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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제: 천국으로의 부름

본 문: 열왕기하 20장 1절 – 7절

설교자: 조 성 훈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저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처치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더라 이사야가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일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겠고 내가 네 날을 십 오년을 더할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이사야가 가로되 무화과 반죽을 가져오라 하매 무리가 가져다가 그 종처에 놓으니 나으니라”

 

얼 마 전에 타계한 스티브 잡스가 대학 졸업식에서 연설을 하며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죽음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하늘나라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도 죽어서 가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저는 하늘나라의 부름을 통보받은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았지만 그들 중 대부분이 본문에 나오는 히스기야와 같은 반응을 보입니다. 모세도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보여주시면서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실망하며 하나님께 사정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나이와 상관없이 지금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정리하라고 하신다면 어떨까요?

 

하 나님께서 모세에게 하늘나라에 올라올 것을 통보하셨을 때 그는 “구하옵나니 나로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편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라고 간구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신3:25,26)”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면 참 서운했을 것 같습니다. 그는 애굽에서 내려오면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늘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런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을 때 그 실망감이 얼마나 컸을까요?

 

히 스기야는 매우 신실한 왕이었습니다.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열하18:3,5)” 전대의 많은 왕들이 만들어놓은 우상을 부수고 신실하게 하나님만 의지하고 동행하는 왕이었습니다. 앗수르 왕이 와서 히스기야와 유다를 멸망시키려고 했을 때 그는 백성들에게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했습니다. 신실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며 섬긴 그에게 하나님은 너의 집을 정리하라고 하셨습니다.

 

만 일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말씀을 하셨다면 아마 내가 어떤 잘못을 했는가 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왜 하필이면 나인가, 나보다 악한 사람도 많은데..’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게다가 당시 히스기야의 나이는 40세였습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런 통보를 받게 될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기도를 보면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라고 합니다. 그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어찌나 똑같은지 모릅니다. 우리도 아마 그와 같이 말하면서 “다시 한 번 제게 생명을 연장시켜주신다면 남은 삶을 주님을 위해 살겠습니다”라고 할 지 모릅니다. 히스기야는 그렇게 빨리 죽고 싶지 않다고 했고 그동안 한 일을 봐서라도 수명을 연장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심하게 통곡했습니다. 히스기야도 신실한 하나님의 종이었기 때문에 믿음의 조상들과 같이 내세가 있다는 것을 믿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왜 그렇게 심하게 통곡을 했을까요?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 그렇게 서운한 일일까요? 왕으로서의 자신의 지위가 아까웠을지도, 죽기에는 나이가 너무 젊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하 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15년을 더 살게 하셨습니다. 그 이후의 그의 삶은 어떠했을까요? 앗수르 왕이 사자를 보냈을 때 그는 자신의 창고에 있는 금은보화를 보여주었고 그 일로 인해 하나님은 히스기야에게 그들이 금은보화를 다 가져갈 것이고 네 자손들도 잡아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히스기야가 다스린 29년 동안 하나님께서 부르시기까지만 다스렸다면 역사 속에서 그는 훌륭한 왕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수명을 연장받은 15년 동안 그는 망가졌습니다. 생 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데려가시는 데는 어쩌면 그런 이유(남은 삶을 주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고 까먹기만 하기 때문에)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가는 것이 가장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신실하게 의지한 사람도 잘못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솔로몬 역시 그러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지혜를 구하고 수많은 복을 받았던 왕이지만 노년에 다 망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 우리의 역할이 다 끝났을 때 우리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도 그러했고 사도 바울도 그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이제 그만 삶을 정리하라고 하셨을 때 그는 “제가 세운 교회들을 생각해보세요, 왜 그렇게 저를 빨리 부르십니까”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믿음의 길을 지켰으니 이제 나를 위해 의의 면류관이 준비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결론

 

하 나님은 왜 신실한 주님의 종인 히스기야를 그렇게 이른 나이에 부르셨을까요?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그것이 가장 적합한 때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고 눈물로 기도해서 수명을 연장받았지만, 그 15년이 그에게 결코 좋은 때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무책임하게도 “모든 재앙이 내 시대에만 나타나지 않으면 된다”고 말하는 연약함을 보입니다.

만 일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제한된 시간을 주시고서 삶을 정리하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울며 통곡하며 히스기야처럼 삶을 연장시켜 주시기를 기도하겠습니까? 우리가 우리의 생명을 좌우할 수 없다면, 적어도 천국의 아름다움을 믿는 사람이라면 “주여 제가 즐거운 마음으로 가겠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 신앙인으로서의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요?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롬8:19-23)” 하늘나라에 가고 싶다고 하는 사람도 죽어서 가고 싶어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던 스티브 잡스의 말은, 믿는 자들을 반성하게 합니다. 정말 하늘나라를 믿는다면, 하나님이 계시는 것과 천국의 아름다움을 믿는다면, 죽음을 기뻐하며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