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교만하게 하는 지식과 덕을 세우는 사랑

최종혁 · 2026.10.19 · 고린도전서 8: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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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8:1–13 1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2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3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 4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5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6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7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8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 9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10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11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12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13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1절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라는 말씀은 우리가 오남용하기 쉽지만, 그 바른 뜻을 알고 반드시 삶에 적용해야 하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이 원리를 적용하여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우상의 제물’은 시장에서 판매되던 우상에게 제물로 바쳐졌던 고기를 말합니다.

먼저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한 ‘지식’에 대해서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기 때문에 사람들이 말하는 ‘다른 신들’, 즉 우상은 사실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4-6절). 이 지식은 모두에게 명백한 지식입니다. 구원 받은 자라면 누구도 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부인하지 않고, 따라서 우상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이 지식에 대한 자연스러운 적용은 ‘그러니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닌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다 이런 결론에 이르는 것은 아니라고 바울은 말합니다(7절). 바울은 어떤 사람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자신이 우상의 제물을 먹었다는 사실을 알고 양식의 가책을 받고 죄의식을 가지게 되는 경우를 언급합니다. 이들이 실제로 우상이 존재한다고 믿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삶의 오랜기간동안 이들은 그렇게 믿으며 살아왔기 때문에,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는 없었습니다. 9절에서 바울은 이런 자들을 “믿음이 약한 자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분명 약한 모습이고 더 성장해야할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바울은 ‘사랑’을 말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것이 옳으니까 이렇게 해”라고 그냥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했을 때 오히려 약한 성도는 자기 양심의 소리를 무시하는 죄를 범하게 될 수 있습니다(10절). 이것이 바울이 1절에서 말한 지식은 교만하게 한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지식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말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다면, 그 지식은 그저 자기 자랑이 될 뿐입니다.

바울은 그런 상황에서 두 가지를 생각하라고 합니다. 첫째는 실제로 그것이 죄의 문제인지 분별하는 것입니다(8절). 음식은 그 자체로서는 중립적입니다. 먹는다고 더 거룩한 것도 아니고, 먹지 않는다고 덜 거룩한 것도 아닙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약한 성도가 올바른 지식을 가질 수 있도록 도우면 됩니다. 그런 지식을 가지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행하게 될 것입니다. 그가 그전까지 우상의 제물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죄를 범하는 것은 아니니,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둘째는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10-11절). 이미 지식을 가진 사람의 입장에서 그렇지 않은 사람을 보면 답답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무시하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냥 행동을 강요하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그때, 내가 그렇게 하고 싶어하는 대상이 누구인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를 위해 어떻게 하셨는지, 그를 어떻게 대하셨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나도 그를 어떻게 대해야할지가 명확해집니다. 바울은 형제가 실족한다면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말합니다(13절). 그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덕을 세운다’는 말은 지식이 불필요함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올바른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사랑으로 해야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서로를 세워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런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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