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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보는 눈의 축복

본  문: 누가복음 10장 21-24절

설교자: 조 성 훈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제자들을 돌아 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주 님께서는 유대 마을마다 제자들을 보내시고 그들로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는 이적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그곳에서 돌아온 제자들은 자신들이 행한 여러 이적을 이야기하며 매우 기뻐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는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눅10:20)”고 말씀하십니다.

 

사 람들은 예수님이 너무 극단적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성경을 보면 주님은 단호한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요10:8)” 본문 말씀에서도 주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시기를 복음, 영생의 소식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셨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허락하셨지만 또 한편으로는 제한하신 것입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눅13: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요9:41)” 예수 그리스도께 나온 사람은 자신이 소경이고 병자인 것을 인정하고 고백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지혜 있는 자들에게 숨기셨을까요? 그들 스스로가 지혜 있다 하여 복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막10:23)” 주님께서는 비유로 말씀하실 때가 많았는데 나중에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실 때 “하늘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지만 저들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마13:10-11). 즉 그들이 듣고 혹시 고침을 받을까봐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방여인이 주님께 와서 “내 아이를 고쳐주소서”라고 했을 때 주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마15:26)”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복음이 제한된 자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주님께 와서 “구원받은 사람이 적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주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눅13:24)”고 답하셨습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구원받을 확률은 매우 적습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22:14)” 지혜로운 자들에게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 나타내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어린 아이들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스스로 지혜 있다 생각하여 하나님을 찾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가난해서 하나님을 향한 사람들 말입니다.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눅18:16)”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18:3)”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더 복이 있습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부자가 하나님을 찾을 확률이 더 낮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 나님은 복음의 잔치에 먼저 유대인들을 초청하셨습니다. 어떤 이는 소를 샀다고, 장가를 들었다고, 밭을 사서 갈 수 없다고 핑계를 댔습니다. 그 때 주인은 산과 들로 다니면서 소경과 저는 자들, 가난한 자들과 멸시받는 자들을 데려오라 했습니다. 처음 초청받은 자들이 거절하자, 세상에서 미련하다고 무시당하는 자들을 초청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이 그 자리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것입니다.

 

어 떤 사람의 눈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보입니다. 본문 말씀은 하나님이 인간의 육체를 가지고 오셔서 하신 역사들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이 복이 있다는 말씀이지만, 더 넓은 의미로 보면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은 참 복되다는 의미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제가 말씀을 전하고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는 사람은 참 복 있는 사람입니다. 성령께서 거하셔서 삶 가운데 역사하시고 열매를 나타내시는 것, 교회 안에서 일하시는 것들을 보지 못한다면 그는 복된 자가 아닙니다. 주님이 많은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실 때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양했지만, 어떤 사람들을 바알세불을 힘입어 능력을 행한다고 비난했습니다. 똑같은 상황을 보았지만 보는 눈이 달랐던 것입니다. 어 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고 감사가 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무감각하게 들립니다. 말씀이 내 귀에 들린다면 그는 하나님 나라에 속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눈을 열어서 보게 하시고 귀를 열어 들리게 하신 것, 이것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하 나님께서 이 복음을 어떤 사람들에게는 감추셨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구원 얻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구원해주시고 눈과 귀를 열어 주셨습니다. 이것은 남은 생을 춤추게 할 만하지 않습니까?

 

십 자가에서 주님이 돌아가실 때 양쪽에 강도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평생 죄를 짓고 마음대로 살았던 자들입니다. 평생 구원받을 확률은 거의 없던 자들이 십자가 사형장에서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결국 한 사람은 구원을 받고 한 사람은 지옥에 갔습니다. 아무에게나 눈과 귀가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막10:25)”

 

우리가 얼마나 복된 자들인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6:10)“ 그러나 우 리의 영적 눈이 흐려져 있을 때는 이와 같은 것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가진 자들입니다. 문제는 그것이 보이냐 보이지 않느냐입니다. 보이는 자들은 모든 것이 감사일 것이고, 보이지 않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불평거리일 것입니다.

 

우 리는 봐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았는지 얼마나 복된 자들인지를 봐야 합니다.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1:18,19)” 우리의 영안을 밝히는 방법은 자주 닦는 것입니다. 텔레비전 화면을 닦는 것이 아니라 성경말씀을 닦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점점 밝아지면 우리가 얼마나 복된 자들인지 부한 자인지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세계가 보이고 들리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