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다시 복음으로

본문: 로마서 1장 1~7절

설교자: 이병권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바울이 로마 교회에 보낸 이 편지는 가장 영향력 있는 성경으로 손꼽힙니다. 아우구스티누스, 마틴 루터, 존 웨슬리, 칼 바르트와 같은 교회 지도자들이 로마서의 말씀으로 그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그들이 교회 지도자로서 교회에 끼친 영향을 생각할 때 로마서의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마틴 루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로마서는 아무리 읽고 또 연구해도 결코 지나친 법이 없으며 접하면 접할수록 더 소중해지고 더 좋은 맛이 난다”

이런 유명한 인물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주변의 성도들과의 교제를 통해서도 로마서의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로마서를 통해 주님을 향한 믿음을 고백했고 신앙의 성장과 은혜를 경험했음을 간증합니다. 그래서 저명한 신학자 F.F.부르스는 로마서의 영향력을 언급하면서 로마서의 영향은 몇몇 위대한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이 로마서를 연구하기 시작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로마서를 읽은 사람들은 그것을 읽을 때 어떤 결과들이 나타날지에 대해 각오를 하도록 하자. 독자들에게 경고하는 바이다”

그래서 미리 경고합니다. 로마서를 통해 여러분에게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모릅니다. 로마서의 말씀을 진지하게 읽고 하나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면 여러분은 분명히 그에 따르는 결과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물론, 그 결과는 우리 인생에 있어서 유익한 것이고 선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이 로마서를 통해 우리 인격이 다듬어지고 우리 인생이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삶이 새롭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렇게 되기를 원하신다면 마음을 열고 로마서의 말씀에 겸손히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간절히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로마서의 영향력이 크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을 가지게 됩니다. 그럼 왜 로마서가 사람들에게 이렇게 큰 영향을 주는 걸까요? 로마서에 뭔가 다른 특별한 것이 있는 걸까요? 어떻게 로마서가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걸까요?

하나님은 그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성경을 통해 사람의 인생을 바꾸십니다. 모든 성경이 그러합니다. 하지만 로마서가 특별한 것은 복음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바꾸고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복음입니다. 복음이 우리를 바꾸는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를 바꿀 수 있습니다. 앞으로 로마서를 살펴보면서 사람을 바꾸는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진지하게 다시 복음으로 나아가 복음이 주는 감격을 새롭게 하고 복음의 의미를 다시 마음에 새기며 복음의 가치를 다시 깨닫게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로마서에만 복음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해 수고했고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바울의 편지들에는 곳곳에서 복음을 찾을 수 있고 복음이 녹아져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서가 특별한 것은 성경의 어떤 책보다 로마서가 복음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복음을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쓸 때는 3차 전도여행을 마칠 무렵이었는데 그는 고린도에서 3개월 정도 머물고 있을 때 로마서를 씁니다. 앞으로의 전도 방향을 생각하며 로마에 방문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서바나(지금의 스페인)에 복음을 전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에 로마 교회가 함께 동역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사귐으로 얼마간 기쁨을 가진 후에 너희가 그리로 보내주기를 바람이라”(롬15:23-24)

로마 교회가 자신을 서바나로 보내주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스페인 선교사역에 동역하는 교회가 되어주기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로마 교회가 바울과 동역하는 일에는 두 가지 방해 요소가 있습니다. 하나는 바울에 대한 것이고 또 하나는 로마 교회에 대한 것입니다.

먼저 바울에 대한 것은 바울을 대적했던 거짓 교사들은 여기 저기 다니며 바울에 대한 거짓을 퍼뜨렸고 그로 인한 오해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로마 교회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로마 교회에 바울과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대한 오해가 있었습니다. 사도로서 자격 없는 바울이 문제 있는 잘못된 복음을 전한다는 것입니다.

한 예로, 더 많이 죄를 지으면 더 많은 은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율법을 폐하고 방종의 삶을 가르친다는 비방이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그들은 정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롬3:8)

그래서 바울은 이런 오해를 없애고 교회를 진리로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전하는 복음을 체계적으로 상세하게 기록합니다. 사실, 로마 교회는 바울이 세운 교회가 아닙니다. 갈라디아 교회처럼 바울이 세운 교회였다면 그들을 책망하며 거짓과 잘못된 가르침을 즉시 바로 잡아주었겠지만 로마 교회는 바울이 한 번도 방문 한 적이 없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도로서의 자격과 권위를 세우기 위해 자신이 전하는 복음을 설명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바울과 로마 교회가 동역하는 일에 방해가 되는 요소로 로마 교회의 내부적인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로마 교회는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방문했던 유대인들이 복음을 듣고 믿은 후에 로마로 돌아가서 세운 교회일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 교회는 로마에 있던 유대인들로부터 시작되었고 거기에 이방인들이 더해지면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하는 교회로 성장합니다. 처음에는 별문제가 없었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이방인들이 많아지면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서 조금씩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로마의 황제가 로마 전역에 대해서 유대인 추방령을 내립니다.

로마의 역사가 ‘수에토니우스’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황제가 로마에서 유대인들을 추방한 이유는 그들이 크레스투스의 사주를 받아 끊임없이 폭동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크레스투스’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주장을 두고 유대인 사회에서 벌어지는 논쟁들이 문제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유대인들은 로마에서 추방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누가도 사도행전에 언급했는데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행18:2) 누가는 아굴라 부부가 고린도로 온 것은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고 했기 때문이라고 기록했습니다.

로마 교회를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교회의 주축이었던 믿는 유대인들이 모두 떠나게 되었습니다. 로마 교회는 믿는 이방인들로만 구성된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시간이 지나 로마 황제가 죽고 추방령은 해제됩니다. 유대인들이 다시 로마로 돌아옵니다. 교회 안에 어떤 일이 생길까요? 그동안 로마 교회에는 이방인들이 더 많아졌을 것이고 유대인들의 관습이나 문화에서는 크게 멀어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교회는 하나 되지 못하고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분열된 상태가 된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로마 교회의 소식을 전해 듣고서 분열된 교회를 다시 하나 되게 하고 한 마음으로 스페인 선교에 동역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복음으로 이 교회를 치유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로마 교회가 다시 복음으로 하나 되고 다시 복음으로 수고하도록 격려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바울은 로마 교회에 이 특별한 편지를 쓰게 됩니다. 그리고 로마서의 이러한 특별함은 편지의 시작에서부터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당시 편지의 형식에 따라 편지를 시작하는데 편지를 쓰는 사람과 편지를 받는 사람, 그리고 인사말을 전합니다. 로마서도 이 형식을 따릅니다. 그런데 로마서는 특별한 점은 그 시작이 아주 길다는 것입니다. 1절에서 7절까지 이어집니다.

편지의 형식에 따라 말하면 1절에서 편지를 쓰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그리고 바로 7절로 넘어가서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편지를 받는 사람을 말하고 그러고 나서 인사말로 7절의 나머지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1절과 7절을 말하면 편지의 서론으로 충분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편지를 쓰는 사람, 자신을 소개하면서 많은 것을 추가합니다. 먼저 자신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여기서 바울이 자신을 소개한 두 가지 표현을 주목할 수 있습니다. “”이라는 말과 “사도”라는 말입니다. 두 가지 표현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바울이 앞에서 일하고 있지만 사실, 그가 하는 일에는 배후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것과 바울이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것도 자기가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이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 배후는 바울의 주인, 바울을 보내신 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종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보내심을 받은 사도입니다. 바울은 지금 로마의 성도들에게 이렇게 자신을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편지를 쓰는 바울의 입장과 편지를 받는 로마 교회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러한 바울의 소개가 더 의미가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개척하지도 않았고 사역하지도 않은 교회에 편지합니다. 쉽게 말하면, 자신과 무관한 교회에 편지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서울에 이름 있는 교회의 목사님이 갑자기 우리에게 편지를 보내서 우리 교회가 고쳐야 할 부분들을 가르쳐주고 자신에게 있는 선교 비전을 말하며 동역했으면 좋겠다고 한다면 어떨까요? 편지를 잘못 보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사도로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로마 교회에 시작되고 지금까지 바울이 관여한 일이 없다 하더라도 바울은 예수님이 택하신 사도로서 로마 교회에 대한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 교회를 돕고 로마 교회가 복음을 위해 함께 수고하는 교회가 되도록 하나님의 복음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특별하게 편지의 서론에서부터 복음을 간략하게 언급하면서 상대적으로 길게 이 편지를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는 복음에 대해서 세 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복음에 대한 세 가지는 복음의 기원과 내용, 그리고 목적입니다.

첫째로 복음의 기원입니다. 복음의 출처에 대해서 복음은 어디서 시작되었습니까?

1: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복음에 대해서 주어는 하나님입니다. 복음의 기원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셨고 하나님께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하나님의 복음입니다. 바울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사도들이 모여서 생각해낸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사도들에게 계시하셨고 그들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복음의 기원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은 정말로 중요합니다. 이 사실은 우리가 가진 복음의 가치와 진실함을 결정합니다. 우리가 왜 복음을 믿어야 하는지 왜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 왜 복음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복음의 기원이 말해주는 것입니다. 복음의 기원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이토록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복음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확신이 바로 이것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복음입니다. 우리가 믿고 전하는 복음은 사람들의 잡다한 생각으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때가 되어 하나님이 사도들에게 복음을 밝히 드러내주셨지만 복음은 전에 없다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새로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옛적부터 선지자를 통해 이미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셨고 때가 되어 하나님이 이루신 일이 복음입니다.

둘째는 복음의 내용입니다. 복음의 내용에 대해서 복음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1: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복음은 아들에 관한 것입니다. 아들에 대해서 말하면 그분은 육신으로는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오랫동안 품고 있었던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으로 오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라는 약속입니다. 메시아가 이 세상에 하나님의 정의를 가져오리라는 소망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습니다.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분, 메시아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던 예수는 그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힘없이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백성들은 십자가에 죽은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일 수 없었고 그들의 소망은 모두 헛된 것으로 끝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뒤집어 놓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어떤 것보다 더 극적인 반전이 예수의 죽음 이후에 벌어졌던 것입니다. 그분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권세 있는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주인 되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구원자, 그리스도 이십니다. 그분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음입니다. 그래서 복음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당시에 “복음”이라는 말은 신으로 여겨졌던 황제의 탄생이나 황제 등극을 선포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복음”이라는 말을 가져와서 진짜 “복음”을 선포합니다. 예수님이 진정한 왕이시며 진정한 주가 되심을 선포합니다. 세상의 다른 모든 거짓 왕들은 왕 되신 예수님 앞에 굴복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그리스도,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복음의 목적입니다. 복음의 목적에 대해서 복음은 무엇을 목표로 합니까?

1: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바울이 복음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적으로 믿어 순종하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복음은 사람들을 믿음으로 인도하며 그 믿음은 순종으로 나타납니다. 다시 말해, 믿음은 믿는 사람의 계속적인 순종으로 증명됩니다. 순종은 믿음에 뿌리를 내리고 믿음의 열매로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믿음과 순종은 동일시되어서는 안 되지만 별개의 것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믿는 구원자 예수님은 우리의 주님 되시기에 그분을 향한 믿음과 그분이 원하시는 순종은 나누어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향한 믿음으로 그분을 따르는 것이 곧 순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복음의 목적이 사람들에게 믿음으로 순종하게 하는데 있을까요? 이 말은 맞는 말이 될 수 있고 틀린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복음에 있어서 궁극적인 목적은 따로 있습니다. 바울은 그 목적을 본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이름을 위하여” 여기 말씀에서 “위하여”라는 말은 이유를 의미합니다. 그분의 이름이 복음의 이유, 그 목적이 된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그분의 이름입니다. 그분을 이름을 높이는 것, 복음의 목적은 그분의 영광입니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도 사람들이 복음을 믿고 순종하도록 돕는 일도 복음을 가르치는 일도 나에게 복음을 적용하고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일도 그 모든 일들은 주님의 영광을 위해 하는 일입니다. 바울은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모든 수고를 다하며 자신의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고 충성합니다.

스캇이라는 신학자는 이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가장 고귀한 동기는 대위임 명령에 순종하는 것도 아니며 소외감을 느끼며 소멸되는 죄인들을 위한 사랑도 아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열정, 불타는 열렬한 열정이다.’ 그분의 영광을 위한 열정, 그분의 이름을 높이기 위한 뜨거운 마음으로 복음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고합니다. 주님이 복음을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바울은 그러한 목적으로 복음을 위해 삽니다. 복음에 헌신합니다. 그리고 이제 그 일을 로마 교회와 함께 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편지를 받는 그들이 누구인지 알게 합니다.

1: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바울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처럼 그들도 부르심을 받은 자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소유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 속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처럼 그분의 종으로서 그분의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그분을 따르며 그분의 이름을 위해 그분을 높이기 위해 그 영광을 위해 복음을 믿고 순종하는 일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로마 교회를 향한 바울의 도전은 우리를 향한 도전이기도 합니다. 바울이 여기서 말하고 있는 “너희도”라는 말은 우리에게도 적용이 됩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았고 복음을 위해 삽니다. 복음을 받은 자로서 복음을 믿는 자로서 복음에 순종하는 자로서 주님의 영광을 위해 복음으로 살아갑니다. 나의 입술로, 나의 삶으로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선포하며 그리스도의 그 아름다운 이름을 높이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닙니다. 내 인생은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이름을 위해 주님의 영광을 위해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다시 복음으로 나아오십시오. 다시 복음으로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다시 복음으로 내 삶을 점검하시고 다시 복음으로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다시 복음으로 성장하기를 사모하시고 다시 복음으로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다시 복음으로 주님을 높이는 삶을 사십시오.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그 영광을 위하여 다시 복음으로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