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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지난달 4장 살펴봤었고 5장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5장에서 산상순의 첫 가르침을 살펴보는 날이에요. 다들 많이 기도해 주셨나요? 제가 4장 전화할 때 기도해 달라고 했었거든요. 네. 여러분 기도 덕분에 준비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그럼 마태복음 5장 펴 주시고요.
오늘은 산상수훈 첫 번째 시간으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복 있는 사람이라는 주제로 말씀 전하기를 원합니다. 지난 설교에서 우리는 4장 후반부를 살펴보았고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고 제자들을 부르시고 병자들을 고치시는 그 장면을 같이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 사역을 예수님께서 하시면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부분을 함께 살펴보았고요. 그 결과로 인해서 각지에서 예수님을 만나러 사람들이 더 많이 모였고요. 그래서 모인 무리가 굉장히 큰 무리가 되었습니다. 어,이 무리의 사람들은 단순하게 구분을 하자면 아마도 둘 중에 하나였을 것 같아요. 예수님의 그 치유하시는 능력이 신기하고
필요했던 무리들이 있었을 것이고요. 그 치유하시는 능력뿐만 아니라. 그 말씀하시는 가르침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붙어 있었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 같아요. 아마 제자들과 몇몇 사람들이 후자에 가까웠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 앞에 모여
있었어요. 1절에 보시면 예수님께서는 많은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셨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 사회에서는 랍비가 있었는데 선생이 선생이었고요. 그리고 랍비는 앉으면 그 제자들은 곧 가르칠 것이라고 이해를 했었어요. 예상을 했었어요.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앉으셨기 때문에 그 예수님께로 가서들을 준비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제 앉으셔서 그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이제 시작하실 것인데음 산상수훈 뜻이 뭔지 아시나요? 맞습니다. 네. 제 준비하다 보니까 영어보다 한 문을 설명을 더 해야겠더라고요. 요즘 시대가 바뀌어서 저도 산상순이 정확히 뭔지 모를
거 같 모르는 거 같은 거예요. 그래서 찾아보고 알려 줘야지 했는데 잘 알고 계시네요. 네. 산 위에서의 가르침 또는 설교라는 뜻이에요. 들어가기 전에 마태복음 5장 이후에 개오를 좀 더 살펴보면은 좋을 것 같은데요. 마태복음에는 다섯 개의 강화가 수록되어 있어요. 그 강화라는 뜻은
아시나요?
예. 강화 강의하듯이 쉽게 풀어서 이야기함 또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강화 다섯 개로 이루어져 있고요. 다섯 개의 강화 중에서 첫 번째 강화가 산상순인 거예요. 우리는 마태가 각각의 강화에 함께 묶을 수 있는 가르침들을 한대 모아 놓은 것이라고 이해하면서 읽을 수가 있어요. 이것은 마태복음의 저술 목적이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을 위해서 적혀졌고 그리고 교육용으로 작성되었다고음 해요. 그래서 그렇게 모아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고요. 저희도 예수님의 가르침이 그렇게 잘 묶여 있기 때문에 유익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오늘 살펴볼 본문이 산상순에서
첫 번째 가르침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팔복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이에요. 예수님께서 4장에서 17절 후반부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말씀을 하셨고 4장 23절에서도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다라고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천국에 대한 복음을 전하고 계셨어요. 그리고 오늘 본문도 천국과 관련된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 가장 많이 반복되는 단어가 있는데 뭔지 아시나요?복.
네. 복입니다. 복이라는 단어는 교회에서는 많이 쓰는데 일상에서는 잘 안 쓰는 거 같아요. 제일 많이 쓸 때가 새일 거 같은데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이렇게 말을 합니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거기에
예, 잘되라. 그냥 인사해요. 그 단순히 한 해 동안 잘 풀리라. 그냥 문제 없이 잘 보내시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거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서의 복은 단순히 그런 복은 아니에요. 영어로는 블레스라고 쓰여 있는데 축복이라는 의미가 여기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원어에서는 신의 은혜로 축복받는다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거예요. 여기서 복이 있다라는 말은 하나님의 축복이 있다라고 생각을 하면 좀 더 의미가 명확해질 것 같습니다. 어떤 주석에서는 이것을 하나님의 복으로 보면 안 되고 행복하다라고 해석을 해야 된다. 그 번역해야 된다라는 경우가 있었는데음 그런데 그렇게 바꿔도 해석상으로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 거 같아요. 만약에이 말씀에서 예수님이음
이런 사람들이 행복한 것이다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도 동일하게 이런 사람이 행복하다라고 하시는 것이라면 그 사람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복 있는 사람이 맞기 때문이에요. 그리고이 단어에 대응되는 단어가 시편 1편에도 나옵니다. 복 있는 사람이 나오잖아요. 시편 1편에 거기에 동일하게 사용된 단어입니다. 우리는이 시편 1편에서 누가 하나님 앞에서 복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었죠. 그래서 어네 그렇고요.
그래서 이제부터는 본문에 복이 있다라는 말이 하나님의 축복이 있다라는 말로 이해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본문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통해서 이제 예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있다고 하는지 그 복 있는 사람의 특징을 살펴보기를 원하고요. 그것이 천국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사람의 특징을 세 가지로 구분을 해 봤어요.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반응하고이 땅에서 좋은 간증을 보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드러냅니다. 정리를 했습니다. 한 번 더 말씀을 드리면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반응하고이 땅에서 좋은 간증을 보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드러냅니다. 3절에서 6절로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반응합니다는 달라는 특징을 살펴보고요. 7절에서 10절로 복 있는 사람은이 땅에서 좋은 간증을 보인다라는 특징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11절 12절이 복 있는 사람은 예수님을 드러낸다라는 특징으로 써 놨는데 아쉽지만 다음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양이 맞습니다. 내년입니다. 기도할 시간이 충분합니다. 오늘은 복 있는 사람의 두 가지 특징만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3절에서 10절까지 어떤 형태로 되어 있냐면 복이 있나니라는 말을 중심으로 해서 앞뒤로
나뉘어지는 형식으로 되어 있어요. 앞부분은 복 있는 대상이 나오고 뒷부분은 왜 그러한 사람이 복이 있는 건지 그 이유에 대해서 나옵니다. 그러면 첫 번째 특징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반응합니다. 3절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은 그냥 문자적으로 보아서는 사실 그렇게 이해가 바로 되는 말은 아니에요. 왜냐면이 말씀에는 심령이라는 것이 각 사람에게 있고 그것이 풍족할 수도 있고 가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라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근데
이제 배경이 있는 사람은 금방 이해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어려운 말씀입니다. 설령이 심령이 가난하다라는 것을 받아들이더라도 그게 어떤 모습인지 상상이 잘 안 될 수 있어요. 그래서이 말을 정확히 이해를 하려면 심령과 가난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좀 더 살펴봐야 합니다.
심령은 요즘 잘 안 쓰는 말이죠. 이것도 저 어릴 때 심령 사진 같은 거 찾아보고 혼자 찾아보고 무서워했던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국어 사정에 찾아봤더니 심령을 육체와 분리되어서 존재한다고 생각되는 마음의 주체라고 정의를 하고 있었어요.
영어로는 좀 더 친숙한데 스피릿입니다. 그러니까 심령은 간단히 말하면은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영혼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심령이 어떠한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했죠? 네. 가난한 사람에게 복 있다고 하셨습니다. 본래 가난이라는 말은
재산이 적은 사람에게 사용되는 말이에요. 그런데 여기서 사용된 가난함은 좀 더 의미가 구체적입니다. 가진 것이 하나도 없는 가난함이에요. 그래서 남에게 도움을 받지 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 정도의 가난함입니다.이 이 가난한 자는 자신의 상태를 정확하게 인식을 하고 절실하게 남에게 구하는 사람을 말해요. 그래서 자신의 인생이 자기가
보았을 때 그리고 실제로도 망해서 길에서 구걸하는 거지와 같은 겁니다. 심령이 말 가난하다는 말은 그래서 자신의 영혼의 상태가 구걸해야 하는 정도임을 인식을 하고 자신의 영혼의 체험을 위해서 간절하게 하나님께 구하는 사람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반응하는 것이고요.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복이 있는 것입니다. 네. 이렇게 간단하게 계속 살펴보고 적용할 점은 바로 적용 말씀드릴 거예요. 그래서 사실은이 말씀을 조용 목사님한테 여쭤봤더니
하나 한 절 한 절을 설교로도 한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굉장히 빠른 호흡으로 가겠지만 잘 이해하심으로 따라와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넘어가도 놀라지 마세요.네 다음 4절 넘어가겠습니다. 애통하는 자가 나옵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애통하는 사람은 또 어떤 사람일까요?
네. 슬퍼하는 사람. 우울증 걸린 사람일까요? 아닐 겁니다. 그냥 혼자 비관적으로 슬퍼하고 있는 사람도 아마 아닐 거예요. 그냥 슬퍼하는 사람에게도 하나님이음 축복을 주실 수 있겠죠. 근데 여기서는 천국과 관련된 축복을 얘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하게 슬픔에 그냥 거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애통이라는 단어를 좀 더 살펴보기를 원하는데 이거는 고린도전서 5장 2절과 고린도후서 12장 21절에 동일하게 사용된 단어예요. 둘 다
죄와 관련해서 애통하는 의미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5장 2절에서는 읽어 드릴게요.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안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라고 하면서 바울이 교회에서 누군가 죄를 지은 상황에서 왜 슬퍼하지 않고 쫓아내지 않았느냐 할 때이 슬퍼함을
슬퍼함에이 단어가 쓰였습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12장 21절에서는 뒷부분 읽어 드릴게요.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함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하지 아니함 때문에 슬퍼할까 두려워하노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이 세상에서 죄에 거하는 것에 슬퍼할 때 그리고 애통할 때 쓰인 단어입니다.이 세상에서 거룩함을 이루고 싶은데 죄가 함께 있음으로 인해서 마음에 생기는 영적인 애통함인 거예요. 그래서이 단어가 4절에서도 동일하게 사용되어서 애통함은 의와 진리를 사모하는 사람들이이 세상에서 겪는 영적인
애통함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은이 세상에서 의와 진리를 사모하면서 그 현실에 대해서 애통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반응하는 것이고요. 그에게는 복이 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 5절입니다. 이어진 5절 같이 보겠습니다. 온유한 자는 온유한 자가
나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여기 온유한 사람은 또 어떤 사람 얘기하는 걸까요?
네. 참는 사람. 네. 다양한 네. 그런게 있을 텐데. 이번에도 그냥 온유하기만 해서 그 사람이 복이 있다라고 하기는 또 어려울 것 같습니다. 국어 사전을 찾아봤는데 성격이나 태도 따위가 온화하고 부드럽다라고 정의를 하고 있어서 그냥 부드러운 사람처럼 이해가 되기가 쉬운 거 같아요. 그래서음 단순하게 친절하고 그런
사람을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게 생각하기 어렵고 동일한 의미가 의미의 단어가 쓰인 시편 37편을 찾아보면 좀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37편 같이 찾아볼게요. 시편 37편입니다. 37편 11절입니다. 네. 읽어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그래서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한다라고 말했습니다. 9절에 보면은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여기 시편 37편 9절입니다. 9절을 보면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이 땅을 차지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앞에 온유한 자의 반대말이 나오는데요. 누군가요? 맞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입니다. 행하는 악이 무엇인지가 그 앞에 또 나옵니다. 7절 8절은 제가 읽어 드릴게요.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악한 자는 자기 길이 형통하고 악한 꾀를 이루는 자입니다. 그런 자들을 보고 악인이라고 했고요.
그들을 보고 불평하지도 말고 그렇게 하지도 말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 그러니까 온유한 사람은 자기 길이 형통하지 않더라도 악한 꾀를 부리지 않는 그런 사람을 의미를 합니다. 정리를 하면 자신에게 펼쳐진 지금의 상황은 힘들지만이 상황을 허락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의 크신 뜻을 인정하는 그런 사람이 바로 온유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행하는 사람이고요. 반응하는 사람이고 그에게 복이 있습니다. 네. 6절입니다. 6절에서는 의에 줄이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줄이고 목마른이라는 표현은 음식에 대해서 쓰는 말이죠. 줄이고 목마른 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음식입니다. 의에 대해서 줄이고 목마른 자에게는 뭐가 필요할까요? 의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어떤 의인지가 중요합니다.
음식 아니고 의입니다. 네. 어떤 의인지가 중요합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의가 아니고요. 하나님의 기준에서의 의입니다. 내가 세운 기준보다 상식적인 것보다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행동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하는 거예요.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기준에서 옳은 행동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입니다.
평소에 혹시 이런 생각해 보셨어요?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것을 원하실까? 이런 생각을 해 보신 적 있으실 거예요? 있으실 거예요. 제가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저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이 평소에 뭐인 거 같냐면 그리고 각 성도에게 원하시는 것이 가장 첫째짜리 하나님을 두시는 것이라고 생각을 해요. 첫째 계명이라 그렇습니다. 그리고 구약에 이스라엘에게 내내 하셨던 말씀이 있어요. 하나님만을
섬기라. 그런 명령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모든 생각에서 하나님을 배제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해서 모든 선택의 기준이 하나님을 가장 중심에 둬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다를 수가 있어요. 사랑에 대한 정의가 다를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뭐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저도 그것을 고민을 좀 하다가 조금 정리가 돼서 혹시
도움이 될까 하고 공유를 드려 보려고 준비를 했습니다.음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다들 어떻게 생각이 되세요? 어떤 의미인 거 같으세요? 너무 추상적이라서 아마 답하긴 어려울 거예요. 제가 생각할 때 사랑을 구분하는 방식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는 내면적 사랑이랑 외면적 사랑이랑 이렇게 구분될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내면적
사랑은 그 사람을 생각하는 거예요. 그리고 외면적 사람은 그 사람을 위해서 그 사람이 좋아할 만한 무엇인가를 실제로 하는 겁니다. 그래서 내면적으로도 할 수 있고 외면적으로도 할 수 있다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이성에 대해서 이렇게 할 수가 있는데 성도에게도 이렇게 할 수 있어요. 내면적으로 성도를 위해서 기도를 해 주는 거예요. 그리고 외면적으로는 그 성도를 위해서 봉사를 해 주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내면적으로 외면적으로 하나님을 위해서도 사랑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해서
하나님을 생각하는 거예요. 그리고 찬양의 기도를 드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고 그것을 행해 보고 그것으로 영광 돌리는 것 이것을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서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일부는 하고 있어요. 뭘 하고 있죠? 저희가
저희가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정리를 하면은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의에 조이고 목마른 자는 올바르게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그래서 복이 있습니다.
네. 이렇게 3절에서 6절로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반응한다라는 복 있는 사람의 특징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이후에 이제 7절에서 10절로 두 번째 특징 살펴보기를 원하는데요. 복 있는 사람은이 땅에서 좋은 간증을 보인다라는 특징입니다.
7절에서는 긍휼히 여기는 자가 나옵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긍휼히 여기는 것은음 남을 불쌍하고 가게 여기는 그 가볍게 여겨서 도와주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남에게 자비롭습니다. 7인역 구약에서는 긍휼함이라는 같은
단어가 주로 하나님에게 사용되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하시는만큼 남에게 자비롭게 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당시에 그 바리새인들이 남을 전혀 긍휼히 여기지 않아서 그들을 책망하시면서 하신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게 바리새인에게만 적용되는 말씀이 아니고 저희도 긍휼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자비를 한번 생각해 볼까요?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얼마나 자비로우셨나요?
네. 나의 죄를 모두 사해 주실만큼 자비로우십니다. 우리가 그 긍휼함을 입은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그 긍휼함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음 예수님은 누군가가 자신에게 잘못을 했을 때 그 잘못을 고백하면 490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두 번도 사실 어려운데 용서 많이 해 준 거예요. 두 번도. 근데 490번은 정말 터문이 없는 숫자로 보여서 어려운 말씀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거의 사실상 무한대로 용서를 하라는 것처럼
들리는 거예요. 그런데 사실 우리가 입은 은혜를 생각을 하면은 우리가 하나님께 죄를 지었던 그 죄가 훨씬 더 크기 때문에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이 비교도 안 되게 작은 것입니다. 그리고 뒷부분에 긍휼히 여기는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 말씀을 하셨습니다.
남을 긍휼하게 여기는 사람은 결국에는 하나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아서 복이 있는 것 거예요. 우리는 긍휼을 베풀어서 하나님을 간증할 수 있습니다. 좀 호흡이 빠르지만 잘 따라오고 계시죠? 아멘.
그럼 8절 넘어가겠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음이 청결한 것 당시에 바리새인과 반대입니다. 그 모습을 생각하면 되는데요. 바리새인은 자기의 마음을 다루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그 시선에 집중을 했습니다.
그들의 마음과 행동이 달랐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그 바리새인들을 외식하는 자라고 하시면서 그들을 책망하시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1, 2절에도 말씀을 하셨고 마태복음 23장에서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라면서 외식에 대해서
꼬집으셨습니다. 우리는 외식하면 안 돼요. 외식 오늘 하고 싶지만 네. 그 외식 아니고요. 죄송해요. 대본에 없었는데 우리의 마음이 네. 항상 주님 앞에서 깨끗해야 됩니다. 만약에 무언가 내 자신이 예를 들어서 만약에 무언가 내
자신이 드러나는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만약에 그때 마음이 깨끗하지 않다면 그것이 자신을 위한 것이 조금이라도 껴 있다면 그것을 하지 않는 것도 방법입니다. 더 좋은 방법이 있는데 그럴 때 낮은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가서 깨끗한
마음으로 바꿔 주시기를 기도하고 마음이 평안해진 후에 하나님을 위해서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우리는 간증을 할 수 있습니다. 네, 벌써 9절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기서 화평해야 한다고 해서 우리가 모든 면에서 화평해야 한다고 하는 말은 또 아니에요. 평화는 좋은 것인데 그래도
우리 내적으로는 그렇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분명히 싸워야 할 때가 있어요. 우리는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 사탄이 주는 마음과 싸워야 되고요. 잘못된 가르침과도 싸워야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화평하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내면적인 것보다는 사람 사이에서 싸움이 발생했을 때 그것을 중제를 해서
화해하도록 애쓰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래서 되도록 자신과 그 주변이 화평한 상태가 되게 하는 그렇게 애쓰는 사람입니다. 왜 화평하게 해야 하냐면 하나님이 화평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이 우리와 화평함을 이루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뒤에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사람들인 여러분이
하나님이 화평하게 하심을 기억해야 되는 거고요. 우리 주변이 화평하 화평하도록 애어야 합니다. 요즘은 개인주의가 너무 팽배를 했어요. 그래서 타인의 일에 간섭하는 것이 엄청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하는 얘기를 지나가다 들었는데 뭔가 말이 좀 이상해도 그 사람의 다름의 생각이 있겠지 하면서 더 얘기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아야 될 때가 있어요. 물론 그럴 때도 가서 관심을 보이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것도 좋지만 그거는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어요. 근데 만약에 그 얘기하는 것이 진리에 대해서 잘못된 생각을 얘기한다거나 아니면 세상과
타협하는 말처럼 들리신다면 그거는 그냥 넘어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이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기도하면서 싸워야 되고요. 중제를 해야 될 수도 있어요. 자신과 주변이 옳은 것을 공유한 상태로 화평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화평하게 함으로 하나님을 간증할 수 있습니다.
네. 이제 10절입니다. 마지막입니다. 10절에서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여기서의 의는 6절에 있는 의와 동일한 의예요. 하나님의 의를 뜻하고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옳다고 생각하시는 것을 위해서 살면 박해를 받을 수 있는데 그것이 복되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살면 박해를 받는데 복이 있다고 하니까 굉장히 역설적으로 들릴 거예요. 근데 사실은 앞에 살펴본 것들이 다 모두 세상의 관점이나 상식적으로 봤을 때는 좀 역설적이었어요. 다시 말씀을 드리면은 심령이 부한 자가 복이 있어 보이죠. 그리고 웃는 자가 복이 있어 보입니다. 힘든 상황에 꾀를 부리는 것이 그 길이 형통해 보여서 복이 있어 보이고요. 의에도 배부른 것이 복이 있어 보입니다. 남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마음 쓰지 않는 것이 편해 보여서 복이 있어 보이고요. 행동하기도 어려운데 행동도 깨끗하게 하기 어려운데 마음까지 깨끗하게 하려면 더 힘듭니다. 남에게 내가 먼저 적극적으로 화평하게 하려니 힘들기도 하고 내 가치도 낮아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하나님 때문에 이번에는 박해를 받으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천국이라는 복이 있다고 하셨어요.음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것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주변에 드러내야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드러냈을 때 내가 받을 불이익이나 하나님이 혹시라도 나 때문에 욕을 먹을까 봐 걱정하기도 해요. 그래서 드러내지도 않고 그렇게 살지도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몸을 쳐서 예수님을 담도록 만들어야 되고요. 그것을 이제 세상에 보여야 됩니다. 그렇게 했을 때 만약에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으로 차별을 받는다면 여기 나온 것처럼
기뻐할 수 있어요. 왜냐면 천국이 그런 사람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3절과 10절의 뒷부분을 간략하게 살펴볼게요.음 우리가 살펴본 복 있는 사람이 하는 일들은 세상의 관점이나 상식적으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이 있는 이유를 각절 뒤에 말씀을 해 주셨어요. 왜이
복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복이 있는지를 말씀해 주신 거예요. 제가 이거를 좀 어순을 바꿔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한번 잘 들어 보세요.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천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에 복이 있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그들이 하나님에게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에 복이 있습니다. 온유한 자는 그들이 하늘의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기 때문에 있습니다. 의에 줄이고 목마른 자는 그들이 의에 대해서 배부를 것이기 때문에 복이 있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그들이 하나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복이 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기 때문에 복이 있습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있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천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에 복이 있습니다. 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 보시기에 복 있는 사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기도함으로 말씀 마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복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말씀하시는 부분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음 천국에 가기를 원하셨고 그래서 그 천국을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가이 세상에서 참 여러 쉽지 않은 길을 걷고 있지만 그것이 미래를 보았을 때 결국 천국에서 다 위로를 얻고 보상을 받음을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저희의 소망이 되어서음 힘을 입어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주시고 가르쳐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