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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믿음의 역사

본   문: 데살로니가 전서 1장 1-5절

설교자: 조 성 훈

 

 

”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

 

 

사 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지역에서 세 안식일 동안, 즉 3주 동안을 머물며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학자들은 그곳에서 3개월을 머물렀다고 추정하는데 그로인해 데살로니가 지역에 교회가 생겨나게 됩니다. 그 이후 사도 바울은 다른 지역으로 떠났고 그곳에서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식을 전해 듣게 됩니다.

 

“우 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본문 말씀에는 그리스도인에게 나타나는 세 가지 요소, 즉 믿음, 소망, 사랑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으로 인한 인내’를 생각하고 항상 하나님께 감사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그의 삶에서 이 세 가지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먼저 그리스도인에게는 ‘믿음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에베소 교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우상숭배하던 책을 불사르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죄악된 세상에서 돌이키고 성적 타락에서 회복하며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믿음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믿음은 그저 이론적인 것이 아니고 그 안에 하나님의 능력이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구원받기 전과 후가 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믿음의 역사는 다른 사람들도 알 수 있도록 눈에 띄게 나타납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고 믿는 사람들에게 좋은 간증으로 퍼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마5:15)” 데살로니가 지역에 이런 믿음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또한 이러한 믿음의 역사는 다른 성도들에게 감사가 되고 감동이 되며 담대함을 가지게 합니다. 교 회 안에서도 새로운 영혼이 더해져서 구원을 받고 그가 새로운 삶을 살아가면 그것을 다른 성도들이 지켜볼 때 참 기쁨이 되고 감동이 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 한 흑인 체조 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흑인으로서는 최초의 금메달리스트였습니다. 그가 기쁨에 넘쳐서 말하기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것은 하나님과 나에게 좋은 일입니다. 영광은 하나님께 올려지고 축복은 내게 오니 말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듣고 저는 적잖이 놀랐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에 인색할 때가 많은데 이 16살 소녀는 담대하게 이와 같이 말한 것입니다. 또한 주님을 위해서 살면 자신의 꿈이나 즐거움을 잃는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 소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도 승리자이고 축복받은 자신 역시 승리자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것이 믿는 자들의 축복이 아닐까요? 그 소녀의 말에 감동이 되고 기쁨이 되었으며 큰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본 문 말씀은 두 번째로 ‘사랑의 수고’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수고가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손자를 지극히 사랑하는 한 할아버지는 입만 열면 손자이야기 뿐입니다. 손자를 위해 일부러 기차를 타러가기도 하고, 일을 마치고 돌아가면 아무리 피곤해도 손자를 데리고 대형마트에 간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는 해외에 나갈 일이 있었는데 손자에게 비행기를 보여주기 위해 핸드폰으로 열심히 찍어 보여주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주님에 대한 사랑이 내 안에 가득 차게 되면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이 내 마음을 사로잡으면 나는 형제자매를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에는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그것을 탕감 받고 와서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탕감해주지 않는 것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엄청난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그 은혜를 생각하면 형제자매를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 랑에는 반드시 수고가 따르게 됩니다. 배우자가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것이 ‘말로만’이 되면 안 됩니다. 설거지나 집안 청소 등의 수고가 그 안에 포함되어야 합니다. 주님 안의 형제자매를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이유는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3:16)”,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요일3:1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또한 세 번째로 ‘소망으로 인한 인내’를 말하고 있습니다. 소망은 아직 이뤄지지 않은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성도에게는 믿음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가정과 교회에서, 개인의 언어생활과 사고에서, 물질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으로 사로잡혀 형제자매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모든 환경을 인내했습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딤전4:10)”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의 소망 때문입니다.

 

최 근에 뉴스를 보니 지구에서 6천만 광년 떨어진 곳에 은하 하나가 새롭게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수많은 은하를 포함한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시고 그 창조하신 우주 가운데 나에게 은하를 주실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현재 나에게 있는 어려움은 어려움이 아닙니다. 소망은 현재의 내 환경을 변화시켜 주지는 못하지만 그 환경을 인내하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롬8:24,25)” 우리의 마음 속에 하늘에 대한 소망이 흐려질수록 우리는 세상을 더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눈이 세상을 헤매고 다니면 마음은 허망한 것으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하늘에 있어야 합니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3:2)”

 

남 편과 아내가 오랫동안 함께 하다가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면 남편은 집안 살림살이를 볼 때마다 아내를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눈만 뜨면 아내가 생각나기 때문에 너무 슬퍼서 그 집에서 살고 싶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그 창조하신 온 우주와 만물에 드러나 알게 된다고 했습니다. 밖에 나가서 자연을 바라볼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이 생각나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그렇지가 않습니다. 마음이 하나님께 가지 않고 다른 것에 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으면 아마도 우리는 보는 것마다 하나님의 손길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인내할 수 있습니다. 잠시잠깐 후면 그분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 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 그리고 ‘소망으로 인한 인내’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나타난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도 그와 같은 것들이 넘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내 마음에 주님의 사랑이 없다는 것이고 내 눈에 소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과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이 나의 마음을 휘어잡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사로잡아서 하늘로 올려놓고, 성경을 통해 여러분의 마음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채우십시오. 주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를 체험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저 무거운 짐과 의무감이 될 뿐입니다. 

 

결론

 

여러분 삶에도 이러한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삶이 정결해지고 거룩해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므로 죄악 가운데서 벗어나고, 형제자매에 대한 사랑이 풍성해지며 소망으로 인해 인내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흑 인 체조선수, 16세 소녀의 고백을 들으며 믿음이란 한 사람의 믿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기쁨,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많은 성도들에게 기쁨과 위로가 되는,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