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교회의 시작과 특징 (행 2장)

김남혁 · 2026.01.31 · 사도행전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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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장은 예수님께서 그 죽으신 다음에 죽으신 몸 그대로 다시 부활하심으로 사도행전 1장이 시작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이 땅에 오신 목적을 완벽하게 십자가에서 다 이루시고 그 예언대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은 우리 새로운 은혜의 시대인 교회의 시대를 시작하는 것을 알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제 부활하시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시기까지 약 40일 동안이 땅에 계셨는데 그때 제자들을 참 위로하고 많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주된 그 가르침은 너희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보고 듣고 행한 바를 기억하고 나의 증인이

되어라고 말씀하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실제로 그 예수님의 제자들 11명은 예수님이 공생의 시대에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 직접 눈으로 본 사람들이었고 또 예수님이 부활하셔서이 땅에 계실 때 직접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이라서 그 증인으로서의 자격은 사실 충분하였습니다. 근데 예수님께서 한 가지 더 명령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 기억나시나요? 혹시? 예. 바로

성령님을 기다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성령님을 너희들이 받아야 진정으로 예수님의 증인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아서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된다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그 성령님을 그냥 기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기도에 힘써서 그 성령님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어,이를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의 우리도 또한 예수님의 증인으로서 성령님을 받은 것에 감사하였고 또한 우리가 어떠한 역사를 바 바라고 기다릴 때에는 반드시 기도가

필수 요건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또한 두 번째로 1장 후반부에서는 그 11명의 제자 중인 한 사람이 베드로가 말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근거해서 제자 한 명을 더 선출해야 된다고 얘기를 합니다. 당시 예수님의 제자로서 사도로서 직분이 주어진

사람은 총 11명이었습니다. 베드로, 야,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 빌립, 그리고 도마, 바둘로메, 마태, 알페이 아들 야고보, 셀로신,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였고 여러분 잘 아시다시피 가른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죽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으로 한 명이 났습니다. 그리하여이 사도들은 하나의 방식을 정해서 새로운 사람을

한 명 더 어서도록 선출을 하게 됩니다. 그건 누구냐면 마디아라는 사람입니다. 마디아는 과거부터이 11명의 제자들과 항상 함께 다니던 자들이었습니다. 또한 마디아는 또한 예수님을 항상 가까 가까이해서 지켜보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이 새로운 제자를 선출하는 방식을 볼 때 좀 이상하게 의아한 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왜냐면은 성경에 보면 재비뽑기를 통해서 마디아를 선출했다고 하는데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그 주권을 인정하는 상황에서 제자들을 제자를 선출하는 사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콧방귀] 당시에 아직 예수님은이 땅에 오시지 않았고 성경도 아직 완성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 구약 시대 때 사용했던 그 재비뽑기라는 방식을 사용해서 오로지 하나님의 주권을 의뢰해서 그 제자를 한 명 더 선출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잠언 16장 33절에 보면은 제비는 사람일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고 또한 잠언의 말씀에 있습니다. 이처럼 베드로와 사도들이 예수님이 약속하신 그 12 약속하신 12명 12명의 사도를 구성하는 모습을 보면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살려하는 모습을 보았고 우리 또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허락하심을 허락하심이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는 것에 교훈을 받았습니다. 이제 사도행전 1장을 통해서 그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약속하신 그 성령님의 인재를 인재가 오실 것을

다 준비가 되었습니다. 오늘 살펴보실 사도행전 2장은이 교회의 특징을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교회의 특징이란 다른 말로 말하면 교회가 세상과 어떻게 다른가를 이야기를 합니다. 세상과 다 교회가 세상과 다른 그 주된 이유는 성령님을 우리가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교회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교회는 세상과 구별된다입니다. 두 번째는 교회는 증언한다입니다. 세 번째는 교회는 함께한다입니다. 첫 번째 교회는 구별된다에 대해서 함께 나누어 보겠습니다. 그럼 말씀을 먼저 보시겠습니다. 사도행전 2장 1절에서 13절 말씀을 같이 보시겠습니다.

예. 제가 읽도록 하겠습니다. 고순절 날이 이름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보였더니 홀이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의 충만함을 받고 성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그때 한대인들이 천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기의 방으로들이 말하는 것을 신기하게이라이 말는 사람들이 다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 각 사람이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됨이냐 우리는 바데인과 메데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 유대와 갑바도아 본본도와 아시아 반빌리아 애온리아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마터온대인과교 들어온 사람들과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언어 하나님의 일을 말함을다 하고 다라며당하며이 어찌냐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 그들이 새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사도행전 1장 4절 1장 1절 2장 1절부터 4절까지는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의 그 임재의 모습을 자세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사실 과거에는이 땅에 일시적으로 오셨던

분이십니다. 영원히 계속해서 내주하셨던 분인 아니셨고 이제 사도행전 2장을 통해서 이제는 일시적으로 성령님이 내려오시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때까지 구원받은 자와 항상 함께 하시러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새로운 성령님의 임재는 지금 시작된 것입니다. 성령님의 임재로 이제 교회라는

은혜의 때가 시작된 것입니다. 당시 모습은 당시 이때 모습은 제자 12명을 포함하여 약 120명의 사람들이 어느 한 장소에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라는 그 건축물이 아니라. 어떠한 한 장소에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절에 보시면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소리가 가득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이는 이는 실제로 강한 바람이 뭐 들이쳤다는 것은 안 하고 강한 소리라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상상해 볼 때 그 비행기가 이륙할 때 그 큰 소리 같이 엄청난 그 괴음이라는 것을 좀 상상해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2절에서 그 성령님의 인재를 우리가 청각적으로 표현하였다면 3절에서는 시각적으로 이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말씀에 보시면 불이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콧방귀] 우리는 이와 같은 장면을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보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어이 장면은 우리 모세 때 홍해 바다가 갈라지던 것처럼 사실 초자연적인 현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시 성령님의 인재를이 초자연적인 현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이 이 사건을 통해서 약 120명의

사람들은 이제 새롭게 세상과 구별되는 것을 구별되어지는 역사를 맞이합니다. 당시 현장에 있던 120명의 사람들은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을 받음으로써 새롭게 세상과 구별이 시작된 것입니다. 추가로 세상과 이렇게 우리를 구별하게 하신 그 성령님의 선물은 그 더 특별한 점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이어지는 말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3절에 아까 읽었던

것처럼 불의 혀가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다고 되어 있는데요.이 불의 모양을 보시면 하나의 단수 형태로서 그 모다불처럼 하나의 모습이 아니라. 여러 갈라지는 불의 혀처럼 여러 개의 모습으로 복수의 형태로

표현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불을 복수의 형태로 표현하는 그 의미는 우리 예수님을 믿은 모든 사람은 모든 성령님의 똑같은 권능과 똑같은 능력으로 똑같은 성령의 복을 각자에게 후위 부어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과 구별된 우리는 모두 똑같은 성령님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 사람은 할 수 있는데 나는 연약하기 때문에 할 수 없어. 이러한 마음은 똑같은 성령님을 주신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보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그런 모습일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구절에서는 성령님의 선물을 받은 사람들이 첫 번째 성령님의 그 역사하심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4절에 보시면 이제 세상과 구별된 무리가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각각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어떤

말을 했는지는 2장 11절에 나와 있습니다. 11절에 보시면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듣는도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방금 말한이 구절은 그 주변에 여러 사람들이 말한 구절입니다. 즉 120명의 사람들이 각각 다 하나님의 큰 일을 각자 다른 지방 언어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이 성경을 많이 봐서

그럼 그럴 수도 있겠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사실 당시 상황과 시대 배경을 보면이는 굉장히 특별한 일입니다. 왜냐하면은 우선 당시 배경을 좀 살펴보면 당시에 그 현장에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현장에 살고 있던 그 예루살렘의 그 사람들도 있었고 이때는 예루살렘의 중요 절기

기간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여러 지방에 살고 있던 그 유대인들이 그 예루살렘에 많이 모여 있었습니다. 왜냐하면은 그 경건하다고 자기들이 지칭한 그 유대인들이 하나님이 주신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그 한 자리에 많이 모여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사람들은이 무리들을 보고 크게 두 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첫 번째는 그 놀라워하였고 두 번째는

조롱하였습니다. 예, 놀라워한 이유가 7절에 나옵니다.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고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어,이 120명들이 말씀에서 그 열거를 쭉 지방들 열거하고 있죠. 그 15개의 지방인데요. 그 거기에서

예루살렘 15개의 지방에서 예루살렘의 모여들은 사람들이 알아들 수도 있고 이해할 수 있게 말을 하고 있는데요.이 갈릴리 사람들이 각각 다른 지방의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굳이 왜 갈릴리 사람이라고 7절에 언급했는지 우리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사실 갈릴리 사람이라는

것을 언급한 이유가 당시의 그 상황을 보면 이때 유대인들은 대부분 두 지역에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의 지역은 북방에 있는 갈릴리 지방이었고 하나의 지역은 남방 남쪽에 있는 유대 지방이었습니다.이 유대 지방은 더 국제화되고 사실 갈릴리 지방 사람들보다 문화 수준이 더 높았습니다. 그래서 현장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이 북방에 있는 갈릴리 사람들이 참 배우지도 못하고 우리보다 문화

수준도 떨어지는데 어떻게 외국에 있는 다른 지방에 있는 여러 언어로 말할 수 있을까 굉장히 놀라워하고 신기한 것입니다. 즉 많은 갈리 사람들처럼 많이 배우지 못하고 무식하다고 여러 사람들이 여겨지는 그 갈릴리 사람들이 다른

지방에 여러 가지 언어로 말하고 있다는 것에 굉장히 놀라워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놀라운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4절 중반부에 보시면 성령님이 말하게 하셨다고 말씀이 되어 있습니다.이 이 말라게라는 단어를 헬라어로 표현을 한다면,

번역을 한다면 큰 소리로 똑똑하게 말하다 또는 강조해서 말하다입니다.이 단어의 뜻에 암시되어 있듯이 당시 여러 다른 지방의 언어로 말할 때 그 언어를 그냥 해석하듯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를 유창하게 표현할 그

사고력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러한 이유로 첫 번째 반응인 사람들이 놀라워하고 당황했던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12절에서 말합니다.이 일이 어찌 된 일이냐라고 말합니다.이는 단지 단순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라는 단순한 질문의 의미를 어이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떠한 무언가 의미 심장한 일이 일어날 것 같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 교회를 볼 때 자신들과 달리 구별된 사람으로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러한 동일한 반응을 보 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보고 놀라 놀라워하고 당황해하고 궁금해합니다. 또 두 가지 반응은 두 번째 반응은 조롱을 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13절에 보시면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술에 취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이 무리인 교회를 이상하다고 여기고 조롱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사실 조롱한 이유는 단지 웃겨서가 아니라. 그 세상 사람들은 성령을 알 능력도 없었고 그 성령을 알고자 하는 마음도 없었기 때문에 조롱을 한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우리 교회이기 때문에 그들이

우리를 바라볼 때는 놀라워하고 이해하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 것이고 거기에 더해서 조롱까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끝나지 않습니다. 교회는 결국에 세상을 이길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결국에이 하나님의 대적하는이 세상은 그 예수님의 발등상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이는 예수님의 발에이 세상이 모두 있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어질 2장 후반부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두 번째 주지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두 번째 주제는 우리 교회는 하나님을 증언한다입니다. 이렇게 성령을 받 성령의 권능을 받은 교회는 반드시 하나님을 증언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면 예수님이 하늘로 올 올라가시기 전에 너희는 나의 증인이 되어라고 분명하게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14절부터 24절까지 보시면

베드로가 처음으로 성령의 권능을 밟고 대중들 앞에서 설교하는 장면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복음의 그 베드로의 설교의 그 결과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실 14절부터 24절까지는 말씀이 길어서 따로 읽지 않고 말씀 한 구절씩 보면서 우리가 교재를 나누기 원합니다. 14절을 보시겠습니다. [콧방귀]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기울이라. 여기 보시면 12명의 그 사도들 중에서 한 사람인 베드로가 또한 등장을 하게 됩니다. 베드로는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서 말했습니다. 이어지는 말씀에서 쭉 보실 텐데 베드로는 성령의 권능을 입었을 때 가장 먼저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증언을

하셨습니다.이는 이는 성령이 임한 교회가 처음으로 한 일이었고 이것이 교회의 가장 높은 지상 사명이었습니다. 여러분들 베드 베드로가 모두 아시다시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사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였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그리고 베드로는 한

번도 어떠한 유창하게 말하는 방법이나 그러한 설교의 그 훈련을 받아본 경험은 많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베드로가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서서 강하고 담대하게 소리 높여서 말할 수 있었을까요? 말씀드린 것처럼 성령님의 권능을 입어서 그게 가능하였습니다.

성령님이 베드로에게 할 말을 주셨고 또 첫 설교를 어떠한 원고나 그런 준비도 없이도 성령님이 베드로에게 할 말을 주셨기 때문에 베드로는 당당하게 말씀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모든 것이 성령님의 도움 없이는 어역사가 일어날 수는 없습니다.

베드로는 사람, 베드로 자체만 봤을 때는 부족한 사람이었지만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그 하나님의 큰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설교는 사실 살펴보면은 굉장한 짜임새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있는데요. 첫 번째는 눈앞에서 방금 벌어진 일을 사람들에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15절입니다. 어때가 제삼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니라. 17절.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발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주리니 베드로는이 사건이 일어난 것이 당시 지금 시간으로 하면 오전 9시입니다. 오전 9시. 오전 9시이니 이것은 사람들이 술에

취한 것이 아니고 또한 요엘의 그 말씀처럼 하나님이 과거에 약속해 주신 분명한 예언이 성취된 것이라고 베드로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베드로는 두 번째로 그 이후에 예수님에 대해서 쭉 증언을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총 다섯 가지의

핵심으로 예수님을 증언하고 있는데요. 첫 번째는 하나님은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증언되셨다는 것을 얘기하고 두 번째로는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세 번째는 하나님께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네 번째는 하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고 마지막으로 하늘에서 영화롭게 되셨다는

것을 베드로는 다섯 가지 테마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심을 베드로는 입증을 하고 있습니다. 22절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예수님은이 땅에 오셨을 때 하나님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많은 그 기적과 기사와 표적을 보이셨습니다. 무리에서 걷기도 하셨고 세상에 법칙을 많이 깨셨습니다. 어떠한 물건이 물에 떨어지면 반드시 갈아앉는 그 법칙도 깨셨고 물리 법칙도 깨셨죠.

포도주를 엄청나게 많은 포도주로 만드셨기도 하셨고 모든 세상의 법칙을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깨셨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큰 기적을 이루신게 있습니다. 예. 바로 죽은 몸 그대로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도 할 수 없는 오로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부분이고 또한 하나님께 예수님은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그대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 권능과 기적의 끝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사망에 매어 있을 수 없었고 그 몸 그대로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3절입니다.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박아 죽였으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 죽으셨습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선택하신 자들을 위해서 예수님은 죄값을 치르기 위해서 그 선택하신 예정하신 자들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23절에 정하시 정하신이라는 표현은 지명하다 또는 지정하다라는 뜻입니다.이 이 표이 뜻을 살펴봤을 때 예수님은 단지 십자가에서 죽으실 그냥 운명이셨을 그 의미를 벗어 더 넘어서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지명해서

그 사명을 맡기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이미 알고 계셨고 그 길을 가셨고 또한 그 모든 고통을 직접 사람이서 모든 것을 다 그 고통을 체험하시고 뭐 하나님이 예수님이 하나님이라고 해서 고통이 조금 더 감해진 것이 아니라. 모든 고통을 직접 체험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음을 체험하셨습니다. 세 [콧방귀] 번째로 베드로는 부활을 이야기합니다. 24절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이는 그가 사망에 매어 있을 수 없음 없었음이라. 말씀 중반에 보시면 이는이라는 단어가 보입니다. 이는은 앞에 있는 구절과 뒤에 있는 단락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이라는 단어는 왜냐하면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그 죽음에서 살리셨는데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망에서 매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네 번째로 하늘에서 하늘로 승천하셨고 마지막으로는 하늘에서 영화롭게 되셨습니다. 33절에 보시면 하나님이 예수님을 오른손으로 높이셨고 또한 35절에서는 시편 다윗의 시편 말씀을 인용하여 내가 너의 원수로 내 너의 발등상이

되기 되게 하기까지는 너는 내 우편에 즉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라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후에 지금도 하늘에 살고 하늘에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고 곧 있을 세상을 멸망시킬 때 그 원수들을

멸망시키고 예수님의 발에 발등상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첫 번째 주제에서 말씀드릴 것처럼 우리는 세상과 구별된 무리이지만 결국 세상과 무리된 구별된 무리로서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이상하게 여기고 조롱하더라도 결국에는 우리 예수님의 발에 두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베드로는 성령의 권능으로 당당하게 첫 설교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들의 반응은 이제 변화하기 시작하였습니다.이 37절입니다. 그들이이 말을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이르되 형제들아 어찌할 하거늘 여기서 마음이 찔리다라는 표현은 격한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웃고 조롱하던 그들이 이제는 마음의 고통이 찾아온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위해서 베드로는 직설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직설적으로이 사람들을 향해서 너희는 회개하라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38절입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베드로는 먼저 제일 먼저 회개를 당부합니다. 회개란 단지 니우침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던길을 멈추고 그 정 반대의 길로 돌이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신뢰로 예수님을 배반한가 유다는

사실 죄를 뉘우치긴 했지만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지 않고 그냥 자살해 버렸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니라. 회개가 아닌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에 보시면 각각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구원의 문제는 어떠한

부모님이나 내 주변 사람들이 해결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과 일대일로 해결해야 되는 문제라는 것을 베드로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으라고 [목을 가다듬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이 말씀을 통해서 많은 교회들이 오해를 하고 있고 또한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여기서 세례를 받는 것이 사실 구원의 전부는 아닙니다. 여기 말씀에 보시는 것처럼

단지 형식적인 그 물의 세례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콧방귀] 즉 형식적인 세례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세례를 받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형식적인 어떠한 자신의 노력이나

그 어떠한 무언가가 아닌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 받는 세례만이 진정한 세례인 것을 베드로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이 말씀에서는 또 한 가지 오해가 더 생길 수 있습니다. 38절에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이 이 순서만 단지 보면은 세례가 어떠한 제사함의 조건이 되거나 세례를 받는 것이 죄사함의 결과라는 것으로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이 신약 성경의 전체 그 문맥과 가르침도 살펴보고이이 구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새를 받으라는 그 의미와이 구절의 원문의 의미를 고로해 볼 때는이 38절의 말씀을 다음같이 표현할 수

있습니다. 너희는 각각 너희는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되 너희의 죄사에 비추어서 그리하라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즉 세례의 그 조건이 구원이 아니라. 우리의 죄사함에 비추어서 그리하라라 그리하도록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이 사도행전 2장을 사실 눈으로 금방 보면 한 번 내에 다 읽을 수 있는데 당시 베드로 설교는 이렇게 금방 끝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당시에 현장에 있던 많은 사람들과 세세하게 더 자세하게 그리고 여러 방법으로 그 복음을 전파를 했을 것입니다. 그래 말씀에 보시면 40절에 보시면 또 여러 말로

확증하여 또한 권하여 어이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여러 가지 아까 전반부에 봤던 여러 지방의 그 언어들과 베드로가 보고 직접 배웠던 그런 모든 것을 통해서 세상하고 자세하게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가 41절에 나와

있습니다. 41절입니다.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음에 이날의 신도의 수가 3천이나 더하더라. 120명의 사람들에서 3,000명으로 늘어났습니다.이 숫자가 놀라울뿐만 아니라. 사실 더 놀라운 것은 말씀 중반부에 보시는이

날이라는 단어입니다. 그 날에 하루 만에 약 3천명의 신도가 늘어난 것입니다.이 이 큰 역사를 위해서 베드로에게 베드로를 위해서 하나님은 성령이라는 큰 권능을 주셨고 같이 있던 120명의 그 사람들에게 큰 권능을 주신 것입니다. 교회는 이렇게 하나님을 증언할 수밖에 없는 무리들입니다. [콧방귀]

성령님이 임재한 교회는 예수님을 증언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증언을 해야 합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명하신 지상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이 복음이 궁극적인 우리 교회 시대에 교회의 목적은 오로지 복음만은 아닙니다. 사실 이어지는 구절에서 우리 교회에게 주신 궁극적인

목적을 더 자세하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주제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42절부터 47절입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서 서로 교재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며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참미하며 온또

온백성에게 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 라. 어,이 42절에서 교회의 궁극적인 목적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42절에서의 당시 교회의 무리를 보면 첫 번째로 가르침 그리고 교재 그리고 예배이 기도이네

가지에 힘쓰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콧방귀] 또한 42절 이후에 이어지는 9절에서는이네 가지의 중요한 교회 목적을 그 무리들이 다 함께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이네 [콧방귀] 가지 요소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모두 다 함께 힘쓰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네 가지의

목적을 간단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가르침의 특징입니다. 요한복음 17장 3절에서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하셨고 사도 바울은 내가 하나님을 아는 것이 가장 귀하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에 힘써야 합니다. 단지 구원받는 것에 감사할뿐만 아니라. 하는 너 나아가서 하나님은 교회에게 하나님을 알아가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갈 때 큰 기쁨이 있습니다. 모두 경험하셨을 거라고 생각이 되고 왜냐면 우리 안에 성령님이 있기 때문입니다.이 세상의 지식과 지혜는 반드시 없어질 것이지만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영원히 있을 것입니다. 어두 번째는

교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성도들간에 돌아보고 교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피로 맺어진 형제 자매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에게 하는 것이 곧 하나님이 하는 것이고 또한 이러한 수고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이 교재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 함께 하시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를 세워주고 돌아보는 것이 결국에는 나에게 상급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세 번째는 예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존재로 만들어졌으나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죄함으로 인해서 온 세계에 죄가 들어왔고 그 사람의 창조된 목적은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예수님의 피로서 우리는 회복된 사람들이기에 다시 그 목적대로 돌아가서 하나님을 예배를 해야 됩니다. 당지 단지 그 주일만의

예배가 아니라. 우리 삶 전체 예배가 돼야 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기억하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기도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한번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아서인 거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신뢰하고 있다면 기도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마음을 주도록 기도라는 것이 필요하겠고 그리고 기도는 하나님에

대한 일방적인 외침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쌍방향으로 서로 교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이러한네 가지의 그 교회의 목적은 여러분들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핵심은 따로 있습니다. 반드시이네 가지를 우리가 힘들 때 주의해야 될 점이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냐면 모두이네 가지를

성령에 따라서 행해야 되는 것입니다. 단지 개인의 무미한 서로 간의 가르침이나 또한 세상에 관련된 의미없는 교재 그리고 마음이 떠나 있는 상식적인 예배 그리고 내 필요를 위한 내 정욕의 기도 이런 것들은 성령에 따라서 하는 행동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를 하나되지 못하게 하고 방해하는 요소들입니다. 꼭 성령님이 원하시고 인도하시는 대로 가르치고

교재하고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이 이루어져야 됩니다. 그래야만이이 교회가 하나되고 그 목적이 성취될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43절부터 47절까지는 앞서 말한 교회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도들이이네 가지의 가르침을 다 함께 몸소 행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에서는 함께한 이렇게 한 교회 목적을 함께한 이들의 결과를 말을 해주고 사도행전 2장을 마무리를 하고 있습니다. 43절부터 46절까지 보시면이 사람마다 놀랍고 경의롭다고 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되게 놀라워하는 두려워하다는 말씀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굉장히 놀라워하다는 표현을 하고 있고 서로 물질적인 것을 베풀만큼 서로를 돌아보고 또한

성전에서 그리고 집에서 각자 모이기를 함께 힘쓰고 순전한 마음으로 예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이는 이는 앞서 말씀드린 성령이 빠진 상태에서이네 가지를 실천하는게 것이 아니라. 성령이 전제되는 상황에서이네 가지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이 목적네 가지를 함께한 사람들을 위해서 47절에 그 결과를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47절입니다. 하나님을 참미하여 또 온 백성에게 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하나님은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교회를 세운 그 목적을 잃어버리지 않고 그 목적을 실천을 했을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날마다 사람을 더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람을 더하게 하신다는 의미는 예수님이 너희든 내 증인이 되어라 하는 그 명령을 완벽하게 잘 수행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콧방귀]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방법과 우리 세상 사람들에게 전도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습니다.이 성경에서 나와 있는 것처럼 성령님을 토대로 우리가 가르치고 배우고 그리고 서로 교재하고 예배하고 기도에 힘든다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가 예수님의 증인으로서 그 역할을 잘 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예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성령의 약속을 받은 최초의 120명이 지금 우리 오늘날에 우리까지 이어진다는 것은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당시 교회의 지상 사명과 가르침은 지금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 가르침과 목적은 성령님이 빠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함께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배우고 가르치고 하나님에 대해서 서로 교재하고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령님이 빠진 개인적인 가르침과 세상적인 교재, 형식적인 예배, 내 정욕의 기도는 단지 없어지고 무의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성령님과 함께 하시는 함께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것이고 우리가 예수님의 증인으로서이 세상에 남겨진 이유를 잘 아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진정 모든 우리가 교회를 하는 일에 있어서나 어떠한 준비와 어떠한 교회의 역사를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서 정말 성령님이 어쩌면 빠지고 단지 행하고 있지 않은지

우리를 자신을 돌아보고 그렇게 한다면 다시 한번 우리 안에 성령님을 기억하고 모든 것을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오늘 교훈을 받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럼 기도하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날 은혜의 때에 우리에게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또한 교회라는 큰 선물을 우리에게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어쩌면 우리의 교회라는 선물을 주신 그 목적을 잃어버리고 살아갈 때가 더어러는 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교회로 세우신 그 목적을 잘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분부하신 그 사명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하나님 인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오늘이 시간 함께 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아멘. Ta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