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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다윗이 찾은 행복

본   문: 시편 16편 8-11절

설교자: 조 성 훈

 

 

“내 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그 리스도인들은 모두 신앙생활의 굴곡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선지자 엘리야는 수많은 거짓 선지자 앞에서 진리를 선포하던 하나님의 귀한 종이었지만, 이세벨이 두려워 그를 피해서 혼자 죽기를 청할 정도로 나약한 면이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도 여자가 낳은 자 중 가장 큰 자라 말씀하시던 사람이었고 광야에서 주님의 오심을 담대히 예언하던 자였지만, 감옥에 갇혔을 때 믿음이 약해져서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서 ‘정말 당신이 맞냐’고 물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죽을지언정 주님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고백했으면서도 보잘 것 없는 여종 앞에서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시 편은 다윗의 예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개인적인 경험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그는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시22:1)”라고 고백할 정도로 영적인 상태가 좋지 않았을 때도 있었고, 본문 말씀처럼 영적 상태가 좋았을 때도 있었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때로는 기쁨으로 주님을 찬양하지만 때로는 주님을 원망하지 않습니까? “주여 나는 외롭고 괴로우니 내게 돌이키사 나에게 은혜를 베푸소서(시25:16)”

 

“내 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8)”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그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그러나 그것이 항상 느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다윗은 항상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자신의 오른편에 모신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갈증이 있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것이나 물질을 추구하는데서 채워지지 않는 영적인 갈증이 그들에게 있습니다. 또한 믿는 사람에게도 갈증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을 가까이에서 체험하고자 하는 갈증입니다. 신랑과 신부가 사랑할 때 그들은 서로에 대한 갈증이 있게 마련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사랑할수록 더 가까이하고 그 사랑을 확인하기를 원합니다. 믿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확인하기를 원합니다. 믿는 사람에게 가장 큰 기쁨은 무엇입니까?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신 것을 체험했다’, ‘어떤 일을 통해 주님을 경험했다’ 등 주님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기쁨인 것입니다.

 

우 리의 영혼이 하나님이 함께 계신 것이 느끼면 그에게는 구원에 대한 확신이 생기게 됩니다. 또한 부활에 대한 소망이 보이고 즐거움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가 한 일은 바로 의도적으로 자신의 앞에 하나님을 둔 것입니다. ‘이제부터 즐거워해야지’라고 결심한다고 우리의 영혼이 즐겁게 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주님을 체험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여기서 ‘체험’이라는 것은 꿈이나 환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엡3:17)” 주님은 늘 우리 마음에 계시지만 문제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문제의 해결자는 주님이십니다. 참다운 만족과 기쁨, 구원에 대한 확신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고 그것을 누리게 하시는 분도 주님이십니다. 곧 주님과의 관계가 모든 것을 좌우합니다. “주님을 믿기는 하지만 내 상태가 외롭고 괴롭습니다”라고 한다면 그는 현재 주님과의 관계가 좋지 못한 것입니다. 의외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 안에서 외로워합니다. 그렇다면 늘 기쁘고 항상 감사가 넘치는 사람은 정상일까요?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단의 공격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 속에 주님을 가까이 느끼고 싶고 체험하고 싶은 것, 신부가 신랑을 사모하듯이 주님의 사랑을 갈구하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정상적인 모습입니다.

 

남 편들은 참 둔해서 아내가 시험할 때 그것을 전혀 모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내가 남편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시험하기 위해서 설거지를 부탁했다고 합시다. 남편이 설거지를 해준다면 아내는 기쁠 것입니다. 설거지를 해줘서 기쁜 것이 아니라 남편이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에 기쁜 것이지요. 우리는 지속적으로 주님에 대한 사랑을 갈구합니다. 동시에 주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충분히 체험하면 그 영혼에 기쁨과 만족이 찾아옵니다.

 

우 리는 믿음의 눈을 밝혀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계시게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면 외롭고 괴로운 것은 자동적으로 해결됩니다. 하늘의 소망과 영원한 영광,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중 요한 것은 나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으시는 주님을 가까이 볼 수 있는 믿음의 눈, 그것을 가지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믿음의 눈을 밝힐 수 있을까요?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앉았을 때나 섰을 때나 누웠을 때나 늘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고 묵상하며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바쁘다고 핑계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하고 싶은 것은 시간을 내서 하고 살지 않습니까? 믿음이 어두워지면 주님이 보이지 않고 그러면 구원에 대한 확신이 사라지고 부활의 소망도 흐려지는 것입니다.

 

하 늘나라가 밝히 보이는 사람일수록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고 살아갑니다. 썩을 것, 일시적인 것에 마음을 두지 않는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항상 앞에 모셨다는 것은, 다윗이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에 집착했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눈을 통해 하나님을 인식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 가까이 계시도록 의도적으로 지속적으로 노력했던 것입니다.

 

지 속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계시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신앙생활을 하기 참 어렵습니다. 더구나 주님의 오심이 가깝고 세상은 극도로 타락되어 가며 주님의 말씀을 보지 못하도록 다각도로 사단이 방해하고 있는 오늘날은 더욱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 손에 성경이 들려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눈이 밝아지고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을 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고 그것을 자주 묵상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우 리는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님이 자신에게 무관심하다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주님이 자신과 가까이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다만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자신을 버렸고 하나님이 멀리 계셔 외롭고 괴롭다고 했던 다윗도, 의도적으로 주님을 가까이 했을 때 기쁨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여 러분은 매일 성경을 보십니까, 매일 텔레비전을 보십니까? 성경이 여러분 손에서 떠나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가까이 계시는 주님이 보일 것입니다. 주님이 보이면 영혼의 기쁨과 즐거움, 구원의 확신과 하늘나라의 소망이 마음 속에 채워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충만한 것으로 채워지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