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인간은 왜 질서를 거스르려고 하는가?

조정의 · 2026.10.29 · 여러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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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내분설이 돌고 있다. 이른바 ‘96라인’이라 불리는 선수들이 일부 동료에게 대표팀에서 은퇴하겠다는 뜻을 내비쳤고,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장이 설득하면서, 그들이 은퇴하려는 이유가 주장인 손흥민 선수에게 그동안 쌓인 불만 때문이라는 의혹이 생겼다. 온갖 추측성 발언과 신빙성이 떨어지는 증언들이 쏟아져나오고 있지만, 의혹이 사실인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 일을 통해 한 가지 질문이 생겼다. 웬만하면 바뀌지 않는, 인간의 타고난 본성에 관한 질문이다: ‘인간은 왜 질서를 거스르려고 하는가?’

이 질문은 자기 목숨뿐만 아니라 아내와 자녀까지도 주님께 온전히 내어주기로 작정한 사람들, 가장 영적이고 복음적인 사역 안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허드슨 테일러는 중국내지선교회 후임 총재를 임명할 때, 선교회 내부와 선교지 전역에서 차기 총재로 이미 인정받고 있던 스티븐슨이 아니라 호스트를 임명했다. 그러면서 호스트 본인뿐만 아니라 스티븐슨이 이 결정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것인지가 선교 사역 전반을 뒤흔들 만큼 엄청난 관건이 되었다(패트릭 펑, 조나단 야오, “그리스도 안에 감춰진 사람”, 좋은씨앗, 2026). 평범을 뛰어넘은 자기희생을 보여주는 주님의 종들 사이에서, 자기 일도 아닌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 안에 질서를 세울 때도, 그것을 거스르려는 본성과 싸울 필요가 있었다는 말이다.

전제: 질서의 하나님께서 모든 사회에 질서를 세우셨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고전 1433)

만물이 질서 있게 움직이며 함께 살아가는 이유는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셔서 만물을 질서 있게 화평 가운데 살아가게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인간 세계에 두신 질서 또한 명백한데, 사회에 모든 권세를 세우신 것(롬 13:1), 남편을 아내의 머리로 세우신 것(엡 5:23), 자녀들에게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할 것을 요구하신 것(엡 6:1), 종들에게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라고 명령하신 것(벧전 2:18), 교회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할 것을 권면하신 것(히 13:17) 등을 통하여 확증할 수 있다. 요컨대 질서는 사람이 사회를 잘 작동하게 하려고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국가, 사회, 가정, 직장, 교회 안에 각각 질서를 세우셨다: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롬 13:1).

그러면 질서 상 머리(리더) 역할을 하는 사람의 의무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대리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권세들은 “하나님의 사역자”다. 하나님이 부리는 일꾼이란 뜻이다. 그들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선을 베푸는 자”가 되고,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가 된다(롬 13:4). 남편은 아내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사랑한다(엡 5:25). 남편의 리더십은 아내를 말씀으로 깨끗하고 거룩하게 하여 하나님 앞에서 영광스러운 자가 되게 하는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데 발휘된다. 부모는 자녀를 무엇으로 양육하는가?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한다(엡 6:4). 이는 자녀가 원하는 것을 무조건 들어주거나, 부모가 생각할 때 성공적이고 형통한 삶이라고 생각되는 대로 아이를 길러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모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자녀를 이끌 책임이 있는 리더다. 주인들은 종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하늘에 계신 그들의 상전이 하시는 것처럼 대해야 한다(엡 6:9). 교회의 인도자들은 성도를 어떻게 돌아봐야 하는가?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어야 한다(벧전 5:3). 주님께서 제자들의 본이 되신 것처럼 말이다(요 13:1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대리인으로 질서 상 인도하고 다스리고 이끄는 역할을 맡긴 이들은 자신에게 맡겨진 이들이 원하는 것과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늘 살피고 관심을 두며 기도하며 돌보면서도, 자신들에게 그 역할을 맡기신 이가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쉽게 말해서, 좋은 리더는 구성원들의 대다수가 원하는 것을 항상 들어주는 사람이 아니고, 독불장군처럼 자신이 원하는 대로만 끌고 가는 사람도 아니다. 좋은 리더는 자신이 이끄는 사회와 가정과 직장과 교회 안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행하고, 자기 리더십 안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뜻대로 살도록 권면하고 인도하는 역할에 충성하는 사람이다. 어떤 저항과 방해와 불만과 비방이 있더라도 말이다.

일반 원칙: 하나님 세우신 질서를 거스르는 것은 언제나 옳지 않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 5:21)

복종의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회 질서를 따라 내가 이끌어야 할 구성원이 있는가 하면 또 내가 따라야 할 대상도 있다. 부모로서 자녀를 하나님 뜻대로 양육할 책임이 있으면서도 교회 안에서는 인도하는 자들에게 범사에 순종할 책임이 따르기도 한다. 결국 이런 측면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 안에서 모두가 “피차 복종”하는 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제기한 질문처럼 인간은 본성적으로 질서를 거스르려 한다. 선과 악을 스스로 알고 구별하여 하나님처럼 되고자 반역을 꾀한 것이 인간 타락의 시초였다(창 3:5). 그리고 하나님은 그 대가로 남편과 아내 사이에 누가 서로를 다스릴 것인지 다툼이 시작될 것이라고 저주하셨다(창 3:16). 하나님이 세우신 모세와 선지자를 백성들이 어떻게 대했는가?(민 12:1; 출 17:2-3). 왕들은 어떻게 대했는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을, 지음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맞이했는가?(요 1:11).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과 그분이 세우신 질서에 대한 반역의 역사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원칙이 있다.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거스르는 것은 언제나 옳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대항하는 모든 자들을, 하나님께 대항하는 원수로 보시고 징계하셨다(민 12:5-10). 선지자들을 죽이고 돌로 치는 자들을 심판하셨다(왕상 18:4; 대하 24:20-25). 하나님이 기름부으신 왕을 거부하는 자들을 신실하게 제거하시고(대상 10:6), 결국 마음에 합한 왕을 세우셨다(대상 11:9). 하나님이 보내신 독생자를 영접하지 않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지만, 결국 모든 무릎을 그 앞에 꿇게 하실 것이다(빌 2:10). 하나님 세우신 질서는 하나님이 지키신다. 그래서 그 질서를 거스르는 것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이다(롬 13:2). 그래서 언제나 옳지 않다. 만일 권세자들이 까다롭고 악하다면 불순종할 이유가 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라고 명령하셨다(벧전 2:18). 하나님은 권세들에게 “복종하라”고 명령하셨고(롬 13:1), 아내들에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요구하셨다(엡 5:22).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하는 게 옳고(엡 6:1), 종들은 육체의 상전에게 그리스도께 하듯 순종할 것을 명령하셨다(엡 6:5). 성도는 교회의 인도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는 명령을 받았다(히 13:17).

이 원칙에 철저하게 순종한 모범으로 다윗을 꼽을 수 있다. 그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 친히 기름 부으신 이스라엘의 차세대 왕이었다(삼상 16:12-13). 하나님은 사울을 버리셨고, 다윗을 택하셨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서 질서를 다시 세우시는 날까지, 언제나 그 질서에 순응하기를 택했다. 반역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삼상 24:6)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시지만, 자기 부모에게 복종하셨다(눅 2:51). 아무런 죄도 없이 심문당하고 유죄 판결을 받으며 십자가라는 끔찍한 형벌에 넘겨지셨지만, 그들에게 위에서 위임한 하나님의 권세를 인정하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모두 따르셨다(요 19:10-11).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그분의 본을 따라, 하나님 세우신 질서에 순응해야 한다. 그것이 항상 옳다.

특별 원칙: 유일하게 질서를 거슬러야 할 때는 하나님께 반역하라는 요구를 받을 때다

하지만, 예외도 있지 않은가? 있다! 히브리 산파는 애굽 왕의 명령을 거역하여 남자 아기들을 죽이지 않고 살렸다. 하나님을 경외하였기 때문이다(출 1:17, 20-21).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다시는 가르치지 말라는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 지도자들의 요구를 거부했다. 이렇게 말하면서: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 5:29). 종말엔 짐승을 경배하고 섬기겠다는 표를 이마와 손에 받지 않아서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될 자들이 있을 것이다(계 13:17; 계 20:4). 그들은 하나님만 섬기라는 말씀을 거역하지 않기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이다. 성경에서 질서에 순응하지 않아도 될 때는 유일하게, 하나님께 반역하라는 요구를 받을 때다. 히브리 산파는 ‘살인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 사도들은 ‘내 증인이 돼라’는 그리스도의 명령, 종말의 성도들은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율법을 지키기 위해, 권세들의 명령을 거역한 것이다.

세상 권세가 하나님의 권세를 거역할 것을 요구할 때, 하나님의 사역자가 하나님께 반역한 것이므로 우리는 그들의 명령을 거부해야 한다. 그렇게 하여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다. 남편이 하나님이 위임한 권위로 아내를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길로 인도할 때, 아내는 온유하지만 단호하게 거부할 수 있다.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지만,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고전 11:3). 자녀는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골 3:20). 그러나 어디까지나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일 경우다. 거의 대부분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지만, 명백하게 주가 기뻐하지 않는 것을 부모가 요구한다면, 자녀는 공경하는 태도로 부모의 요구를 거부할 수 있다. 종들은 육신의 상전들에게 무슨 일을 하든지 순종해야 한다(골 3:23).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 “주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명백히 아닐 경우, 상전 위에 있는 하늘의 상전을 섬기는 것이 옳다. 성도는 교회의 인도자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는 것이 옳다(히 13:17). 그들은 성도의 영혼을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같이 하기 때문이다. 이 일을 즐거움으로 하게 하는 것이 성도에게 유익하고, 그렇게 하려면 순응하는 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아야 할 때가 있다. 두세 증인으로 충분히 입증할 수 있는 범죄가 일꾼에게 있는 경우다. 그런 경우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고 징계하여 나머지 사람들도 두려워하게 해야 한다(딤전 5:19-20). 그때가 질서를 합당하게 거스를 수 있는 유일한 경우다.

물론 순응하고 순종하며 복종하라는 의미가, 어떤 사안에 관한 자기 의견을 조금도 낼 수 없고, 시키는 대로 군말 없이 따르기만 하라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권세를 주신 자들에게 그런 지도력을 발휘하라고 한 적이 없다. 성경적인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온유하고 겸손한 태도로, 본을 보이면서, 인도하고 보호하고 사랑하고 돌보며 섬기는 리더십을 보여주라고 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보여주신 리더십이다. 한편, 하나님 세우신 질서에 순응하고 따르는 우리는 최종 권한을 하나님이 권위를 맡기신 자들에게 넘겨줘야 한다. 내 의견과 제안을 충분히 전달하더라도, 그가 결정할 수 있도록. 그는 그 모든 책임을 물을 자고, 나는 그 권위에 순종했는지에 대한 평가를 받을 자다.

다시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이야기로 돌아와서

모든 동기와 사실을 밝히 알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의견을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필자는 대표팀의 내분을 해결하는 과정은 반드시 질서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장을 선택할 권한이 감독에게 있다면, 그가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96라인’이 무엇을 불편해했고 무엇을 요구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었으니, 결정은 감독이 하는 것이다. 은퇴할까 봐, 그러면 대표팀 전력에 차질이 생기고, 축구 성적이 나빠질까 봐 염려할 필요는 없다. 축구는 실력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라 팀워크가 정말로 중요하다(가정, 직장, 교회 등 모든 사회 조직이 그렇다). 질서에 순응하지 않고 거스르는 무리가 있는 팀은 아무리 기술적인 전력이 좋을지 몰라도 팀으로서는 전력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좋은 성적을 낼 수가 없다. 만일 질서를 거스르는 것으로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데 성공한다면, 그 조직은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똑같은 문제를 겪게 될 것이다. 북이스라엘 왕조가 반복되는 반역의 역사를 보여준 것처럼.

오늘날 세상은 탈권위를 넘어 반권위 시대로 보인다. 칼 트루먼은 “지금 있는 것을 뒤엎고 앞선 세대가 권위 있게, 심지어 성스럽게 여긴 것을 허물려는 욕구”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꼬집었다(“인간 모독”, 부흥과개혁사, 2026, 100p). 한마디로 하나님 세우신 질서란 질서는 일단 무너뜨리고 보자는 심성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이 세상 풍조를 따르지 않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러나 그것이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따르는 길임에 틀림이 없다(롬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