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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제: 보이지 않는 하나님

본 문: 디모데전서 6장 15-16절

설교자: 조 성 훈

 

“기 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오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

 

하 나님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신을 존재하는 것처럼 섬기는 사람들이 있고,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하나님은 볼 수 없는 분이시고 가까이 할 수도 없는 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침대를 현미경으로 관찰해보면 사람의 몸에서 떨어지는 것을 먹고 사는 진드기가 많다고 합니다. 물론 우리 눈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존재하지 않아서 안 보이는 것이 아니라 존재해도 우리의 눈으로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너무 크거나 너무 멀리 있어도 볼 수 없습니다. 망원경으로 우주를 보면 수많은 별이 있지만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몸의 세포도 전자현미경으로 봐야 유전자를 해독할 수 있습니다. 지진이 일어나려고 하면 짐승들이 먼저 알고 피난을 간다고 하는데 사람들의 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믿는 사람의 가장 큰 소원이라면 하나님이 우리 눈에 보였으면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믿는 하나님을 한 번 보고 싶은 것입니다. 모세도 하나님께 보여 달라고 사정하고 신약의 예수님의 제자들도 아버지와 표적을 보여 달라고 주님께 사정했습니다. 저 역시 하나님께 그런 기도를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나타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체험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살아계심을 우리에게 나타내십니다.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 볼 수 없는 하나님

 

보 이지 않는 영의 세계는 참 놀랍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영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신앙생활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처럼 사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고 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고 했습니다.

하 나님을 볼 수가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제한된 의미에서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과 동행했고 모세, 아브라함, 수많은 선지자들이 하나님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온전한 모습을 본 자는 없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모습을 보여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 때 하나님은 나를 보고 산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보여주시지 않는 이유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모습을 잠깐 보고 나서 그의 얼굴에서 빛이 났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빛 가운데 나타나십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났을 때에도 그는 태양 빛보다 밝은 빛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까이 가지 못할 빛 가운데 거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겼던 믿음의 사람들

 

하 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신을 나타내시고 친구처럼 그와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심지어 아브라함이 요리한 것을 드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도 제자들과 함께 떡과 생선을 드셨습니다. 어떻게 문이 다 잠긴 곳에 들어가실 수 있고, 볼 수도 있고 못 볼 수도 있으며, 사람이 만질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는 몸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시간을 초월해서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는 그런 몸입니다. 그러나 생 각해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삶에 계속해서 나타나신 것은 아닙니다. 그의 삶에 몇 번 나타나셨을 뿐입니다. 모세도 그러하고 다른 믿음의 선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잠깐 몇 번 보기는 했지만 보지 못한 나머지 삶을 마치 하나님을 늘 보는 것 같이 여기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게 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모 세가 가로되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출 33:18-23)”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8)”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9)” 예수님은 충분히 자신의 살아계심을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나타내셨습니다. 다만 그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우 리는 하나님을 보기를 원하고 하나님이 하늘에 천둥과 번개를 내려 자신의 존재를 우리에게 알려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종종 우리에게 나타나셔서 우리 옆에서 함께 대화하신다면 교회 출석률도 더 높아지고 우리의 신앙이 참 좋아질 텐데 아쉽게도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어떤 교회는 장로회의를 할 때 빈 의자를 두고 예수님 자리라고 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계시지만 우리 눈으로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늘 살아계신 하나님이지만 우리는 몇 년에 한 번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합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삶을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살아계심을 나타내 보이신 때가 몇 번 있었을 것입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 하나님이 여러분 삶에 관여하시고 여러분 안에서 역사하시는 것을 체험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면서 사는 사람들은 믿음의 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소망

 

그 리스도인들의 소망은 하나님을 실질적으로 보면서 그분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것은 우리가 이 육체라는 제한된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이 있다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의 신을 체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엘리야와 시합했던 바알 선지자들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분이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지금도 자신의 살아계심을 나타내고 계십니다.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체험할 수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조용하게 하나님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알 수 있습니다. 방 해받지 않는 공간에서 주님과 조용히 대화해보시기 바랍니다. 오래지 않아서 주님의 임재를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마음에 있는 것을 아뢰고 주님을 찬양하며 예배하고 교제를 나눌 때, 우리의 영혼이 그분의 충만함으로 채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바람이 임의로 불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처럼 성령으로 난 자가 그렇다”고 하셨습니다. 나뭇잎이 나부껴서 바람이 있는 것을 알듯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보면 그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

 

우 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머지않아 우리는 그런 주님을 믿음의 눈이 아닌 육신의 눈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고 만나고 대화하고 만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날이 올 때까지는 믿음의 눈이 필요합니다.

구 약과 신약에는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고백이 담겨있습니다. 친히 보고 듣고 만진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나타내 보이신 하나님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살아서 우리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것은 참 복된 일입니다. 그 섬김이 헛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머지않아 우리 앞에 나타내실 때까지 더욱 모이기를 힘쓰고 더욱 사랑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더욱 힘써야 할 것입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