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복음의 능력 (행 8:1-25)

김남혁 · 2026.10.31 · 사도행전 8: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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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 생성된 스크립트를 AI로 정리한 글입니다. 실제 설교와 표현이 다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사도행전 8장 말씀을 통해 ‘복음의 능력’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사도행전 8장을 펴 주십시오. 사도행전 전체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복음이 예루살렘이라는 작은 지역에서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이야기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그 중심 내용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하신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이 약속은 계속 이루어져 왔고, 앞으로도 복음은 전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갈 것입니다. 본문에 앞서 이 말씀을 드린 이유는, 사도행전 8장이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로, 곧 지리적 경계를 넘어가는 순간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 지리적 경계는 지금까지 주된 배경이던 예루살렘과 새 배경인 사마리아 사이의 경계입니다. 오래되고 높은 이 경계를 복음의 능력이 극복해 가는 모습을 오늘 보게 됩니다.

지난 청년부 시간에 우리는 사도행전 7장까지 살펴보았습니다. 7장까지의 배경은 유대 지역의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참고로 사도행전 시대 이스라엘을 지리적으로 크게 나누면 가장 남쪽이 유대 지역이고, 그 위가 사마리아 지역, 가장 북쪽이 갈릴리 지역입니다. 7장까지 예루살렘에서는 복음이 널리 전파되어 믿는 성도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복음을 반대하던 유대 지도자들이 많았고 성도들에 대한 핍박도 날로 더해 갔지만, 핍박이 늘어나는 만큼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이런 예루살렘의 상황을 잘 보여주는 말씀이 사도행전 6장 7절입니다.

사도행전 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이처럼 예루살렘은 복음으로 점점 정복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복음을 막아 보려고 애썼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사단 마귀는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막으면 복음이 거기서 그치고 전 세계로 뻗어 가지 못하리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믿는 자의 수는 늘어 갔고, 이제 복음은 예루살렘을 넘어 다른 지역의 경계로 나아갑니다.

8장에 이르러서야 배경이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 지역으로 넘어갑니다. 유대와 사마리아 사이의 경계는 매우 높은 벽이었습니다. 사마리아도 같은 이스라엘 땅이었지만 문화적으로나 역사적으로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유대 사람들은 사마리아를 멀리했고, 예배 장소와 종교의 차이 때문에 갈등의 골이 과거부터 깊었습니다. 그러니 복음이 사마리아로 넘어갔다는 것은 유대인과 오랜 갈등을 겪은 사람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졌다는 뜻이며, 하나님의 구원이 특정 민족이나 집단에 한정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우리에게 매우 의미 깊고 감사한 사실입니다. 복음이 사마리아의 경계도 허물었는데, 우리가 사는 이 나라에 복음이 오지 못할 까닭이 없기 때문입니다.

당시 사도들에게는 사마리아보다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증거하기가 더 수월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에는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사도들에게는 문화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고향 같은 곳이었고 함께하는 성도들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사마리아는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복음이 그 높은 경계를 허무는 장면을 오늘 보시게 될 것입니다.

등장인물도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오늘은 빌립이 등장합니다. 6장에서 한 번 언급된 인물입니다. 빌립은 열두 사도가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믿는 성도가 많아지면서 그들을 돌보도록 세운 일곱 일꾼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일곱 중에는 7장에서 최초로 순교한 스데반도 있습니다. 빌립도 스데반처럼 성도를 돌보는 데 그치지 않고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스데반은 복음을 전하다 순교했지만, 이제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복음 사역을 위해 다시 등장합니다. 빌립이 복음을 선포할 때 사마리아 땅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게 될 텐데, 그 변화는 하나님의 복음의 능력으로 가능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복음의 능력을 세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복음은 우리에게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둘째, 복음이 허물지 못하는 경계는 없습니다. 셋째, 복음은 어떠한 사람도 변화시킵니다. 이 복음의 능력을 보면서 우리가 믿는 복음에 다시 한번 감사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본문을 먼저 읽겠습니다. 사도행전 8장 1절부터입니다.

사도행전 8:1-3 1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2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3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사도행전 8:4-8 4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5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6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7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8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사도행전 8:9-11 9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10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며 이르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11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그들이 따르더니

사도행전 8:12-17 12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13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14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15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16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17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사도행전 8:21-25 21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22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23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24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않게 하소서 하니라 25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언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말씀이 길었지만 전체 이야기를 알아야 하기에 모두 읽었습니다.

첫째, 복음은 우리에게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빌립이 사마리아로 가게 된 배경을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행전 8: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누가는 많은 성도가 사마리아 땅으로 흩어진 이유를 예루살렘의 큰 박해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어떤 박해와 고난이 있었는지 기억나십니까?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더라도 핍박이 많았다는 것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처음에는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사도들을 신문하고 감옥에 가두며 위협했습니다. 그것이 통하지 않자 채찍질하여 때렸고, 급기야 돌을 던져 사람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핍박의 강도는 점점 높아졌고, 그 절정이 스데반의 순교였습니다. 스데반이 죽은 뒤 예루살렘 교회에 큰 박해가 시작되었고, 성도들은 그 박해를 피해 이스라엘 곳곳으로 흩어졌습니다.

그 시련은 정말 컸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사는 일에 생명이 달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시련은 하나님이 사단 마귀에게 패배하셔서 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으로 허락하신 시련이었습니다. 사도들도 이런 시련이 올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환난과 시련이 많을 것이라고 여러 차례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한복음 15: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사도들은 자신들에게 닥친 시련이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며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음을 잘 알았고, 성도들도 사도들에게 배운 대로 그 시련을 인정하고 대응했습니다. 그래서 흩어진 성도들의 반응은 유대 지도자들의 예상과 정반대였습니다. 핍박의 이유인 복음을 오히려 더 열심히 전했습니다.

사도행전 8: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시련을 당하고 흩어진 가운데서도 성도들이 보인 모습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성도가 흩어진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기쁜 소식을 열심히 전했습니다. 그중에서 사도행전 8장은 빌립이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도행전 8: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누가는 빌립이 복음을 어떻게 전했는지 자세히 기록하지 않았지만, 빌립이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전했음은 분명합니다. 12절에서 그가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했다고 합니다. 빌립은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이 전했던 것처럼,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고 지금은 하늘에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며 약속된 이스라엘의 구원자라는 사실을 사마리아 땅에서 선포했을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당시 모세 오경만 성경으로 인정했기 때문에 유대인처럼 메시아에 대한 큰 기대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빌립은 모세와 같은 선지자에 대한 말씀을 바탕으로 예수님을 전했을 것입니다. 그 결과 사마리아 사람들은 한마음으로 빌립의 말을 따랐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표현인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사마리아 땅은 복음을 받아들였고, 그 땅은 달라졌습니다. 그 변화가 8절에 나옵니다.

사도행전 8: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여기서 ’그 성’은 사마리아 성입니다. 빌립이 전한 복음을 받아들인 결과 사마리아에 큰 기쁨이 가득했다는 것은 몇 가지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사마리아 사람들도 복음을 받아들인 뒤 자신들에게 올 시련과 고통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면서 엄청난 시련을 겪었듯이 자신들도 똑같이 당하리라 예상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빌립이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였고, 닥쳐올 시련을 걱정하기보다 구원의 기쁨을 온전히 누렸습니다. 시련은 구원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주는 기쁨은 그 어떤 것으로도 상쇄할 수 없습니다. 미래에 대한 걱정을 복음의 기쁨이 이겨 낸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며 저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구원받기 전에는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면 내가 포기해야 할 것이 많을 것 같아 걱정이 되었습니다. 복음의 가치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진정한 가치를 알고 나니 그런 마음이 미련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구원의 기쁨으로 걱정과 두려움을 기쁨으로 바꾼 것처럼, 복음의 가치를 알면 전에 즐기던 세상의 즐거움도, 세상에 대한 두려움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실제로 시련이 닥쳐도 복음의 기쁨을 누리면서 이겨 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세상의 시련과 고통 가운데서도 내게 있는 복음을 묵상하며 기쁨으로 위로받고 계십니까? 저 자신을 돌아보아도 메말라 있는 마음이 보였습니다. 과거에 복음을 직접 체험하고 기쁨을 누린 사람인데 왜 지금은 그러지 못할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세상의 여러 기쁨으로 제 기쁨을 채워 보려 한 적도 많습니다. 좋은 물건도 사 보았고, 좋아하는 취미 생활로 도파민을 만들어 보려고도 했고,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며 성취감을 느끼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잠시 기쁠 뿐, 결국 제 마음을 온전히 채워 주지는 못했습니다. 어리석은 생각이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통한 기쁨으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오직 복음만이 우리에게 진정한 기쁨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음을 기억하고, 영원히 누리게 될 소망을 기억하며 기쁨 가운데 살아가십시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소망이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빌립도 예루살렘에서 흩어지는 시련을 겪었지만 사마리아에서 복음 사역을 통해 큰 기쁨을 누렸습니다. 진정한 기쁨을 다른 곳에서 찾지 말고 우리 안에 있는 복음에서 찾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복음이 허물지 못하는 경계는 없습니다

빌립에 이어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합니다. 시몬입니다. 그는 특이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 8:9-11 9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10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며 이르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11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그들이 따르더니

사마리아 사람들은 시몬을 따랐습니다. 당시 시몬은 인기가 아주 많았는데,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마술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이 대목에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있었다는 표현이 없습니다. 오직 마술사 시몬만 따르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는 유대 지도자들이 복음의 장벽이었다면, 사마리아에서는 마술사 시몬이 장벽으로 버티고 있었던 것입니다. 시몬은 단순히 인기 많은 사람이 아니라 특별한 능력으로 사람들을 매혹했고, 사마리아 사람들의 관심은 오로지 시몬에게 향해 있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마술은 오늘날의 마술 공연처럼 눈속임으로 주목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초자연적이고 신비로운 능력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주술 행위였습니다. 성경은 시몬이 구체적으로 어떤 주술을 행했는지 설명하지 않아 정확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초월적인 힘에 영향을 주거나 그 힘을 조종하려는 의도로 주문을 사용하는 의식을 뜻합니다. 시몬의 마술을 보고 그를 신처럼 여긴 사람도 있었고, 두려워한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오랫동안 시몬의 능력에 매료되어 있었습니다. 사단 마귀는 시몬의 이런 세상적 영향력으로 복음을 방어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선교사가 낯선 땅에 갔는데, 그 지역에는 토속 주술을 행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주술사를 추종했고, 주술사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선교사에게 신비로운 주술 대결을 해 보자고 했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도 선교사들이 낯선 땅에 복음을 들고 가는 일은 매우 힘듭니다. 문화도 가치관도 다르고,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평생 들어 본 적이 없는 사람들, 오랜 세월 따라온 우상과 사람이 있습니다. 시몬처럼 신으로 여겨지는 사람이 있는 곳에 또 다른 구원자가 들어가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능력은 시몬이라는 장벽도 무너뜨렸습니다.

사도행전 8:12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이어서 13절입니다.

사도행전 8:13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마술사였던 시몬이 빌립의 말도 듣고 표적도 보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과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는 않아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시몬이 구원받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사단 마귀가 단단히 준비한 장벽이었는데, 그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던 사람이 무너진 것입니다. 시몬은 사도행전 8장 이후에는 다시 등장하지 않아서 그의 남은 생애가 주님을 위해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가 믿었고 특히 세례를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빌립은 구원의 역사가 없는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지 않았을 것이므로, 시몬에게 분명한 구원의 역사가 있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하나님이 택하신 자라면 어떤 사람도 구원받을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누가는 사마리아의 많은 사람이 구원받았다고 하면서도 시몬을 특정해서 말합니다. 여기에는 의도가 있을 것입니다. 시몬은 세상의 시각으로는 구원받기 어려운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인기가 많았고, 마술로 사람들에게 가장 큰 사람이라고 인정받았으니 자신을 부인하고 복음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부와 명예와 인기가 높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높은 사람이 구원받기는 어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고 하셨습니다. 시몬은 그만큼 구원받기 어려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도 하나님께서는 가능하게 하십니다. 빌립이 전한 복된 소식이 시몬을 무너뜨렸습니다.

구원받을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이 구원받았다는 간증을 우리는 종종 듣습니다. 성경에도 그런 사례가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강도는 평생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지만, 예수님을 바라보며 죽기 직전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지만 복음의 능력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큰 장벽이 있었지만 그것도 무너졌습니다. 그 비결은 하나님의 복음이었습니다. 착한 행실도, 믿는 부모님 밑에서 태어난 행운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복음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막힌 장벽이 허물어졌습니다.

또한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큰 장벽을 무너뜨린 이 복음이 유일한 참 진리임을 감사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영원한 것을 쫓아 살아가는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들은 참된 영원한 삶으로 건너가기 위해 잘못되고 어리석은 방법으로 많은 노력을 합니다. 죽은 뒤에 그것이 헛된 것이었음을 알게 되면 얼마나 후회되고 비통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참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이기에 하나님께 더욱 감사드릴 수 있습니다. 빌립의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시몬을 보면서, 우리도 구원받기 어려운 사람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셨음에 감사하기 바랍니다.

이렇게 시몬은 사마리아 사람들과 함께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장면이 흥미롭습니다. 시몬이 큰 죄를 범합니다. 순수한 마음을 갖지 못하고 세상이 추구하는 방법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사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시몬은 구원받은 사람이기에 결국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셋째, 복음은 어떠한 사람도 변화시킵니다

먼저 시몬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은 구원도 받고 세례도 받았지만 아직 성령님을 받지 못했습니다. 세례를 받은 뒤 성령님을 받기까지 얼마간 틈이 있었던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구원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의 두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로 내려가 기도하고 안수했고, 사마리아 사람들은 성령님의 임재를 경험했습니다. 시몬은 이 장면을 옆에서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도 그런 능력을 갖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18절과 19절입니다.

사도행전 8:18-19 18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19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시몬은 사도들의 능력을 자신이 가진 것, 곧 돈으로 얻으려 했습니다. 마술로 많은 부를 얻었으니 돈을 내세웠을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성령을 베푸는 능력을 원한 것은 당시 성령님의 임재가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 매우 화려해 보였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님이 처음 임하실 때도 강한 바람과 큰 소리가 있었습니다. 시몬은 성령님의 임재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 만큼 멋져 보였기에 자신이 내세울 수 있는 돈으로라도 그 능력을 사고 싶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우리는 구원받으면 성령님이 바로 주어진다고 알고 있는데, 이 장면에서는 구원받고 나서 성령님이 임하시기까지 틈이 있습니다. 누가가 이를 사도행전에 기록한 데는 하나님의 어떤 의도가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를 완벽히 알 수는 없지만 생각해 볼 만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시몬의 구원과 범죄, 회개의 모습을 보여 주시려고 특별히 허락하셨을 가능성입니다. 또 하나는 유대 사람인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성령님을 임하게 하심으로써 유대와 사마리아의 연합을 이루시려는 뜻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과 전 세계 이방인의 구원을 통해 우주적인 교회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사도라는 은사와 직분이 없으므로 이처럼 성령을 베푸는 사역을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심으로써 우리는 베드로와 요한이 받은 것과 동일한 성령님을 받았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성령님을, 유대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성령님을, 우리에게는 또 다른 성령님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와 요한에게 주신 그 성령님을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주적인 교회로서, 모두 같은 하나님의 자녀로 영원히 함께할 것입니다.

다시 시몬에게로 돌아가면, 시몬은 하나님의 능력을 돈으로 사려는 죄를 지었습니다. 베드로는 그를 책망했습니다. 20절입니다.

사도행전 8:20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그리고 회개를 촉구합니다.

사도행전 8:22-23 22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23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베드로는 시몬에게 악독이 가득하고 불의에 매였다고 강하게 책망하면서 회개를 권고했습니다. 시몬은 복음을 받아들이고 세례로 믿음을 표현한 구원받은 사람이기에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 다시 돌아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몬의 범죄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반면교사가 됩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사려는 시몬의 마음은 오늘날 많은 교회와 성도에게도 보입니다. 세상의 영향력과 자신의 능력으로 교회를 운영하고 이끌려 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착각합니다. 교회에서도 돈 많고 세상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을 리더로 세우고 싶어 하고,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이 교회 일도 잘하리라 생각하며 일을 맡깁니다. 처음에는 순수하게 하나님을 믿던 성도들도 점점 변해 갑니다. 교회에서 친분이 많은 사람을 곁에 두고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을 많이 확보하면 내 믿음이 더 훌륭해 보이고 신앙생활을 더 잘하는 것처럼 착각합니다. 세상의 매력으로 믿음 생활을 하려 하고, 교회는 정치 집단이 아닌데도 세상에서 통하는 전략으로 이끌면 그것이 좋은 믿음 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모습은 시몬이 가졌던 마음과 같습니다. 세상적인 능력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얻으려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성공했던 방법으로 믿음 생활을 하려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믿음 생활에 세상의 것을 접목하는 것을 차단하고, 순수하게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지 못했다면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시몬처럼 세상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사려는 그리스도인을 하나님은 싫어하실 것입니다.

잘못된 길에서 돌아오는 방법은 단 한 가지입니다. 내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기도하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시몬이 그렇게 큰 죄를 범했는데도 베드로가 회개할 기회를 주었듯이, 우리 안의 교만한 마음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기를 원하십니다. 베드로가 회개를 권고했을 때 시몬은 그 책망을 받아들이고 겸손하게 반응했습니다. 24절입니다.

사도행전 8:24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않게 하소서 하니라

흥미롭게도 시몬은 자신이 직접 회개 기도를 드리는 대신 베드로에게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자신의 악한 마음이 죄를 합리화하는 기도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교만의 반대는 겸손입니다. 우리도 시몬처럼 나쁜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육신의 몸을 입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내가 해결해 보려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이 나를 바꾸실 수 있다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회개해야 합니다. 이처럼 시몬같이 복음의 은혜를 누린 사람은 회개를 통해 변화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육신의 몸이 있어서 언제든 교만의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런 우리의 죄도 모두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 은혜를 잊지 마시고, 죄에 연약한 자신을 하나님께 맡겨 도움을 구하고 회개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복음의 능력은 낯선 땅 사마리아와 주술사 시몬을 뛰어넘을 만큼 위대합니다. 땅끝까지 예수님이 증거될 때 어떤 장벽도 이 복음을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올 수 있었던 것도 그와 같습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진정한 기쁨을 줍니다. 또 절대 변할 수 없을 것 같은 우리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지금 어려움이 있거나 죄에 빠져 있는 분이 계시다면 복음으로 돌아가시기를 권합니다. 세상의 방법이 아니라 복음을 통해서만 진정한 기쁨을 누리고 진정한 변화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소망이시고 안식처이십니다. 세상의 것은 잠시 위로가 될 수 있어도 헛되어 언젠가는 없어집니다. 이 점을 꼭 유념하시고 가장 지혜로운 인생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복음을 믿을 수 있는 믿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직 우리에게 있는 참 복음만이 우리에게 참된 기쁨을 주고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 복음의 특권을 잘 누리게 해 주시고, 하늘의 소망을 품고 하나님의 나라에 갈 때까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복음의 특권을 잘 누리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이 모든 기도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