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의 특징 (행 4:23-31)

김남혁 · 2026.05.23 · 사도행전 4: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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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오늘도 사도행전이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사도행전 시대가 사실 시작되면서 교회의 역사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도행전 시대에 있었던 교회는 지금까지 있었던 교회 역사 중에서 가장 그 성령이 충만하였던

그러한 시대였습니다. 이처럼 사도행전 시대 때 그 성령이 충만했던 이유는 단순히 그 사도들과 그 성도들에게 열심히 해서 그래 그래서 성령이 충만해였던 건 아니고 당시에 하도행전에서 하나님께서 이제 교회를 시작하셨죠. 그리고 하나님이 성령을 강하게 부어

주신 시기였기 때문에 당시 성령이 매우 충만했습니다. 물론 사도 사도들의 그 열심도 있었지요. 하지만 그리고 사도행전 시대에 교회가 성령이 충만했던 비결이네 가지가 있습니다. 지난 설교 때도 한번 강조를 드렸는데 사도행전 2장 42절을 잠깐 같이 보시겠습니다. 사도행전 2장 42절을 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재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말씀에서 보신 바와 같이 첫 번째는 하나님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성도들간에 교재하는 것 세 번째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 떠글면서 예배하는 것이죠. 그리고 마지막에는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사실이네 가지이 비결에 어떠한 우선 순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이네 가지 모두 중요하고 어네 [콧방귀] 가지 모두 그때 사도들과 성도들이 매우 힘썼습니다. 방금 말씀에 나오는 가르침과

교재 그리고 떡을 뗐는 것. 마지막으로 기도의 모습 그리고 성도들간에 교재하는 거 포함해서 최초의 성령님이 사도행전 시대 내려오고 그리고 지금까지 그리고 사도행전이 그 마무리 될 때까지 사도행전 전반에서 무수하게 보이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교회 당시의 교회는 가르침, 예배, 교재, 기도가 매우 풍성했습니다. 사실 우리도 이때 사도행전 시대 교회로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온 교회로서 유평로 모이고 있습니다. 우리 유평교회 그리고 여기 계신 청년회에서이 말씀에서 나오는이네 가지가 풍성하게 우리 안에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항상 기억해야 됩니다. 그리고 항상 이거이네 가지가 우리 안에 바로 세워져 있는지 항상 우리의 도전이 돼야 됩니다. 만약 어느이네 가지 중에서 어느 한 가지라도 힘 쓰고 있지 않다면 다시 돌아보고 다시

세어가는 그런 시간을 가져야 됩니다. 그래서이네 가지 중요한 것들 중에서도 오늘은 여러분들과 함께 기도에 대해서 좀 나눠보기를 원합니다. 사실 오늘날 많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를 잘못 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기도가

약간의 말씀 듣기 전에 그리고 밥 먹기 전에 무조건 해야 되는 어떠한 형식적인 그런 기도일 수도 있고 두 번째로는 어떤 기도 교회에서는 구도자들은이 기도에 대해서 되게 그 지루한 것으로 여겨서 생략하거나 간단해하게 드리는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때로는 개인적으로 돌아봤을 때도이 기도를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을

구하는 기도로 생각하는 그러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왜곡되고 변형된 오늘 날의 기도를 우리는 바로 잡아야 합니다. 사실 성경에서는 이러한 기도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 기도를이 성경책에 말을 하고 있고 여러 구절에

그 예시가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를 교회가 들어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방법대로 응답해 주시는 모습을 볼 수입니다,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살펴볼 그 본문에서도 사도들과 그 현장에 있던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를 드리는 장면을 우리는 말씀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 그 기뻐하신 기도를 하나님께서 선하시게

응답하시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의 특징이라는 제목으로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어 볼 텐데요. 여기서 특징 두 가지 정도를 살펴볼 겁니다. 그리고 그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증거로서 이어지는 기도의

응답도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은 사도행전 4장 23절부터 31절까지입니다. 사도행전 4장 23절을 펼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오늘 말씀 보실 말씀을 통해서 어,이 시간 우리가 좀 생각해 볼 것은 우리가 지금 드리고 있는 우리 교회가 그리고 내 개인이 하나님께 기도가 드리고 있는 기도가 하나님께서 정말 기뻐 받으시는 기도인지 그것을 좀 돌아보기를 원하고

그리고이 말씀을 혹시 오해해서 우리의 기도가 어떠한 논리적인 방법이나 순서, 형식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고 우리가 기도를 할 때 우리 마음에 어떤 것을 새기고 기도를 해야 되는 것인지 그거를 좀 [콧방귀] 알아보기를 원합니다. 오늘 보게 될 서초대교회

성도들의 기도의 모습에서는 크게 두 가지 특징을 볼 수 있다고 말씀을 드렸는데요. 첫 번째는 그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나아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특징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럼 본문 말씀을 다 함께 보시겠습니다. 23절부터 제가 읽도록

하겠습니다. 사도들이 놓임매 그 동료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알리니 그들이 듣고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대주제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이시요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하였는 곳의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도다. 하신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학하여 하나님께서 기름부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하려고 이성에 모였나이다.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낳게 하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빌기

다음에 모든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먼저 말씀의 배경 상황에 대해서 간략히 좀 살펴보겠습니다. 23절에 보시면 처음에 사도들이 노인라고 시작이 됩니다. 당시의 모습은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던 베드로와 요한이 그 유대 지도자들에게

체포를 당하고 그 감옥에 가을 당한 다음에 잠시 풀련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베드로와 요한이 체포되고 그 유대지도 지도자들에게 신문을 받은 이유는 사도행전 초기였던 사도행전 3장부터 시작된 베드로의 그 여러 가지 사역들 때문에 이러한 일이 발생되었습니다. 사도행전 초기에 베드로는 그 여러 가지 사역을 하였는데요.이 사역들은

처음부터 그 연결 고리처럼 계속 이어져 갑니다. 그 이어져 간게 오늘 본문으로 이어지는데요. 그 몇 가지만 살펴보면 첫 번째로 베드로는 그 하나님의 성전으로 가던 중에 거리에 앉아서 거리에 앉아서 평생 일어나지 못한 사람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걷지 못한 사람을 고치는 기적을 행했습니다. 그리고이 기적을 목격했던

현장에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 결과 그 현장에서 5,000명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때 이러한 것을 싫어하던 반대 세력인 유대 지도자들이 등장을 합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을 강제로 체포하고 밤새도록

옥에 감옥에 가두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에 베드로와 요한은 그 유대 지도자들 앞에서 신문을 받게 됩니다. 그 법정에서 추궁을 당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들 앞에서 자신이 이때까지 했던 것을 변호하게 되고 그리고 현장이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유의 지도자들은 어떠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풀어 주게 됩니다.

말씀 그 사도행전 4장 21절에도 보시면 관리들이 제가 읽도록 하겠습니다. 21절입니다. 관리들이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주었으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런 앞선 바 베드로의 사역이 이어지는 중에 오늘의 말씀 1절이 시작되고 어이 말씀에 보시는 것과 같이 사도들이 놓였다고 표현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드리실 때 베드로와 요한이 앞서 말씀드린 그 어려운 어려웠던 상황에서 반대 세력들에게 풀려나는 것을 염두에 두고 말씀을 계속 보시면 좋겠습니다.

마치 베드로와 요한은 그 법원에서 판사와 검사에게 신문을 받다가 증거와 불충분으로 잠시 풀련한 상황이고 여차하면 이들을 다시 잡아서 감옥에 가두고 협박을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말씀에서 보시겠지만 베드로와 요한은 담대하게 행동하였습니다. 보통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라면 이러한 협박과 강요를 받았으면 쉽게 무너져 내렸을 것입니다. 왜냐면 이러한 방법을 많이 썼을 때 많은 사람들이 쉽게 그 믿음을 포기하고 무너졌기 때문입니다.이어서 베드로와 요한은 그들에게서 그 협박에서 놓인 상황에서 가장 먼저 한 행동이 있습니다. 뭐냐면 바로 자신들에 자신들의 동료들에게 가게 됩니다. 23절을 보시겠습니다.

사도들이 놓임에 그 동료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알리니 베드로와 요한은 이제 자신들을의 동료인 그리고 구원받은 사람들인 성도들에게 돌려가 돌아가고 그 현장으로 돌아갑니다. 사실 돌아간 장소와 그 규모는 성경에는 자, 자세히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구원받은 형제 자매들이었고 그들이

함께 모인 장소였습니다. 베드로와는 그 두려운 상황에서 어디에 숨거나 피하지 않았습니다. 제일 먼저 그 동료들 그 형제 자매들에게 간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은 지금까지 있었던 일에 대해서 세세하게 말을 하게 됩니다.

단 몇 시간 전만 해도 자신들은 가복에 갇혀 있었고 그리고 그 법정과 같은 장소에서 집중 신문을 받게 되었고 자신이 예수님을 변호하였고 지금은 잠시 우리를 풀어 준 상황이지만 언제든 우리를 잡으러 올 수 있다. 이러한 사실들을 그 형제 자매들에게 낱낱이 설명을 합니다.

이렇게 가장 먼저 베드로와 요한이 형제 자매들에게 달려간 이유를 말씀해 보시면 두 가지 정도 그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24절을 보시면 그들이 듣고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혔다고 나와 있습니다. 첫 번째로 베드로와 요한은 방금 벌어진 상황에 대해서 하나님께 한 마음으로 성도들과

한 마음으로 기도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더불어 현장에 있던 많은 형제 자매들도 아멘으로 화답해서 같이 기도하기를 원했습니다. 현장에 있던 형제 자매들은 어쩌면 그 그러한 위험이 자기에게도 올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베드로와 요한과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이처럼 교회는 형제 자매와 모두

동역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인류에서 가장 지혜가 뛰어난 사람은 다시죠. 바로 솔로몬입니다. 성경 말씀 전도서 4장 9절에도 보시면 제가 읽겠습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어 얻을 것임이라는 말씀이 나와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모두가 함께하는 그 동역이 중요하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교회는 한 몸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동료들에게 찾아간 이유는 다른 어떠한 것이 어떠한 행동이 아니라. 가장 먼저 하나님께 기도를 들어야 되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저 같은 경우에도 여기 계신 분들도 몇 분 계실 텐데 어려움이나 고민이 찾아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할 때 우선은 내가 해결해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이 정도 하면은 해결할 수 있겠구나 그러한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내

자신을 믿고 행동한 것을 돌아보을 때 그것은 교만이었다는 것을 후회하고 다시 하나님께 돌아갑니다. 여러분들은 어려움이 왔을 때 그리고 고민이 왔을 때 이처럼 하나님께 먼저 찾아가나요? 돌아봐야 합니다. 아니면 내가 해결해 부르고 어떤 방법을 여러 가지 쓰다가 하나님께 돌아가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처럼 베드로와 요한은 가장 먼저 하나님을 찾은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가장 먼저 하나님을 찾아야 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구절에서 이렇게 한 마음으로 하나된 성도들이 하나님께 기도를 시작합니다. 사실이 기도가 누가 대표 기도를 한다거나 뭐

베드로가 대표 기도를 하고 성도들이 화답한다거나 이러한 구체적인 모습은 나와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현장에 있던 전 성도가 한 마음으로 기도를 했다는 것을 좀 연상하면서 보시면 좋겠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의 특징을 하나하나 살펴볼 텐데요. 먼저 첫 번째로 하나님의 그 권위를 인정하면서 기도하는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성도들은 먼저 그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지금까지 베드로가 베드로와 요한이 닥쳤던 그 어려움들을 보셨습니다. 그 어려움들이 사실 세상에서는 바라봤을 때는 굉장히 어려움이지만

베드로와 요한은 지금까지 있었던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권위 아래에서 이루어졌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허락하셨다는 그 인정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성도들은 먼저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말씀 24절 중반부를 한번 보시겠습니다. 중간쯤을 보시면

대주제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이시요. 이처럼 하나님은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으로서이 세상의 대주제이십니다. 지구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저 우주 너머의 그 세계까지 모두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처럼 성도들이 가장 먼저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 기억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모든 만물을 만드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그 권위가 모든 것에

다 미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그리고 모든 존재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에이 세상의 모든 만물의 주권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속한 모든 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편 24절 시편 24편 1절에서도 그 다윗이 고백한 그

구절이 나오는데 제가 읽어드리고 읽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시편 24편 1절에 보시면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모든 세상과 플러스에서 모든 사람들은 다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창조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그 하나님이 모든 것을 통시하신다는 것을 인정하는 그 권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였다면 이어지는 말씀에서는 구약에 나오는 그 예언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25절과 26절을

보시겠습니다.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26절입니다. 세상의 군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시편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과거 시편 말씀에 예언되 예언되어 있듯이 세상에 세상이 헛된 것들을 꾸미고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대적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7절에서도이 세상이 예수님을 거절하여 죽인 그 모습이 나옵니다. 27절입니다. 보시면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사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말씀에 보시면 헤롯과 빌라도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모두 예수님을 거슬렀다고 얘기합니다. 이렇게 설명을 배경 설명을 한 후 이제 전반부 기도의 핵심인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그 하이라이트가 나옵니다. 28절을 보시면 28절에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이 성에 모였나이다.

앞서 쭉 열거했던 구 구약 말씀을 이용해서 말하였던 모든 것이 세상이 허무한 것들 세상이 허무한 것들을 계획하고 세상의 군왕들이 예수님을 대적하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거스른 것이이 모든 것들이 세상이 주도한 것이 아닌 여기에 말씀에 예정하신 그 구절처럼 하나님의 권위 아래 하나님이 예정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거스리기 위해서, 예수님을 대적하기 위해서 세상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이것 또한 하나님의 권위에서 일어난 것이고 하나님이 예정하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그 예수님을 죽인 자들이 이제는 자기들도 위협하는 상황이고 그 어려움에 빠지게 하는 것도 하나님의 그 큰 권능 아래에서

하나님의 예정하신 것을 이루기 위해서 지금까지 자기들에게이 모든 것이 허락되었다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즉 자신들에게 닥친 어려움을 하나님의 그 예정의 아래에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심지어 저 또한 어려움이나 고난이 닥쳐왔을 때 당장 하나님을 원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름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는 것 같고 그리고이 어려운 상황을

나에게서 잠시 해결해 주시면 내가 오히려 더 하나님을 잘 믿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이러한 것들 나에게 허락하시냐요 하는 하나님께 마음을 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하는 기도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사람은 기도를 할 때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권위 아래 예정된 것이고 장차 선하게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것을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는 기도할 때 이런 하나님의 권위를 배제한 상황에서 우리 나름대로의 계획을 첨가해서 기도를 할 때가 있습니다. 가령 하나님 제가 이러한 주님의 일을 하고 싶은데 지금 상황이 여의치가 않습니다. 이러한 것이 좀 해결되면 내가 이런 것을 해 보겠습니다. 또는 하나님 나는 저는

어느 정도 준비가 되고 한 30살 넘어야 결혼을 하고 싶은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도해 주십시오라는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콧방귀] 하지만 우리가 이러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그 높으신 권위를 인정하면서 기도를 한다면 우리의 소원과 계획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나님의 권위로서 가장 합당하고 가장 좋은 때 이루어지

주실 것이라고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권위는 모든 만물과 모든 사람에게 미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권위를 배제한 가운데 기도를 하고 있지 않은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말씀에서의 기도처럼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한 가운데 우리 어떠한 길이 허락되더라도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선하게 인도해 주실 것이라고 믿으며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면 이렇게 기도를 할 때 우리는 겸손하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고 어떠한 기도의 응답을 우리에게 주시더라도 감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이 세상에서

지상 사역을 하실 때 하나님께 기도를 하셨죠. 그때 하나님의 권위를 전적으로 인정하면서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마태복음 26장 39절에 그게 나오는데요. 제가 읽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26장 39절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그 겟세만의 동산에서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장면입니다. 말씀에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이 잔을 내게서 진능하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예수님이 기도드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앞서 일어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권위 아래에서 이루어지도록 기도를 드리신 것입니다.이 예수님의 기도가 우리가 가장 배워야 할 기도의 태도인 것입니다. 어이어서 두 번째 기도를

기도의 특징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후반부에 이어지는 두 번째 기도의 모습은 예수님의 복음을 위해서 기도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도를 할 때 어느 다른 것보다 예수님의 복음, 즉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먼저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말씀 29절을 보시겠습니다. 29절을 보시면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 보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성도들은 유대 지도지 지도자들이 자신들에게 앞으로 절대 절대로 복음을 전하지 말라 하는 상황에서도 오히려 하나님께 담대하게 하나님을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특히 29절 초반부에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 보시라고 기도를 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자신을 위협하는 그 상대방들이 벌을 받거나 망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사도들은 이러한 유대 지도자들에 위협하는 상황에 또 다른 기도를 할 수 있는데요. 예를 들어 복음을 전하고 있는 지역을

옮기게 해 달라거나 유대 그 지도자들에게 발각이 되지 않는 그 장소를 보여 달라고 한다거나 그들의 위협이 좀 사그라들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와 요한은 앞서 말씀드린 그러한 기도를 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위협하고 있는 하나님의 사역인

하나님의 말씀에 앞으로 더욱 더 힘쓸 수 있도록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이러해야 됩니다.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에 합리화하는 그러한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또한 자신들의 상황이나 안일을 먼저 구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9절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앞으로도 표적과 기사가 이루어지도록 기도를 합니다. 30절 나오는데요. 30절에 보시면

손을 내밀어 병을 낳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베드로가 그 표적과 기사를 구한 이유는 하나님의 그 복음을 위해서 그러하였습니다. 이전에 일어났던 베드로의 사역 중 사역 중에서 안은뱅이를 고침을 고침의

기적을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이 이 안은뱅글을 기적적으로 고친 그 결과로 현장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그 기적을 눈으로 볼 수 있었고 그것에 집중이 되어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고 그 결과 5천명의 사람들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기적과 표적을 통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데 도움이 되려고 기도를 한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들은 자신의게 처한 상황의

그 개선, 어떠한 나아짐이나 편안함을 위해서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닌 가장 먼저 앞으로 펼쳐 나가야 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저도 예전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가 무엇인가 하는 고민을 상당히 많이 했었던 적이 있습니다. 기도할 때 나의

안욕이나 정욕을 위해서 또는 나의 미래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정말 합당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하는 고민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 나의 축복과 나의 필요를 구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가장 먼저 구해야 되는 그 기도의 제목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서도 그게 잘 나와 있습니다. 제가 읽어 드리면 너희는 다들 잘 알고 계시는 말씀인데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의을 구하라. 그리하면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말씀이 나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을 구할 때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할 때 우리의 상황과 여건에 맞게 모든 것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절대 우리의 필요를 하나님께서 모르신다거나 우리가 필요한 것들 하나님께서 모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필요를 하나님께 구하지 않아서 안 주시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필요를 우리의 필요한 것들을 모두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그런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세상에 타협하여 합리화하거나 그러한음 기도가 아니라. 그리고 나의를 먼저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의이 성도들의 기도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먼저 기도를 하고 있는지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기도의 두 가지 특징인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기도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기도를 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선하게 응답해 주시는 모습이 이어집니다. 그게 31절에 나옵니다. 3절 1절을 보시면 빌기를

다해 모든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하나님의 응답은 세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로 성도들이 모인 곳이 진동하였고 두 번째로 성도들이 성령 충만해줬고 세 번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더 담대하게 전할 수 있었습니다.이 세 가지는 우리 교회가 갖추어야 할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고 세상에 비추어야 할

우리 교회의 모습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교회와 항상 함께하여 주시는 것이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성령에 따라서 살아가는 것이고 예수님의 증인으로서이 땅에서 사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응답이 무엇보다도 귀한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귀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면 이것들은

없어질 응답이 아닙니다. 영원히 우리의 상이 될 응답인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이렇게 결국 없어져야 할 것들의 응답을 구하고 있는지 돌아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응답하실 때 없어질 것들에 대해서 응답하시는게 아니라. 영원히 존재할 것들에 대해서 응답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건 상당히 우리에게 감사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세상에서 없어질 것들에 있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응답을 주시면 잠시 전가는 좋겠지만 뭔에는 이것들이

영원한 것들이 더 소중하겠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이 영원한 것들에 대해서 응답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좀 마무리해 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사실 기도의 중요성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권능과 육력이 충만했던

사도들과 예수님께서도 기도에 항상 힘썼고 특히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셨죠. 하나님이 힘셨지만 그러함에도 기도에 항상 힘썼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기도를 단지 형식적으로 생각하거나 소홀이 생각한다는 것은 좀 모순이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 자신을 믿는 교만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서의 그 기도의 모습을 보면은 이러한 기도를 힘써야 되는데요. 이러한 기도에 힘쓸 때 우리의 성경에서 보시던 것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할 때 우리의 계획과 생각을 우선시해서

일방적으로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주신 모든 상황과 내게 주신 모든 기도의 응답이 하나님의 그 권위 아래 있고 그 권위를 인정하면서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그러한 기도의 응답이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이라는 것을 하나님이 예정하신 가장 좋은 것이라는 것을 인정을 해야 하는 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아니나 나의

필요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여러분들은 기도는 이런 여러분들의 기도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것을 항상 마음에 새겼으면 좋겠고 이것을 내 마음에 도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한 그리고 그러한 특권을 여러분들을 귀하게 생각하고 나에게 주신 기도의 특권에 대해서 하나님께 항상 감사하고 기도드리시는 삶을 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기도하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셔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귀한 특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를 항상 하늘에서 들으시는 하나님을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기도를 하게 하여 주시고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권위 아래에서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있다는 것을 감사하며 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인도해 주시길 바랍니다.이 모든 기도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아멘. 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