네. 5장 1절에 보면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무리들에게 가르침을 전파하시고 계신 것을 볼 수 있어요. 오늘 본문은 그 바로 앞에 있어서 왜 제자들과 무리들이 예수님 앞에 모여 있고 그리고 얼마 얼마만큼 모였을까 그런 것들을 설명해 줄 수 있는 부분입니다. 어네 그 오늘 본문
읽기를 원하는데요. 예수님이 이때 갈릴리에서 그 전에 어떤 시간을 보내셨는지 함께 살펴보기를 원하고 네. 그러면 마태복음 4장 12절에서 25절 제가 읽겠습니다. 12절입니다.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수불론과 납달리지경
해변에 있는 가보나음에 가서 사시니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 스론 땅과 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성이 큰 빛을 보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 빛이 빛이었다니라.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금을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가너를
사람을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곧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더시다가 다른 곧대의 아들고 그의 요한이 그의 아버지에서을는 것을 부르니들이 아버지를 수를라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다니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온수리아에 진지라들이든 고통당하는 자귀신들린 자질하는 자중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갈릴리와 가볼리와 예살렘과 유대와 요단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네. 말씀 들어보니까 어떤가요?
제가 그 느낀 첫 인상은 공간적 변화가 엄청 일어나고 엄청 아니지만 몇 번 몇 차례 걸쳐서 일어나고 여러 그 장면들이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잘 묘사가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세 가지 장면으로 예수님의 사역을 시작한 시점의 모습들을 담고 있어요. 12,
12에서 12절, 17절까지 천국 복음을 전파하신 부분이고 18에서 22절까지 제자를 부르신 부분 그리고 23절에서 25절까지 가르치시고 전파하시며 고치심. 네. 그렇게 세 가지 장면으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첫 번째인 12에서 17절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는 장면을
같이 보겠습니다. 12에서 17절은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탄에게 시험 당하신 이후에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전파 사역의 시작지는 어디일까요? 본문에 나와서 물어본 겁니다.
갈릴리 갑나음 지역입니다. 17절 보시면 이때부터 전파하였다라고 나와 있는데 마지막에 계시는 지역은 위쪽에 13절에 나옵니다.네 갑옷나움이라고 되어 있죠. 그래서 예수님의 본격적인 복음 전파 사역은 갈릴리 가보나움에서 시작되었다고
얘기할 수가 있습니다. 왜 하필 갈릴리 지역이었을까요? 예수님 태어난 곳이 나사렛이라서 그런 건 아닐 거고요. 완전히 아니라고 할 순 없겠지만 정확한 이유 14절에 나옵니다. 14절에 나오는 것처럼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하 예언한 그 말씀을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그 예언된 말씀은 바로 밑에 15에서 16절에
이용되어 있는데 말씀 읽어 드리면은 수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병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빛이었도다. 하였느니라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갈릴리는 수블론 지파와 납달리 지파에게 주어진 땅이었는데 이스라엘
중에서는 멸시를 당하던 지역이었어요. 15절 뒤쪽에 보시면 갈릴리는 그냥 갈릴리라고 하지 않았고 우라고 수식되어 있나요? 이방네 이방의 갈릴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방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방의 갈릴리로 불리면서 이방 취급을 받았던 거예요.음 이것은 갈릴리가 이방 이스라엘
땅이기는 하지만 성전과의 거리도 멀고 국경에 맞다한 지역이라서 침략도 많이 받고 외국인도 그래서 많고 문화적으로 좀 섞였던 거 같습니다. 열왕기하 15장 29절을 보면은 아수르에 점령되어서 다들 끌려가기도 하고 그랬었어요. 그래서 혈통을 중요시 여기는 그
유대인들에게 많이 멸시를 당하던 지역이었습니다. 16절에이 갈릴리 사람들을 가리쳐서 비유적으로 얘기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보이시나요?
네. 흑암에 앉은 백성 그리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이라고 비유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마 구약의 이사야 시절에도 갈릴리는 동일하게 멸시를 받던 지역이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그런 지역에 사는 백성들이 뒤에 보시면 어떻게 된다 했죠?
큰 빛을 보고 그들에게 빛이 비출 것에 대해서 예언한 것이 지금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겁니다. 네. 이사야 인용된 구절에 대해서 조금 말씀을 드리면 이사야 선지자가이 예언에서 갈릴리가 영화롭게 될 것을 말을 했는데 이사야 9장 1절과
2절을 인용한 거예요. 근데 제가 그걸 읽어 드리면은 좀 다른 다릅니다. 읽어 드릴게요. 전에 고통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병길과 요단
저쪽에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에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도다.이 말씀을 인용했다고 나왔는데 좀 다르죠. 네.이 이 다른 이유는 이때 유대인들에게 쓰여진 책인데 그때
당시에 유대인들이 구약 성경을 70인역을 보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히브리어로 구약이 적혀졌었는데 그 당시 예수님 계시던 때는 헬라어로 얘기를 하고 있었고 그래서 히브리어에서 헬라어로 번역한 성경인 70인역을 가지고 그 구약 성경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 구약 성경을 히브리어에서 번역을 한 거예요. 그래서 그 어떤 원어가 있는데 각기 다른 언어로 번역이 되면서 그것이 좀 차이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그 구약의 인용들이 신약에서 달라진 부분들이
꽤나 있는 거를 볼 수 있어요. 그래서 그런 거 참고하시면 될 거 같고. 그리고 마태복음에서는 이렇게 구약의 예언을 연결시키는 부분이 군대군데 있어요.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는 구절로 구약 성경을 좀 인용하는 편인데 마태는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렇게 구약을 좀 더 인용을 했습니다. 여기서 좀 더 짚고 나갈 것은
그 14절에서 행동의 주체는 누구일까요?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나와 있는데 그 말씀을 이루 이루게 하시는 분은 누구실까요? 틀렸습니다. 하나님이십니다. 왜냐면 그 예수님께서 나는 예언을 성취해야 되기 때문에 갈릴리로 갈 거야 하면서 가신게 아니고요. 하나님께서 구약의 예언을 예수님을 통해서 성취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으로 우리가 이해를 해야 됩니다. 많은 부분 그렇게 나와 있어요. 하나님께서 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그 계획하심 아래에서 11절을 보면은 요단강 저편에 계시다가 갈릴리로 이동하시고 12절에 고향인 갈릴리 나사렛에 계셨다가 또 이동하셔서 갈릴리 갑나음으로 가게 되신 것입니다. 그림이 그려지시나요?
네. 감사합니다. 12, 12절 초반에는 요한이 누군가에게 잡혔음을 들으셨어요. 그리고 갈릴리로 넘어가셨다고 이렇게 나오는데 요한이 잡힌 것과 그 예수님께서 이동하시는 것 그 사이에 좀 논리적인 비약이 있어요. 그러니까 요한이 잡혔는데 왜 예수님께서 가신 거지라는 궁금증이
생길 수 있는데음 누가복음이 부분 누가복음 3장 19에서 20절을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네 찾아보셔도 되고 제가 읽어 드릴게요. 음봉왕 헤롯은 그의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과 또 자기가 행한 모든 악한 일로 말미암아 요한에게 책망을 받고 그 위에 한 가지 악을 더하여 요한을 오게 가두니라.
세례 요한이 헤롯에 대해서 책망하는 말을 좀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헤롯이 알게 된 거 같아요. 그래서 헤롯이 그냥 가둘 순 없으니까 다른 죄를 어떻게든 뒤집어 씌워서 요한을 오게 가뒀다고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때 그 요한복음을 그 보시면 알 수 있는데 요한이 있는 그 근처에 계셨고 요한복음 3장 22,
23절을 보면은 요한과 가까운 곳에서 세례를 베풀었다고 나와요. 그 곁에 계시던 예수님은 헤롯이 자신을 그 죄를 또 뒤집어 씌워서 잡아갈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셨을 것 같고 그리고 그 시점에는 예수님께서는 잡히는 것을 원하지 않아서 갈릴리로 옮기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네. 이런 갈릴리의 가보나음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렇게 전파하셨는데 17절 보시면은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가보나움에서 예수님께서는 무리에게이 메시지를 전파하셨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이렇게 전하셨고이 말씀을 비슷하게 했던 사람이 있었어요. 누굴까요?
요한
맞습니다. 세례 요한입니다. 바로 전 3장 1, 2절에 나와 있는데 네. 마태복음 3장 1, 2절입니다. 그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라고 나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게 영향을 받고 요한의 가르침을 계승한 사람으로 우리가 봐야 될까요?네 네. 아닙니다. 3장 2절 바로 뒤에 3절 나오는데 이사야에서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통하여 말씀하신지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하라 하였느니라.
세례 요한은 그 예수님의 사역을 준비하는 역할을 굉장히 충실하게 했어요. 그리고 그 준비를 위해서 예수님이 전파하실 그 내용을 일부 전파하고 있었습니다. 지난번 종영 목사님이 전해 주셨던 히브리서 8장 말씀에이 땅의 제사는 하늘에 있는 것에 어떠한 모형 그림자라고 표현을 하셨던 것을 기억하셔 하시나요? 네. 하실 겁니다. 예수님과 요한의 관계도 동일하게 이런 모형이나 그림자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예수님은 이렇게 갈릴리 가보나음 오셔서 무리에게 회개할 것을 명령했고
천국이 가까이 왔음을 전파를 하셨습니다. 네. 그러면 18에서 22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자를 부르신 부분인데요. 18에서 22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12명의 제자 중에서네 명의 제자를 어떻게 삼게 되었는지가이 부분에 나옵니다. 18에서 22절 읽어 드릴게요.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금을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거기서 더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예수님은 일을 하던 제자들을 보셨어요. 그리고 그들에게 다가가셔서
나를 따르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먼저 생각을 해 볼 것은 우리가이 말씀이 엄청 익숙해서 그렇지 사실 이렇게 선생님이 먼저 가서 제자를 부르는 것이 그렇게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에요. 대학을 보더라도 교수가
대학 교수가 고등학생에게 먼저 접근하는 경우가 있을까요? 있기는 해요. 그 고등학교 찾아가서 홍보하고 이럴 때 갈 수 있긴 한데 거의 드물고 가서 그 학생들 들어오더라도 등록금 내라고 합니다. 네. 왜 선생이 제자가 먼저 선생에게 가게 될까요?
네. 지혜 지식이 그에게 있어서예요. 지혜나 지식이 없는 사람은 자기한테 없는 것이이 사람한테는 있다고 생각이 드니까 그 지혜나 지식이 있는 사람이 어떻게 보면 갑의 위치에 있습니다. 일화를 좀 말씀드리면 제가 요즘 아들인 주호랑 놀아주면서 놀아 주다가 한번은
그 고무줄로 모양내는 그런 놀이를 이렇게 보여 줬어요. 그리고 오늘 또 갑자기 해 달라고 고무줄을 가지고 오는 거예요. 그래서 너무 귀찮아서 엄마한테 해라. 엄마 잘할 거다. 근데 엄마가 못 한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왜 못 하지? 하면서 제가 그 자매를 알려줬습니다.
자매를 이렇게 가르쳐줬어요. 다음에 하라고. 자매가 잘한다면서 어디서 배웠냐고 저한테 물어보는 거예요. 생각을 해 보니까 언제 배웠냐면 초등학교 때 배웠더라고요. 초등학교 때 제가 친구가 잘하는 친구가 이렇게 있어서 그것을 오 가르쳐 달라고 오 알려 달라고 하면서 우아 해 주면서 그렇게
배 배웠던 거예요. 그러니까 그 친구는 알려 주기 싫어했는데 제가 알려 달라고 하고 엄청 띄워 주니까 알려 주게 된 거죠. 그래서 어린아이들도 똑같이 그렇게 시스템이 되어 있어요. 그러면은 그 당시에는 어땠을까요? 당시에도 아마 비슷했을 거예요. 아마 유대교에서도 랍비와 제자들이
나오는데 제자들이 랍비를 찾아갔었고 선생이 제자한테 먼저 가서 제자를 이렇게 삼는 것은 제가 찾아봤는데 극히 드물어요. 근데 구약에서 이렇게 한 경우가 한 번 있거든요. 누굴까요? 아마 모르실 거예요. 제가 찾았어요.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그랬어요. 네.이 경우가 제가 아는
한 예수님 말고 다른 경우 단 하나입니다. 혹시 다른 거 있으면 알려 주세요. 네. 이렇게 예수님은 제자를 삼으려고 먼저 이렇게 다가가시고 그렇게 부르신 거예요. 본문 보면은 18절에 베드로와 안드 안드레를 부르셨고 그 후에 21절에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셨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형제였고 야고보와 요한도 형제였어요. 다른 공간복음도 이렇게 동일하게 장면을 기록을 하고 있는데 근데 요한복음만 조금 달라요. 그러니까 시몬과 안드레를 만난 그 지점에 대한
얘기가 요한복음은 좀 다릅니다. 어네 그냥 찾지 않고 말씀을 드리면음 안드레가 그 요한의 제자였고 예수님에게 접근을 하는데 시몬에게 같이 가자고 해요. 그래서 그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렇게 다르게 적힌 부분이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이해를 해야 될까요? 저도 어려워서 찾아봤는데 여러 해석들이 있어요. 근데 제가 동의가 되었던 얘기는 요한복음에서는 그 예수님과의 처음 만남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 주시면 되고 공간 복음에서는 자기 생계를 버리고 본격적으로 제자로서 인생을
살기로 결단한 그 순간을 담았다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그래서이 해석이 성경의 무엇을 해치지 않는 해석으로 보였어요. 그래서 그렇게 이해를 하면 크게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네.이어서 이어서 본문 계속 살펴보면은 베드로와 안드레는 원래
그물을 이용해서 물고기를 잡던 어부였습니다. 시몬과 그 안드레가 예수님이 그전에 계셨던 곳에서 예수님을 배웠었는데 그때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갈릴리로 같이 갔는지 아니면 따로 갈릴리로 돌아오고 예수님과 마주친 것인지 그것은 정확하게 알 수 없어요. 그들도 갈릴리 가보나움에 있었고 생계를 위해서 그 전에 하던 일을 아마 하고 있었던 거 같아요.이
일을 하고 있는 제자들을 보시고 그 어부들에게 뭐라고 하셨죠? 19절에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이 말씀 굉장히 익숙한 말씀인데음 사람을 낚는다는 표현이 요즘 뭔가
좀 부정적인 거 같아요. 그래서 누군가를 구원한다라는 이미지보다는 낚싯대로 사람을 낚시를 해서 골탕 먹이는듯한 그런 느낌이죠.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는 어떤 행위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그런 표현인데음 근데 국어 사전을 찾아보니까 낚는다라는 말이 낚시할 때만 사용되지
않더라고요. 그물을 이용할 때도 낚는다라는 표현이 사용이 됩니다. 그래서 그물을 가지고 물고기를 잡는 것을 생각을 해 보시면 그물 이렇게 들어올려서 물고기를 잡게 되죠. 그래서 사람들을 그렇게 구원에 이르게 하는 도와주는 그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표현이에요.
그리고 병행 구절인 누가복음 5장에서는 좀 더 자세하게이 장면이 묘사듭니다. 누가복음을 찾아보겠습니다. 누가복음 5장입니다. 예수님은 5장 3절에 시몬 베드로의 배를 물에 띄우게 하고 배에 앉아서 무리를 향해서 말씀을 전하게
하신 다음에 말씀을 전하신 다음에 4절에 그들과 함께 고기를 잡으러 동행을 하셨고요. 그날 하나도 잡히지 않던 물고기를 6절에 그물이 찢어질만큼 잡게 하시는 이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라고 말씀을 하신 겁니다. 어떤
사람이 되게 하리라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일반적인 선생이라고 한다면음 자신에게 그 오는 제자들에게 뭔가 열심히 하라는 의미로 내 밑에서 잘 배우면 너는 이런 것들을 갖추게 될 거야.라고 라고 할 수 있어요. 세상의 선생이 이렇게 말하면은 굉장히 좋은 선생님이에요. 근데이 말은 뭐가 강조된 표현이냐면 제자의 노력을 되게 강조한 표현이에요. 그 의도를 좀 강조를 해 보면 내가 알려주는 것을 내가 잘
배우면은 내가 알려주는 것들을 다 네가 얻을 거야라는 말이에요. 그런데 만약 선생이 나를 따르면 내가 너를 이런 사람이 되게 할 거야.라는 표현은 어떻게 들리시나요? 나를 따르면 내가 너를 이런 사람이 되게 할 거야. 만들 거야.라는
라는 표현입니다.이 말에는 그 말을 하는 선생에게 의지가 굉장히 많이 들어 있어요. 네가 나를 따르면 나는 너를 이렇게 만들 거야라는 의미니까 굉장히 그 의지가 강조되어 있고 예수님은 그만큼 제자들이 자신을 따르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다른 것을 요구하지 않았어요. 네가 뭐 말을 잘 듣고 내 말을 잘 들어서 깨어 있고 하는 것을 먼저 강조하지 않으셨고 일단 따를 것을 요구를 하셨어요. 그래서 예수님은 어이 제자들로 하여금 그
따르는 제자들로 하여금 사람들의 구원의 통로를 만들기 위해서 이렇게 먼저는 부르신 거예요. 그리고 그 말을들은 두 형제의 반응이 나오는데 20절에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네. 그들은 자기 생계인 직업을 버렸고요.
모든 면에서 자신들보다 뛰어나신 예수님을 따르기로 선택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21절, 22절은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시는 장면인데 야고보와 요한은 그 전에 예수님을 만났는지는 알 수가 없어요. 근데 21절에는 그들이 뭐 했는지가 나오는데 해변가에서 금을 깊는 일을 했다고 나오는 부분이 있어요. 금을 깊는 일은 그물 찢어진 것을 고치는 수선하는 일이에요.
그 일을 아버지랑 함께한 것을 보아서 그들이 물려받을 가이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이 이 부분 누가복음 5장 10절에 좀 더 자세하게 나오는데 시몬과 안드레와 동업하는 관계라고 나옵니다. 그래서 시몬과 안드레가 물고기를 잡고 그물이 찢어지면 고쳐주는 그런 관계였을 거예요.
그리고 그 뒷부분을 보면은 예수님께서 물고기 잡으신 이적을 보고 놀랐다라고 표현이 돼 있는데 그래서 바로 옆에 있었던 거 같아요. 다시 본문 보면은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시는 장면도 시몬과 안드레를 부르시는 장면과 매우 비슷한데 내용이
그 앞에보다는 많이 생략되어 있어요. 그렇지만 우리는 앞에 나온 이야기와 유사하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을 거라고 유추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 제가 어떻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을까 생각해 봤는데 요렇게 말씀하셨을 것 같아요.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들을
고치는 자가 되게 하리라.이 이런 식으로 얘기하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그 얘기를들은 야고보와 요한의 반응은 동일하게 자신의 그 생계를 책임지던 배와 아버지를 버리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따랐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이제 23절 25절이 나옵니다. 네. 세 번째 장면인데요. 가르치시고 전파하시며 고치시는 부분입니다.
짧게 살펴보면은이 부분은 예수님은이 장면에서 가르치시고 전파하시며 고치셨는데음 갈릴리를 두루 다니면서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셨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고 백성의 모든 병을 고치셨습니다. 그 사역의 결과가 어땠을까요? 바로 옆에 있습니다. 소문이 퍼졌습니다. 온 시리아에 퍼졌고 그래서 소문을들은 사람들 중에서
사람들 중에서 그 당시 불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너도 나도 다 데리고 예수님에게 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분의 능력으로 그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 결과는 또 어땠을까요? 25절에 보면 다시 소문이 점점 퍼져서 갈릴리와 데가볼리, 예루살렘,
유대, 요단강 건너편에서 계속해서 더 많은 무리가 예수님에게로 모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큰 무리를 앞에 두시고 예수님은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이제 전하실 겁니다. 앞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 제자로서 따르는
것보다는 자신에게 있는 어려운 것과 특히 육체적인 아픔들 그런 것들을 해결하려고 모였습니다. 예수님은 아마 그것을 아셨을 거예요. 이들에게 예수님이 어떤 말씀을 무슨 말씀을 하셨을지 기대가 되시나요?
네. 다음 달 말씀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세요.
네. 그럼 적용 마지막으로 적용해 보겠습니다. 먼저 청년들에게 좀 질문을 해 보고 싶어요. 나눔 질문에 있는데 메시아는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우리는 당신은 제자인가요? 아니면 그냥 예수님을 그 능력을 알고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서 예수님 앞에 그 모여 있는 무리인가요? 그것을 좀 생각해 보면 좋겠고 다른 얘기를 좀 더 해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시기 전까지는 되게 좀 어수룩한 부분이 있어요. 그렇게 보이는 면이 있는데 사고도 치고 칼 가지고 사고도
치고 졸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어떻게 이해할 수 있냐면 그들에게 아직 성령이 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예수님의 말씀을 온전하게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지식적으로만 보더라도 신약 성경이 그들에게 없었었고 구약 성경도 아마 잘 이해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 그들을 예수님은 택하셔서 나를 따르라고 하셨고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 제가 생각할 때 제일 잘한 일이 예수님을 따른 일이에요. 그들은이 앞에 계시는 분의 권위와 능력의 그 모습을 보고 아마 적어도
굶어 죽지 않겠다라고 생각을 했을 거예요. 우리는 그러면 어떻게 적용할까요? 직업을 선택하지 않고 교회에서 일하는 것은 조금 많이 벗어난 거고. 그 당시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물리적으로 제약된 공간에 계셨기 때문에 꼭 따라다녀야 했었던 부분이
있어요. 그래야 그 가르침을 어들을 수가 있었고 배울 수 있었는데 우리에게는 그러니까 신자에게는 성령님이 내주하시기 때문에 공간의 제약을 사실 받지는 않습니다. 또 이런 생각을 해 봤는데 성경에는 나오지 않고 저의 상상이지만
제자들도 고민이 좀 있었을 것 같아요. 왜냐면 사람이 그 생계를 이어나가야 하고 밥을 먹어야 사는데 예수님이 과연 책임을 져 주실까 이런 고민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처음에도 했을 수도 있고 그 뒤에도 했었을 수도 있어요. 근데 만약에 이제
고민하는 그 예, 그 제자들을 예수님이 보셨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 같아요. 계속음 나를 계속 따르라라고 아마 말씀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분명한 길과 그 진리들을 제시를 하셨을 것 같아요.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나를 따르라라고 말을 하십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다른 무엇보다 예수님을 최우선으로 여기라라고 말씀을 계속 하십니다. 우리는 다른 무엇보다 예수님을 항상 선택을 해야 돼요. 우리는 개인적으로 따져보고 비교를 해보면서
예수님을 어떤 그 비교 대상에 뒤에 두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는 항상 예수님을 선택을 해야 됩니다. 예수님을 그때 바로 제쳐두고 싶을 때 그렇게 제쳐두지 마시고 한번 다시 잘 따져 보세요. 당장에 예수님을 최우선으로 둘 때 나에게 어떤 손해가 온다고 생각을 하는지 그리고 그 손해가 실제 나에게 손해인지
아마도 그 표면적으로만 보면은 그게 손해라고 생각될 확률이 높아요. 그리고 그게 지혜로운 선택이라고 생각될 수 있어요. 이런 딜레마에 빠질 때 우리가 기도함으로 예수님을 위한 선택을 계속해서 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생각할 때 어떤
선택이 예수님을 위한 선택이냐면 예수님 말고 그 비교하는 대상이 있잖아요. 그것이 내게 주어지지 않는 않을 때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것을 생각해 보면은 좀 도움이 되실 겁니다. 그래서 이것을 완전히 나에게서 뺏어 가신다면 그러면 난 어떨지 내가 괜찮을지 아니면 너무 힘들 거
같고 예수님을 원망할 것 같은지 그것을 생각해 보면 나의 최우선 순위가 지금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힌트가 될 겁니다. 우리 문제는 사실 잘 따져 보시면 결과적으로 그리고 되돌아보면 그렇게 우리의 문제가 큰 어떤 본질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결국엔 하실 거예요. 그래서 맞닿는 그 모든
것이 사실 그렇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매순간 예수님 따르는 그런 선택을 하셔야 합니다. 네. 우리에게 먼저 다가오신 예수님의 그 제자로서 우리가 항상 모든 것보다 뛰어나신 그 예수님을 우리 청년들이 선택하면 좋겠습니다. 그럼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우리가이 세상을 살 때 참 예수님 외의 것들에 생각을 많이 뺏기게 되고 그것이 더 중요한 것처럼 여기면서 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우리에게 오늘 보여 주신 그 장면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그 제자들을 위해서 어떤음 일들을
하셨는지 그것을 생각해 볼 때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계속해서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을 기억을 해 봅니다. 주님 우리가 항상 선택의 기로에서 있는데 그 선택을 할 때 예수님을 위한 선택을 하게 하시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그 선택을
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것이 참 저희에게 쉽지 않음을 고백을 합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도움이 너무나 필요합니다. 주님 그러나 넉넉히 이기시는 그 우리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가 힘 입어서음 우리가 힘 있게 우리의 그 크리스천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계속해서 함께
해 주시고 오늘 이후에도이 시간 교재하는 시간도 주님께 부탁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