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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인생의 수고

본  문: 창세기 3장 16-19절

설교자: 조 성 훈

 

 

“여 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우 리의 조상 아담과 하와 때문에 우리는 세상 살기가 참 힘듭니다. 야곱은 바로 앞에서 자신이 험악한 삶을 살았다고 고백합니다(창 47:9). 솔로몬은 만물의 피곤함을 말로 할 수 없다고 했고(전 1:8) 시편 기자는 우리가 70-80년을 살아도 남는 것은 수고와 슬픔 뿐이라고 했습니다(시 90:10). 흔히들 나이가 들어 은퇴를 하면 ‘노년은 편하겠지’ 생각하는데 성경의 말씀들을 보면 일찌감치 포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인간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이마에 땀이 흘러야 먹고 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는 일 없는 노인이라도 편히 사는 것은 아닙니다. 건강도 문제고 자식들 눈치도 봐야 하니 참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육체와 영혼의 탄식

 

사 람들은 육체적으로 힘들 뿐 아니라 영적으로도 매우 어려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여자와 남자에게, 그리고 자연계에도 벌을 내리셨습니다. 여인에게는 해산하는 고통을 내리셨습니다. 아무리 의학이 발달해도 열 달 동안 임신하고 출산하는 것이 편한 경우는 없습니다. 또한 여자는 남편을 사모할 것이고 남편이 그 아내를 다스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남자들에게는 더 어려운 벌을 내리셨습니다. 이마에 땀이 흘러야 먹고 살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고 나면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믿기 전이나 후나 얼굴에 땀이 흘러야 먹고 사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일평생의 수고

 

때론 다른 사람의 삶이 내 삶보다 더 나은 것처럼 보입니다. “내가 저 정도만 되면 아무 걱정 없이 살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 역시도 다른 사람을 보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장마 중에 비가 많이 내리면 2층 집에 사는 사람은 ‘아래층 사는 사람은 지붕 샐 걱정 없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래층에서는 물이 차올라 방이 물에 잠기자 ‘위층 사는 사람은 이런 걱정 없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다 나름대로 염려가 있습니다. 남부럽지 않게 잘 사는 것 같아 보이는 가정도 알고보면 문제들이 많습니다. 자 식문제나 부부관계의 문제, 질병 등 어려움이 없는 집은 없습니다. 학생들에게는 무슨 걱정이 있을까 싶지만, 오늘날 학생들을 보면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태어날 때부터, 아니 뱃속에서부터 공부를 가르치는 세상이 아닙니까? 학생들은 아침에 별을 보고 나가서 밤에 별을 보고 들어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한 이후에 하나님께서 내리신 벌인 것입니다.

 

육 체적으로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이 정신적인 고통은 적고, 육체적으로 편한 일을 하는 사람이 정신적인 고통은 많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더 좋은 것입니까? 성경에서도 가난한 사람은 잠을 잘 자고 부자인 사람은 잠을 잘 자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정들을 돌아보면 어떤 가정도 문제가 없는 가정은 없습니다. 주님을 믿었다고 해서 그러한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처럼 만나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일은 없습니다.

 

이 런 삶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얼굴에 땀이 흘러야 먹고 산다”는 삶입니다. 우리 인간은 이것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은 나보다 나을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들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벌입니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도, 지기 힘든 짐을 지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마을의 이장이거나 면장이 된다면 7천~8천 명 정도에게 욕을 먹겠지만,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욕을 먹게 될까요? 인간은 일평생 먹고 자고 일하는 변함없는 삶을 살다가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 다행인 것은 그리스도인은 영적인 안식을 누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짐을 주님께 맡길 수가 있습니다. 죄의 짐을 맡길 수 있고 삶 속에서 경험하는 많은 어려움을 주님께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육체가 쉼을 얻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영혼은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어 차피 이 땅에서 이마에 땀을 흘려 사는 것을 피할 수 없다면, 즐거운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그 일을 하는 것이 어떨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사명이 아닙니까? 자신이 가난하다거나 불행하다고 생각된다면 방글라데시와 같은, 어렵게 사는 나라에 가서 잠시 살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저 사람은 나보다 낫겠지 하는 생각이 나를 불행하게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후에 모든 사람이 이마에 땀이 흘러야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누구도 예외는 없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다른 사람이 더 나은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아버지는 제가 초등학교 때 저에게 맡는 지게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때는 참 무겁게 느껴졌는데 지금 보면 조그마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자신에게 지기에 무거운 짐을 지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기신 짐을 지고 이 땅에서 땀을 흘리면서 죽을 때까지 사는 것입니다. 이 말이 여러분이 듣기에 절망적일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짐을 져 주시는 분이 계시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의 필요에 따라 공급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고 우리의 염려와 걱정을 주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주님의 약속과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은 우리의 영혼에 안식이 됩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주님 앞에 기도할 때 “근심과 걱정을 주님께 맡긴다”고 말하면서 기도를 마치고 돌아갈 때 그 짐을 다시 가지고 간다고 합니다. 주님께 맡기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기만 하는 것 같습니다. 주님은 너의 짐을 나에게 맡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모든 고통을 곧 벗어버릴 소망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들은 무거운 짐을 지고 살다가 죽은 뒤에 더 무거운 짐을 지게 되지 않습니까?

 

 

결론

 

인생은 쉽지 않습니다. 믿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모든 사람들이 충분히 무게를 느낄 만큼 짐을 지고 있습니다. 나만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시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내리신 벌입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그 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서로 받으라, 서로 짐을 지라, 용납하고 위로하라, 격려하고 대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요 13:34, 롬 15:7, 갈 6:2, 엡 4:2, 살전 4:18, 히 13:16, 벧전 4:9, 벧전 4:10). 성도의 짐이 무거우면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도와 짐을 져주라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짐을 지고 주님을 바라보며 나아갈 때,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내게 맡기신 짐을 잘 감당하고 서로 위로하면서 기쁘게 이 길을 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