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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까지 사도행전 그 1장과 2장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사도행전 3장을 좀 살펴볼 텐데 사도행전 1장과 2장을 좀 되새해 보면 예수님을 성령님이 임하시면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증인이 될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고 그 사도행전 2장에서 나온 나오는 그 오순절로 말미암아서 제자들은 이제 권능 제자로서 그
능력을 행할 수 있는 권능을 받고 그 예수님을 증언을 했습니다. 그 결과 베드로의 그 첫 설교로 단 하루 만에 3,명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고이 신약 시대의 교회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었습니다. 오늘 살펴볼 사도행전 3장은
앞으로 그 사도행전 주된 내용의 그 시작점입니다. 사도들이 여러 가지 이제 역경과 이제 고난을 만나게 되는데 그때 그 성령님의 능력으로 그러한 역경과 고난을 완벽히 이기시는 그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시작점이 오늘 살펴볼
사도행전 3장이 되겠습니다. 성령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우리가 유평 교회로 모이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때 사도행전 시절부터 성령님이 함께 역사를 안 해 주셨다라면 지금의 교회 시대는 아마 없어졌을 것이고 이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기 있는 우리 유교 교회가 그 성령님이 함께 하시는 역사의 결과라고 보면 되시겠습니다. 사도행전 3장에 보면은이 누가라는
사람이 한 사람을 먼저 등장을 시킵니다. 바로 한 번도 태어나서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그 장애를 가진 사람이 등장을 합니다.이 사람은 그 발과 발목에 힘이 전혀 없어서 태어나서 한 번도 일어나 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3장 후반부에 보시면 베드로가
두 번째 설교를 많은 대중들 앞에서 하게 됩니다. 이번에도 그 성령님의 역사함으로 이번에는 남자만 5,명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이 두 가지 장면인 첫 번째 불지병을 고치는 그 베드로의 그 장면과 그리고 베드로가 설교를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서 약 5천명의 사람이 구원받는이 두 가지 장면은 사실 굉장히 밀접되어 있습니다. 단순히이 두 가지 장면을 각각 살펴보면 첫 번째는 첫 번째 장면은 걷지 못하던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으로서 오래된 병을 고침을 받고 그 이후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런 교훈을 얻을 수 있겠고 두 번째는 베드로가 대중들에게 복음
전에서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는 성령의 그 놀라운 역사를 각각 얻을 수 있지만 우리가 말씀드린 것처럼이 두 가지 장면을 따로 보지 않고 연계해서 살펴볼 때 오늘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과 주권을 더욱 깊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주제는
하나님의 그 선하심 계획이라는 주제로 오늘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첫 번째 장면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사도행전 1장 3장 1절부터 10절의 말씀을 같이 보시겠습니다. 제가 읽도록 하겠습니다. 사도행전 1장 3장 1절입니다. 제9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세 나면서 못게 된 일을
사람들이 매고 오니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자라 그가 베드로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함을 보고드로가 더불어주여이 를라니까 이과은 없거니와 있는 이을게니수도 이어라고을 일으키니 어서 그들과 함께 들어가면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든 그는 것과 하나님을 를 찬송함을 보고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라니라. 말씀에 보셨다시피 태어나면서 역경과 고난을 가진 사람이 등장합니다.이 사람은 태어나서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사람이다. 사도행전 4장 22절에 보면은
어,이 표족으로 병난 사람은 40여세나 되었더라라고 나옵니다.이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40년 동안 긴 세월을 걸어보지 못한 사람입니다.이는 굉장히 긴 시간입니다. 여기에 아직 40년도 못 살아보신 분들이 많이 계신데 상당히 긴 시간이고 문자적으로
그대로 40년을 얘기를 합니다. 어이 사람에게는 매일매일이 참 우울하고 캄캄한 날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왜 이러한 불행이 나에게 왔는지 항상 궁금했고 원망도 많이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2절 중반부에 보시면 사람들에게 구월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문에 두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날마다라는 단어가 나옵니다.이 이 단어를 추측해 볼 때이 사람이 성전에 성전 문에서 국걸어 하던 기간이 그 일평생 40년일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30년일 수도 있고 20년일 수도 있고 날마다라는 말은 그 구걸한
기간이 상당히 오랜 기간임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그 성전으로 드나드는 많은 사람들이이 사람을 자주자주 목격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실 어디 기차역 같은데 가면 항상 만나는 사람 있죠. 그런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이 사람을 항상 보고 머리에 각인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날도 동일하게이 사람은 사람들의 부축을 받아서 그 성전 미문으로 이동해서 동일하게 연 동일하게 국어를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1절에 보시면 제9시에 제9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올라갈세라고 되어 있습니다. 베드로와 여요한은 여느 그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성전에 기도를 하러 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시대에는 하루에 세 번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그러 풍습이 있었기 때문에 기도하는 시간을 정해 두고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으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그 9시는 했던
후에 9시간을 얘기하기 때문에 지금 시간으로 얘기하면 오후 3시를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어이 날마다 구걸하는 사람은 이번에는 자기가 자주 못 봤다고 생각하는 그 베드로와 요한에게 구걸어를 하기 시작합니다. 3절을 보시겠습니다. 3절에 보시면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함을 보고 구걸하거늘이 사람은 구걸할 때 자신의 그 장애를 가진 불치병에 대해서 구걸하지 않았습니다. 금이나 은처럼 당장 시급하고 필요한 물질적인 것을 구걸하였습니다. 하지만 베드로와 요한은 그 구걸라는 사람에게
아무도 예상치 못하는 답변을 하게 됩니다. 6절을 보시겠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내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베드로는 40년 동안 한 번도 걸어보지 그 못한 사람에게 일어나서 걸으라고
말하고 오른손을 내밀어서 일으켜 세워 세웁니다. 그때 이제 기적적인 일이 일어납니다. 7절과 8절을 보시면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이 장애를 가진 사람은 보신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서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그리고 6절에서 보신 바와 같이 베드로는 베드로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얘기를 합니다.이 일어나서 걷게 된 사람은 그즉시 예수님의 능력으로 예수님의 도우심으로 자기 병이 이제 낫게 된 것을 이제 깨닫고 하나님께 찬송을 드린 것입니다. 우리는이 장면을 통해서 걷지 못한이 사람이이 장애를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유되고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는 모습을 그대로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물론이 장면을 통해서 하나님께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과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를 다시 돌려 드리는 거에 대해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어지는 구절에서이 사람에게
불치병과이 장애를 주신 그 하나님의 이유가 이어지게 됩니다. 예. 9절과 10절을 보시겠습니다.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하는 찬송함을 보고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하게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당지 배경 상황은이 현장에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처럼 경건하고 기도를 하러 가던 그런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 사람을 사람들을 회피하고 판단하고 항상 구월한 사람으로 인식된 되었을 것입니다.
이렇듯 많은 사람들의 머리에 불쌍한 사람으로 인식되어 있던이 못 거는 사람에게 주어진 그 치유의 기적을 목격한 많은 사람들은 그날 먼저 많은 사람들은 매우 놀라고 그 기적을 이루신 하나님을 그리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떠한 신이 있겠거니 하고 집중을 하게 됩니다. 왜냐면 당시 보지 못한
기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이 역과 고난이 있던이 사람에게 40년이라는 세월에 그 고난과 역경을 주신 이유가이 순간을 위해서 허락하셨고이 치유의 순간도이 순간 사람들이 놀라고 놀라워한이 순간을 위해서 하나님은 허락하시고이
치유의 순간도 이제야 실행하신 것입니다. 사실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그 계획 아래 모든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절대 우연으로이 사람이 40년에 40년의 세월이 걸쳐서 낳은 것처럼 이루어지진 않았습니다.이 결과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그 기적에 대해서 집중을 하였고 이제 두 번째 장면인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서 구원받는 역사가 펼쳐집니다. 하나님께서는이 장애를 가진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시작하실 준비를 하신 것입니다.이
고침을 받기 전에이 사람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요? 나의 부모 유대인의 그 풍습 중에 하나인 자신에게 이러한 어려움이 있었을 때 이러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혹시나 나의 부모가 어떠한 잘못을 해서 나에게 이러한 불행이 왔거나 아니면 더 이상 나는 살
이유도 없다. 차라리 죽는 것이 오해 좋겠다 하는 등의 많은 좋지 않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생각을 많이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절대로 치유되지 않을 그런 병이기에 어떠한 희망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이 사람은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일어난이 기적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집중을 하고 이후에 이어지는 설교로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는 모습을 보았을 때 이제야 이제 모든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이 여건과 고난이 왜 나에게 주어졌는지 이제야 깨닫게 됐을 것입니다. 그리고이 사람은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했던이 사람은 이제 하나님께로 회개하고 돌아갈 것입니다. 좀 다른 예를 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또 예수님께서도이 땅에 계실 때 어떠한 사람을 치유해 주실 때 하나님의 그 계획이 그 안에 담겨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 장면이 있습니다. 여기 손을 넣으시고 요한복음 9장 1절부터 3절을 잠깐 보시겠습니다.네 네. 요한복음 9장 1절부터 3절입니다.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이니까 자기이니까 그의 부모이 수께서 대답하시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그리고 9장 7절입니다. 이르시되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함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맑은 눈으로 왔더라. 보시다시피 한 맹인이 예수님의 그 능력으로 하심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따라 치유된 장면을 보실 수 있습니다. 여기 9장 3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이 또한 하나님께서 그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과 유도하심에 따라서 그 맹인을 사용하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우리 사도행전 3장에서이 병고침을 받은 자의 사람을 그 병고침 받은 자의 사람의 역경을 사용하신 그 하나님의 그 역사가 이제 두 번째 장면에서 본격적으로 나오게 됩니다. 사도행전 3장 11절입니다.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불리는 행각이 모이거늘이 기적을 목격한 많은 사람들이 놀라서 솔로몬의 행각이라는 그 장소로 다들 모이게 됩니다. 여기에서 솔로몬의 행각은 쉽게 말해서 복음을 전파하는데
굉장히 좋은 장소로서 엄청 큰 그 넓은 장소이고 많은 기둥들이 있어 가지고 그 울리는 장소로서 그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데 최적화된 장소로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이때 당시에 모인 사람이 몇 명이라 몇 명이냐면 적어도 5천명
이상의 사람들입니다. 뒤에 보시면 남자들의 수만 5천명이 구원받았다고 나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실 어떠한 수단도 쓰지 않고 어떠한 사람을 사용하시지 않고 본인의 능력으로 많은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있게 하시는 능력이 있으신 분이시죠. 하지만
하나님 단독으로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아까 전에 첫 번째 장면에서 봤던 걷지 못한 사람을 사용하셔서 많은 사람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하셨습니다. 그 한 사람의 고난 자체도 그 하나님께는 선하신 그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었고 때가 되었을 때 그 정하실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 병자를 통해서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고난과 역경도 하나님께는 다 선하신 계획과 타이밍이 있습니다. 예. 12절을 보시겠습니다.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베드로는 현장에 많은 사람들의 현재 관심사인 그 기적 그 봉고침을
받은 기적을 일어난 그 사람에서 다른 곳으로 그 관심을 전환시킵니다. 바로 뒤에 의지는 예수님에게 그 집중을 전환을 시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베드로가이 기적을 행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들이 주목해야 될 분은 바로 예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13절부터 15절까지를 보시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주고 빌라도가 놓아주기로 결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일을 거부하고 살인한 사람을 아주를 구하며
구하여 생의 를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이 일의 증인이니라. 베드로는 13절부터 15절까지를 통해서 인류의 가장 큰 죄인 하나님을 반역한 죄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담과 하가 선악가를 따먹은 이유가 마치 자기들이 뱀이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는 그 꼬심에 의해서 아담과 하와가 나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구나. 그러 반역의 마음이 들어 생겼기 때문에 처음 죄가 들어갔듯이이 반역의 죄는 상당히 안 좋은 죄입니다. 베드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고 오히려 당시에 강도짓을 저들렀던
사람을 오히려 용서해 주라고 하고 메시아이신 예수를 십자가에서 죽이라고 이스 이스라들이 말하는데 그것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너희들이 예수님을 부인하고 죽였지만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일하시기 동일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 죽음에 매어 있을 수 없고 그리고 다시 살아날 살아났었다고
베드로는 증언하고 있고 또한 부부 부활하신 그 예수님을 베드로는 직접 눈으로 다 보았다고 자기가 그 증인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이 이 베드로의 그 외침으로 그 번고침을 받은 사람의 그 집중이 이제는 예수님으로 완벽하게 전환이 되게 되고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집중을 이제 하게 됩니다. 베드로는 그 치유된 사람을 옆에 두고 또한 복음을 계속 전파합니다. 예 16절을 보시겠습니다.
그 이름을 믿음으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낳게 하였느니라. 예수님이 부활로에 하늘에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 치유의 능력을 제자들에게 주신 것이고 또한 병자가
그 자리에서 한 번에 자리에서 일어난 것처럼 예수님을 믿게 되면은 그 구원도 단번에 주어진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회개하라고 말합니다. 19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없이함을 받으라. 예수님을 구원자로 받아들이지 않는 마음을 회개하고 예수님을 참 구원자임을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회개를 통해서 예수님이
오시게 되면은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이 예수님을이 예수님은 만물을 회복하실 것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20절과 21절입니다.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두리라. 예수님을 너희의 구원자로 인정해서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고 그 만물의 회복함을 또한 기다리며 영원히 하나님과 천국에서 누릴 그 복을 기다리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2절부터 마지막 절까지 보게 되면이이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약에서 메시아로 선포된 그 예수님이라고 말을 하고 있고 또한 아브라함에게 그 약속했던
복 이스라엘 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는 기다리던 아브라함에게 약속했던 그 복을 이루실 뿐이 예수님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이 이 베드로의 설교 이후에 사람들의 두 가지 반응이 나오게 됩니다. 첫 번째 반응은 이때 당시 지도자들은이 복음을 듣고 강한 그 반발심을 가지게 됩니다. 또한 다른
장 다른 사람들은이 회개를 하 예수님께 회개하고 그 복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첫 번째 사람들의 반응은 4장 2절과 3절에서 나오게 됩니다. 사도행전 4장 2절과 3절입니다.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당시 지지도자들은이 베드로의 설교에 대한이 백성들의 그 반응을 보았을 때 매우 두려한 두려운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을 어느 한 장소에 가두게 됩니다. 그즉시. 하지만 이내 곧이 두 사람은
풀려나게 됩니다. 사실이 풀려나는데 이때이 갇힌데에서 풀려날 때 그 하나님이 역사하신 그 장면은 다음 시간에 살펴보도록 하고 다른 하나인 다른 하나는 다른 하나의 장면인 구원받는 역사를 좀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행전 4장 4절을 보시겠습니다.
말씀을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5천이나 되었더라.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본 사도행전 2장에서는 3,명이 구원을 받는 역사로 일어났지만 이번에는 약 5,명의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됩니다.이는 비유적으로이 정도의 많은 사람이
구원받았다 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 문제 그대로이 당시 하나님의 역사로 5천명이 한꺼번에 구원받는 정말 대단한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제 말씀을 좀 정리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그 인류를 구원받는 그 역사를 이루셨고 오늘날에
우리도 그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한 가지 주목해 보고 싶은 점은 하나님께서 실제로 그 구원을 각 사람에게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그리고 각 사람에게 어떻게 적용하셨는지 그 방법입니다. 그 적용하신 방법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어떻게 보면 영적 엘리트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이 땅에 계실 때
항상 예수님께 함께하면서 그 예수님의 직인이 되었던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반대로이 첫 번째 장면에서 보셨다시피 하나님은 동시에 태어나면서 동시에 나면 나면서부터 그 걷지 못한 장애를 가진 사람도 동일하게 사용을 하셨습니다.
그 사람이 그 자신이 정말 상상하지도 못한 방법으로 하나님은 그 사람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이후에 그 병나은 사람에 대해서 성경에는 더 이상 언급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확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 사람의 그 치유의 간증은
어이 사도들이 복음을 전파할 때 그 사례로 무 사례로 쓰였을 것이고 사람들은음 그걸 통해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더욱더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의 고난과 역경을 하나님을 하나님의 계획 아래 하나님의 역사 아래 사용을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구원받은 우리 모두가 성령을 가진 자로서 예수님의 직으로 역할을 하지만 각자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은 다 다릅니다. 우리가 동일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면에서는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이 고난 같기도 하고 해결해 보려고 하지만 해결되지도 않고 혹은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하나님께서는 다 계획이 있으시고 선하게 사용을 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리고 그 질그릇의 목적을 분명히 선포했습니다.이는 이는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이
능력은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고 하나님의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사실 고난 중에 우리가 많은 고난을 맞닥뜨리고 역경을 체험하는데 이런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음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조차도 우리가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주권하심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가장 좋은 길로 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여러분들에게나 저에게나 주어진 그 고난과 역경이이 병자가 치유된 것처럼 기적적으로 해결된다고는 확실히 답변 말씀을 못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절대로 여러분들을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예. 마지막으로 잠언 3장 6절을 읽어보고 마치겠습니다. 너는 범사에 글을 인정하라. 그리하면 내 길을 지도하시리라.이 이 잠언 3장 6절 말씀처럼 항상 하나님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여러분의 길을이 불치병에서
낳은이 병자처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예. 네. 그럼 기도하고 말씀 시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과 모든 고난이 참 이해할 수 없고 어렵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계획과 그 선하신 주권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오늘 말씀을 통해서 말씀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이 이 병자가 4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어려움을 갖고 완벽히 병았을 때 그제서야 하나님의 그 선하신 계획을
깨달았듯이 우리 또한 그 하나님의 선하심을 항상 기다리며 사모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나님 인도해 주시기 바랍니다.이 모든 기도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아멘. Yea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