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당신은 직장에서도 그리스도인입니까?

본문 : 골로새서 3장 22-4장 1절

설교자 : 조정의

 

오늘은 직장에서 그리스도인이 입어야 할 새사람에 관해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직장생활을 하는 분들에게 직접 적용할 수 있는 말씀이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적용할 수 있는 교훈이 들어 있습니다. 또 주변에 직장생활을 하는 이웃이나 자녀에게 전해줄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말씀을 살펴보기 전에, 어떤 분들은 이 말씀이 오늘 직장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적용할 수 있는 말씀인지 의문을 가질지도 모릅니다. 22절을 보시면 오늘 말씀은 “종들”(δοῦλος), 더 정확하게 말하면 “노예들”에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 노예가 아닌데요?”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혹은 “그렇죠, 전 삼성/학교의 노예예요”라고 말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쓴 이 편지를 골로새 교회에서 낭독할 때 오늘 본문 말씀을 들었던 사람들, 즉 22절에 “종들” 그리고 4장 1절의 “상전들”이 누구였는지 알아야 합니다.

22절에 나오는 “종들”은 가정에 소속된 노예였습니다(눅 16:13; 롬 14:4). 노예가 자유롭게 종교활동을 할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아마도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된 상전에 의해 교회에 나오게 되었을 것입니다(행 16:31, 빌립보 교회-빌립보 간수와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 빌레몬의 집에 모인 교회-빌레몬과 오네시모). 

오늘날 아주 부유한 집에서 집사나 가정부를 두고 일을 맡기는 것처럼, 과거에는 대다수의 부유한 집에서 노예를 두고 부렸는데, 골로새와 같은 도시는 주민의 삼 분의 일이 노예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래서 “완벽한 가정은 노예와 자유인으로 구성”된다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로마는 잦은 전쟁을 했기 때문에 포로가 된 노예가 생겼고, 그 외에도 빚을 갚기 위해 스스로 노예가 된 사람, 노예 어머니에게서 난 노예, 유기된 노예 등 다양한 이유로 노예가 된 사람이 존재했습니다. 노예들은 다양한 일을 했는데, 가령 건축, 교육(학원), 어린이 돌봄, 의료, 농업, 광업, 어업, 요리, 상업, 경호, 주택관리, 음악 등 지금의 직장에서 하는 일과 거의 같은 일을 했습니다.

“노예”라고 하면 인종차별에 따른 노예제도를 생각하여 아무런 보상 없이 학대만 받는 노예를 떠올리기 쉬운데, 이 당시에는 인종과 상관없이 대부분 경제적인 이유로 노예제도가 유지되었습니다. 노예는 먹고살기 위해 일이 필요했고, 상전은 자기 사업을 관리하거나 자녀를 양육할 일꾼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노예에게 숙식 나아가 임금을 제공했고, 노예는 후에 그 돈으로 자유를 얻을 수도 있었습니다.

물론 불공평한 일이나 학대가 없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노예를 소유한 상전들은 노예를 도구나 자신의 자산처럼 여겨 마음대로 사고팔았고, 까다로운 주인은 노예를 때리고 벌주고 심지어 죽이기도 했습니다(벧전 2:18). 기본적으로 노예는 법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그리고 인격적으로 권리를 보장받기 매우 힘든 계층이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그리스도의 복음이 얼마나 놀라운 일을 행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그리스도 안에서 종이나 자유인이나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골 3:11).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입니다(갈 3:28). 

골로새 교회 안에 상전과 종이 함께 있었지만, 그 둘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자매가 되었습니다.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차별이 없는 한 몸이 되었습니다. 바울이 빌레몬에게 쓴 편지를 보면 그 종 오네시모를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받는 형제로 둘 자”라고 부릅니다(몬 1:16). 주인이 종을 형제처럼 대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종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고 명령합니다(딤전 6:2). 상전을 형제로 여겨 더 잘 섬기라는 것입니다. 

상전과 종이 그리스도 안에서 차별이 없는 동등한 존재, 한 형제자매가 되었지만, 여전히 그들이 각각 맡은 역할에 충성을 다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그들에게 각각 오늘 본문의 명령을 준 것입니다. 

이 자리에 사장과 사원이 함께 있다면, 가장 적합하겠지만, 이 말씀은 모든 그리스도인 직장인에게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직장에서 어느 정도 구속과 통제를 받는 상태로 바울 당시 노예가 했던 일을 감당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보수를 받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 이 자리에 사장님이 있다면, 여러분을 위한 말씀도 마지막에 나옵니다.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1. 종들아, 상전에게 순종하라(3:22-25)

22절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23절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먼저, “종들”에게 주어진 명령입니다. 22-23절은 명령, 24-25절은 그 명령에 순종해야 하는 이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종들은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이 그들의 역할입니다. 여기 “순종”에 사용된 단어(후파쿠오)는 자녀가 부모에게 해야 할 “순종”과 같은 단어로, 아주 큰 강제력이 있는 순종을 가리킵니다. 또한 자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종들에게도 “모든 일에” 순종하라는 넓은 범위의 순종 영역을 성령께서 분명히 부과하셨습니다.

종이 순종해야 하는 대상은 누구일까요? 22절에 나오는 것처럼 순종의 대상은 “육신의 상전들”입니다. 당시엔 종을 소유한 주인, 오늘날엔 이 땅의 사회 체계 혹은 회사 조직 안에 나에게 명령을 내리고 일을 시키는 상사, 임원 나아가 사장이 여기 해당할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리스도인 종들, 노예들 오늘날의 직장인들이 순종하는 대상이 단순히 “육신의 상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22-23절에서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자세히 살펴봅시다.

22절에는 어떻게 순종해야 하는지 더 자세한 설명이 나와 있는데,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라고 하였습니다.

두 가지 순종의 태도가 대조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주를 두려워하는 자입니다. 순종의 대상이 다른 것입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는 사람을 섬겨 23절 말씀처럼 사람에게 하듯 하고, 주를 두려워하는 자는 주를 섬겨 주께 하듯 합니다. 결국 여러분이 직장에서 어떻게 일하는지 생각해보시면 여러분이 지금 누구를 섬기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하듯 일하는 사람은 22절 말씀에 나오는 것처럼 “눈가림만” 합니다. 육신을 가진 상전은 하나님처럼 항상 종을 살펴볼 수 없습니다. 종의 마음속까지 꿰뚫어 볼 수 없습니다. 그러니 종은 주인이 볼 때만 좋은 인상을 남기려 합니다. 단지 비난만 안 받을 정도로 최소한의 노동을 합니다. 속으론 욕하고 불평하면서 겉으론 그럴듯하게 순종합니다. 형식적이고 의무적이고 위선적인 순종입니다. 이것이 사람에게 하듯 일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주를 두려워하는 자는 다릅니다. 그는 성실한 마음으로 순종합니다.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신실하게 일합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자는 그 마음이 순수하고 양심적입니다. 주님 앞에서 일하기 때문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보고 계시고 그 중심을 아시는 주님을 진실로 두려워하고 경외하기 때문에 그분 앞에서 일하는 것처럼 일합니다. 여러분의 직장 생활은 이 두 가지 모습 중 어디에 가깝습니까? 여러분은 누구에게 하듯 일하고 있습니까? 사람입니까? 주님입니까?

한 가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은 바울이 여기 육신의 상전을 가리킬 때 쓴 단어와 주님을 가리킬 때 쓴 단어가 같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 셈입니다.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주님에게 순종하되 오직 주님을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순종의 대상이 육신의 주님 즉 상전이지만, 실제로는 주님을 섬기듯 하라는 것입니다. 23절에서 바울이 준 명령은 이 것을 더 강조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무슨 일을 하든지. 육신의 상전이 무슨 일을 시키든지, 회사에서 나에게 어떤 일을 맡겨주든지, 어떻게 하라고요?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여”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영혼을 다하여”입니다. 영혼부터 시작해서 내 모든 것을 다 쏟아부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성경 주석가는 “네 자신을 그 안에 두라”라고 설명했습니다(데이비드 파오).

여러분의 직장생활은 결국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육신의 상전이 맡긴 일에 전심으로 충성하는 일은 주님께 드리는 여러분의 삶의 예배입니다. 주님이 미워하시고 금하신 일이 아니라면 여러분 상사가 무엇을 요구하든지 주께 하듯 전심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사람 앞에서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 앞에서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직장에서 고용주가 아니라 여러분을 고용하신 고용 주님을 섬기고 있다는 사실을 늘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사장님이 어떤 사람인지 몰라서 그래’, ‘김부장이 얼마나 별종인지 몰라서 그래’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듣고 있던 성도 중 어떤 이들은 까다로운 주인 아래서 일하는 종이었을 것입니다. 혹 그들 중에는 팔려서 강제 이주를 당하거나 매를 맞고 죽임을 당하는 등 부당한 고난을 겪는 이들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벧전 2:18). 혹시 직장에서 매 맞는 분 계십니까? 물론 죄 많은 이 세상에서 직장 생활하며 많은 부당한 일을 경험할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오늘 본문 말씀을 들었던 이들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일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도 성경은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고 명령합니다(벧전 2:18). ‘그래, 더럽고 아니꼽지만 참고 순종하는 수밖에… ’이렇게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공경할 자로 알라”고 명령했습니다(딤전 6:1).

왜죠? 종이 순종하는 대상이 육신의 상전이 아니라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운 일이라고 사도 베드로는 고난 중에 있는 종들에게 설명했습니다(벧전 2:20). 사도 바울 역시 “기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을)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말했습니다(엡 6:7).

성경은 까다롭고 부당하게 대하는 상사에게도 기본적인 공경을 요구합니다. 그가 맡긴 일에도 기쁨으로 충성해야 합니다. 그것이 직장에서 주님께 하듯 섬기는 자의 순종의 모습입니다.

이쯤 되면 “왜?”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왜 남들처럼 적당히 일하고 요령껏 일하고 회사에서 챙길 수 있는 것, 얻어낼 수 있는 것 다 받으면서, 지혜롭게(?) 살면 안 되는가? 최대한 적게 일하고 많이 받으면 안 될까? 왜 매일 회사에 나가서 영혼부터 끌어올려 전심으로 신실하게 일해야 하는가? 왜 까다로운 상사까지 공경하고 그가 맡긴 일을 기쁨으로 해야 할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4절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섬기라) 25절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느니라

“이는”이 앞에 있는 명령이 주어진 이유를 소개합니다. 육신의 상전에게 순종해야 하는 이유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기 때문입니다. 

“기업”은 신약성경에서 ‘유업’, ‘땅’ 등 누군가에게 상속받는 재물을 가리킬 때 많이 사용된 표현입니다. 하지만 노예, 종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단어입니다. 그들은 돈으로 자유를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자유인이 되어도 누군가에게 받을 재물이나 땅은 없습니다. 그래서 종은 ‘기업’과는 거리가 아주 먼 사람들입니다. 이 땅에서 ‘기업’이란 꿈도 꿀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그들에게 기업을 상으로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신의 상전도 그들에게 결코 주지 않을 기업을 참 주인 되신 주님께서 그들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들이 육신의 상전에게 순종하는 것에 대한 상으로 말입니다. 바로 이것이 22-23절의 명령에 종들이 기쁨으로 순종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순종을 결코 지나치지 않으실 것입니다. 반드시 보상하실 것입니다.

종들이 당하는 부당함은요? 25절 말씀을 보십시오.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습니다. 주님께서 불의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최종 심판자이신 예수님은 사람을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그 신분에 따라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의와 공평으로 심판하십니다. 예수님도 욕을 당하시고 고난을 받으실 때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셨습니다(벧전 2:23).

그러므로 부당한 대우를 당할 때 종은 주께서 보응하실 것을 믿으며 자기 역할에 충성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도 불의한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은 단순히 불의한 주인에게만 임하는 것이 아니라 불의한 종에게도 공평하게 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24절에 사도 바울이 말씀하신 것처럼 “주 그리스도를 섬기”시기 바랍니다. 24절에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는 명령어로 해석될 수 있고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겨라.” 이것이 오늘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명령입니다.

어떻게 하면 직장에서 주 그리스도를 섬길 수 있을까요? 나에게 맡겨진 일을 주가 부탁하신 것으로 알고 전심으로 또한 기쁨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상사가 별종이라도 주님이 내 위에 두신 자로 여기고 범사에 그를 공경하는 마음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하면 시간을 대충 때울까가 아니라 주님 앞에서 일하는 사람처럼 회사에서 하는 모든 일을 주를 기쁘시게 하기 위해 하시기 바랍니다. 출근할 때 오늘 하루도 주께 하듯 일하는 하루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고, 퇴근할 때 주님 앞에서 일했는지 돌아보며 내일은 더 주님께 기쁨이 되는 시간으로 채워달라고 구하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죄인들 앞에서 십자가에 달려 계실 때, 저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시면서 그들을 위해 죽으신 것처럼, 까다로운 상사를 위해 기도하며 그를 위해 죽으러 회사에 나가십시오. 진짜 죽으라는 말이 아니고 나의 권리를 내려놓고 성질을 죽이고 겸손히 나를 낮추고 그를 사랑하고 공경하며 무슨 일이든 기쁨으로 순종하기 위해 나가라는 말입니다.

이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보상하실 것을 믿음의 눈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매 순간 직장에서 내가 순종할 때 하나님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주님의 마음이 기쁠 때 나도 기쁘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어떤 분은 토요일과 주일, 심지어 초과시간을 포함하여 주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할 수많은 시간과 기회로 채워진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아주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그 시간을 단지 돈을 벌기 위해 요령껏 일하는 시간으로 삼지 마시고 오직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예배하는 시간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2. 상전들아, 종에게 의와 공평을 베풀어라(4:1)

1절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이번엔 명령의 대상이 바뀌었습니다. “상전들”입니다. 육신의 상전들에게 주어진 명령은 종들에게 “의와 공평을 베푸”는 것입니다.

당시 노예의 소유주들에게 “의”(정의)와 “공평”을 말하는 것이 기이하게 여겨졌을 것입니다. 노예들에게 정의와 공평을 베풀라니…

노예 주인들은 사회와 가정에서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지위와 권력을 충분히 이용하고 싶은 유혹이 있었을 것입니다. 가령 종에게 마땅히 지급해야 할 임금을 주지 않거나 제때 주지 않거나 휴식을 충분히 주지 않는 등 주인이 원하는 대로 종을 부려먹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더 높고 우월한 존재라고 생각하여 종을 함부로 대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9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종들을 “위협”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 여러 가지 강력한 유혹에 노출된 상전들에게 성령께서는 “의와 공평을 베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위협을 그치라”고 명령합니다(엡 6:9).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의로운 방식대로 하나님 앞에서 공평하게 종들을 대우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 그것은 종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빌레몬-오네시모), 주거와 보수를 제대로 제공하는 것, 휴식 시간을 확보해주는 것, 혹은 종에게 하는 말을 부드럽게 바꾸는 것을 의미했을 것입니다.

주인이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들도 하늘에 상전을 섬기는 종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상전 주님은 그들에게 의와 공평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주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 편지할 때,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알라(엡 6:8)고 말했습니다. 종이 육신의 상전에게 순종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평가를 받고 상을 받는 것처럼, 상전은 하나님의 이 말씀, 의와 공평을 베푸는 것에 대해 하나님의 평가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가운데 상사로 일하는 분이 계신다면, CEO나 사장님이 계신다면, 의와 공평을 베푸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인 여러분이 직장에서 입어야 할 새사람의 옷입니다. 나도 하늘의 주님을 섬기는 직원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내 상전이 요구하시는 것처럼, 주님이 나를 의와 공평으로 대하시는 것처럼, 내 권위 아래 있는, 나의 명령에 따라 일하는 직원을 대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때로 직원에게 마땅히 베풀어야 할 급료나 복지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혹은 함부로 대하거나 이용하는 것을 그만두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부드럽게 말하고 깎아내리지 않고 주 안의 한 형제자매처럼 귀하게 여기고 높이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회사에서 밑에 직원을 혼내고 괴롭히게 시킨다면? 혹은 그래야 업무 능률이 확 오른다면?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과제입니다. 우유부단하고 일 못 하고 성격만 좋은 상사가 되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전심으로 최선을 다해 일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의와 공평을 베푸는 상사가 되시기 바랍니다.

다니엘과 요셉을 보십시오. 일에서는 털어서 먼지 하나 나지 않을 것처럼, 왕에게 최고의 이익을 가져다주기 위해 체계적인 계획을 세우고 철두철미하게 일하는 최고의 일꾼이었지만, 동시에 사람을 사랑하고 돌보고 무엇보다도 주님께 헌신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구하십시오. 직원들에게 사랑으로 대하고 공평하게 대우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게으르고 불만족스러운 일꾼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성실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직원을 이끌어 갈 수 있도록 모범이 되고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지혜와 힘을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직장생활을 하지 않는 분들은 오늘 말씀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골로새서에서도 이와 유사한 명령을 했는데,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입니다(골 3:17). 모든 그리스도인은 직장생활을 하든지 하지 않든지, 모든 일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직장 생활을 하지 않는 분들도 오늘 말씀을 통해 이런 마음을 품으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주님께 고용된 직원으로 매일매일 일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 그리스도인은 직장인이든 취준생이든 학생이든 모두 다 그리스도의 “종”,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 여러분 모두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는 중”이라고 쓰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행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상주시고 보응하십니다.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자녀로서, 부모로서, 직장인으로서, 사장으로서 여러분이 행하는 모든 일에 대해서 그리스도께서 평가하십니다. 그분이 상주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면 그것으로 끝일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해외부서(천국부서)로 옮겨 영원히 주님을 위해 일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는 것이 반영되어(인사고과, 업무능력) 천국부서에서 우리가 받는 대우가 달라질 것입니다. 이 땅에서 종이 천국에서는 상전이 될 수 있다는 말이죠. 반대로 이 땅에서 상전이 천국에서는 종처럼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9:30).

참고로 이 땅에서 최고의 기업 CEO라도 그리스도를 모르는 자라면 영원한 곳에서 영원한 보응을 받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아직까지 그리스도를 모르는 분들은 반드시 그리스도를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이 땅에서만 열심히 일하지 마시고 곧 부서이동하게 될 영원한 삶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보다 더 멋진 속담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같이 벌어서 그리스도인같이 쓴다”입니다.  여러분 각자에게 주어진 일에 그리스도인같이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서 주어진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보이는 것만 바라보며 살지 마십시오.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이며 그러므로 그리스도께 하듯 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며 일해야 합니다. 주님이 반드시 보상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