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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그 해석이랑 생각에 대한 얘기를 할 거라서 이렇게 좀 생각해 보라 해 봤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어떤 현상에 대해서도 다르게 해석하면서 그렇게 살아가요. 그 해석을 하는 그 생각이라는 것이 어떤 환경이나 배경 상황에 따라서 다 달라질 수가 있기 때문이에요.음 만약에 어떤 두 사람이 가까이에서 같은 그런 받는
것들로 공유하면서 자랐다면 그 생각이 그래도 비슷비슷할 거고요. 만약에 아예 다른 데서 잘한 사람이다. 그리고 나중에 만났다 하면 좀 쟤는 다르다 이렇게 생각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게도 느껴질 거예요. 그리고 그 각각의 사람들을 아우르고 있는 그 사회라는 것도 개인의 생각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같은 사회 속에 있다고 한다면 비슷한 생각을 할 확률이 높은 거예요.
예수님께서 이제 살펴볼 텐데 말씀 살펴볼 텐데 앞에 두고이 말씀하시는이 사람들에게도 그 사회가 어느 정도 영향을 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생각들에 영향을 주던 것 중에 율법이 있었을 것이고요. 선지자들의 말씀 있었을 것이고 그리고 그 외에 다른 여러 세상의 가르침들도 있었을 거예요. 특히 이스라엘은 그 당시에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죠. 그래서 로마법이 가장 그 강력한 법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래도
율법이 패해진 상태는 아니었어요. 그 당시에 로마가 어느 정도 그런 것들을 포용하면서 자율성을 주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율법도 살아 있었고 사람들은 그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할 수 있었습니다.음 그런데 그 사회에 문제가 있었어요.
그 유대 사회의 율법을 하나님이 주신 그 의미대로 그대로 이해하지 않은게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단단히 오해해 놓고요. 그것이 맞다고 확신을 하면서 살았어요. 그러니까 율법을 어떻게 이해한 거냐면 굉장히 피상적으로 겉으로 문자적으로 드러난
것만 확실한 것이다라고 생각을 했고요. 그 확실하게 언급되지 않은 적혀 있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는 해석의 자유함이 있다고 그렇게 보았습니다. 거기까지는 괜찮았어요. 근데 그들은 하나님을 고려하지 않은 그런 해석들을 했고 자기들이 이해하기
편한 방식 그리고 자기들이 그렇게 살아내기 편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적용을 했습니다. 지난번에 살펴봤던 그 말씀 중에 19절에 나오는 것처럼 지금 마태복음 5장 21절부터 볼 건데요. 네, 21절 펴시고 19절을 제가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다 펴셨나요?
네. 그러므로 누구든지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 사람들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을 행하여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걸음을 받으리라. 네. 이렇게 자기만 그렇게 살지 않고요. 다른 사람들에게도 잘못되게 가르치고 그렇게 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오늘 우리는 산상수훈 세 번째 말씀 들어 볼 거예요. 율법에 대한 악한 해석과 참된 해석을 주제로 말씀을 전할 겁니다. 율법에 대해서 이스라엘과 그 율법을 그 주신 분이신 예수님은 과연 어떻게 생각이 달랐는지를 알아볼 겁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씩 살펴볼 예수님의 권이 있는이 말씀들은 율법에도 없었고요.
다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그런 가르침들이 여기 적혀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읽다 보면은 마치 율법이 완벽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그래서 앞서 예수님은 17절에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패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그리고 18절
이후로는 우리가 이제 살펴보았듯이 기록된 말씀은 1.1액도 패하지 않고 다 이루실 것이다라고 말씀을 하셨고 그것을 잘못 이해하고 잘못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 매우 강하게 경고를 하셨어요. 예수님의 이번 말씀 이제 볼 말씀에 대해서 구약이 부정되는 것이 아니고요. 더 잘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5장
21절에서 48절까지음 예수님은 크게 다섯 가지의 가르침을 전하십니다.음 원래는 다섯 개 모두 살펴보려고 했는데 시간상 앞에 세 개만 살펴보고 다음에 나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어네 각각의 단락에 소제목이 있어서 알기 쉽게 되어 있어요. 일단 다섯 개 다 살펴보면은 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맹세하지 말라,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원수를 사랑하라입니다. 오늘 세 번째까지 알아볼 거예요. 근데 다섯 번째까지 공통적으로 이제 형식, 공통적인 형식이 있어서 그건 먼저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예수님은 어이 대부분의 단락에서는 앞부분에 유대인들이 잘 알고 있던 구약의 율법을 좀 종합해서
언급을 하십니다. 어떤 내용을 너희가 들었으나 이렇게 얘기를 하신 다음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뒤에 확장된 율법에 율법을 권위를 가지고 말씀을 하십니다. 여기에서 나는이라는 말을 반복을하면서 권위를 가지고 말씀을 하시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다음에는 그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부연 설명을 하시거나 아니면 또 다른 가르침을 덧붙여서 그들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한번 우리가 다른 부연 설명 없이이 소제목들만 누군가가 얘기를 해
준다고 생각을 해 볼까요? 그러니까 누군가가 노아지 마라. 간음하지 마라. 맹세하지 마라.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마라. 원수를 사랑하라.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그러면 그 얘기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들을 것 같아요? 왜 나한테 그런 얘기를 하지?
이런 생각이 아마 될 겁니다. 왜냐면 충분하지 않아서 그래요. 충분하지 않은 말이라서 그렇습니다. 무엇에 대해서 어떻게 하라고는 적혀 말하고 있는데 근데 왠지 맹목적인 강요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왜 그렇게 해야 되는지가 빠져 있어서 그래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냥 그렇게 끝내신게 아니고 충분히 그 제자들과 우리에게
납득이 갈 수 있는 말을 뒤에 붙여 주셨습니다. 사실은이 가르침이 모든 세상의 사람들에게 납득하는 말씀은 아니에요.이 앞에 있던 제자들, 참 제자들, 그리고 우리처럼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에게 납득할 수 있는 말씀을 하신 겁니다. 제가 아까
대부분의 단락에서 맨 앞에서 율법을 언급했다고 말을 했었는데 그렇게 말을 했던 거는 마지막 소제목 다섯 번째는 원수를 사랑하라인데 거기서는 성경에 없는 내용이 나오기 때문이에요. 여기서 내 이웃을 사랑하고 내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라는 내용 이렇게 있는데이
얘기는 정확히 성경에는 없는 내용입니다. 다음에 살펴보겠지만 잠깐 말씀을 드리면 왜 이렇게 말씀하셨는지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어요. 유대인들은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다음에 알아보고요. 우리는 앞에 세 개 먼저 알아보겠습니다. 첫 번째
놓지 말라부터 살펴보겠습니다. 21절 보시면 말씀에 일단 생략하겠습니다. 좀 길어서. 21절을 보시면은 옛 사람에게 말한 바가 나옵니다.이 구절은 다음 이어지는 말씀이 구약의 율법임을 뜻을 합니다. 그래서 그다음에 율법이 나오는데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라고
라고 살인하지 말라라는 계명을 언급하셨어요. 여기서 살인은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을 고의로 죽이는 것을 의미하고요. 그 살인의 결과는 바로 심판을 받는다라는 내용의 율법입니다.이 말씀과 유사한 말씀이 구약에 여러 번 등장을 해요. 십계명 중에도 있고요. 다른 율법에도 등장을 합니다. 제가 좀 말씀을 드리면 출애굽기 21장 12절에 사람을 쳐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나 레위기 24장 17절에 사람을 쳐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 이렇게 말씀하고 있고요. 그리고 민수기 35장 16절에서 21절은 같이 찾아보겠습니다. 좀 길어요. 민수기 35장 16절부터. 네. 민수기 35장 16장. 16절부터 읽어 드릴게요. 만일 철장으로 사람을
쳐죽이면 그는 살인자니 그 살인자를 반드시 죽일 것이요. 만일 사람을 죽일 만한 돌을 손에 들고 사람을 쳐 죽이면이는 살인한 자니 그 살인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 만일 사람을 죽일 만한 나무 연장을 손에 들고 사람을 쳐죽이면 그는 살인한 자니 그 살인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니라. 피를 보복하는 자는 그 살인한 자를 자신이 죽일 것이니 그를 만나면 죽일 것이요 만일 미워하는 까닭에 밀쳐죽이거나 기회를 엿보아 무엇을 던져죽이거나 악귀를 가지고 손으로 쳐죽이면 그 친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니이는 살인하였음이라 피를
보복하는 자는 살인자를 만나면 죽일 것이니라이 말씀들을 종합을 해보면 살인에 대한 심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어요? 뭘까요? 사죽음.
네. 사용 죽음입니다. 기본적으로 사람을 죽이면 그 사람도 죽음을 당하는 거예요. 근데 다 그렇지 않았어요. 아가 없이 우연하게 사람을 죽 죽인 경우는 예외였습니다. 이것이 이제 22절부터 도피성이 나오면서 내용이 나옵니다. 고의로 살인한
사람들에게 임할 심판이 죽음을 의미한 거예요. 굉장히 두려운 법 조항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만약에 우리나라 법에 누군가를 살인하면 갇치는게 아니고 사형이다 하면은 여러분들은 어떻게 사실 거 같아요? 지금보다 훨씬 그 사람을 죽이는
그것에 대한 조심성이 커질 겁니다. 그래서 혹시 모르죠. 우발적으로 이렇게 했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것마저도 이제 조심할 거예요. 왜냐면 모르잖아요. 이제 가서 증명해야 되는데 고위로 안 죽였다라는 것을 증명하기도 어려운 겁니다. 그래서 굉장히 힘들게 그렇게
두렵게 살아갈 거예요. 왜 그래요? 그 심판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에요. 다시 본문으로 이제 마태복음으로 돌아와서 그 다음 구절에 이런 율법이 있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라고 이제 말씀을 하세요. 이것은 왜 이렇게 말씀을 하셨냐면 이미 그들이 익히 알고 있던 내용이라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명확하게 살인하지
말라라는 그 율법을 유대인들 너무 잘잘 알고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은이 율법을 잘 지키고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을 겁니다. 왜냐면 살인을 안 지은 사람이 많았을 거니까요. 그런데 다음 절 22절을 보면은음 유대인들에게이 계명은 단지
우발적인 행동을 막아주는 장치 정도였다라는게 확실해 보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22절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그 전 구절이 이제 너희가 들었으나 해서 그러나라고 끝납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 살인까지는 안 한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했던 건가요? 뒤에 보면 노했고요. 라가라 했고 라가는 바보라는 욕설입니다. 그리고 미련한 놈이라고 했던 겁니다.
그 유대 사회에서 그렇게 할 수도 있었는데 그리고 서로 형제 관계일 제자들끼리도 그렇게 할 수가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이게 이제 문자적으로만 보니까 살다 보면 남한테 그렇게 한마디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어요. 바보 아니야 막 이렇게. 근데 그 결과가 심판을 받게 되고
공에 잡혀가게 되고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는 거라고 하시는 거예요. 좀 심한 거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들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게 예수님께서 단지 듣기 안 좋으니까 서로 나쁜 말 하지 말라는 의미로 경고의 의미로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에요. 다음에 살펴볼
거지만 가음하지 말라라는 소 주제에서이 부분에 대해서 더 명확하게 말씀하신 것이 있는데요. 그다음에 알아볼 거지만 음욕을 품은 자는 이미 그 마음에 간음을 한 거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그리고 요한일서에서는 요한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한일서 3장 15절.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점점점. 형제를 마음에서 미워한 것은 사실 살인과 다르지 않습니다. 본질상 미움이라는 감정이 곧 살인할 때 감정과 같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웃에게 그렇게 말하곤 했던 거예요. 그들이 왜 그렇게 했을까요? 왜 그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노하고 라가라하고 미련하다고 할 수 있었을까요? 그들은 그것이 합법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율법을 문자 그대로 잘 이해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고요. 그렇게 정당화한 것이고
그러니까 살아 살인은 안 하면 이제 되는 것이고음 살인은 안 했으니까 율법은 잘 지킨 것이고 율법을 잘 지켰으니까 이제 괜찮다라고 생각을 한 겁니다. 이것이 단지 율법이 정확히 있었기 때문에 다행히 정확히 있었기 때문에 그 살인들을 막아 준 것이지 그 외에 적혀지지 않은 나쁜
죄들이 행해지는 것은 이제 쉽게 허용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에 아무리 미워하는 마음이 생겨도 그리고 그것을 마음을 마음껏 표출을 해도 살인만 아니면 괜찮은 것으로 생각을 했던 겁니다. 여러분들 축구 경기 재밌게 보시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아주 가끔 봤었는데
자님들 죄송합니다. 축구 축구기에서 축구 경기 보다 보면은 경기가 거칠러질 때가 있어요. 그래서 다치는 장면이 많이 보여요. 그래서 저희 아내는 너무 아프겠다 그래서 보기 힘들다. 이런 얘기도 자주 해요. 그래서 같이 보기 되게 어려워하거든요. 근데 경기가 이제 과열되다 보면은 승부욕 때문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공만 보는 거예요. 그래서 다른 사람은 안 보이고 공만 보다가 다른 사람 이제 차기도 하는 거죠. 그래서 그렇게 많이 다쳐요. 그거를 이제 심판을 심판은 알고 있어요. 그래서
어느 정도 뭐 공을 먼저 차고 이제 어떻게 이렇게 되는 거는 좀 넘어가지곤 합니다. 근데 그걸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냐면 공을 먼저 차고 다른 사람 발을 이렇게 찍어요. 그렇게 해도 안 걸릴 것 같은 거예요. 그거를 이제 용인해 주는 걸 아니까 심판이 봐 주는 걸 아니까 그렇게 해도 넘어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다치게 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죠. 공을 먼저 찾으니까 그 룰에 위배되지 않았다라고 생각을 하는 겁니다. 유대인들이 이렇게 비슷하게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자기 방식대로 해석을 한 거예요. 살인 안 했으니까 괜찮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근데 예수님은 뭐라고 하셨나요? 그것이 틀린 거라고 말씀을 하신 겁니다. 그들이 율법을 오해했다고 여러 차례 말씀을 하셨어요. 그들의 문제는 율법의
문자를 문자만 그대로 보고 그 율법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그 선한 의도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겁니다. 그리고 그 사회 안에 있었던 예수님을 따르려는 제자들도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다 생각하니까 자연스럽게 그 사회 융화되어서 그게 죄가 아니라고
생각을 했을 겁니다. 그러한 악한 생각을 예수님은 아신 거예요. 그래서 그러니까 혹시라도 그런 원망들을 만한 일을 특히 형제에게 했다면 그리고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이 악하게 표출이 되었다면음 예물을 드리기 전에 그 형제에게 가서 화해하라고 그다음 절에 말씀을 하십니다. 23절 24절입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내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이 이 장면을 상상해 보면 굉장히 흥미로운 장면이에요. 먼저는 다른 사람에게 원망들을 만한 말을 한 겁니다. 예를 들면 노예거나 라가라고 했거나 미련한 놈이라고 했거나 그렇게 했던 겁니다. 그리고 나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께 이제 감사의 의미로 나아간 거죠. 아니면 자신의 죄를 이제 속하기 위해서 재물을 가져간 겁니다. 하나님께 이제 드리기 직전이에요. 근데 그때에 그 일이 생각이 난 겁니다. 그때 어떻게 하라고 하시냐면 예물을 잠깐 두고
먼저 그 형제에게 가서 화해하고 그다음을 예물을 드리라는 그런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우선 예물을 드리기 전에 사과하고 오라라고 말씀을 하신 겁니다. 왜 이렇게 해야 할까요? 되게 번거로워 보이죠? 다시 이제 내려가서 화해하고 올라가야 되는데 이미 올라왔는데 시간 너무 많이 걸릴 것 같고 어디 있는지도 사실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근데 가서
화해하라고 하신 겁니다. 아무리 그 시간이 많이 걸려도 화해하고 와야 되는 거예요. 비효율적이라도 그렇게 하는 겁니다. 잘 아시겠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라고 하신 하하신 이유는 그들이 그렇게 해야 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제사보다 먼저는 그
마음을 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네. 제사도 율법에 나와요. 그렇죠. 근데 유대인들은 드려야 되니까 드리는 것으로도 또 생각할 수 있었어요. 제사가 유대인에게 어떤 관래나 전통으로 그것을 하나님을 또 생각하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할 수도 있었던
겁니다. 그것도 잘못 생각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완전히 빼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잘못된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재물을 드리기 직전이라도 급하게 화해서 화평하라.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겁니다. 그리고 그다음 구절에는 또 다른 급하게 행동해야 하는 경우가 뒤따라 나옵니다. 25절 26절입니다.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리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과 염려하라. 진실로 내게 이르노니 내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이번에 나오는 사람은 형제는 아니에요. 자신을 고발하려는 자가 등장을 합니다.이 사람은 제자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나를 고발할 수도 있고요. 재판관에게 데려갈 수도 있는 사람입니다. 형제는 그렇게 하지 않아요. 아마이 사람에게 돈을 좀
빌린 거 같아요. 그때 급히 사화하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하와라는 말은 소송을 해결하다라는 말이고 원어적으로는 친구가 되다라는 의미의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잘 해결하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놓아지 말라라는 말씀과는 크게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앞에서
살펴봤던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을 급하게 화해하라라고 말하신 말씀에 대응이 되어서음 형제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원망들을 만한 그런 일이 있다면 그것을 급하게 해결하라라고 덧붙터 덧붙여서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추가로이 말씀은 5장 38절부터 그 원수들에 대한 말씀이 나오는데 악한 자들이 나와요. 거기랑 또 연결이 됩니다. 왜 이것을
이렇게 해결해야 하냐? 45절에 나오는데 원수를 이제 사랑하라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리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분이시고요. 원수를 사랑하시 사랑하는
것이 우리가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그분의 아들다운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네. 쭉 정리를 해보면 노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왜 그래야 하냐면 노하는 것은 살인과 같기 때문입니다. 노하는 것이 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에 표출된 것이고
표출된 것만 달랐을 뿐이지 그 앞에 과정은 살인과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노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미 원망들을 만하게 말이나 행동을 했고 그것이 그 뒤에 생각이 났다면 그 사람이 형제든 이웃이든 가서 풀어야 한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구약의 율법을 제대로 해석해서 지키는 사람인 겁니다. 네. 다음 소주 주제는 간음하지 말라입니다. 27절부터 나옵니다. 27절에 보면은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라고 하셨습니다.음 가음하지 말라라는 것도 계명 중에 하나이고요. 역시 유대인들이 잘 알고 있던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또 한번 의미를 확장하세요. 28절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놓하지 말라는 말씀에도 그 그랬었지만 그들에게는 이번에도
전혀 처음 듣는 말씀이었을 거예요. 구약에서 간음죄의 결과가 어땠나요? 죽었습니다. 간음을 한 두 사람 다 죽었어요. 그런데 실제로 간음을 하지 않더라도 그 마음을 마음에서 여자를 보면서 음욕을 품는 것이 그 마음에서 이미
간음했다고 말씀을 하신 겁니다. 그것이 죽음에 이르는 죄다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냐? 그 생각이 그대로 행동으로 발전될 수 있어서 그렇게 말씀하셨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것보다는 그 마음이 깨끗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 그래서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율법에 가음하지 말라고 나와 있으니까 그 마음에서는 면제부를 받은 것처럼 그
마음에서 음행을 해도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라고 생각을 했던 겁니다.음 마음에 대한 것은 율법에도 없고요. 다른 사람들도 알 수 없는 죄였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기 쉬웠을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의 죄를 지은 결과로 그 마음에 하나님을 첫째
자리에 두는 것을 실패했을 것이고요. 그저 하나님 외의 것으로 더 채우려는 그런 상태였을 겁니다. 여기서 사실 단순히 여자를 보는 것이 죄라고 하진 않아요. 그 마음의 죄를 짓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다음에 이렇게 말씀하세요. 29절 30절입니다. 만일 내 오은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내버리라. 내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내 오른손이 너로 실축하게 하거든 찍어내버리라. 내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어떻게 늘리실지 모르겠어요. 일단 실족이란 단어는 넘어짐을 의미하고요. 백체는 신체의 부분을
의미합니다. 왜 예수님은 이렇게 극단적으로 느껴지게 경고를 하셨을까요? 우리 육체가 비록 죄 있는 육체이긴 한데 여기서 눈은 비교적 잘못이 적어요. 눈은 단순히 본 겁니다. 눈이 보고 난 후에 나의 반응이 잘못된 거예요. 그것을 키워 내 생각이 잘못된 겁니다. 예수님 곁에
남자만 있던게 아니에요. 여자도 있었어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셨죠. 예수님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이 다른 무엇보다도 바로 하나님이었고요. 하나님이셨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에요. 오른손도 비슷해요. 오른손도 마지막에
아마 죄를 짓는데 사용이 되었을 거예요. 사실 그 마음에 여러 악한 것은 다 이미 되었고 그다음에 마지막에 한 겁니다. 그러니까 수행하는 역할을 했던 거죠. 그러니까 손에 사실 문제가 있어서 죄를 지은 것이 아니고 내 마음에서 먼저 죄를 지어서 육체가 죄를 짓게 된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거예요. 눈을 빼고 오른손을 찍어라. 예수님도음 아셨을 거예요. 마음의 문제라는 것을 아셨을 겁니다. 그것이 아주 직접적인 문제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 죄에 대해서 그러나 우리 지체에
간접적인 원인이 있다라고 한다면 그것이 간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한다면 그 지체를 없애는 것이 낫다고 말씀을 하신 겁니다. 결국에 죄를 짓는데 이용을 한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이것을 들었을 때 극단적으로 이제 느껴지는 겁니다. 그럼 우리가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까요? 하나님은
죄를 짓게 되는 그 과정 전체를 싫어하시는 겁니다. 그것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상관없이 둘 다 극도로 싫어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사람이 온 몸과 아니면 일부의 몸과 마음을 이용해서 죄를 짓는 것을 싫어하시는 거예요. 우리의 몸과 마음은 우리가 지음받은
목적에 맞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데 온전히 사용되어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다음을 보시면 그 뒤에는 또 다른 가는 죄가 나와요. 율법에서는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써 주면 된다고 하였습니다.이 말씀이 신명기 24절 1절에 있는데요. 읽어 드릴게요.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것을 기뻐하지 않으면 이혼 증서를 써서 집에서 내보낼 수 있다라는 말씀입니다. 분명히 수치되는 일이나 일이라는이
단어의 성적인 의미도 포함되어 있어요. 또 다른 의미로 뭐가 있냐면 불쾌하거나 부정한 것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들은 후자로 이해를 했어요. 그리고 후자가 옳게 보입니다. 왜냐면 간음은 사형이에요. 그래서 그보다 약한 이혼 사유는
죽음 대신 이혼 증서로 이제 대체하고이 관계를 끝낼 수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이혼하기 위해서 아내에게 어떤 것이 이제 불쾌하다 이렇게 말하고 부정하다고 말하면서 이혼 증서만 주면 이혼은 가능한 것이다라고 이렇게 이해를 하고 말하던 사람이 있었던 겁니다. 그 율법을 가지고 교묘하게
이용하던 사람들 그리고 그 말을 그냥 그렇게 이해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32절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이는 그로 가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가능함이니라.
그러니까 아내가 음행한 이유가 아니라면 이혼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신 겁니다. 왜냐면 음행하지 않았는데 이혼한 것은 그로 간음하게 한 것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그 아내로 간음하게 만드는 거죠. 그리고 또 다른 피해자가 있습니다. 그 버림받은 아내와 재원한 남자. 그
남자도 가음한 것이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남이 죄를 짓게 만드는 것. 그것은 하나님이 더 악하게 보시는 죄입니다. 이들은 이혼이 불가피한 상황에 그렇게 하라고 했던이 모세 율법을 이용해서 쉽게 이혼할 수 있게 이혼을 했었어요. 여기서 예수님은 그것을 이제 지적한 것이고 그렇게 말하신 이유에 대해서 마가복음 10장 2절에 바리새인과의 대화에 더 자세히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0장 2절 찾아볼까요? 마가복음 10장 2절입니다.
마가복음 10장 2절에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묻되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르니까 대답하여 이르시되 모세가 어떻게 너희에게 명하였느냐 이르되 모세는 이혼증서를 써주어버리기를허락하였나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시되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이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이 한몸이 될지니라. 이한즉 이제 아니요 한이니 그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그 한 몸을 사람이 나눌 수 없다고 말씀을 하신 겁니다. 그래서 사람이 나눠서 그들로
가음하게 하면 안 됩니다. 이번 주 소주제를 좀 정리하면 마음으로 짓는 간음도 마음에 간음한 것이다. 음행 외의 이유로 이혼하면 그것은 그 전처와 그에게 장강한 사람이 서로 간음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겁니다. 그리고 사실은 그 가음죄의 형벌은 죽음입니다.
다음 소주제 알아보겠습니다. 맹세하지 말라입니다. 이번에는 어떻게 말씀하시냐면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내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라고 옛사람들에게 이제 말했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맹세와 서약에 대한 구약의 여러 구절들이 있어요. 그 구절들을 종합해서 말씀을 하신 겁니다.음 조금 또 말씀을 드리면 레위기 19장 12절에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민수기 30장 2절에 사람이 여호와께서 결심하고 서약하였으면 깨뜨리지 말고 그가 입으로 말한 대로 다 이행할 것이니라. 신명기 23장 21절에서 23절 조금 긴데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갑기를 더디하지
말라.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내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그것이 내게 죄가 될 것이라. 내가 서원하지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리라. 그러나 내 입으로 말한 것은 그대로 실행하도록 유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내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악한 언약한 대로
행할지니라.이 이 구절들을 쭉 보면은 구약의 하나님이 맹세하신 맹세하는 것을 허용한 것처럼 보여요. 그리고 예수님은 어떻게 말하는 것처럼 보이냐면 맹세를 이제는 하지 말라 이렇게 막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도 맹세를 하셨고요. 구약에서 맹세한 것들이 몇몇 장면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예수님이 이제 틀리게 말씀하신 거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눈치셨겠지만 이번에도 그렇지 않습니다. 구약에서 분명히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라고 했지만 그것을 듣고 이스라엘은 헛 맹세를 하나님에 대해서 하지 않았고요. 다른 것으로 맹세하기 시작했던 겁니다. 34절부터 볼게요. 보면 어떻게 맹세했나요? 하늘로 맹세했고요. 땅으로 맹세했고 예루살렘으로 맹세했고 자기 자신의 머리로 맹세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도 이제 맹세를 하지 말라라고 하셨어요. 그 이유는 각각 그 뒤에 이어집니다. 하늘에 대해서 맹세하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보좌이기 때문이에요. 땅으로는 하나님의 발등상이기 때문입니다. 예살렘은 큰 임금의
성이기 때문이에요. 자신의 머리는 그 머리에 난 털 가닥도 흘고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맹세를 하나님께서 하신 경우에 그것을 하셔도 괜찮았던 이유 그 이유는 맹세를 하나님께서는 100% 지키시는 분이시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사람은 그 맹세가 지켜줄 수도 있고
운이 나쁘면 안 될 수도 있는 경우가 있잖아요. 만약에 어떤 사람이 사실을 말하고 있어요. 근데 그것이 그 말 그대로 사실 같아요. 그러면 맹세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맹세 맹세가 필요한 이유는 그 때는 그 말이 그렇게 사실 같지 않은 거예요. 그럴 때에 필요한 겁니다. 그러니까 이것저것 가져와서 맹세를 하고 그래야 믿어 주니까 그렇게 했던 겁니다.
근데 이렇게 했을 때 문제는 뭐냐면 이런 애매 모호한 상황. 그러니까 그대로 될지 아닐지 모르는 그런 상황에 대해서 맹세를 하는 것이 지금 확인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것이 미래에 확인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만약에 미래에 진짜로 그렇게 됐으면 상관없어요. 그런데 상관 있는 것은 그것이 거짓이 될 수 있는 겁니다. 미래의 결과가 이제 나왔는데 과거에 나는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운이 안 좋게 아니었다 이렇게 말하기는 이미 늦은 거예요. 거짓말을 이미 해 버린 겁니다. 결국에 거짓을 말한 것이고요. 그 지켜질 수 없다는 그 가능성을 알고도 맹세를 한 것이 결국 자신으로 하여금
거짓말, 거짓 맹세를 하게 만드는 겁니다. 자신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드는이 맹세를 다른 것 여기서는 하늘 땅 예루살렘 자신의 머리를 가져와서 이렇게 하는 것을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신 겁니다. 왜냐면 그것이 모두 자기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그런 것이 하나도 없고 모두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37절에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하라. 이에 지난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우리는 확실한 것만 말을 해야 되고요. 그 이상 이하로 말하는 것을 맹세하는 것을 조심해야 됩니다. 네. 그러면 오늘 내용을 좀 정리를 해 볼게요. 오늘 배운 내용
노하지 말아야 되고요. 간음하지 말아야 되고요. 맹세하지 말아야 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예수님이 어떻게 생각을 하셨는지 그것을 생각하면서 모든 부분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하기를 원합니다.이 이 말씀 준비해 하면서 특히 마음의 죄뿐만 아니라. 모든 죄, 행위의 죄, 마음의 죄 다 조심해야 된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해야 될 것은 하나님에게 정결한 마음으로 그리고 그 기도로 나아가서 영광 돌리는 것이고 우리가
하지 말아야 될 것은 죄라는 그 정리가 되었습니다. 죄의 유혹이 정말 강한 유혹입니다. 그것이 표출되지 않는 죄라고 한다면 그래도 어느 정도 죄어가 될 수 있어요. 요즘 그렇죠. 그래 보여요. 네. 근데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죄는 제어하기가 어려 어렵습니다. 제가 이제 마음을 보지 못했지만 저만 봐도 그렇습니다.
유대인들도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것이 불가능하다. 불가능한 말씀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을 겁니다.이 세상 사람 중에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이 없잖아요. 마음의 죄까지 건드리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달라요. 우리 안에는
누가 계신가요? 예. 성령님이 계십니다. 성령님이 내주하고 계십니다. 그 당시에는 달랐어요. 성령님이 오시기 전입니다. 사도행전 공부하고 있는데 아직 보해사가이 땅에 오시기 전입니다. 그래서 보해사가 오기 전에는 성령님의 내주하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탄의 공격하는
걸 보면은 가롯 유다가 이제 공격을 당해요. 요한복음 13장에 2절 읽어 드릴게요.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롯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밖에서 이제 생각을 말을 한 거죠. 들어오지 않았어요. 근데 처음에
이렇게 했는데 27절을 보면은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내가 하는 일을 속해하라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예 들어가 버렸어요. 아마가 유다는 이미 마음에 그 이제 사탄이 마음을
졌잖아요. 그 마음에 그 생각이 꽉 차서 사탄이 이제 들어온지도 모르고 인식하지도 못하고 자기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라고 생각을 했을 겁니다. 이것이 이제 에덴 동산의 하와를 공격한 그것도 비슷해요. 밖에서 이제 생각을 계속 하게 만들었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성령님이 이제 내주하고 계십니다. 분명히 들어오지는
못해요. 그래서 밖에서 하는 말들이 분명히 있겠지만 그래도 성령님과 더불어서 우리는 이길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모든 악한 생각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최근 그 수요일에 몇 차례로 이제 목사님께서 죄에 대한 것을 많이 다뤄 주셨는데 거기에 불평도 있었고요. 불만도 있었고 여러 가지 다뤄 주셨어요. 이런 것들 나의 평안하지 않은 상태 그런 것들이 분명하게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겁니다.
만약에 하나님으로 충분하다면 이런 악한 생각이 들어와도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아요. 왜냐면 우리에게 그런 소망이 항상 있는 상태이면 이길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제 그런 안 좋은 상황들, 그런 상황들을 하나님께서 다 허락하신
것이다라는 것으로 잘 받아들이면 상황이 어떻든간에 우리가음 성령님과 함께 평안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내 생각을 다스리는 연습, 제어하는 연습을음 하나님의 그 힘을 임입어서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올바르게 생각하고 그것을 해석해서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예배와 원하시는 우리의 인생 그것이이 땅에서 어떤 모습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배우고 기도해야 됩니다. 우리의 모든 인생이 모든 그 시간들이 주님께 예배가 되는 영광 돌려지는 인생이라면 제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그 인생이이 세상에서 가장 갑치고 행복한 인생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렇게 말씀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구약의 율법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 사람들과 그것을 제대로 알게 해 주신 예수님의 그 장면을 보았습니다.음 주님께서는 마음에 댓글이라도 그것을 괜찮다라고
생각하지 않으시고 악한 것으로 생각하심을 생각해 보게 될 때 우리 마음이 얼마나 깨끗해야 될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주님 참 죄와 싸우는 것이 참 어렵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 하나님 그리고 성령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심으로 우리가 힘 있게 그것들을음 이겨낼 수 있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것이 처음에는 분명히 어렵겠지만 계속해서 주님과
함께하고 성령님과 함께해서 이겨가고 내 인생이 더 하나님과 가까워짐을 또 느끼게 하여 주시고 항상 우리 가운데 함께 해 주셔서 우리가 외롭게 하여 주지 마시고 항상 저희에게서 떠나지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오늘 이유 일정도 주님께 부탁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