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범죄한 목사도 회개하면 복귀할 수 있는가?

조정의 · 2026.10.22 · 여러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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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2026년) 7월에 스티븐 로슨 관련 칼럼을 썼다. “스티븐 로슨 해프닝이 밝혀낸,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향한 우리의 치명적 잘못들”이란 제목의 칼럼이었다. 2024년 북미 복음주의 기독교에서 일어난 가장 충격적인 사건, 스티븐 로슨의 스캔들 이후, 2025년 11월, 한 콘퍼런스 강사로 그의 이름이 실수로 언급되면서, 많은 사람이 쏟아낸 비방과 정죄의 말에 관한 생각을 정리한 글이었다. 우리는 1) 여간해선 용서하지 않고, 2) 너무 쉽게 판단하며, 3) 어떻게 회복해야 할지 잘 모른다고 필자는 지적했다(본문).

그런데, 올해 9월 로슨이 실수가 아니라 실제로 공적인 사역에 모습을 드러냈다. 새로운 책을 낸 것이다. 제목은 “Mercy in the Wilderness: How I Fell & What I Found”(“광야에서 만난 자비: 나는 어떻게 넘어졌고 무엇을 찾았나”)이다. 다시 한번 여론이 뜨겁게 달궈졌다. 저스틴 피터스는 두 현직 목회자와 인터뷰하면서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이 문제의 심각성을 다루었고(영상보기), 어떤 목회자는 피터스가 이 문제를 다룬 것이 성경적이지 않고 매우 잘못된 것이라는 공개서한을 남겼다. 새롭게 발단된 로슨의 문제, 이제는 해프닝이 아니라 사건이 된 이 문제를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몇 가지 질문에 답을 찾아가며, 범죄한 목사가 회개하면 복귀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 조금은 더 선명한 시각을 가져보자.

죗값은 이미 십자가에서 해결된 것이 아닌가?

복음은 거듭난 자의 모든 죗값이 이미 십자가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단번에 영원히 치러졌다고 선언한다: “다 이루었다”(요 19:30; 참고. 히 10:10-18). 모든 죄는 일차적으로 하나님께 짓는 것이고(시 51:4),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모든 죄 문제를 하나님께서 친히 넘치는 은혜로 완벽하게 해결하셨다는 것이 바로 복음의 핵심 메시지다(엡 2:4-10). 그러면 신자가 범죄하면 하나님께 더는 용서를 구할 필요가 없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새 언약의 백성이 된 신자는, 계속해서 그 언약에 신실한(미쁘신) 하나님의 용서와 정화를 얻을 것을 확신함으로, 구할 수 있고, 또 구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하나님께서 완전히 대속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형벌을 면하기 위하여 지급할 대가가 없다. 그러나 죄의 결과물이 발생하지 않는 건 아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단절시킬 수 없지만, 멀어지게 만든다. 형제자매 사이에 갈등과 분열을 일으킨다. 이웃과 시민들에게 크고 작은 손해를 끼친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우리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다 용서하셨기 때문에, 죄가 일으킨 결과물에 대하여 크게 가책을 느끼거나 용서를 구할 필요가 조금도 없다고 말한다. 논란이 된 영화 “밀양”에 나오는 살인범이 딱 그렇게 나왔다. 피해자에게 용서를 빌지도 않고, 신의 용서를 받아 평안을 누리고 있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예수님이 다 해결하셨으니 내가 책임질 것이 없다는 태도는 복음의 은혜에 합당한 반응이 아니다.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범죄한 대상, 즉 하나님과 사람에게 겸손히 자백하게 하고, 우리 죄가 만들어낸 결과물에 대하여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결단을 일으킨다: ‘당신을 두고 바람을 피웠지만, 예수님이 다 용서해주셨으니까, 당신도 문제 삼지 마’라고 말하는 사람과 ‘당신을 두고 바람을 피운 것은 정말 하나님과 당신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죄야. 앞으로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내가 최선을 다할게’라고 말하는 사람 중에 복음에 합당한 반응을 하는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답은 명확하다.

그러면 범죄한 목사가 책임져야 할 죄의 결과물은 무엇인가?

스티븐 로슨이 책을 낸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책에서 자기 잘못을 옹호 및 변명하거나 정당화하지 않았다면, 솔직하게 고백하고 인정하면서 그 가운데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눈 거라면 뭐가 문제가 되겠는가?(참고로, 로슨의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다). 문제의 본질은 그가 자기 죄의 결과물을 충분히 책임지려고 하는지 알 수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스캔들이 일어난 지 한 달 만에 이 책이 나왔다고 생각해 보라. 아마 더 많은 사람이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왜 그런가? 그가 저지른 죄의 결과물을 책임지고 해결하는 데 충분한 시간을 들이지 않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2년 후에 나온 이 책에 대하여 너무 성급하다고 보는 이들도 사실상 같은 이유다. 그러면, 그가 책임져야 할 죄의 결과물은 무엇이며, 어느 정도의 진정성을 보이는 것이 필요할까?

1) 먼저는 로슨이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대상 그리고 그 가족들에게 용서를 빌고 화목을 이루어야 한다. 2) 로슨의 아내와 자녀들, 그가 섬겼던 교회 일꾼들과 성도들에게도 진정한 사과를 전하고 화해해야 한다. 자신을 둘러싼 가장 친밀한 대상인 가족, 그리고 나아가 그리스도 안의 영적 가족들이 가장 큰 상처와 손해를 입은 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진정으로 사과하고 회복을 위한 노력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관계가 회복되었을 때, 교회가 공적으로 그가 회복되었음을 선언해야 한다. 목사의 범죄가 가장 가까운 대상부터 먼 대상까지, 그동안 영향을 끼친 모든 대상에게 파급효과를 낳는 것처럼, 목사의 회복(목사의 역할 회복이 아니라 한 성도로서의 회복) 또한 단계별로 차근차근 밟아야 한다. 만일, 목사의 아내가 용서하지 못하고 있거나 피해자 가족이 화해를 거부하고 있는데, 교회에서 목사의 재능과 영향력을 빨리 이용하고 싶어서 성급하게 회복시키려고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더 많은 상처와 분열이 일어나게 될 것이 뻔하다.

목사가 자신의 죄의 결과물을 책임졌다면, 복귀할 수 있지 않을까?

많은 사람이 여기서 다윗의 예를 든다. 그들은 간음과 살인을 저지른 왕을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사용하신 것처럼, 진정으로 회개했다면, 목사로서 계속 쓰임 받을 수 있지 않겠냐고 묻는다. 그러나 과거에 하나님께서 언약에 신실한 사랑과 자비를 다윗에게 보여주신 하나의 사례를 모든 범죄한 자가 회개할 때, 똑같이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고 확신을 가지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어떤 사람을 목사로 세워야 할지 더 분명히 말하고 있는 성경 본문이 있기 때문이다. 성경 해석의 원리는 일반 원칙이 특수 원칙보다 우선되고, 명확하게 언급한 것이 추상적으로 언급한 것보다 우선된다. 성경은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을 “감독”으로(또는 목사) 세우라고 명백히 요구한다(딤전 3:2; 딛 1:6).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한다는 조건도 있는데(딛 1:9), 이것은 가르치는 대로 본인이 살아내야, 단지 지식적으로 말씀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도록 권면을 받을 수 있고, 말씀을 거슬러 말하거나 반항하며 사는 사람을 삶이 동반된 직언으로 무게 있게 책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을 성경은 목사로 세우라고 명령한다. 이것이 다윗의 사례로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원리보다 우선 되는 원리이다.

결국 범죄한 목사가 복귀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지금은 다 회복되었지만, 어쨌든 과거에 지은 죄가 있기 때문인 것이 아니다. 교회 안에서 목사가 맡은 역할이 있는데, 그 역할을 제대로 이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면에서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은 없다. 죄가 조금도 없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러나 성경이 요구하는 바는 순전무결함이 아니라 목회직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장애가 될 만큼 치명적인 책망 거리가 없는 것을 말한다. 로슨처럼 아내가 아닌 젊은 여성과 오랜 세월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경우, “책망할 것”이 명백히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만일 그가 이 ‘책망 거리’를 가지고 목회를 계속해서 한다면, 성도를 실족하게 하거나 원수의 비방을 받기가 쉬울 것이다. 만일 그가 성적으로 방탕하여 ‘순결하라’는 하나님 명령을 거역하는 성도를 권면하고 책망해야 한다면 어떨까? 자신의 실패와 회복을 통해, 더 진정성 있는 상담이 가능할까? 만일, 그가 거듭나기 전에 저지른 죄라면, 목회를 시작하기 전에 범한 죄라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한참 목사로서 성도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치던 도중에 드러난 범죄인 만큼, 그 영향을 받은 영혼들의 당혹감과 수치심과 반항심에 관하여 더는 선한 영향을 미치기가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다.

목사는 어디까지나 섬기는 직분이고 은사다

우리는 은사가 탁월한 목사가 실족할 때 크게 낙심한다. 그가 가진 은사와 재능을 안타까워한다. 여전히 성경을 해석하고 가르치고 전달하는 데 탁월한 실력이 있다면, 그것을 썩히는 것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범죄한 것은 명백한 죄가 맞지만, 회복하고 나면 모든 성도가 그 은사를 교회를 위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이해하고 용납하고 받아줘야 하지 않을까? 나는 만일 로슨이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교회 목사였는데, 범죄하여 그 교회 안에서 치리되었다가 다시 회복되었고, 모든 성도가 그 은사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한마음으로 세워주었다고 한다면, 참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반대로 그 교회가 로슨을 성도로서 회복시켰지만, 목사로서는 더 일할 수 없도록 막았다고 해도,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목사는 어디까지나 지역교회를 섬기는 직분이고 은사라는 것이다. 지역교회가 그 사람의 은사가 교회에 유익이 되는지 성경을 기준으로 진지하게 판단하고 직분을 회복시킬 것인지 결정했다면, 그 결정이 무엇이든 아름다울 수 있다. 그러나 한 지역교회를 떠나 나라와 전 세계에 큰 영향을 준 목회자라면 그 판단 기준이 더 엄격해져야 한다고 본다. 스티븐 로슨은 그런 면에서 지금 전 세계적인 옹호와 비난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그가 책임져야 할 죄의 결과물이다. 그가 진정으로 회개했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도 그를 용서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그가 공적 사역에 복귀하는 것을 지지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필자는 로슨의 책 제목처럼, 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를 베푸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죄에서 해방되고 화목을 이루며 온전히 회복되기를, 끝까지 믿음에 관하여 파선하지 않고,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그것이 꼭 목회가 아닐지라도, 충성스럽게 완주하기를 간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